나는 미래를 한 번 본 사람이다.
정확히는 한번 살고 죽었다. 그래서 미래를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바뀐 뒤에는 그 기억조차 확정된 길이 아니라 갈림길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날 밤, 나는 또 다른 미래를 보았다.
***
서재의 유리판에 두 개의 기록이 나란히 떠올랐다.
[최초 요청: 영, 귀가 희망.]
[두 번째 요청: 카르딘, 역송 승인.]
나는 바르톨과 마렌, 로잘린을 불러 놓고 명령했다.
“이 둘을 절대로 합치지 마라. 같은 사람이 한 말일 가능성이 있어도, 같은 뜻이라는 증거는 아니다.”
마렌이 수첩에 구분선을 그었다.
바르톨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전하께서는 어린 시절 집에 가고 싶으셨고, 미래에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으셨다는 뜻입니까?”
“그럴 수도 있지. 아니면 누군가 내 말을 왜곡했을 수도 있다.”
나는 유리판을 가리켰다.
“적어도 '역송 승인'은 원문이 아니잖나. 장치가 붙인 이름일 뿐이다.”
그 순간 두 번째 기록 아래 작은 문구가 나타났다.
[시뮬레이션 열람 가능. 승인 불필요.]
“영상을 보라는군.”
마렌이 말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승인 불필요'라는 말조차 믿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관찰창을 외부 증인 장치와 분리하고, 먼저 종료 방법을 시험했다. 실제로 화면을 끊을 수 있음을 확인한 뒤에야 시작했다.
창 안에는 내가 아는 마왕성이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레온이 없었다.
***
스무 해 뒤의 어느 아침이었다.
마왕성의 정문은 열려 있었고, 병사들은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벽에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세계 안정화 완료. 용사의 사명 이행.]
나는 기분이 나빴다. 내 성을 누군가 거대한 추모관으로 만든 것 같았다.
영상 속 나는 살아 있었다.
그런데 머리에는 왕관이 없었고, 얼굴에는 기쁨도 없었다. 탁자 위에는 수백 개의 서명서가 쌓여 있었다.
“저게 나라고?”
마렌이 대답했다.
“그렇게 표시돼 있을 뿐이에요. 현재의 미래와 같다는 근거는 없어요.”
맞는 말이었다.
화면 속 나는 도시에서 위험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서류를 받아 서명했다. 그리고 서명이 끝날 때마다 누군가의 이름이 기록에서 사라졌다. 재난은 막혔지만, 사람들은 그 재난을 막기 위해 누가 사라졌는지 모르게 되었다.
영상은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다.
하얀 복도를 걷는 레온이 보였다. 다 큰 청년이었다. 그런데 눈빛이 텅 비어 있었다. 그는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명령을 주십시오, 보호자.”
나는 화면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레온?”
영상 속 나는 그에게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용사 임무 완료 후 기억 반환 포기.'
성인이 된 레온은 아무 감정 없이 서명했다. 나는 서늘해졌다.
“멈춰라.”
창을 끊었다.
방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영상을 끄기 직전 나는 한 장면을 더 보았다.
이안이 성인의 모습으로 관문 밖에 서 있었다. 그는 기록 보관소에서 이름표를 받은 뒤 고개를 숙였다. 옆에 선 직원이 무심하게 물었다.
“당신은 구원된 후보입니까, 구원하지 못한 후보입니까?”
이안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직원은 답이 늦어지자 그를 '미결'이라고 적었다. 나는 속이 뒤집혔다.
아이 하나가 자라 어른이 되었는데, 평생 누군가의 후보라는 이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미래의 나는 그 장면을 보고도 서류를 넘겼다. 이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묻지 않았다. 나의 손목에는 익숙한 검은 끈이 묶여 있었고, 끈 끝에는 아주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세계 안정 유지 담당. 일일 서명 필요.]
내가 세상의 시간을 돌리기 위한 부품처럼 보였다.
세상의 평화를 지킨다는 말을 아무리 크게 써 놓아도,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없다면 그것은 평화가 아니었다.
나는 화면을 끊은 이유를 동료들에게 설명했다.
“더 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저 결과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아서다.”
마렌이 관찰 장치의 종료 시간을 기록했다. 비극적인 장면이 나온다고 해서 기록을 모두 지울 수는 없다. 다만 보고 멈출 권리만은 우리가 갖고 있어야 했다.
***
바르톨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 미래에서는 전하께서 살아 계십니다.”
“그렇군.”
“그러나 레온 님께서는…….”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의자에 앉았다.
과거의 나였다면 그 장면을 보고도 살아남은 사실에 만족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달랐다.
“저건 구원이 아니다.”
나는 말했다.
“내가 살아남았다고 해서 레온이 자기 기억까지 내게 내놓아야 한다면, 죽은 것과 무엇이 다르겠나.”
로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록이 보여 준 결과가 사실이라 해도, 그 결과를 선택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게다가 아직 저 미래가 진짜로 존재하는지도 모르지.”
마렌이 덧붙였다.
나는 그 둘을 바라봤다.
누군가가 겁을 주기 위해 영상을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아무리 소름 끼치는 장면이라 해도 영상 하나로 선택을 빼앗길 이유는 없었다.
***
그날 밤 레온은 잠들기 전에 물었다.
“아빠, 내일 놀아?”
“그러지.”
“밖에?”
“날씨가 좋으면.”
“비 오면?”
“실내에서 놀면 되지.”
레온은 환하게 웃었다.
“그럼 내일 좋아.”
나는 아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래 영상에서는 이 아이가 어떻게 웃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청년으로 자랐다. 하지만 지금 내 앞의 레온은 비가 오면 실내에서 놀면 된다고 말한다. 이 단순한 대화조차 미래의 누군가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일인지도 모른다.
“레온.”
“응?”
“네가 커서 나와 다른 생각을 하더라도 괜찮다.”
아이는 무슨 뜻인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다른 생각?”
“예를 들면 아빠가 싫어하는 놀이를 네가 좋아할 수도 있지.”
레온은 한참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그럼 같이.”
“내가 싫어한다고 해도?”
“아빠 구경.”
그럴듯한 타협이었다.
나는 웃었다.
***
새벽, 마렌이 시각시의 오래된 안전 규정을 찾아 왔다.
그 규정에는 원래 기록 체계가 한 명의 영웅에게 모든 결정을 맡기는 것을 금지한다고 적혀 있었다. 대신 '외부 증인'과 '귀환 당사자'가 서로 독립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설계돼 있었다.
“그렇다면 왜 지금은 관리자 한 명의 서명을 요구하지?”
“나중에 권한을 집중시키는 개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개정자는?”
마렌이 마지막 장을 보여 주었다.
[개정 주체: 오르세 계정.]
나는 여덟 번째 문의 관리자 의자를 떠올렸다. 오르세라는 이름은 예전에도 기록 속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인지, 자리에 붙은 직책인지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이제 질문이 하나 바뀌었군.”
나는 말했다.
“회귀를 누가 요청했느냐가 아니라, 그 요청을 왜 한 사람의 동의로 처리하려 했느냐.”
마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순간 서재의 유리판이 꺼졌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도.
바로 뒤이어 비상종이 울렸다.
시각시의 기록실이 외부 증인의 접근을 차단하기 시작했다는 보고였다.
누군가 우리가 오래된 규정을 찾아낸 사실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제11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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