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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법학교 야간 경비원의 정체 · 92화
PAYLUA ORIGINAL · 제92화

92화. 사라진 한 시간의 영수증

마법학교 야간 경비원의 정체 · 6,077자

오프라인 책장
정은희는 의료실 문을 잠그지 않았다. “엄마, 문이라도 잠그시지 그랬어요.” “잠그면 안전해지는 문이 있고, 안에 갇혀 버리는 문도 있더라.” 민규는 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 그녀의 대답은 삼십 년 동안 보건실 안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할 법한 말이었다. 나디아는 침대와 창문 사이에 긴 밧줄을 걸어 놓았다. 침대에서 일어나 문밖으로 갈 때 밧줄을 붙잡으면 어느 공간으로 이동했는지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하는 표시였다. “검사하다가 한 번 이상했어요.” 나디아가 말했다. “은희 씨의 진료 기록에 오늘 새벽 치료가 예정됐다고 적혀 있었어요. 그런데 그 치료는 이미 삼십 년 전에 했던 거예요. 기록판이 과거를 미래로 옮기고 있어요.” “제10관찰자가 증인을 고르는 방법이군요.” “무엇보다 본인이 동의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어떤 결재도 의료 기록을 대신할 수 없죠.” 은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내 이름을 쓴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을 본 건 아니야.” 에일라와 셀레나가 도착했을 때는 하늘이 밝아 오고 있었다. 셀레나는 출근부의 문자만 분석하는 대신 문자 사이에 남은 마력의 흔적을 살폈다. 과거 실종자들이 갇혔을 때 나타났던 ‘확인 완료’ 표식과 결이 비슷했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이번에는 확인이 끝난 뒤에도 증인의 선택이 계속 바뀌었다. “이 장치가 확신하지 못하고 있어요.” 셀레나가 말했다. “엄마를 후보로 적어 놓았지만 지금도 다른 사람을 찾고 있어요.” “왜 은희 씨를 먼저 고르는 거죠?” 케스가 물었다. 에일라는 삼십 년 전 접수된 구조 신고 목록을 펼쳤다. 가장 오래된 신고서 맨 아래에는 ‘최초 목격: 보건 담당 정은희’라는 문장이 있었다. 누군가 사고 현장에서 보건실의 위치를 처음 보고했으며 그 사실이 총국에서 검증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아마 시스템은 이 문장을 증언 자격으로 쓰려는 거예요.” “신고서를 접수한 것과 누군가의 도착을 증언하는 건 다르지.” 민규가 말했다. “그렇죠. 하지만 총국에서는 같은 칸을 썼어요. ‘신고를 받았음’과 ‘목격을 확인했음’을 구분하지 않은 겁니다.” 민규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누군가를 탓하기는 쉬웠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장치가 잘못 판단하는 조건을 찾는 것이었다. 그는 에일라에게 최초 신고서의 원본을 요청했다. 원본은 종이도 수정판도 아니었다. 보건실 서랍 밑바닥에 고정된 작은 금속판이었다. 은희는 그것을 보자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일을 기억해 냈다. “나는 신고를 했지만 저 판에 서명하지 않았어. 누가 금속판을 들고 와서 증인칸을 채우라고 했지. 거절했더니 그 사람이 네 이름을 말했어.” “제 이름이요?” “어린 네가 사라지지 않게 하려면 도장을 찍으라고. 그 말이 무서웠어.” 은희는 서랍을 열고 낡은 손수건을 꺼냈다. 병원에서 함께 나올 때 챙긴 물건이었다. 손수건 모서리에는 아주 작게 숫자가 수놓아져 있었다. ‘17’. 민규는 그 숫자 옆에서 세 번 접힌 자국을 발견했다. “그 사람이 떠날 때 뭔가 남겼어요?” “얇은 영수증을 주머니에 넣었어. 내가 신고를 철회한 사실을 증명하는 종이라며. 그런데 바깥으로 나오면서 사라졌지.” “어머니가 처음 본 사람은 그 사람인가요?” “얼굴을 보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또렷하지 않았어. 다만 손은 기억나. 왼손 엄지손가락에 시계 기름이 묻어 있었어.” 민규는 마른 웃음을 지었다. 면접장 앞에서 명찰을 달아 주던 사람이 떠올랐다. 손에서 느껴지던 금속 기름 냄새. 그 사람도 왼손으로 명찰을 잡고 있었다. “제가 면접 보러 오던 때에도 같은 사람을 만난 걸까요?” “나도 몰라. 그렇지만 그 사람이 너를 이미 알고 있었다면 우리 둘을 만나게 하려고 했을지도 모르지.” 그날 오후 민규와 바르트는 오래된 면접 자료를 보관하는 외부 창고로 갔다. 마을의 식료품점 뒤에 있던 창고는 이제 인쇄소로 바뀌어 있었다. 주인 아녜스는 경비원을 뽑던 시절의 문서가 남아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때 지원자는 다섯 명이었죠. 다들 경력이 많았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온 사람은 평범한 시설 관리 이력이 전부였어요.” “저였겠군요.” “맞아요. 그런데 선발 전날 제게 이상한 전화가 왔어요. 당신을 뽑으면 안 된다고 했죠.” 민규는 눈을 가늘게 떴다. “결국 뽑혔는데요.” “그다음 전화가 더 이상했거든요. 뽑아야 한다고 했어요. 같은 목소리가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사람이었어요.” “왜 그걸 지금까지 말하지 않으셨어요?” “그땐 채용 사기인가 싶었지. 더구나 두 전화 모두 학교 대표번호로 걸려왔으니까요.” 아녜스는 낡은 매출 장부와 함께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 면접날 누군가 택배 대신 직접 놓고 갔다는 봉투였다. 봉투 안에는 영수증이 있었다. [수리 접수: 정민규 / 품목: 고장 난 초침 / 접수 시각: 면접 전날 23:17 / 인도 예정: 제10관찰자 도착 직후.] 아래에는 손으로 적은 문장이 있었다. ‘수리 완료 전에는 누구도 시간을 가져갈 수 없음.’ 바르트가 영수증을 들여다봤다. “시계 초침을 수리하는데 영수증 하나를 삼십 년이나 숨겨 뒀다고?” “이상하죠.” 민규가 말했다. “그런데 수리 접수 번호가 실제로 있어요.” 번호는 마을 시계방의 옛 장부 형식과 일치했다. 시계방은 폐업한 지 오래였고 마지막 주인이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대신 아녜스가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인쇄소로 바꾸기 전 창고의 벽을 뜯다가 큰 시계의 초침 하나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 초침은 바르트가 학교 종탑에서 본 시계추와 같은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표면의 긁힌 흔적은 최근 것 같았다. 누군가 오래된 물건을 어제까지 손보았다는 뜻이었다. “가져가실 거면 기록하고 가져가세요.” 아녜스가 말했다. “나중에 누가 자기 물건이라고 찾아오면 설명할 수 있어야 하니까.” 민규는 영수증을 복사하고 시계 초침을 밀봉했다. 아녜스는 반출 기록에 자기 이름을 또박또박 썼다. 누가 이 물건을 가져갔는지, 누구의 허락을 받았는지 분명히 남는 평범한 절차였다. 그 평범함이 세 사람을 조금 편안하게 했다. 돌아오는 길에 바르트가 물었다. “이상하지 않아? 누가 자네를 오게 하려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막으려고 했어.” “네. 둘 중 한 사람이 범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죠.” “난 늘 자네가 학교에 온 게 우연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도 그랬어요. 일자리가 필요했고 밤 근무를 할 수 있었으니까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나?” 민규는 창밖을 보았다. 가게 앞을 지나던 아이 둘이 서로 장난을 치고 있었다. 마을은 불안한 소문 속에서도 조금씩 평범한 하루를 되찾아 가고 있었다. “누가 절 끌어왔다고 해도, 지금 여기 남기로 한 건 제 선택입니다.” 바르트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말이 퍽 경비원답다고 느꼈다. 자기가 이 일을 시작한 이유보다 오늘 누구를 위해 문을 열고 닫는지가 더 중요한 순간도 있었다.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 민규는 영수증을 햇빛에 비춰 보았다. 종이 섬유 사이로 별 모양의 작은 무늬가 나타났다. 인쇄소에서 보관하던 낡은 지폐의 위조 방지 무늬와 비슷했다. 바르트는 창문 쪽으로 영수증을 돌려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내 눈으로는 글씨를 알아볼 수 없네. 자네는 뭘 보고 있는 거야?” “글씨라기보단 종이의 결이 다릅니다. 다른 종이를 한 장 더 붙인 것 같아요.” 그들은 마차가 멈출 수 있는 곳에 세운 뒤 영수증을 손상시키지 않고 확대했다. 실을 풀어 종이를 분리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민규는 손전등을 비스듬히 비추었고 바르트는 얇은 종이 사이로 보이는 그림자의 높이를 측정했다. 가운데에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시계방의 작업 번호가 하나 더 들어 있었다. 겉면의 접수 번호와 달리 마지막 숫자가 ‘0’이었다. “왜 번호가 두 개죠?” 민규가 물었다. “수리 의뢰와 작업 원본이 다를 수 있지. 접수한 사람한테 주는 번호는 따로 붙이는 경우가 있어.” “그렇다면 원본 보관함이 어딘가 있다는 얘기군요.” 바르트는 영수증을 도로 봉투에 넣었다. “그걸 찾으러 폐업한 시계방까지 뒤질 건가?” “그럴 생각은 있는데, 먼저 가게를 누가 소유하고 있는지부터 알아봐야겠죠. 남의 건물에 마음대로 들어갈 순 없으니까.” 바르트가 어깨를 으쓱했다. “마법학교에선 문이 마음대로 나타났는데, 자네는 아직도 임대차 장부를 보겠다는 거군.” “이상한 문이 많을수록 정상적인 문은 더 조심해서 열어야죠.” 우체국으로 가는 골목에서는 예전에 시계방을 지나던 사람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노점상은 밤 열한 시만 되면 가게 문틈에서 푸른 빛이 흘러나왔다고 했다. 그런데 그 시각이 실제 밤 열한 시였는지까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민규는 그 말을 억지로 맞춰 보지 않았다. 가게 사진과 당시 영업허가 기록을 함께 찾기로 했다. 마을 우체국에서 그들은 소유자에게 연락하기 위한 절차를 알아봤다. 우체국 직원은 시계방을 기억하고 있었다. 매달 정해진 날짜에 빈 봉투 하나가 발송되곤 했다고 했다. 받는 사람의 주소는 이상하게도 늘 마법학교 경비실이었다. 그런데 경비실에는 그런 봉투가 온 적이 없었다. 직원은 장부의 기재 오류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민규는 등기번호를 확인했다. 처음과 끝의 숫자는 같았지만 중간에 하나씩 비어 있었다. 날짜마다 빈 봉투를 보냈다가 회수한 듯한 이력이었다. 민규는 우체국 직원의 말을 녹음하겠다고 먼저 허락을 구하고 사실만 받아 적었다. 우체국 직원은 수년 전 일을 지나치게 확신하지 않겠다며 자신의 근무 기간을 표시해 달라고 했다. “그 시계방 주인이 누군지 아세요?” “이름은 기억 안 납니다. 손은 기억나요. 우편물을 건네줄 때 늘 왼손에 장갑을 끼고 있었거든요.” 민규는 봉투 속 초침을 만지작거리지 않았다. 낯선 손에 관한 기억이 하나 더 생겼지만, 그것만으로 같은 사람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었다. 대신 그의 수첩에는 ‘왼손 장갑, 확인 필요’라는 새 줄이 추가됐다. 학교에 도착하자 작은 소동이 벌어져 있었다. 제10관찰자의 도착 시각이 다시 바뀌었다. 이번에는 내일이라는 날짜 자체가 사라지고 ‘이미 도착’이라는 글씨가 나타났다. 그런데 경비실 앞에 새 방문자는 없었다. “사람이 없는데 도착 완료라고요?” 루카가 물었다. 에일라가 고개를 저었다. “증인만 먼저 접수했어요. 방문자는 아직 없습니다.” 증인 목록에는 정은희의 이름 대신 ‘정민규’가 적혀 있었다. 민규는 그 목록을 보더니 말없이 수리 영수증을 꺼냈다. 영수증의 뒷면이 따뜻해지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보이지 않던 검은 글씨가 나타났다. [초침을 찾은 자는 자신의 지난 한 시간을 증언해야 한다.] 그러자 민규의 손목시계가 멈췄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오늘 오후 인쇄소에 다녀온 사실을 잠깐 잊었다. 손에 든 봉투가 어디서 왔는지 설명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루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저씨, 제가 기억해요. 아녜스 아줌마네서 그거 가져오셨잖아요. 바르트 선생님이 옆에 있었고요.” 바르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내가 반출 서류에 공동 확인자로 적혔네.” 아녜스의 서명이 찍힌 서류를 펼치는 순간 기억의 빈칸에 흐릿한 장면이 다시 들어왔다. 먼지 낀 창고, 벽에 걸린 시계, 누군가 건네준 영수증. 하지만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았다. 민규는 서둘러 감추지 않았다. “방금 제 기억에서 한 시간이 빠졌습니다. 확인을 받은 건 맞지만 아직 다 돌아오진 않았어요.” 나디아가 그에게 의자를 내주었다. “지금은 혼자 움직이지 마세요.” 그날 밤 정은희는 아들 옆에 앉아 같은 시간을 두 번 이야기해 주었다. 첫 번째는 삼십 년 전 보건실에서 했던 약속에 관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오늘 인쇄소에서 일어났던 일에 관한 것이었다. 민규는 둘 다 알고 있는 부분과 모르는 부분을 구분해서 수첩에 적었다. 자정 직전, 빌린 기억의 틈으로 아주 짧은 장면이 흘러들어왔다. 어두운 면접장 복도에서 시계 기름 묻은 왼손이 초침을 한 번 돌렸다. 그 손의 주인은 민규에게 말했다. “그날 어머니를 가둔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 나를 먼저 의심하지 마. 내가 문을 닫은 건 맞지만 잠금쇠를 만든 사람은 따로 있어.” 민규는 눈을 번쩍 떴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람의 목소리가 이번에는 분명했다. 남자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늙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 순간 경비실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는 폐업한 지 오래된 마을 시계방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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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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