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탑 계단 앞에는 출입 금지 표지가 세 장이나 붙어 있었다.
첫 번째는 ‘학생 출입 금지’. 두 번째는 ‘마법 사용 금지’. 세 번째는 ‘교장 허가 없는 시간 조정 금지’였다. 민규는 표지들을 하나씩 읽고, 가장 아래에 자신의 글씨로 새 표지를 덧붙였다.
[구조 작업 중. 위험하니 접근 금지.]
“그렇게 써 놓으면 누가 들어올 것 같아요?” 루카가 물었다.
“적어도 누가 왜 들어오지 말라는 건지 알 수 있지.”
민규는 셀레나와 함께 종탑의 첫 번째 계단을 올랐다. 루카는 아래층 학생회 임시 대피소로 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불만이 많았지만 이번에는 자신의 역할이 있었다. 마법 명부가 틀린 학생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그들의 이름을 직접 써 주는 일이었다.
“아저씨, 그럼 종탑 위에서 저를 보고 손 흔들어 주세요.”
“전망대가 아니라 작업 현장이야.”
“그럼 안전하게 내려오기나 하세요.”
민규는 손을 흔들어 대답했다.
학교 종탑은 오래된 네모난 석조 건물이었다. 내부에는 나선형 계단이 있었고 그 가운데로 거대한 추 두 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마법사들이 강력한 시간 제어 장치라고 부르는 이 시계는 민규의 눈에 거대한 기계 설비처럼 보였다. 톱니바퀴와 회전축, 마찰을 줄이는 구리 베어링,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진자. 마법은 그 장치에 힘을 공급할 뿐이었다.
“누가 설계했는지 대단하군요.”
“제국 설립 초기의 전설적인 마도공학자래요.” 셀레나가 말했다.
“전설적인 사람이라면서 윤활유는 왜 한 번도 안 발랐답니까?”
“여기서는 부품이 마나로 마모를 복구해요.”
“그럼 저 먼지는 누가 복구해 줍니까?”
셀레나는 대답 대신 계단의 먼지를 소매로 닦았다. 민규는 웃을 뻔했지만 곧바로 진지해졌다. 시계의 추 하나가 불규칙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정상 운전이라면 두 추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지금은 거의 같은 방향이었다. 서로 다른 시간 회로가 강제로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는 뜻일 수 있었다.
“장치 정지시키면 되지 않을까요?” 셀레나가 물었다.
“그 전에 학교 대피가 끝났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는 무전기를 눌렀다. 아래에서는 루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재 임시 대피소에 학생 일흔여덟 명, 교수 두 명, 학생회 세 명 있어요. 문제는 나머지 학생들이 아직 출석 인증을 받으려고 줄 서 있다는 거예요.”
“인증 줄부터 해산시켜. 지금은 기계가 이름 확인을 못 해. 사람한테 직접 물어보라고 해.”
“네! 레온이도 옆에서 도와주고 있어요.”
“좋아. 다친 학생 생기면 보건실 우선.”
무전기를 끈 민규는 시계의 동작을 기록했다. 정확히 열두 번 흔들릴 때마다 추 하나가 멈칫거렸다. 열세 번째 움직임에 들어가려고 하면 어디선가 톱니가 걸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는 손전등을 좁은 틈에 비췄다. 회전축 옆의 작은 톱니바퀴 하나가 정상 부품과 달리 새것이었다.
“누가 최근에 고쳤군요.”
“시계 담당 장인들은 수십 년째 여기 들어오지 못했어요.”
“그럼 누군가 몰래 들어온 거겠죠.”
새 톱니바퀴 뒤에는 희미한 붉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서류에 찍혀 있던 대체 등록 도장과 같은 문양이었다. 셀레나는 마나의 결을 느끼고 얼굴을 굳혔다.
“이건 기록 위원회가 쓰던 교정 문양이에요. 잘못된 명부를 수정할 때만 사용하는 고위 마법이죠.”
“저걸 돌려서 학생 이름을 하나씩 교체하나 봅니다.”
민규가 추를 가리켰다. “종이 울리는 순간 학교의 모든 기록 장치가 같은 시간으로 맞춰지겠죠.”
“교정 문양은 그때 새로운 이름을 밀어 넣을 거고요.”
“그러면 종을 울리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망치로 종을 고정하면 될까요?”
“그러면 안에서 힘이 쌓입니다. 시계가 터질 수 있어요.”
둘은 탑 중간층으로 올라갔다. 바닥에는 오래된 장인들이 남긴 유지보수 기록이 있었다. 기계가 멈출 때마다 시계추를 분리하고, 고정핀으로 축을 받친 뒤, 톱니바퀴를 조정하라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마나가 축을 움직이는 탓에 단순히 핀을 박으면 마력이 다른 곳으로 새어 나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교수님, 공급선을 세 군데로 나눌 수 있습니까?”
“어느 선이요?”
“종탑과 기록망, 시간 기준기, 마나 공급선. 셋 중 하나가 나머지 두 개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요.”
셀레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마법식을 그렸다. 그녀는 한동안 숫자를 쓰다가 고개를 들었다.
“한 번에 끊으면 안 돼요. 시계추의 운동을 유지하면서 기록 교정 문양만 떼어 내야 해요.”
“좋습니다. 그건 교수님이 맡으세요. 저는 새로 끼운 톱니를 확인하겠습니다.”
둘은 서로 다른 일을 시작했다. 셀레나는 수백 개의 문자가 복잡하게 얽힌 마법식을 해체했고, 민규는 톱니의 회전 방향과 걸리는 각도를 재기 시작했다. 그는 구두끈에 매달린 작은 쇳조각을 진자처럼 써서 추의 움직임을 비교했다. 귀로 듣던 종소리의 불규칙함이 숫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시계탑 중간층에는 작은 점검 창문이 있었다. 민규가 창을 열자 운동장에 모인 학생들이 보였다. 파란 담요를 덮은 아이, 친구의 손을 꼭 잡은 아이, 무엇 때문에 여기 있는지도 모르면서 주변을 살피는 아이. 누군가는 아직도 종탑이 울리면 수업이 시작되는 줄 알았다. 그 풍경을 보자 민규는 자신이 무엇을 지키려는지 새삼 또렷해졌다.
아래에서 루카가 무전기로 말했다. “레온이도 이름이 자꾸 바뀐대요. 그런데 친구들이 계속 불러 주니까 잠깐씩 돌아와요.”
“몇 분이나 유지돼?”
“처음에는 열 초도 안 됐는데, 지금은 일 분 가까이요. 교수님 말씀대로 종이에도 쓰고 있어요.”
민규는 무전기를 들고 잠시 생각했다. 이름을 반복해서 불러 주는 행동이 기록망을 약화시키는지, 아니면 단순히 당사자의 기억을 붙드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기억하는 동안 그 학생이 혼자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좋아. 억지로 기억하게 만들지 말고, 서로 아는 사실부터 말해 줘. 오늘 아침 먹은 밥이라도.”
루카는 대피소 바닥에 분필로 작은 사각형을 그렸다. 사각형마다 학생 한 명씩 앉게 하고, 각자 옆 사람의 이름을 적도록 했다. 그러자 누군가의 이름이 명부에서 빠질 때도 최소한 두 사람이 그 학생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아이는 친구의 이름을 잊고 울음을 터뜨렸지만, 옆에서 공책을 보여 주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회장이 무전기를 받아 말했다. “학생들이 겁먹고 있어요.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죠?”
민규는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 근거 없이 곧 끝난다고 약속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했다.
“지금은 밖에 모여 있는 게 가장 안전합니다. 탑은 저희가 확인 중이고, 새 지시가 있을 때까지 명단은 직접 적어 주세요. 문제가 생기면 바로 알려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창문을 닫기 전, 민규는 한 가지 더 발견했다. 운동장 서쪽 담장 너머의 마을 집들에서도 몇 개의 불빛이 동시에 꺼졌다 켜졌다. 종탑과 연결된 기록망이 학교 밖으로 뻗고 있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그곳에는 학생 명부도, 안전 지침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학교 안에서 시작한 사고가 마을로 퍼지면 누구부터 기억을 잃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교수님, 종탑과 외부로 가는 마나 공급선도 따로 표시해 주세요.”
셀레나는 창밖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막는 게 끝이 아니라, 연결을 전부 조사해야겠네요.”
“그래서 먼저 여기서 멈춰야 합니다.”
둘은 같은 시계추를 바라봤다. 흰 글씨로 적힌 눈금은 열두 칸에서 끝났지만, 바로 아래 새 톱니에는 붉은 선이 한 칸 더 그어져 있었다. 열세 번째 칸은 원래 없던 시간이었다.
그때 시계탑 전체가 흔들렸다. 계단 아래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관리자는 장치를 조작하지 않습니다.”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가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깊은 모자에 회색 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의 가슴에는 낡은 은색 배지가 붙어 있었다.
[학교 기록 서기관.]
“누구십니까?” 민규가 물었다.
“기록의 수정 권한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 건물은 제가 관리합니다.”
“그럼 시설 점검 이력부터 보여 주시죠.”
남자는 잠시 멈췄다. “무슨 말씀입니까?”
“최근에 새 톱니를 끼우셨죠? 안전 점검 기록이 없으면 수리를 승인할 수 없습니다.”
“제 권한이 귀하의 경비 업무보다 높습니다.”
“권한이 높으면 기록을 더 잘 남겨야죠.”
남자는 웃지도 않고 손을 들었다. 허공에 커다란 장부가 펼쳐졌다. 거기에는 종탑 점검 기록이 수백 장 들어 있었다. 모든 날짜에는 교장 서명과 서기관의 승인 도장이 찍혀 있었다.
“기록을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제공하지요.”
민규는 장부를 눈으로 훑었다. 글씨는 깨끗했고 번호도 순서대로였다. 그러나 페이지마다 모서리의 낡은 얼룩이 완벽히 같았다. 실제로 서로 다른 날짜에 작성한 문서라면 이렇게 모든 종이가 똑같을 수 없었다.
“복사한 종이만 잔뜩 가져오셨네요.”
남자의 손끝이 움찔했다.
“효율적인 기록 관리입니다.”
“그래서 기록이 틀리면 사람을 지우는 겁니까?”
“틀린 정보를 제거하는 것은 관리자의 의무입니다.”
셀레나가 분노한 얼굴로 일어섰다. “학생은 정보가 아니에요.”
“그렇기에 학교의 안정성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불완전한 개인 기억은 전체 명부에 해를 끼칩니다.”
서기관은 장부 한 장을 넘겼다. 아래층 무전기에서 루카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민규는 급히 무전기를 눌렀다.
“루카, 응답해.”
대답이 없었다. 대신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학생 대피소에 루카라는 학생은 없습니다.”
민규의 얼굴이 굳었다. 서기관이 조용히 말했다.
“중복되고 불완전한 기록 하나를 정리했습니다. 더 이상 방해하지 마십시오.”
민규는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가려 했다. 하지만 셀레나가 그의 팔을 잡았다.
“지금 내려가시면 종이 울려요. 남은 학생들까지 위험해집니다.”
민규는 이를 악물었다.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이 이름을 잃어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도 없었다.
그는 무전기를 한 번 더 켰다.
“아래 대피소에 있는 사람들, 지금부터 들리는 이름을 그대로 적으세요. 루카. 3학년. 검은 머리. 손에 잉크가 자주 묻습니다. 제 말 들리면 옆 사람에게 전하세요.”
처음에는 침묵이 흘렀다. 곧 다른 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그 애 알아요. 어제 도서관에서 봤어요.”
다음 목소리도 이어졌다. “교수님 연구실에서 개구리로 변한 애요!”
셀레나가 짧게 웃었다. 그러더니 얼굴을 바로잡고 무전기에 말했다.
“맞아요. 제 학생입니다. 오늘도 제가 직접 봤어요.”
서기관의 손에 있던 장부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새로 써 넣은 이름 하나가 지워졌다 다시 나타났다.
“불완전한 기억을 그렇게 모아 봐야 원본을 대체하지 못합니다.”
“원본을 대체할 생각 없습니다.” 민규가 말했다. “원본에 있었던 사람을 되찾으려는 겁니다.”
서기관이 손가락을 튕겼다. 새 톱니바퀴가 더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거대한 시계추가 열두 번째 궤적을 지났다. 이제 한 번만 더 흔들리면 종을 때리는 망치가 내려올 터였다.
민규는 장갑을 끼고 걸림쇠 옆으로 몸을 숙였다. 무작정 쇳덩어리를 막으려는 게 아니었다. 새 톱니가 원래 톱니를 밀어낸 위치, 불필요하게 추가된 걸림면을 찾은 것이다.
“교수님, 지금!”
셀레나가 마나 공급선을 고립시켰다. 망치에 실린 힘이 잠시 멈췄다. 민규는 금속 쐐기를 틈에 밀어 넣어 새 톱니만 축에서 분리했다. 시계의 원래 회전은 유지되었고, 붉은 문양을 가진 톱니가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쾅!
종은 울리지 않았다. 대신 거대한 망치가 종 옆의 보호대에 부딪혔다. 진동이 탑 전체에 퍼졌다. 먼지가 비처럼 떨어졌다. 셀레나는 몸을 휘청거렸지만 끝까지 마나 공급을 유지했다.
“막았어요!”
민규는 두 번째 시계추를 확인했다. 정상 회전이었다. 열세 번째 종은 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서기관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톱니를 내려다보더니 천천히 장부를 덮었다.
“기계는 멈추셨군요.”
“예. 안전 점검 끝났습니다.”
“하지만 기록은 이미 발송되었습니다.”
그는 계단 아래를 가리켰다. 학생들이 모인 운동장 위로 붉은 종이 조각들이 눈처럼 날리고 있었다. 그중 한 장이 민규의 발치에 떨어졌다.
[대체 대상 확정: 루카.]
[원본 삭제 절차: 02시 17분 개시.]
민규가 시간을 보았다. 아직 새벽 한 시 오십구 분이었다. 실제로 남은 시간은 열여덟 분.
서기관은 그림자처럼 사라지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당신의 손전등은 종을 멈출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종소리 없이도 학교는 이름을 지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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