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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회귀한 마왕의 육아일기 · 103화
PAYLUA ORIGINAL · 제103화

103화. 검은 장갑을 낀 안내인

회귀한 마왕의 육아일기 · 3,164자

오프라인 책장
나는 기억이 정확하다고 자부했다. 어느 전장에 말 몇 마리를 배치했는지, 어떤 신관이 어떤 주문을 외쳤는지 삼백 년 전의 일까지 외울 수 있었다. 그러나 내 어린 시절만큼은 이상할 정도로 흐릿했다. 오렌이 이야기한 검은 장갑을 듣자 그 흐릿한 곳에 빛이 하나 들어왔다. 춥고 어두운 방. 젖은 돌바닥. 장갑 낀 손이 내 눈높이로 내려와 작은 빵을 내밀던 장면. 누구였지?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이 나는 건 검은 가죽의 왼손뿐이었다. 나는 마렌에게 그 장면을 전했다. “전하, 기억이 떠올랐다고 해서 그 사람이 관측소 관리자라는 증거는 아닙니다.” “안다. 그래서 확인하자는 거다.” 마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각시의 오래된 창고 명세를 펼쳤다. 검은 장갑은 의식용 물품으로 자주 쓰였다. 관측관뿐 아니라 종지기, 의료 담당자, 장례 기록관에게도 배급됐다. “특별한 장갑은 아니군.” “그렇지만 왼손에만 끼는 규정은 없습니다.” “그럼 누군가 한 손을 보호해야 했을 수도 있겠지.” 나는 추측을 더 밀어붙이지 않았다. *** 북부에 들어가기 전 로잘린에게 조사단 참관을 요청했다. 빙설령 남쪽 관문은 성왕국 상단도 드나드는 곳이었다. 내 군대를 몰고 가면 조사보다 전쟁이 먼저 시작될 위험이 있었다. 참관단에는 마렌, 라기스, 헤딘, 로잘린, 그리고 마왕국의 대장장이 한 명이 합류했다. 이름은 브람이었다. 그는 추위를 싫어하는 난쟁이였으나 얼어붙은 기계의 마찰음만 듣고 결함을 알아냈다. 바르톨은 출발 전 밤새 준비물을 점검했다. “식량 여드레 치, 방한 장비, 회수용 밧줄, 임시 대피 천막. 그리고 전하의 검.” “검은 가져가지.” “상대가 문을 닫아도 강제로 열 수 있는 공성추는?” “두고 가라.” “한 개만이라도?” “바르톨.” “알겠습니다.” 놈은 매우 아쉬운 얼굴이었다. 미아는 내 망토에 단추 하나를 더 달아 주었다. 마왕에게 추위 따위는 소용없지만, 그녀는 눈길에서 아이를 안아야 하는 상황을 대비한 거라고 했다. “어째서 아이를 안아야 할 일이 생긴다고 생각하지?” “전하가 어딜 가시든 아이부터 찾으시니까요.” 부정할 수 없었다. 레온은 내 장갑을 움켜쥐고 놓지 않았다. “아빠, 안 가.” “며칠 뒤에 돌아온다.” “안 가.” 미아가 조용히 말했다. “레온이 못 가게 한다기보다 같이 있고 싶은 걸 거예요.” 나는 무릎을 꿇었다. “다녀오겠다. 미아와 바르톨이 여기 있고, 나는 밤마다 연락할 거다. 돌아오면 네 곰을 위한 새 귀마개를 만들어 주마.” 레온은 귀마개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 듯했지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나는 내 손가락을 걸었다. 평생 수많은 계약서에 피로 서명해 봤다. 이보다 무거운 계약은 드물었다. 출발 전날 밤 나는 서재에서 옛 시각시의 장부를 다시 읽었다. 아르헨의 이름이 처음 등장한 페이지에는 여전히 찢어진 가장자리가 남아 있었다. 잘려 나간 내용은 누구도 복구하지 못했다. 마렌이 물었다. “만약 관측소에서 아르헨의 이야기를 전혀 다른 형태로 발견한다면 어떡하실 건가요?” “읽어야겠지.” “지금까지 믿어 온 것과 다르더라도요?”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버려진 아이였는지, 구조된 아이였는지, 누군가의 계획으로 길러진 아이였는지는 삼백 년의 내 삶을 설명하는 방식 자체를 바꿀지도 모른다. “모른다고 할 수 있게 준비하고 가겠다.” “그게 준비가 되나요?” “나 같은 자에게는 가장 어려운 준비지.” 나는 서랍에서 레온이 그려 준 그림을 꺼냈다. 뿔이 달린 커다란 동그라미와 그 옆의 작은 동그라미. 몸통은 제멋대로였고 발은 세 개였다. 하지만 내 얼굴이라고 알아볼 수 있었다. “이 그림을 보고 사람들은 내 과거를 알 수 없겠지.” “그렇겠죠.” “그런데도 저 아이는 나를 그렸다. 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는 몰라도.” 마렌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림을 여권처럼 품 안에 넣었다. 북쪽에서 무슨 진실이 나오든 돌아와야 할 이유를 잊지 않기 위해서. *** 빙설령의 계곡은 지도에서 본 것보다 좁았다. 양쪽 절벽 사이로 바람이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눈이 쌓인 길은 멀리서 보면 평평했지만 발을 디디면 깊은 구덩이가 나타났다. 헤딘은 길 가장자리에 빨간 줄을 묶었다. “우리가 돌아올 길입니다. 누구도 이 줄을 벗어나지 마십시오.” 나는 줄을 내려다봤다. “나는 날 수 있다.” “전하께서는 날 수 있지만 짐꾼들은 못 납니다.” 옳았다. 우리는 줄을 따랐다. 계곡 안쪽에는 눈에 반쯤 묻힌 간판이 있었다. [북부 관측 시설 — 지정 인원 외 접근 금지] 그 아래 누군가 다른 글씨를 새겨 놓았다. [이 길로 돌아온 사람의 이름을 묻지 마시오. 본인이 말할 때까지 기다리시오.] 로잘린이 손가락으로 글자를 짚었다. “이건 신전 문서에 쓰는 보호자 안내문과 같은 형식이에요.” “누군가 우리보다 먼저 문제를 겪고 고친 모양이군.” 산비탈을 돌아서자 건물이 나타났다. 둥근 지붕 네 개가 서로 다른 높이에서 연결돼 있었다. 관측소라는 이름과 달리 하늘을 향한 망원경은 없었다. 모든 창문이 건물 안쪽을 바라보게 설계돼 있었다. 브람이 휘파람을 불었다. “창문을 안으로 만들면 바깥을 어떻게 보죠?” 라기스가 대답했다. “바깥을 보기 위한 건물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때 건물 중앙의 철문이 열렸다. 흰 외투를 입은 사람이 걸어 나왔다. 얼굴은 천으로 가려져 있었고 왼손에는 검은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나는 검에 손을 얹었다. “네가 관측소 관리자냐?” 그가 고개를 기울였다. “관리자는 아직 지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너는 누구지?” “길을 잃지 않게 하는 안내인입니다.” 목소리가 어렸다. 남자도 여자도 분명하지 않은, 오래된 기계에서 새어 나오는 듯한 음성. “이름을 말해라.” 안내인은 장갑 낀 손을 펼쳤다. 손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제 이름을 말씀드리면, 당신이 기억해야 할 하루가 늘어납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여기는 없는 날을 보관하는 곳이니까요.” 나는 일행을 돌아보았다. 아무도 앞장서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좋다. 이곳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나갈 방법을 묻는 것이었다. “그 하루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나갈 수 있나?” 안내인은 처음으로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짧은 침묵이, 오래된 관측소보다 나를 더 불안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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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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