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도를 믿었다.
지도가 틀리면 지도 제작자를 불러 새로 그리게 하면 됐다. 그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산을 옮겼다. 실제로 한 번 그런 적이 있다. 그날 이후 우리 마왕국의 지도 제작자들은 지형을 수정하기 전에 내 기분부터 묻기 시작했다.
그런 나조차 이번에는 산을 옮길 수 없었다.
“북부 제로 관측소라는 이름의 건물은 없습니다.”
마렌은 낡은 지도 세 장을 식탁에 펼쳤다. 첫 번째는 왕국에서 제작한 군사지도, 두 번째는 상인들의 통행지도, 마지막은 시각시 기록위원회가 보관한 구호 시설 배치도였다. 셋 모두 북쪽 끝에는 같은 산줄기가 그려져 있었다.
빙설령.
지도마다 봉우리 개수는 달랐으나, 마렌이 표시한 계곡 하나만큼은 이상했다. 그림으로는 연결돼 있는데 길이가 적혀 있지 않았다.
“이름도 없고 길이도 없다면 낭떠러지일 수도 있지 않나?”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관측소의 주소가 이 계곡을 가리켜요. 발신된 기록은 진짜입니다. 다만 누가 보냈는지 아직 알 수 없어요.”
나는 식탁의 반대쪽을 보았다. 레온이 작은 숟가락으로 죽을 떠먹으려다 절반을 턱에 묻히고 있었다. 푸른 곰을 옆에 앉혀 놓고 곰에게도 한 숟가락을 권하는 중이었다.
“곰은 안 먹는다.”
“먹어.”
“먹지 않는다.”
레온은 잠시 나를 보더니 숟가락을 곰 입에 갖다 대었다. 그리고 다시 자기 입에 넣었다.
전쟁에서 이런 협상은 처음이었다.
미아가 그릇을 치우며 웃었다.
“전하, 식탁에서 지도부터 치워 주세요. 레온이 잉크를 만지면 곤란해요.”
나는 지도 위에 놓았던 검을 거두었다. 스무 해 뒤 나를 죽일 용사가 지금은 지도보다 잉크병을 더 위험하게 다룬다는 사실이 기묘했다.
“북쪽에 조사대를 보내겠다.”
미아의 웃음이 가셨다.
“전하께서 직접 가시려고요?”
“처음부터는 아니다. 길이 있는지, 누가 살고 있는지, 돌아올 수 있는지만 확인할 것이다.”
“그 말씀을 꼭 지키세요.”
“명령인가?”
“부탁입니다.”
부탁은 명령보다 거절하기 어렵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보고서를 올린 사람은 마계 국경 문서관의 서기였다. 그는 제로 관측소의 주소를 세 번 복사해도 숫자 하나가 제멋대로 옮겨 다녔다며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제가 잘못 베꼈다면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확인하기 전에 처벌할 이유는 없다.”
“원본 자체가 이상한 것 같습니다.”
나는 잉크가 마른 종이 두 장을 겹쳐 보았다. 하나에는 '빙설령 제삼 계곡'이라 적혀 있었고, 다른 하나에는 '빙설령 영번 계곡'이라 적혀 있었다. 두 종이 모두 같은 원본을 베낀 것이었다.
“네 눈앞에서 글자가 바뀌었나?”
“아닙니다. 문서를 옮겨 적고 나중에 대조하니 달랐습니다.”
“그렇다면 실수가 있었을 가능성도 남아 있다. 원본은 봉인하고, 사본을 구분해 보관해라. 다른 사람 한 명에게 각각 따로 읽게 하자.”
서기는 그제야 숨을 쉬었다.
나는 그를 보내고 창문을 열었다. 멀리 마왕성의 북쪽 지붕들이 보였다. 보통이라면 내가 한 번 날아가 산을 살펴보면 되는 거리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가장 빠른 길을 먼저 택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필요한 것은 빠르게 들어오는 구원자가 아니라 확실히 돌아갈 길일 테니까.
***
정찰대장은 인간 출신의 늙은 길잡이 헤딘이었다. 그는 북쪽에서 마차를 몰다가 마왕국에 정착한 사내로, 산길의 눈 색만 보고 내일의 날씨를 맞힌다고 했다. 지난겨울에는 눈사태를 예측해 광부 열일곱 명을 구했다.
나는 헤딘에게 경계선 바깥으로 들어가지 말 것, 위치를 확인할 수 없으면 돌아올 것, 신호가 끊기면 지원대를 기다리지 말고 철수할 것을 지시했다.
바르톨이 옆에서 수첩을 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전하, 적지 수색인데 진입 명령이 없습니까?”
“적지인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북부로 들어가는 길은 하나뿐이라고 들었습니다.”
“그것도 확인되지 않았지.”
바르톨은 깊이 생각하는 표정으로 적었다.
'적군 미확인. 무리한 진입 금지.'
나는 그 문장을 보며 그가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아래에 '비상시 대포 여섯 문 지원'이라고 적은 것은 지워야 했다.
조사대가 떠난 지 나흘째 되는 밤, 헤딘의 연락석이 반짝였다.
“전하, 이상한 통행 기록을 찾았습니다.”
배경에서는 눈바람 소리가 들렸다. 그는 국경 초소의 장부 한 페이지를 화면에 비췄다.
나흘 전 북쪽으로 올라간 마차 한 대의 입산 기록. 그 아래에는 바로 그 마차의 귀환 기록이 있었다.
문제는 귀환 날짜였다.
“출발 하루 전이군.”
“예. 초소장은 기록 오류라고 합니다. 그런데 통행료를 받았다는 상인의 증언까지 남아 있습니다.”
“상인은 어디 있지?”
“이틀 전에 죽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나는 눈썹을 찌푸렸다.
“죽은 이유는?”
“장부에는 없습니다. 다만 함께 돌아온 짐꾼이 아직 살아 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헤딘이 잠시 망설였다.
“그게 이상합니다. 이름이 적힌 칸이 비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래에는 손으로 쓴 문장이 있어요.”
화면의 장부에 글씨가 나타났다.
'나는 북부에서 돌아왔다. 돌아온 뒤에는 아무도 내가 출발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시각시의 기록 장치가 사람의 시간을 빌려 쓰던 방식과 닮아 있었다. 그러나 닮았다는 이유로 같은 사건이라 단정할 수는 없었다.
“살아 있는 짐꾼부터 찾아라. 본인이 원하는 장소에서 이야기를 듣고, 이름은 그가 직접 밝히도록 해.”
“알겠습니다.”
헤딘이 연락을 끊기 전 덧붙였다.
“전하, 산 아래 마을에서 이상한 종소리가 들립니다. 종탑은 오래전에 무너졌는데요.”
“언제 울리지?”
“사람들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마다요.”
연락석이 어두워졌다.
나는 곧바로 마렌에게 연락했다. 북쪽 기록을 시각시의 종소리와 대조하도록 지시한 다음 서재의 창을 닫았다.
그때 방문에서 작은 발소리가 났다.
“아빠.”
레온이 푸른 곰을 질질 끌고 서 있었다. 잠옷 자락 한쪽이 뒤집혀 있었다.
“왜 안 자느냐?”
“같이.”
나는 녀석을 안아 올렸다.
작은 체온이 팔 안으로 전해졌다. 바깥에서는 바람이 창문을 때렸지만 아이의 이마는 따뜻했다.
나는 북쪽 지도 위에 두 손을 올려 놓지 않았다. 그 손으로 레온을 안고 침실로 돌아갔다.
계곡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알았다. 누군가의 이름이 사라지기 전에 그 사람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직접 확인할 차례가 다가오고 있었다.
제10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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