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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법학교 야간 경비원의 정체 · 84화
PAYLUA ORIGINAL · 제84화

84화. 실습동의 세 번째 울림

마법학교 야간 경비원의 정체 · 6,035자

오프라인 책장
젊은 여자는 출입대장의 검은 얼룩을 바라보다 작업 장갑을 벗었다. 왼손 검지에는 붕대로 감싼 자국이 있었다. 붕대 아래에서 빛나는 것은 피가 아니라 하얀 분필이었다. 정민규는 먼저 그녀의 손가락이 다친 것인지 물었다.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얇은 장갑이 마법 기록지에 닿았을 때 생기는 자국이라고 했다. “이름은 루엔입니다. 적으려고 하면 서류가 타 버려요.” “다른 방법으로 적어 보죠.” 민규는 출입대장 대신 자기가 쓰는 볼펜 뚜껑을 건넸다. 루엔은 뚜껑 안쪽에 손톱으로 네 글자를 새겼다. 플라스틱에는 작은 긁힌 자국만 남았지만 종이처럼 타지는 않았다. 에일라는 이를 두 방향에서 사진으로 찍었다. 젊은 여자는 그제야 숨을 고르게 내쉬었다. “처음으로 이름을 남겼네요.” “누군가 지운다고 해서 이름이 없던 사람이 되는 건 아닙니다.” 루엔은 자신이 중앙 피난동 설계자 하셀의 수습 제자였다고 말했다. 삼십 년 전 학교 사고 때 하셀은 완성되지 않은 설계도를 피난동 여덟 곳에 나누어 숨겼다. 하나로 합쳐 놓으면 원본 유지과가 수정해 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루엔이 보기에 하셀은 영웅도 악당도 아니었다. 주민들을 살리기 위해 통로를 만들었지만, 승인받기 위해 이름 없는 검증자의 자리에 마법 초상화를 도입한 사람이기도 했다. “하셀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케스가 물었다. “확실하지 않아요. 마지막으로 본 건 여덟 번째 피난동에서예요. 문을 닫으면서 ‘사람을 숫자로 센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어요.” 루엔은 주머니에서 얇은 금속 자를 꺼냈다. 눈금 사이에 아홉 개의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녀가 그것을 사진 위에 대자 흉터 없는 정민규의 눈썹 위에 완벽하게 겹쳐지는 점 하나가 나타났다. 민규가 미간을 찌푸렸다. “사진을 바꿀 수 있습니까?” “예. 하지만 이 자로 고칠 수 있는 건 사진이 아니라 사진을 보는 각도예요. 원래는 피난동 환기구를 재는 도구였어요.” 그녀는 자를 창가로 가져갔다. 밝은 쪽에서 바라보자 사진 속 남자의 얼굴이 잠깐 흐트러졌고, 그 아래에 수염이 덜 난 젊은 남자의 윤곽이 떠올랐다. 왼쪽 귀 뒤에는 작은 점이 있었다. 은희와 별의 증언과 같았다. “저 사람이 하셀입니까?” 민규가 물었다. “아니요.” 루엔은 즉시 대답했다. “저 얼굴은 원본실에서 허가증을 제작하던 사람이에요. 저는 그를 세 번밖에 못 봤어요. 이름 대신 ‘관찰자’라고 불렀죠.” 케스가 말했다. “총국 내 기록상 관찰자는 사람이 아니라 자동 검증 직위입니다.” “그래서 무서운 겁니다. 사람인 척하는 직위가 아니라, 직위가 된 사람이니까요.” 실습동으로 가기 전에 루엔은 교무실의 낡은 시계를 한참 바라봤다. 시계는 새것처럼 돌아가고 있었지만 숫자판에는 전쟁 전의 표기법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그 시계가 수습생 시절 자기 책상 위에 있던 물건과 같다고 말했다. 민규는 그녀에게 몇 살인지 묻지 않았다. 사람의 나이를 외모만 보고 판단해도 안 되는 곳이었다. “사고 뒤에도 계속 여기 있던 겁니까?” 에일라가 물었다. “저한테는 사고 뒤 첫겨울이 끝나지 않았어요.” 루엔이 답했다. “저는 그날 실습동 배관을 점검하러 갔고, 돌아오니 바깥 날짜가 수십 년 지나 있었어요. 기록망은 제가 사라진 걸 모른다고 했고요. 누가 제 이름을 적으면 종이가 타 버려서 한동안 아무에게도 설명할 수 없었어요.” 그녀는 손등의 붕대를 풀어 보여 주었다. 붕대 안쪽에는 얇고 하얀 줄이 여러 개 남아 있었다. 위험한 작업 때 묻은 분필 자국이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았다. 분필에는 하셀이 쓰던 특수 광물이 섞여 있어 신원을 지우는 마법에 반응한다고 했다. 손을 씻어도 자국이 없어지지 않은 것은 평범한 때를 살지 못했다는 표식처럼 느껴졌다. “왜 이제야 찾아왔습니까?” 케스가 물었다. “사진이 바뀌기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그전까지는 누군가의 얼굴이 잘못되는 걸 알아도 제가 낼 수 있는 증거가 없었어요.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실제로 보고, 기록하고 있잖아요.” “그럼 처음부터 도움을 청할 수 있었던 겁니다.” “말은 했죠. 하지만 ‘당신은 기록에 없는 사람’이라는 답밖에 못 들었어요.” 케스가 입술을 다물었다. 그는 총국 감사관으로서 같은 답을 수없이 사용한 적이 있었다. 민규는 그가 변명하려고 할 때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저 현재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물었다. “루엔 씨의 신고를 받아 주는 창구는 있습니까?” “지금은 제가 담당할 수 있습니다.” 케스가 조용히 말했다. “일단 실재 인원으로 접수하고, 서류는 추후 대조하겠습니다.” 루엔은 그 말을 듣고도 크게 웃지 않았다. 너무 오랫동안 누구도 자기 말을 믿지 않았던 사람은 새 약속 앞에서 쉽게 안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 주자 한 번 돌아봤다. 민규는 그 작은 반응만으로도 조사 동료가 한 사람 더 생겼다는 사실을 알았다. 실습동의 오래된 설계도를 펼치는 작업은 바르트가 맡았다. 접힌 종이는 여러 번 젖었다 말라 종이결이 약해져 있었다. 그는 따뜻한 수건으로 습기를 조금씩 올려 종이를 펼쳤다. 성급하게 펼치면 가운데의 배관선이 찢어질 수 있었다. 루엔은 그 옆에서 눈금자의 끝을 대고 치수를 읽었다. “이 관의 폭이 설계보다 좁아요.” “그럼 원래 부품이 아닌 거겠죠.” “아니요, 처음부터 이렇게 제작하라고 명령이 바뀌었어요.” 루엔은 제자의 표시가 남은 구석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자신의 글씨였다. 최초 설계에는 넓은 공기 통로가 두 개였지만 승인본에는 한 개만 남아 있었다. 나머지 하나는 ‘표준 확인 경로’라고 적혀 얼굴 검증 장치로 연결됐다. 사람이 빠져나갈 출구가 신원을 검사하는 기계로 바뀐 것이다. “하셀은 반대했을 텐데요.” 셀레나가 말했다. “그랬어요. 하지만 끝내 철회하진 못했죠. 공사를 멈추면 이미 위험한 곳에 있는 주민들이 더 오래 기다려야 했으니까.” 민규는 자신의 수첩에 두 문장을 나란히 적었다. [당시 임시 조치가 현재 위험의 원인이 됨.] [조치 승인 경위는 별도로 조사.] 사고를 저지른 사람을 찾는 일은 중요했지만 한 사람이 악의를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기술적 오류가 설명되지는 않았다. 잘못된 설계를 남기게 된 환경도 확인해야 했다. 바르트는 도면의 빈 자리를 보고 말했다. “그림을 보면 여기에 손잡이가 있어야 해요. 지금 없더라도 벽 안에 남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럼 어느 벽입니까?” “복도 안쪽입니다. 하지만 그 뒤에 사람이 있으면 바로 뜯을 수 없죠.” 루엔은 미리 잘라 온 목재 조각으로 문틀 모형을 만들었다. 원래 손잡이가 어디에서 돌았고 어느 방향으로 압력이 빠지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했다. 모형은 매우 단순했지만 셀레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마법 흐름을 표시해 보니 공기가 나가는 방향과 힘이 걸리는 방향이 반대였다. 설계 검증을 누가 어떻게 잘못했는지 찾을 실마리가 나왔다. 모형이 완성되자 루카가 시험 삼아 손잡이를 돌렸다. 모형의 작은 문이 열렸다가 다시 닫혔다. 그는 꽤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러나 문을 세게 닫자 걸쇠가 떨어졌다. “아, 망가졌어요.” 루엔이 떨어진 걸쇠를 주웠다. “괜찮아요. 시험하려고 만든 거니까요. 망가지는 곳을 미리 찾은 것도 도움이 돼요.” 민규는 그 말에 웃었다. 마법학교에서 이런 교육을 더 많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패한 실험을 숨기지 않고, 무슨 부분이 약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면 학생들은 누군가의 생명을 담보로 교훈을 배울 필요가 없을 것이다. 루엔은 설계도의 오른쪽 아래에 새겨진 작은 별을 보았다. 하셀이 학생들에게 도면을 가르칠 때 꼭 그려 넣던 표식이었다. 별을 하나 그렸다면 적어도 비상 대피로 한 개는 남겨 두라는 뜻이었다. 루엔은 그 의미를 민규에게 설명하다 잠깐 눈을 감았다. 선생님이 잘못된 승인에 끝까지 저항하지 못한 이유를 이해하려 하면서도, 그 결과를 용서해야 하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민규는 그녀에게 판단을 재촉하지 않았다. 대신 도면에 그 별이 실제로 어디를 가리키는지 찾아 보자고 했다. 루엔은 자를 들어 별과 환기구의 중심을 이었다. 얇은 선은 지금 막힌 출입문이 아니라 지하의 작은 밸브실에 닿았다. 그들이 이제 가야 할 장소가 한 점 더 정확해졌다. 루엔은 오랫동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의 손으로 연필을 잡아 선을 다시 그었다. 미래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이라면 지금 그을 수 있었다. 일행은 루엔의 안내로 오래된 실습동으로 향했다. 원래 이 건물은 마력 펌프와 환기 시설을 다루는 교육장으로 쓰였다. 사고 후에는 학생 출입이 금지됐고, 운동장 쪽 창문은 판자로 막혀 있었다. 바르트가 녹슨 자물쇠를 열자 곰팡이와 철가루 냄새가 올라왔다. 바닥에는 거대한 원형 환기구가 있었고, 그 중심에서 세 갈래의 울림이 간헐적으로 들렸다. “종소리 같은데요.” 루카가 귀를 기울였다. “종이 아니야.” 바르트가 손바닥을 환기구에 댔다. “금속이 열에 팽창하면서 울리는 소리다. 셋째 소리 뒤엔 압력이 빠져야 하는데, 지금은 그대로 남아 있어.” 민규는 펌프의 압력계를 살폈다. 바늘 하나가 유난히 깨끗했다. 삼십 년 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계기와 달리 최근 교체된 물건이었다. 루엔이 가져온 자로 나사 간격을 재자 정규 부품과 일치하지 않았다. 누군가 장치를 최근에 손봤다. “누가 이런 곳에 들어왔을까요?” 셀레나가 물었다. “지금 들어온 사람부터 다 적어야겠죠.” 민규가 말했다. “나중에 우리 손자국을 침입 흔적으로 착각하지 않게요.” 그는 입실 명단을 적었고, 바르트가 비상 밸브를 열었다. 그러나 세 번째 울림은 멈추지 않았다. 밸브가 열렸는데도 공기가 빠져나가지 않는다는 건 반대편이 막혔다는 뜻이었다. 루엔은 순간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직 안쪽에 사람이 있어요.” 그녀는 실습동 지하에 작은 점검실이 있다고 설명했다. 원본실과 분리된 육체의 공간이었다. 서류의 날짜가 무엇이든 안쪽 사람에게는 실제로 숨 쉬어야 할 공기가 필요했다. 실습동의 배기통이 막히면 여덟 번째 피난동까지 연결된 호흡 통로도 닫힌다. “문부터 부수죠!” 루카가 몸을 일으켰다. “부수면 가스가 한 번에 역류해.” 바르트가 막았다. “어떻게 막혔는지 아직 모르잖아.” 민규는 계단 위에 임시 통제선을 만들었다. 셀레나가 기류를 표시했고, 에일라는 지하 점검실의 오래된 인원 명부를 찾아냈다. 그곳에는 ‘최근 확인자: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환기구 안쪽에서 세 번째 울림 뒤에 기침 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있어요.” 미라가 말했다. 민규는 환기구에 가까이 대고 말했다. “들리시면 두 번 두드려 주십시오.” 탁, 탁. “좋습니다. 움직이기 힘드시면 그대로 계세요. 공기를 먼저 확보하겠습니다.” 바르트는 손잡이식 보조 송풍기를 설치했다. 학생들이 돌리는 작은 기구였다. 한쪽에서는 루카가 땀을 흘리며 손잡이를 잡았고, 다른 쪽에서는 셀레나가 조심스럽게 압력 차를 줄였다. 루엔은 도면에 없는 관을 발견했다. 통로 끝이 사진 속 남자의 왼쪽 귀 자리와 같은 동그란 인장에 연결되어 있었다. “관찰자의 허가증으로 이 관을 잠가 놨군요.” 케스가 중얼거렸다. 민규는 지하에서 들리는 기침 소리가 줄어든 것을 확인했다. 환기구는 조금씩 살아났다. 그러나 관을 잠근 장치를 부수는 순간 피난동 전부에 신호가 갈 수 있다는 경고가 떴다. 그는 위험을 적고 장치의 작동 범위를 좁히기로 했다. 셀레나가 우회 회로를 만들고 바르트가 관 끝에 임시 마개를 끼웠다. 세 번째 울림이 멎었다. 곧 지하 점검실의 작은 문이 열렸다. 안에서 나온 사람은 어린 학생이 아니라 노년의 시설관리자였다. 그는 자신을 카일이라고 소개했다. 손과 옷에는 오래된 녹이 묻어 있었다. “나흘 동안 갇힌 줄 알았는데.” 카일이 햇빛을 보며 말했다. “밖은 몇 년이 지났습니까?” 그가 왼쪽 손목에서 벗긴 시계는 삼십 년 전 날짜를 가리키고 있었다. 민규는 정확한 시간이 다를 수 있음을 알리고 의료진에게 인계했다. 카일은 들것에 눕기 전 루엔의 자를 보더니 멍하니 웃었다. “하셀의 제자구나. 그러면 말해 줘. 여덟 번째 문에선 아직 종을 세 번 울리나?” “왜요?” 루엔이 되물었다. 카일은 입술을 떨며 대답했다. “그 소리를 세 번째 들은 사람은 기록상 이미 죽은 사람이 된다. 나도 오늘 내 사망 신고서를 받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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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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