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국의 역사를 정복과 조약으로 기록했다.
남쪽 전쟁에서 삼만의 병사가 쓰러진 해는 또렷이 기억하면서, 성문 밖의 세탁장에 누가 살았는지는 몰랐다. 왕의 눈에는 전쟁이 크게 보이고 빨랫줄은 작게 보이는 법이다. 세상을 다스리는 데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울 마을에서 내가 처음 조사한 것은 전쟁터가 아니라 빨랫줄이었다.
***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생각보다 좁았다. 두 마차가 마주 오면 한쪽이 논둑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 붉은 별이 자리를 옮긴 뒤 사람들의 기억이 흐려진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시장은 평소처럼 열리고 있었다. 떡을 굽는 화덕 냄새와 젖은 나무의 향이 뒤섞였다.
나는 뿔을 가리는 후드를 쓰고 마렌, 헤딘과 함께 걸었다. 마왕이 대낮에 나타나면 소문을 확인하기는커녕 사람들이 짐을 싸서 달아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전하, 후드 옆으로 뿔 끝이 보입니다.”
헤딘이 속삭였다.
“그럼 좀 더 깊이 써라.”
“그러면 앞이 안 보이십니다.”
“보인다.”
나는 자신 있게 걷다가 세탁장이 놓아 둔 물동이에 발을 걸었다.
쨍그랑.
“……보이는 데 문제가 좀 있군.”
마렌이 고개를 돌리고 웃었다.
세탁장은 마을 중심의 얕은 개울가에 있었다. 넓은 평석 위에서 젖은 천을 두드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줄마다 흰 천과 색색의 아기 옷이 널려 있었다.
그곳을 지키던 노인은 내 모습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뿔이 있든 없든 빨래는 물이 있어야 하지.”
“우리가 올 줄 알았나?”
“누군가는 와야지. 어젯밤 또 그 소리가 났으니까.”
노인의 이름은 네라였다. 그녀는 이 마을에서 예순 해를 살았고, 첫 손주를 본 뒤에도 일 년에 한 번은 길 잃은 여행자의 옷을 빨아 준다고 했다.
“돌아가고 싶다는 목소리를 들으셨습니까?”
마렌이 물었다.
“들었지. 하지만 그 아이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어떤 목소리였죠?”
네라는 빨랫감을 한 번 더 털었다.
“정말로 어린아이 같았어. 울지도 않고, 작은 부탁을 하는 소리. 이상한 건 그 뒤에 꼭 다른 말이 들렸다는 거야.”
“다른 말?”
“'집은 거기가 아니야'라는 소리.”
나는 물살을 바라보았다. 그 말은 이상하게 가슴 안쪽을 긁었다.
***
네라는 낡은 상자를 꺼냈다. 그 안에는 어린아이의 덧신 한 짝, 부러진 나무빗, 흰 천 조각이 있었다.
“세탁장 우물에서 나온 물건들이야. 오래전 강물이 불어났을 때 건져 냈지.”
나는 천 조각을 펼쳤다. 모서리에 희미한 글씨가 있었다.
[영. 안쪽이 따뜻한 쪽.]
내가 무심코 천을 뒤집자 안쪽에 실로 꿰맨 붉은 점 세 개가 보였다.
마렌이 숨을 들이켰다.
“북부 관측소 접수실에서 보았던 옷 표시와 같아요.”
“그때는 규격 표시인 줄 알았지.”
나는 조심스럽게 천을 도로 접었다.
네라가 물었다.
“아는 물건이오?”
“그럴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아직 누구 것인지 말할 수는 없어.”
“그래. 물건은 주인을 만날 때까지 모른다고 해 두는 게 나아.”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네라의 허락을 받고 물건을 기록한 뒤, 원본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빼앗아 갈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가장 쉬운 방식이자 가장 어리석은 방식이었다.
***
세탁장 뒤편에는 작은 집이 있었다. 지붕은 반쯤 무너졌고 대문에는 꽃 모양 장식이 걸려 있었다.
“아르헨이라는 이름을 들어 본 적 있습니까?”
내 질문에 네라의 손이 멈췄다.
“왜 그 이름을 묻지?”
“나의 어린 시절과 관계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네라는 한동안 나를 살펴보았다.
“아르헨은 여기 오래 살지 않았어. 봄 눈이 녹기 전 한 계절쯤 머물렀지. 남의 아이를 안고 다녔는데, 모두들 자기 아이라고 생각했어.”
내 가슴이 묘하게 뛰었다.
“직접 그렇게 말했나?”
“아니. 아무도 묻지 않았어. 아이를 품에 안고 있으니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지.”
네라는 땅바닥에 지팡이를 세웠다.
“그래서 난 그런 말을 조심해. 누가 가족인지, 왜 함께 있는지는 겉으로 보고 정할 수 없으니까.”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때 폐가의 창문에서 작은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집에…….”
세 사람의 몸이 동시에 굳었다.
나는 곧장 달려가지 않았다. 마렌에게 소리 기록을 요청하고, 헤딘에게 뒤쪽 출구를 확인하게 했다. 누군가 실제로 안에 있다면 어둠에 갇히게 할 수는 없었다.
“사람이 있느냐?”
내 목소리에 답은 없었다.
그러나 문짝이 저절로 열렸다. 그 안에는 가구도 먼지도 없었다. 이상하게 깨끗한 방 한가운데, 실 한 가닥만 천장에서 바닥까지 늘어져 있었다.
실 끝에는 조그만 놋쇠 종이 매달려 있었다.
나는 그것을 기억했다.
어린 시절, 누군가 내 침대 곁에 달아 주었던 종.
아니, 기억한다는 표현은 성급하다. 손을 뻗기 직전 눈앞에 떠오른 것은 종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등이었다. 불에 덴 듯한 상처가 있는 손.
나는 얼른 움직임을 멈췄다.
“마렌. 이 방 전체를 기록하라. 종은 건드리지 말고.”
네라가 문턱에서 말했다.
“그 집에서 종이 울리는 날이면 누군가 옛날을 기억해. 어떤 사람은 처음 사랑했던 이의 이름을, 어떤 사람은 잃은 아이의 이름을.”
“그럼 모두에게 좋은 일이겠군.”
“아니.”
네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기억을 찾은 다음 날에는, 다른 사람이 그 기억을 잃어버리거든.”
***
마왕성으로 돌아오는 동안 나는 계속 그 말을 생각했다.
하나의 기억을 돌려받기 위해 다른 사람의 기억을 빼앗는다면, 그것은 구원이 아니다. 시각시에서 수없이 보았던 계산과 다르지 않았다.
레온은 돌아온 내게 자신이 그린 가족 그림을 들이밀었다. 나는, 미아는, 바르톨은, 푸른 곰은 모두 있었다. 희한하게도 나는 다른 사람보다 두 배나 컸다.
“왜 내가 이렇게 크지?”
“아빠 크니까.”
“그렇군.”
“근데 아빠 손.”
레온이 그림 한구석을 가리켰다.
내 손은 아이의 작은 손과 이어져 있었다.
녀석은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웃었다.
나는 그림을 접지 않았다. 서재 벽에 붙였다.
그날 밤, 나울 마을에서 보고가 도착했다. 네라가 우연히 종소리를 들은 순간, 죽은 남편의 이름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런데 마을의 다른 노인이 자기 손자의 이름을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
동일한 시간에 일어난 일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우연이라고 넘기기에는 위험했다.
나는 조사단의 첫 지시를 바꿨다.
기억을 되찾는 실험은 중단한다.
먼저 빼앗기는 쪽이 있는지 찾아라.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놈이 누구인지가 아니라, 빼앗지 않고도 돌려줄 방법부터 찾아라.
제11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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