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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회귀한 마왕의 육아일기 · 115화
PAYLUA ORIGINAL · 제115화

115화. 남의 허락으로 돌아가는 법은 없다

회귀한 마왕의 육아일기 · 3,256자

오프라인 책장
나는 대리 서명을 허락한 적이 있다. 부하가 전쟁터에 나가 있을 때, 가족이 식량 배급표를 대신 찾아갈 수 있도록 했다. 글씨를 쓰지 못하는 사람이 손가락으로 표시해도 계약이 성립되도록 바꾼 적도 있다. 그러나 그런 제도에는 하나의 전제가 있었다. 당사자가 실제로 원한다는 것. 북부 제로 관측소의 새 문장은 그 전제를 고스란히 뒤집어 놓았다. [응답하지 않은 요청은 가장 가까운 보호자의 동의로 대체될 수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보호자가 누구지?” 바르톨이 물었다. “그걸 정하는 장치가 따로 있을 거다.” 나는 흰 유리판을 노려보았다. [우선순위: 최초 보호 요청자 아르헨. 대체 불가 시 현 보호자 카르딘.]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아르헨의 의사를 강제로 끌어내고, 그마저 어려우면 내가 내 뜻을 대신 결정해 버릴 수 있다는 건가. 말도 안 되는 순환이었다. “이런 규칙을 만든 놈은 머리가 없는 모양이군.” 마렌이 조용히 말했다. “규칙을 만든 놈은 머리가 아주 좋을 수도 있어요. 누가 이익을 보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옳은 말이었다. *** 나울 마을에서 이상 현상이 다시 시작됐다. 이번에는 주민들이 하루를 잃는 대신 서로의 목소리를 혼동했다. 빵집 주인은 아내 목소리를 듣고 낯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는 자신을 부르는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현장에 도착해 가장 먼저 사람들이 모인 회관으로 갔다. 아이들이 울고 있었다. 어른들은 자기가 누구인지 증명하기 위해 이름을 외쳤다. 이름을 외칠수록 종소리가 커졌다. “조용히 하라!” 내 목소리가 울렸다. 사람들이 멈칫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또 고함을 질렀군. 그래서 조금 더 낮게 말했다. “아는 목소리가 낯설어도 당장 상대를 거짓말쟁이로 몰지 마시오. 이름과 얼굴이 일치하지 않아도, 서로가 안전한지 먼저 확인합시다.” 마렌은 주민을 작은 조로 나눴다. 각자 자신이 기억하는 관계를 쓰고, 강 건너 마을의 독립 증인에게 확인받도록 했다. 누군가에겐 이것이 번거로운 절차였으나, 아이를 잘못된 사람에게 인계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때 회관 한가운데 놓인 오래된 놋쇠 종이 울렸다. 땡. 종소리와 함께 벽에 글씨가 떠올랐다. [보호자 대리 동의 접수 시작.] “누가 이 종을 가져왔지?” 네라가 떨리는 손을 들었다. “제가 가져온 건 아닙니다. 눈을 뜨니 회관에 있었어요.” 나는 종을 향해 마력을 뻗었다. 부술 수는 있었다. 그러나 부순 뒤에 기억을 잃은 사람들이 돌아오는지 알 수 없었다. “마렌, 연결만 끊을 수 있나?” “가능할지도 몰라요. 장치가 '보호자'를 증명할 근거가 사라지면 접수가 멈출 수 있어요.” “그럼 우리가 그 근거를 확인해 주지 않으면 되겠군.” 나는 회관 중앙으로 걸어갔다. “카르딘, 영번 대상의 보호자 지위를 인정합니까?” 종에서 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한 적 없는 말투였다. “아니다.” “대상 카르딘의 동의는 보호자 카르딘이 대신할 수 있습니다.” “대상이 나이고 보호자가 나인데, 대신할 사람은 대체 어디 있다는 거냐?” 종은 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을 이용해 마렌이 외부 확인선을 연결했다. 헤딘은 회관 문밖에서 독립 기록을 읽었다. “현재 시각, 나울 마을 주민 쉰세 명 전원 대피 완료. 대리 서명 승인자 없음.” 글씨가 흔들렸다. 나는 그 틈에 종을 방패로 감쌌다. 소리는 멎었지만 벽에서 이상한 그림자가 피어났다. 흰 외투. 검은 장갑. 렌오였다. *** “당신은 늘 한 가지를 놓칩니다.” 그가 그림자 속에서 말했다. “무엇이지?” “선택하지 않는 동안에도 사람은 죽습니다. 관리자가 없는 틈은 재난이 됩니다.” “그래서 남의 선택을 훔치는 게 낫다고?” “살아남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나는 검을 들었다. 렌오의 그림자는 실제 몸이 아니라 기록 장치가 만든 투영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걸 알면서도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다. “네가 말하는 살아남는 사람에, 방금 자기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한 아이도 들어가나?” 렌오는 잠시 말을 멈췄다. “피해는 복구할 수 있습니다.” “오늘 그 아이가 무서웠던 일도?” “자료가 남아 있다면.” 나는 웃었다. “그래서 너는 사람보다 자료를 먼저 구하는군.” 렌오의 그림자가 일그러졌다. “북부 관측소는 붕괴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당신처럼 매번 확인만 하는 사람에게는 운영할 수 없어요.” “그렇다면 나한테 맡기지 마라.” 그가 처음으로 격하게 반응했다. “맡기지 않으면 모두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럼 다 같이 무엇이 위험한지 알아야겠지. 나 혼자 서명하는 방식으로는 해결하지 않을 거다.” 나는 검을 거두었다. 렌오가 던진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이곳 주민을 방치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종을 봉인한 뒤에도 대피소를 운영하고, 통행을 제한하고, 기억이 돌아오는 사람들을 매일 확인했다. 밤이 되자 빵집 주인이 아내의 목소리를 다시 알아들었다. 누구 덕분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종을 막아서인지, 붉은 별의 위치가 바뀐 탓인지, 단순히 시간이 흐른 덕분인지. “괜찮아?” 아내가 물었다. “어제보다 조금.” 그는 그렇게 대답했다. 나는 그 대화가 고마웠다. 적어도 그들이 서로에게 할 수 있는 말이 돌아오고 있었다. *** 마왕성으로 돌아오니 레온이 내 책상에 작은 문서를 놓아두었다. 종이에는 삐뚤빼뚤한 동그라미 두 개가 있었다. “뭐지?” “아빠, 사인.” “왜 네가 서명을 하느냐?” “같이 놀자.” 나는 피식 웃었다. “그건 계약이 아니라 부탁이다.” “응. 부탁.” “좋아. 그럼 묻겠다. 넌 정말 나와 놀고 싶으냐?” “응!” “나도 그렇다.” 나는 펜을 내려놓고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때 서재 통신석에 마렌의 음성이 들어왔다. “전하, 종에 남은 기록을 확인했어요. 대리 동의 절차를 시작한 발신지는 관측소가 아니에요.” “어디지?” “마왕성입니다.” 나는 멈칫했다. 우리 성 안 누군가가 조작했다는 뜻일 수도, 성을 경유해 신호를 훔쳤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먼저 확인해야 했다. 통신석 화면에 주소 하나가 떠올랐다. [송신실: 마왕성 서쪽 탑. 유아 보호 구역 인접.] 레온이 내 손을 잡아당겼다. “아빠, 놀자.” 나는 아이를 품에 안았다. “그래. 대신 오늘은 집 안에서 어디가 안전한지부터 확인하자.” 그 말이 레온에게는 놀이처럼 들린 모양이었다. 녀석은 신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우리가 밖에서 싸우는 동안 누군가 집 안에까지 들어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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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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