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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법학교 야간 경비원의 정체 · 94화
PAYLUA ORIGINAL · 제94화

94화. 영 번째 피난동

마법학교 야간 경비원의 정체 · 6,143자

오프라인 책장
아홉 개의 피난동은 지도 위에 있었다. 영 번째 피난동은 어디에도 없었다. 바르트는 오래된 도면을 바닥에 펼치고 자를 대었다. 사고 이전 하셀의 설계에는 아홉 곳이 있었다. 사고 직후 총국에 제출된 도면에도 아홉 곳이 있었다. 하지만 도면의 바깥 테두리를 비교하자 다른 것이 보였다. 첫 번째 설계보다 두 번째 설계의 종이 폭이 손가락 두 마디만큼 좁았다. “잘라 냈군.” 바르트가 말했다. “왜 잘랐을까요?” 루카가 물었다. “보이면 안 되는 걸 숨기려고? 아니면 그 부분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겠지.” 루엔은 도면의 잘린 모서리를 확대했다. 종이 섬유 사이에 아주 가는 파란 실이 끼어 있었다. 파란 실은 마을의 오래된 승강기 안전줄에서 사용하던 재료였다. 누군가 도면을 실에 묶어 보관했다가 잘라낸 흔적이었다. 민규는 두 도면을 비교하는 사람들 곁에 앉았다. “아홉 번째까지가 실제 대피 시설이라면, 영 번째는 그걸 제어하는 시설일 수도 있겠네요.” “번호를 영으로 붙일 이유가 있어요.” 셀레나가 말했다. “관리자는 제어실을 첫 번째로 만들지만 대피 인원은 제어실을 이용하지 못하게 할 때가 있거든요.” “그럼 또 사람은 못 들어가고 기록만 들어가는 방인가?” 루카가 중얼거렸다. 바르트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바로 그걸 확인해야지.” 그날 오전 정은희와 한서령은 마침내 마주 앉았다. 장소는 화려한 회의실이 아니라 의료실 옆 작은 상담실이었다. 은희가 직접 선택한 곳이었다. 문은 열어 두되 밖에 서 있던 사람은 들을 수 없도록 셀레나가 방음막을 설치했다. 나디아는 한서령에게 물과 의자를 내주고 물러났다. “그날 제 이름을 알고 계셨죠?” 은희가 먼저 물었다. 한서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령서에 있었습니다.” “왜 있었습니까?” “사고 전부터 작성된 ‘관찰 대상’ 명단에 보건 담당이 필요했습니다. 처음엔 재난 대비 훈련이라고 들었어요. 그런데 당신 이름에는 특별한 표식이 있었습니다.” “어떤 표식이죠?” “‘기존 인원을 대신하지 않음.’ 그 문구를 처음 봤을 땐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은희는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민규는 어머니 옆에서 말을 대신하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 믿고 싶었다. “훈련 전날,” 은희가 천천히 말했다. “어린아이 두 명이 다쳤어요. 그런데 기록에는 한 명만 다쳤다고 적혀 있었죠. 담당자가 다른 아이는 임시 인원이라 등록할 수 없다고 했어요. 저는 두 명 모두 치료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남겼군요.” 한서령이 속삭였다. “당연히 남겼죠. 둘 다 아팠으니까요.” 그날 은희는 의료 명부 끝에 ‘등록되어 있지 않아도 치료 필요’라고 적었다. 다음 날 그 명부가 총국으로 넘어갔고, 명부를 수정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은희는 수정하지 않았다. 기록에 없는 사람도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한서령은 손에 쥔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 문구 때문에 당신을 증인 후보로 골랐나 봅니다. 어떤 시스템도 사람을 자동으로 지우지 못하게 하려면 누군가 계속 이의를 제기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그 이의를 제기한 사람을 가뒀군요.” “제가 문을 닫았습니다. 그 일이 당신에게 준 피해를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은희는 사과를 바로 받아들이지도 거절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알고 싶었다. 그날 왜 두 번째 환기구가 사라졌는지, 누가 구조를 중단하라고 했는지. 한서령은 모든 것을 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대신 자기 수첩을 꺼냈다. 사고 당일의 위치와 시각이 손글씨로 남아 있었다. 중요한 대목에는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내가 이 수첩을 가져온 이유는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무엇을 했는지 확인받고 싶어서예요. 잘못 적힌 부분이 있다면 고치고 싶습니다.” 은희는 수첩을 받아 첫 줄부터 읽었다. 사고가 나던 시각의 온도, 잠금쇠를 고정한 방향, 아이들의 울음소리. 한 줄을 읽다 그녀의 얼굴이 굳어졌다. “여기. ‘보건 담당자가 문을 안쪽에서 잠갔다’는 말은 틀렸어요. 저는 문을 열려고 했습니다.” 한서령은 망설임 없이 펜을 꺼냈다. “그렇게 고치겠습니다. 내 기억이 틀릴 수 있습니다.” “지우지 마세요. 원래 기록이 무엇이었는지도 남겨 둡시다.” 두 사람은 그 문장 옆에 각각의 관찰을 적었다. 목격한 일과 추정한 일을 구분했다. 민규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그날의 사건을 오직 하나의 목소리로 이해할 수는 없으리라는 걸 받아들였다. 그것이 진상을 밝히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서로 다른 기억을 대조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종탑으로 이동하던 길에 교내 급식실에서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식판 수는 스물넷인데 학생은 스물세 명뿐이라는 것이었다. 사감은 수를 다시 세고도 누가 빠졌는지 알지 못했다. 민규는 남은 식판을 치우지 말라고 했다. 숫자가 맞지 않는다고 즉시 누군가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지만, 조리실과 식당 사이의 실제 출입 기록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 일은 에일라에게 맡겼다. 한 사람이 모든 수색 장소에 동시에 있을 수는 없었다. 오후에는 오래된 종탑 지하를 열었다. 한서령이 알려 준 영 번째 위치는 뜻밖에도 지하가 아니었다. 종탑과 기숙사를 잇는 통로의 ‘표시되지 않는 한 칸’이었다. 예전에는 교사들이 흡연실이라고 부르던 작은 벽장. 지금은 벽돌로 막혀 있었다. “흡연실을 왜 이렇게 큰 마법으로 가렸을까?” 루카가 물었다. “서류를 숨기기에는 적당했겠지.” 바르트가 대답했다. “그런데 안쪽을 확인하지 않고 무너뜨리면 안 돼.” 민규는 벽을 두드렸다. 오른쪽에서는 단단한 소리가 났고 왼쪽에서는 속이 빈 소리가 났다. 그는 분필로 경계를 그리고 바르트에게 내시경을 요청했다. 바르트는 가느다란 관 끝에 조명을 달아 벽 틈으로 밀어 넣었다. 화면에 낡은 의자와 철제 책상이 나타났다. 사람이 숨을 쉴 만한 공간이 남아 있었다. “안에 누가 있습니까?” 민규가 틈으로 물었다. 세 번의 짧은 두드림이 돌아왔다. 루카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은희가 보건실에서 들었던 문소리와 같았다. 민규는 질문을 바꾸었다. “사람이면 대답해 주세요. 위험한 상태면 한 번, 지금 움직일 수 있으면 두 번 두드려 주세요.” 대답은 없었다. 대신 벽 뒤에서 작은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셀레나는 마력의 흐름이 일정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생체 반응이 아니라 기계 장치가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을 수도 있었다. 한서령이 오래된 수첩을 넘겼다. “영 번째 피난동은 원래 오작동을 신고하는 시설입니다. 중앙의 명령을 받지 않고, 모든 문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그렇다면 그 안에는 문을 열 수 있는 장치가 있겠군요.” 민규가 말했다.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고 전에 기능이 바뀌었어요. 누가 신고 장치를 관찰 장치로 바꿨습니다.” 에일라가 기록을 대조해 보았다. 사고 전의 도면에서는 영 번째 시설에 ‘대피로 수동 개방’이라는 기능이 있었다. 사고 직후의 도면에서는 ‘증인 자동 할당’으로 표시됐다. 한 줄을 바꾸자 구조 장치가 감시 장치로 변한 것이었다. “이걸 다시 바꾸면 되는 걸까요?” 루카가 기대하며 물었다. “수동 개방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해야지.” 민규가 말했다. “여기에서 누군가가 다치면 장치가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말해도 소용없어.” 벽장 옆의 좁은 통로에는 비상구 표시가 남아 있었다. 바르트는 먼저 외부 출구까지 연결되는 공기 흐름을 확인했다. 셀레나는 마법으로 만든 공기 흐름과 실제 바람을 구분했고, 미라는 마을 쪽에서 통로 끝을 지켜보며 무전으로 변화가 있는지 알려 주었다. 세 가지 확인이 서로 일치했을 때만 작업을 시작했다. 그들이 손잡이를 발견하기까지 작은 실패가 여럿 있었다. 첫 번째 내시경은 벽 사이의 금속망에 걸려 움직이지 않았고, 두 번째는 영상이 자꾸 똑같은 장면만 보여 주었다. 루엔은 화면 속 먼지 알갱이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처음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나중에 보니 화면이 과거의 모습을 반복해서 내보내고 있었다. “거울에 비친 장면은 지금일까요?” 루엔이 물었다. “내시경도 기록망을 통해 화면을 보여 줄 수는 있으니 그럴 가능성이 있지.” 셀레나가 말했다. “그래서 지금 들어오는 빛을 직접 확인해야 해요.” 루엔은 얇은 종이를 접어 벽 틈에 끼웠다. 종이는 바람에 흔들리지만 기계 화면 속에서는 그대로였다. 셀레나가 곧바로 화면을 기록망에서 분리하고 유선 연결로 바꾸었다. 그러자 화면에는 그제야 벽 너머의 현재 모습이 나타났다. 작은 낡은 책상 위에 누군가 커피 잔을 올려둔 흔적이 있었다. “이상하네요. 사고가 나던 때에도 커피를 마신 사람이 있었을까요?” 루카가 말했다. 바르트가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잔은 오래됐는데 접시는 새 거야. 중간에 누가 다녀갔을지도 몰라.” 민규는 두 물건의 차이를 수첩에 적었다. 방이 삼십 년 동안 완전히 닫혀 있었다면 새 접시가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문이 열린 적이 있다는 증거는 아니었다. 누군가 다른 통로로 넣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들은 벽을 더 뜯기 전에 환기구에 연결된 좁은 배관을 확인하기로 했다. 배관 안에서는 아주 약한 바람이 흘렀다. 바르트는 종이 조각을 붙여 흐름을 표시했다. 셀레나는 마력으로 만든 바람이 아닌지 시험했고, 민규는 바람이 실외까지 이어지는지 마을 쪽에서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미라가 무전기로 응답했다. 마을 세탁소 뒷담에서 먼지 같은 바람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가 탈출로일 수도 있겠네요.” 루카가 말했다. “통로라고 하기엔 너무 좁아. 하지만 위치를 찾을 단서는 돼.” 민규는 이 사실을 은희에게도 전했다. 은희는 보건실 안에서 오래 환기구에 귀를 대고 사람들의 발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 소리가 희망이었는지 환청이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민규는 어머니의 기억을 그대로 적었다. 그 기록 덕분에 바르트가 배관의 연결 지점을 다시 볼 수 있었고, 결국 숨은 손잡이까지 찾아낸 것이다. 벽돌 몇 장을 빼자 철제 손잡이가 나타났다. 손잡이에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사람을 세기 전에 문을 열 것.] 바르트는 수첩을 넘기다 혼잣말을 했다. “하셀답군. 훈련 중이라도 사람이 위험하면 기록보다 대피를 우선하라는 뜻이지.” 민규는 손잡이를 바로 당기지 않았다. 먼저 반대편 출구의 상태를 확인했다. 미라가 마을 쪽에서 손전등을 세 번 켰다. 사람 한 명이 지나갈 만한 폭이 확보됐다는 신호였다. 그제야 바르트와 함께 손잡이를 천천히 내렸다. 벽 뒤에서 낮은 금속음이 났다. 안쪽 책상이 저절로 움직였고 오래된 구리 원통 하나가 굴러 나왔다. 원통 안에는 여러 장의 신고서가 있었다. 모두 사고 이전에 작성된 것이었는데, 날짜가 같았다. [시험 운전 실패 예정. 구조 담당자 부재. 실험 시작 전 승인 필요.] “실험하기도 전에 실패 신고를 했네요?” 루카가 물었다. “누군가 사고가 날 거라고 알고 있었다는 뜻일까요?” 셀레나가 말했다. 에일라는 문장을 자세히 읽었다. “아니요. 신고서 양식의 이름 자체가 ‘실패 예정’이에요. 위험한 설계를 미리 거부하도록 만든 제도예요. 그걸 누군가 통째로 없앤 거죠.” 가장 아래에는 잘린 결재란이 있었다. 결재번호만 남아 있었는데, 앞의 한 자리가 지워져 있었다. 한서령이 들고 온 시계 모형의 ‘0’과 딱 맞았다. 민규는 신고서를 접어 봉투에 넣었다. “그럼 이건 누군가가 사고를 예언한 기록이 아닙니다. 사고를 막으려고 했던 기록이네요.” 그 말이 끝나자 벽장 안에서 저절로 돌아가던 시계가 멈췄다. 영 번째 피난동의 첫 번째 신고가 삼십 년 만에 접수되었다는 작은 알림이 울렸다. [신고 내용: 구조 대상 우선. 처리 상태: 미확인.] 정은희가 스스로 펜을 들었다. 그녀는 증인칸에 이름을 쓰지 않고 신고자의 위치와 목격 내용을 적었다. 옆에는 한서령이 자신의 기록을 나란히 남겼다. 두 사람의 글씨가 같은 문장으로 합쳐지지 않은 채 보존되었다. 그 순간 수동 개방 손잡이 밑에서 두 번째 문이 드러났다. 문 위에는 하셀의 필체로 경고가 적혀 있었다. [이 문은 모든 사람이 동시에 나갈 수 있을 때만 열린다. 일부만 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경고 밑에는 총국이 나중에 붙인 금속판이 있었다. [제10관찰자 확인 후 일괄 출구 봉쇄 예정.] 민규가 금속판을 읽고 입술을 다물었다. 내일의 방문자는 실종자를 구하기 위해 오는 게 아니었다. 구조가 가능해지기 직전, 열리는 길을 다시 닫기 위해 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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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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