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싫어하는 대답은 '규정상 불가능합니다'였다.
마왕으로 살던 시절에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규정을 만든 자를 불러오라고 했다. 그러면 대개 문제는 해결됐다. 규정 작성자가 자리를 뜨거나, 규정 자체가 사라지는 식이었다.
그러나 북부 제로 관측소의 안내인은 조금 다른 말을 했다.
“퇴실 조건을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성급하게 들어가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럼 우리가 들어가면 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군.”
“그럴 수 있습니다.”
“좋아. 확인할 때까지 바깥에서 이야기하지.”
안내인은 문턱에 멈춰 선 나를 보았다.
“대부분의 손님은 안에 있는 답을 먼저 보고 싶어 합니다.”
“나도 그렇다.”
“그런데 왜 멈추십니까?”
“내가 돌아갈 곳이 있으니까.”
눈보라가 불었다. 안내인의 외투가 펄럭였지만, 발아래 눈에는 자국이 생기지 않았다.
헤딘이 내 뒤에서 작게 말했다.
“전하, 저 사람은 실제로 눈을 밟고 있는 게 아닙니다.”
나도 보았다.
우리가 마주한 것은 인간인지, 환영인지, 장치인지조차 불확실했다.
로잘린이 물었다.
“들어가지 않고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가 있습니까?”
안내인은 길가의 작은 창고를 가리켰다.
“외부 접수실이 있습니다. 외부 증명서만 열람할 수 있습니다.”
“그것부터 보자.”
***
접수실에는 낡은 의자 네 개와 난로 하나가 있었다. 누군가 마지막으로 불을 피운 지 오래된 듯 굴뚝에는 새 둥지가 걸려 있었다. 우리는 가지고 온 장작으로 난로를 켰다.
브람은 장갑을 벗고 기계식 서랍을 살폈다. 서랍은 열리지 않았다. 대신 표면에 문장이 떠올랐다.
[열람 목적을 명시하십시오.]
마렌이 말했다.
“북부 관측소의 기능과 귀환자 기록을 확인하려 합니다. 강제 후보 등록과 연결됐는지도요.”
서랍은 한 번 덜컹거렸다.
[대상 인원 확인 불가. 제한 자료 제공.]
서랍에서 책 한 권이 밀려 나왔다.
표지는 낡았으나 첫 장에는 분명하게 적혀 있었다.
'영일 기록부. 제로 관측소 외부 접수본.'
페이지를 넘기자 수백 개의 날짜가 나왔다. 다른 점은 각 날짜 사이에 빈 종이가 끼워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날이군.”
내가 말하자 안내인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없는 날이 아니라 기록을 대신하기로 한 날입니다.”
“대신?”
“대피 도중 이름을 밝힐 수 없었던 사람, 귀환을 미뤄 달라고 한 사람, 증인이 도착하지 않아 확인을 기다리는 사람의 시간을 임시로 보관했습니다.”
나는 책장을 다시 살폈다.
첫 번째 빈 종이의 끝에는 작은 도장이 있었다.
[미결. 소유자 확인 전까지 다른 기록과 병합 금지.]
나는 놀랐다.
“원래부터 빼앗으려고 만든 장치는 아니었군.”
“처음에는요.”
안내인의 마지막 말이 공기를 차갑게 만들었다.
마렌은 후반부 장부를 펼쳤다.
해를 거듭할수록 빈 종이는 줄어들고 그 자리에 번호가 나타났다. '대기 하나', '대기 둘', '후보 영'. 사람이 자기 이름을 말할 때까지 기다리던 절차가 어느 순간 사람을 미리 분류하는 장치가 되어 있었다.
“누가 바꿨지?”
“관리자가 승인했습니다.”
“관리자가 누구냐고 물었잖나.”
“기록에는 없습니다.”
나는 서랍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서명만 지운 것이다. 아니, 애초에 서명하지 않은 자가 관리자 행세를 했을 수도 있었다.
서랍의 마지막 부분에는 검은색 잉크로 따로 묶은 사건 보고서가 있었다. 제목은 '공란 사용자 일괄 처리 효율화'였다.
“효율화라니.”
나는 읽다가 웃음이 나왔다.
사람이 자기 이름을 말할 때까지 기다리면 시간이 오래 걸리니,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임시 번호를 확정 번호로 바꾸자는 제안이었다. 제안자는 '시간 낭비 감소'를 장점으로 적어 놓았다.
그 뒤에는 작은 글씨로 반대 의견이 달려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에게 필요한 시간은 낭비가 아니다.'
서명은 보이지 않았다. 펜촉이 긁힌 흔적만 남아 있었다.
“아르헨이 쓴 걸까요?”
마렌이 물었다.
“필체가 없다. 추측할 수는 있어도 확정할 수 없지.”
로잘린은 옛 신전 문서의 조항과 비교했다.
“이 제안이 승인됐다면 왜 귀환자를 함부로 분류하게 됐는지 설명될 수 있어요. 그러나 승인문서가 따로 있어야 할 겁니다.”
나는 보고서를 봉투에 넣어 이름을 붙였다.
'효율화 건의문. 승인 여부 미확인.'
보관 일자를 적고 보니 나도 모르게 자조적인 웃음이 나왔다.
예전의 나는 '효율적'이라는 말을 들으면 병력을 더 빠르게 움직일 생각부터 했다. 여기서의 효율은 누가 언제 돌아갈지를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 속도였다.
같은 단어가 사람을 이렇게 쉽게 지워 버리기도 하는군.
***
그날 우리는 관측소 내부에 들어가지 않았다.
임시 천막을 세우고 장부를 사본으로 옮기며 교대를 정했다. 헤딘은 돌아갈 길에 묶은 붉은 줄을 한 번 더 확인했다. 나는 바람막이 앞에 앉아 마왕성으로 연락을 보냈다.
미아가 통신석에 나타났다.
“전하, 레온은 오늘 저녁을 잘 먹었어요. 다만 양치질을 싫어합니다.”
“이를 닦는 게 왜 싫지?”
“전하처럼 검을 검사받는 기분인가 보죠.”
“검은 닦지 않으면 녹이 슨다.”
“치아도 비슷해요.”
나는 감탄했다.
“인간 육아라는 건 검 관리와 닮았군.”
미아는 한숨을 쉬었다.
“제발 그 표현을 레온 앞에서 하지는 마세요.”
뒤에서 레온이 얼굴을 내밀었다.
“아빠! 곰 양치!”
녀석이 푸른 곰의 입을 작은 솔로 문지르고 있었다. 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잘하고 있군.”
통신이 끝난 뒤에도 가슴 한구석이 따뜻했다.
바로 그때 안내인이 접수실 문 앞에 나타났다.
“카르딘.”
그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아까부터 당신이 보고 싶어 하던 문서가 있습니다.”
“어떤 문서?”
“당신이 이곳에 처음 들어왔던 날의 기록입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났다.
“내가 온 적이 있다는 건가?”
안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말할 수 없을 만큼 어렸을 때요.”
그는 장갑 낀 손으로 낡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가장 위에는 출입 날짜가 적혀 있었다.
내가 아는 내 첫 번째 기억보다 훨씬 이전의 날짜.
그리고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인수 대상: 이름을 아직 발음하지 못하는 아이.'
'임시 호칭: 영.'
'보호 요청자: 아르헨.'
나는 종이를 꽉 움켜쥐었다.
아르헨이 나를 이곳에 데려왔다는 뜻일까.
아니면 여기서 데려갔다는 뜻일까.
그 둘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제10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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