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을 구조한 뒤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아무도 크게 환호하지 않았다.
나디아는 먼저 세 사람의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고 했고, 케스는 니아와 함께 있을 시간을 원했다. 민규 역시 돌아온 사람이 자신의 얼굴을 빌려 수십 년간 일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그가 누군가의 얼굴을 썼다는 것과 그가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함께 인정할 수 있었다.
“제 얼굴을 본 게 언제였습니까?” 민규가 물었다.
에른은 담요를 어깨에 두른 채 대답했다. “처음 배치될 때는 당신이 누군지 몰랐어요. 표준 얼굴을 씌우는 장치가 내 눈앞에 초상화를 보여 줬죠. 그게 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초상화는 언제 찍은 겁니까?”
“모릅니다. 다만 사진이 만들어지는 장면은 봤어요. 원본 유지과의 거울이 앞으로 올 사람의 얼굴을 그려 내더군요.”
“얼굴을 그리는 데 왜 제가 필요했습니까?”
“오래된 설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미래에 돌아와 문을 여는 사람을 표준 확인자로 삼는다.’”
민규는 차창 밖을 바라봤다. 자신이 삼십 년 뒤 다시 학교로 돌아온 이유는 마법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일자리를 찾아 야간 경비로 왔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 우연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뜻일까. 그는 조급하게 답을 만들지 않았다. 누군가 과거에 미래의 자신을 보았다면 그 관측도 조작될 수 있었다.
원본실에서는 에일라와 셀레나가 사고 설계의 마지막 부분을 분석하고 있었다. 하셀의 환기 도면, 세탁소 수선표, 카일의 사망 확인서, 에른의 표준 얼굴 생성 책을 서로 다른 탁자에 놓았다. 어느 하나를 다른 기록보다 우선하지 않았다. 에일라는 네 자료에 공통으로 들어간 도형을 발견했다. 꼭짓점 아홉 개 중 여덟 개만 채워진 국화 모양이었다.
“아홉 번째 꽃잎은 그려지지 않은 게 아니에요.” 에일라가 말했다. “모든 자료에서 누군가 긁어 냈습니다.”
루엔은 자를 대고 도형의 중심을 측정했다. 삭제된 자국은 거칠었지만 깊이는 똑같았다. 같은 공정으로 제작된 문서들에서 공통으로 빠진 부분이라면 한 번에 수정된 설계 원본이 있을 수 있었다. 그녀는 마법학교 실습동에 남은 하셀의 옛날 기구를 떠올렸다. 그 기구의 아홉 번째 홈만 부품을 교체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하셀 선생님이 일부러 마지막 홈을 열어 놓으셨을지 몰라요.”
“왜요?” 셀레나가 물었다.
“틀린 설계라면 중간에 멈출 수 있도록요. 선생님은 완벽한 설계를 믿지 않았어요. 사람이 살면서 길을 바꿀 거라고 했죠.”
민규는 실습동에서 발견한 수정 흔적을 생각했다. 최근 교체된 압력계가 꼭 악의적인 조작일 필요는 없었다. 누군가는 낡은 장치가 사람을 해치는 걸 알고 수리하려 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수리가 왜 사망 신고와 연결되는지는 아직 의문이었다.
공개 증언회를 준비하는 일에는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학생들을 모두 강당에 부르면 겁을 먹을 수 있었고, 사건과 직접 관련된 주민만 모으면 그동안 잘못된 검사에 피해를 입은 사람이 소외될 수 있었다. 오르반은 참석 대상을 정하기 위해 임시 회의를 열었다. 이전 같았으면 교장실에서 혼자 결정했을 일을 이번에는 학생회와 마을 대표에게 먼저 물었다.
“모든 걸 공개하면 또 누군가 위험해지지 않을까요?” 미라가 말했다. “사람이 어디에 숨어 있었다는 정보가 알려지면 원본 유지과가 다시 찾아올 수도 있어요.”
“그럼 구조 장소의 정확한 길은 공개하지 않도록 하죠.” 에일라가 답했다. “하지만 피해가 있었다는 사실까지 감추지는 말아야 합니다.”
루카는 학생회와 함께 안내문을 만들었다. [사건 경위를 설명하고 질문을 받는 자리입니다. 피해 경험을 말하고 싶지 않으면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문장 길이는 짧았지만 많은 토론을 거쳐 결정한 것이었다. 학생들은 사건을 겪은 사람들에게 마이크를 돌려 억지로 증언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민규는 강당 입구에서 사람들이 쉽게 나갈 수 있는지 점검했다. 출입문 두 곳 가운데 하나는 오래된 커튼 뒤에 가려져 있었다. 그는 커튼을 묶어 고정하고 안내 표식을 붙였다. 마법으로 눈부신 빛을 띄우기보다 어둡지 않은 작은 등불을 설치했다. 민규는 사건을 겪은 사람들은 작은 소리에도 놀랄 수 있다는 나디아의 조언을 들었다.
“또 무엇을 점검해야 할까요?” 루카가 물었다.
“사람이 불편해지면 조용히 쉴 곳을 만들자. 그리고 나갈 때 이유를 묻지 않는다고 써 붙이면 좋겠어.”
루카는 안내문에 새 문장을 넣었다. 미라는 의자 몇 개를 뒤쪽에 따로 배치했다. 니아가 사람들 앞에 오래 앉아 있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돌아왔다는 기쁜 소식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가볍게 만들어서는 안 되었다.
에른은 증언회 참석을 며칠이나 망설였다. 그는 자신이 내렸던 잘못된 확인 판정 때문에 사람들의 삶이 엉망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 앞에서 자기 얼굴을 드러내면 원본실의 표준 장치가 다시 작동할지 몰랐다. 게다가 피해를 입은 주민이 자신을 공격할까 봐 두려워했다.
“말하지 않아도 되나요?” 그가 민규에게 물었다.
“그 선택은 당신에게 있습니다. 다만 사건 조사에는 협조해야겠죠. 모두 앞에서 말하지 않더라도 조사 기록을 남길 수 있습니다.”
“그럼 저는 뭐가 다른 겁니까? 또 누군가 뒤에서 저 대신 말을 쓰게 되잖아요.”
“그렇지 않도록 당신이 말한 내용을 직접 확인하면 됩니다. 공개할 범위도 같이 정하고요.”
에른은 한참 고민한 뒤 목소리만 공개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그의 얼굴을 알아보고 잘못된 기억을 떠올릴 위험을 줄이면서도 자신이 한 일을 스스로 설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에일라는 동의를 받는 서류를 작성했고, 에른은 자기가 아는 부분과 모르는 부분을 구분해 표시했다.
그날 저녁 루엔은 에른의 옛날 작업 기록을 따로 정리했다. 그는 오랫동안 명령을 수행했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기록의 가장자리에 아주 작은 반대 표시를 남겼다. 틀린 확인을 했을 때 동그라미 안에 점 하나를 찍는 방식이었다. 그 표시를 대조하자 사고 뒤 몇 년 동안 피해를 입은 사람의 일부 명부를 찾을 수 있었다.
“왜 이렇게라도 남겼을까요?” 루엔이 물었다.
에른은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제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나중에라도 누군가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명령을 바로 멈출 용기는 없었지만 흔적은 남길 수 있었습니다.”
에일라는 그것이 잘못을 없애 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에른도 동의했다. 그러나 작은 점들이 이제 피해자를 찾는 지도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 그들이 다시 이름을 되찾으려면 먼저 어디에서 잘못됐는지 알아야 했다.
카일은 의무실에서 자신이 본 기술자의 특징을 하나 더 증언했다. 관찰자는 왼쪽 귀 뒤 점이 있었고, 기계를 수리할 때 항상 손바닥을 한번 털었다고 했다. 에른은 자기도 그런 버릇이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사진 속 흉터 없는 얼굴에는 그 버릇이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사람의 몸이 아니라 얼굴 부분만 빌려 쓰는 장치였기 때문이다.
민규는 자료를 하나로 묶기 전에 주민들이 열람할 수 있는 요약본과 사생활을 보호할 비공개본을 나누었다. 흉터 없는 얼굴의 기원을 밝히는 조사라 해도 당사자의 상처나 의료 기록을 불필요하게 공개할 이유는 없었다. 마법이 기록을 지울 수 있는 곳에서는 기록을 많이 남기는 일만큼 누가 볼 수 있는지 정하는 일도 중요했다.
증언회 준비가 끝난 뒤 오르반은 빈 강당 가운데에 서 있었다. 젊은 시절 그는 학교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여러 사실을 감췄다. 지금은 그 일로 잃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천천히 마이크를 잡았다.
“제가 여러분께 잘못 말한 부분부터 바로잡겠습니다.”
그 말은 아직 청중 없는 강당에만 울렸다. 그러나 그는 그 문장을 다섯 번 연습했다. 실수했다고 인정하는 일은 한 번 소리 내는 것보다 실제 사람들 앞에서 계속 책임지는 일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모임 시작 전 아녜스는 의자 뒤에 작은 수선함을 올려놓았다. 실과 바늘, 작은 가위뿐이었다. 사람들이 왜 가져왔느냐고 묻자 그녀는 긴 대화가 끝날 때까지 손을 움직일 일이 필요해서라고 답했다. 삼십 년간 잘못된 서류를 보고 온 사람들에게는 말 한마디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힘들 수 있었다. 니아는 수선함에서 바늘 대신 남은 붉은 단추 하나를 골랐다. 자기 옷에서 떨어진 단추는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 누군가의 옷에 달린 비슷한 모양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단추를 손바닥에 놓고 처음 듣는 사람들의 증언을 들었다. 어느 가족은 지워진 이름을 찾지 못했고, 어느 학생은 사라진 교실의 위치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 누구의 사연도 다른 사람의 재회보다 덜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케스는 그 말을 들으며 자신이 누군가의 오빠이기 전에 수많은 사람을 지켜야 했던 공직자였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이번에는 두 역할 가운데 어느 하나도 변명으로 삼지 않을 것이다.
이틀 뒤 저녁 학교 강당에서 임시 공개 증언회가 열렸다. 오르반은 교직원과 마을 주민에게 사건 개요를 설명했다. 민규는 에른의 얼굴을 무단으로 공개하지 말자고 요청했다. 에른 역시 자신의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서는 일에 동의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목소리를 가린 채 자신이 했던 일을 진술했다. 과거에 총국의 확인 명령을 수행하며 거짓 통과 판정을 내린 일, 이상 징후를 알아도 신고하지 못했던 일, 니아와 아이가 갇힌 뒤 출입 장치를 멈추려 한 일을 숨기지 않았다.
마을 주민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 사람 때문에 우리 가족이 이름을 잃었다는 건가요?”
“제가 내린 판정이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에른이 대답했다. “정확히 누구에게 어떤 피해를 주었는지는 조사해야 합니다. 책임을 피하지 않겠습니다.”
그 대답을 듣고도 주민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민규는 주민에게 곧바로 용서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피해를 겪은 사람이 충분한 설명과 사과를 받을 권리가 있었고, 에른 역시 안전하게 사실을 말할 수 있어야 했다. 공개 증언회는 환호 대신 긴 침묵 속에서 이어졌다.
케스가 조용히 단상에 올랐다. “제 동생이 돌아왔습니다. 이 말을 하려고 섰지만, 모든 실종자가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총국이 확인을 잘못한 기록부터 다시 열겠습니다. 제가 과거에 제출한 부정확한 보고서도 포함하겠습니다.”
니아는 청중석 뒤에서 오빠를 바라봤다. 그녀는 아직 사람 많은 곳에 오래 있지 못했다. 아녜스가 옆자리에 앉아 손을 잡아 주었다. 케스가 단상을 내려오자 니아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나 돌아왔다고 다 끝난 건 아니야. 아직 저 안에 있던 사람들이 있어.”
케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종이 위에 ‘사망 추정’ 같은 단어부터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별은 경비실에서 안쪽 별과 종이배를 띄우는 실험을 했다. 두 아이는 서로 다른 종이를 접었고, 물그릇 안에서 어느 배가 더 오래 떠 있는지 비교했다. 안쪽 별의 배는 처음에는 가라앉았지만 다시 접은 두 번째 배는 더 오래 버텼다. 별은 물이 들어가는 곳을 찾아 접는 선을 하나 추가해 주었다. 민규가 돌아왔을 때 아이들은 승부를 다투는 대신 보트를 어떻게 고쳤는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저씨, 진짜로 다시 하면 달라져요.” 별이 자랑했다.
“그걸 확인했네.”
민규는 아이들의 기쁨을 빼앗지 않으려 사진 장치의 새 명령을 아직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을 재운 뒤 원본실로 내려갔다. 그곳에 에른의 책을 올려놓자 빈 사진 칸에 떠오른 자기 얼굴이 움직였다. 흉터까지 정확히 복제된 모습이었다. 종이 안쪽에서 누군가 말하는 것 같았다.
[아홉 번째 확인자는 자기 이름을 증명하라.]
민규는 서류에 자기 이름을 쓰지 않았다. 이미 여덟 번째 피난동에서 신원을 확인하겠다는 장치가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다른 질문을 적었다.
[당신은 누구의 안전을 위해 이 확인을 요구합니까?]
잠시 뒤 사진이 흐려졌다. 그 아래에서 지금껏 보이지 않던 마지막 설계 문구가 올라왔다.
[안전 대상: 미정. 관리 책임자: 지정 대기.]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사람의 이름을 요구하던 장치의 설계 원본에는 정작 누구를 지키려는지 적혀 있지 않았다. 민규는 그 빈칸에 아무도 대신 이름을 넣지 않았다.
그때 종탑에서 오래된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가 났다. 원본실의 경비원은 당황한 음성으로 외쳤다.
“총괄 설계자가 아홉 번째 피난동에 접속했습니다. 이번에는 사진이 아니라 직접 들어오고 있습니다.”
제8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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