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마법학교 야간 경비원의 정체 · 83화
PAYLUA ORIGINAL · 제83화

83화. 이름을 증명하는 방법

마법학교 야간 경비원의 정체 · 6,139자

오프라인 책장
아녜스의 얼굴이 사라지는 데는 숨 한 번 들이쉴 시간이면 충분했다. 세탁소 벽에 걸린 가족사진 속에서, 그녀가 서 있던 자리는 옷만 남은 사람처럼 보였다. 맞은편 학교 경비실에서 실시간으로 사진을 지켜보던 정민규는 아녜스에게 곧바로 연락했다. 아녜스는 아직 자기 이름을 말할 수 있었고, 세탁소 문도 열고 있었다. 하지만 손님 한 명이 그녀를 보고 낯선 사람이라며 소리를 질렀다. “아주머니, 무슨 일이에요? 여기 주인분은 어디 계세요?” “내가 주인인데?” “거짓말하지 마세요. 주인분은 얼굴이 달라요.” 민규는 수화기를 내려놓지 않았다. “아녜스 씨, 지금 가게 문을 잠그지 마세요. 다른 사람을 내보낼 필요는 없습니다. 안전한 곳에 앉으시고, 제가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그는 학교 경비대에 출동을 요청하면서도 체포나 구금을 지시하지 않았다. 사람의 얼굴에 생긴 이상 현상이 범죄의 증거는 아니었다. 셀레나와 미라가 함께 세탁소로 향했고, 케스는 총국의 표준 얼굴 확인 절차를 즉시 중단하도록 임시 통보를 보냈다. 에일라는 시민들의 증언을 정리했다. 아녜스가 오늘 아침까지 가게에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손님은 여럿이었다. 그런데 한 시간 뒤 그들 가운데 절반이 말을 바꿨다. 주인이 바뀐 건 오래전이라는 것이다. 아녜스가 매일 아침 가게 앞에서 우산을 터는 모습을 기억한다던 노인조차 ‘누군가 우산을 털었다’고만 했다. “사람들의 기억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얼굴을 기준으로 주인을 잘못 골라내고 있어요.” 셀레나가 말했다. “이 장치는 누군가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자신이 본 얼굴과 표준 얼굴을 일치시키려는 거예요.” 미라는 세탁소 장부의 가장 오래된 페이지를 펼쳤다. 아녜스가 수선한 옷마다 아주 작은 표시가 있었다. 허리춤의 꽃 무늬, 바짓단의 두 번 꿰맨 실, 아이 코트 안쪽의 삐뚤어진 별 모양. 옷을 맡긴 사람마다 그 표시를 기억하고 있었다. 미라는 손님에게 서둘러 얼굴을 떠올리라고 하지 않고 옷을 누가 고쳐 주었는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물었다. “그분은 제 아들 첫 교복 소매를 세 번이나 늘려 줬어요.” 한 여자가 말했다. “키가 자랄 때마다 다시 오라고 하셨죠.” “그 목소리 기억하세요?” “기억해요. 늘 마른 기침을 하셨는데, 끝에는 꼭 웃으셨어요.” 에일라는 그 증언을 적었다. 다른 손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아녜스는 얼굴 사진보다 더 많은 형태로 사람들 사이에 남아 있었다. 셀레나는 대조 마법을 멈추고, 사람이 직접 확인한 행동의 기록만 따로 모았다. 새로운 문서에는 [신원 보류]라는 낙인 대신 [지속적인 생활 관계 확인]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아녜스의 사진 속 얼굴이 조금씩 돌아왔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다. 표정이 흐릿했고 눈썹의 윤곽이 희미했다. 하지만 가게 주인은 처음으로 손님에게 자기 이름을 불릴 수 있었다. “미안해요, 아녜스 아주머니.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괜찮아요. 다음엔 내 수선표도 같이 봐 줘요.” 민규가 도착했을 때 아녜스는 자기 사진을 손에 들고 있었다. 한동안 거울을 보지 못했던 사람처럼 조심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녀는 아무도 지우지 않은 사진을 떨리는 손으로 민규에게 내밀었다. “이건 가져가요. 다만 내 이름까지 갖고 가지는 말고.” “원본은 여기 두세요.” 민규가 답했다. “복사본에 경위를 적겠습니다.” 케스는 본부가 보낸 회신을 보여 주었다. 표준 얼굴 검증의 오작동을 부정하는 문장이었다. [현장 보고자가 검증되지 않았으므로 보고 자체의 효력이 없음.] 민규는 웃지 않았다. 보고자가 오류라고 판정되니 오류 신고도 처리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절차가 사람을 보호하지 못하면 절차를 멈춰야죠.” “저도 이제 그 말에 동의합니다.” 케스가 말했다. “문제는 중단 권한이 본부 깊은 곳에 있다는 겁니다.” 아녜스의 얼굴을 되찾는 과정에서 가장 늦게 반응한 사람은 동네 우체부였다. 그는 매일 아침 그녀에게 편지를 배달했지만, 누구에게 보냈는지 묻자 몹시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봉투에는 분명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 주소에 사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면 종이가 머릿속에서 하얗게 변하는 것 같다고 했다. “제가 매일 문을 두드렸는데, 왜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까요?” 에일라는 우체부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가 직접 잘못 본 부분도 있었고 장치가 바꾼 부분도 있을 것이다. 대신 오늘 아침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 차근차근 물었다. 우체부는 아침에 비가 와서 오른발 양말이 젖었다는 것, 세탁소 문 앞에서 개가 짖었다는 것, 아녜스가 편지를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는 것을 말했다. “누가 편지를 받았는지 보셨군요.” 에일라가 말했다. “그건 분명해요. 그런데 지금 그분 얼굴을 떠올리려고 하면….” “얼굴을 떠올리는 것 말고, 편지를 받은 행동을 기억해 주세요.” 우체부는 조금씩 자기 말을 되찾았다. 편지를 건넬 때 늘 아녜스가 오른손을 내밀었다는 것도 떠올렸다. 그 손등에는 수선할 때 생긴 작은 상처가 있었다. 아녜스는 손을 보여 주고 웃었다. 상처는 아직 남아 있었다. 우체부는 그제야 자기가 매일 지나친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낯선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가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닦자 아녜스가 말했다. “당신도 그러고 보면 나한테 오랫동안 편지 한 통 안 보냈네요.” 우체부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제가 매일 배달하는데요.” “배달하러 온 거랑 편지 보낸 건 다르죠.” 작은 농담에 가게 안의 공기가 풀렸다. 그러나 민규는 주민들이 얼굴 사진만 믿도록 훈련받는 동안 얼마나 많은 오해가 생겼을지 생각했다. 사람을 알아보는 일이 편리해졌다고 해서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 쉬워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학교로 돌아가기 전 마을 회관에도 들렀다. 회관장은 주민들 사진이 붙은 대형 출입판을 가리켰다. 사고 이후 마을 사람들이 서로의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워지자 새로 만든 장치였다. 그러나 판의 왼쪽 아래에는 얼굴 없는 사람 사진이 몇 장씩 쌓여 있었다. 회관장은 사진을 떼어 버리기 어렵다며 한숨을 쉬었다. “없던 사람이라고 처리하자니 가족이 찾아오고, 남겨 두자니 명부가 계속 틀리니까요.” “여기서 누가 사람을 지우라고 요구했습니까?” 민규가 물었다. “총국에서 검사 나온 사람들이요. 정확한 사진이 없는 주민은 임시 주민으로 바꾸라고 했어요.” 셀레나는 임시 주민이라는 말이 표면적으로는 안전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출입과 식량 배급에서 차별을 낳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회관장은 이미 그런 일이 있었다고 했다. 가족사진이 지워진 노인이 며칠 동안 식량을 받지 못했으며, 그 때문에 이웃이 자기 배급을 나누어 주기도 했다. 민규는 그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우선 바꿀 수 있는 것을 찾았다. 회관의 출입판을 하루아침에 없애면 주민들이 더 불편해질 수 있었다. 그는 사진 옆에 본인의 말과 주민 증언을 적을 작은 카드를 붙이는 방식을 제안했다. 카드는 누가 작성했고 언제 확인했는지도 함께 적게 했다. 회관장은 망설였다. “얼굴이 바뀌면 카드도 바뀌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서로 다른 보관함에 복사해서 나눠 둡니다. 하나가 고장 나면 다른 걸 대조할 수 있도록요.” 먼저 노인의 명부를 수정했다.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가족 외에도 셋이나 있었다. 시장에서 채소를 사는 습관, 일요일마다 회관 의자를 고쳐 주는 일, 비가 오면 담벼락의 흙을 덮어 주는 일을 서로 다른 사람이 기억했다. 회관장은 그 설명을 듣고 명부의 오류 칸에 메모를 붙였다. [사진 판독 실패. 주민 생활 확인 완료. 배급과 출입 제한 금지.] 노인은 자기 이름이 다시 불린다는 걸 알고 한참 고개를 숙였다. 그는 감사 인사보다 먼저 회관 의자 다리가 조금 흔들린다고 알려 주었다. 민규는 그날 임시 점검표에 ‘회관 의자 수리’도 적었다. 이 작은 일을 빠뜨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큰 사건 속에서 사람들을 보호하는 방법일 수 있었다. 회관을 나서기 전 에일라는 주민 증언 서류를 복사했다. 이름을 지우려는 장치가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에게 남긴 끝없이 다양한 흔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흔적을 증명으로 사용할 때에도 당사자의 허락과 사생활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누구나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삶 전체를 공개해야 한다면 그것도 또 다른 폭력이 될 것이었다. 회관장은 새 카드를 붙인 뒤 주민들이 질문할 수 있는 작은 책상을 마련했다. 사진이 잘못 나왔다고 해서 곧바로 주민 자격을 잃게 하지 않고, 어떤 근거로 확인했는지 기록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처음 몇 사람은 불편하다고 했지만 그 가운데 가족이 지워진 경험을 한 여자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이제 이름을 모르는 담당자에게 무작정 사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민규는 책상 옆에 놓인 헐거운 의자를 고쳐 주었다. 아침부터 거대한 마법 장치를 연구하다 여기서 나사를 조이는 일이 우스워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앉아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자리 하나가 없다면 좋은 절차도 종이에만 남는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에일라는 현장의 바뀐 절차를 두 장으로 기록했다. 한 장은 마을에 남고 한 장은 학교 보관함으로 보내졌다. 어느 쪽에서도 상대방의 자료를 마음대로 삭제하지 못하도록 한 조치였다.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작은 비가 내렸다. 버스 정류장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교내 사고 소식이 마을을 덮은 이후에도 아이들은 수업을 가고 돌아왔다. 자기 이름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계속 살아간 사람들의 모습이 민규에게 오래 남았다. 그는 서둘러 범인을 찾겠다는 말 대신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다. 사진으로 신원을 확인하는 모든 출입 장치를 잠시 수동으로 돌리되, 사람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안내 인원을 배치해야 했다. 그날 오후 교직원 회의에서 의견이 갈렸다. 마법학부 교수 하나는 표준 얼굴 장치를 없애면 학교 보안이 무너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침입 사건을 들며 누군가 가짜 신분으로 들어오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 우려는 맞습니다.” 민규가 말했다. “하지만 지금 쓰는 장치는 가짜 얼굴을 잡지 못하고 진짜 사람을 지우고 있습니다. 고장 난 문으로 도둑을 막겠다고 하면 학생들이 못 나갑니다.” 교수는 한참 반박하다가 결국 물었다. “그럼 입구에서는 무엇으로 확인합니까?” “본인 진술, 출입 목적, 사전에 합의한 연락처, 동행자의 확인을 따로 기록하죠. 한 번 틀릴 수 있는 기준에 전부 맡기지 말고요.” 셀레나는 그의 제안이 마법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확인 과정을 여러 겹으로 만드는 것임을 설명했다. 교장 오르반도 공개적으로 임시 지침에 서명했다. 그는 과거에 확인하지 않은 감독관을 믿었던 자기 잘못을 숨기지 않았다. 저녁 무렵 학교의 사진 장치들은 모두 검은 천으로 덮였다. 학생들은 처음에는 신기해했지만 곧 익숙해졌다. 출입대장 앞에서 새로 이름을 쓰는 걸 귀찮아하는 학생도 있었다. 루카는 그런 학생들에게 농담을 던졌다. “사진에 예쁘게 나오려고 줄 서는 것보다 빨라. 네가 쓰는 이름이 너한테 더 잘 어울려.” 그사이 원본실 안의 아이는 바깥의 별과 종이배를 접고 있었다. 오늘 처음 자기 손으로 종이를 찢어 배를 작게 만들었다. 별이 물었다. “나중에 문 밖으로 나오면 무엇을 할래?” “비 오는 날 우산을 써 보고 싶어.” “우산 쓰면 바람 부는 날 힘들어. 그래도 재밌어.” 민규는 두 아이에게 사진의 얼굴이 바뀌는 현상을 보여 주지 않았다. 대신 누군가 자기 얼굴을 보고 다른 이름을 부른다면 어른에게 말해 달라고 했다. 별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내 얼굴인데, 그게 남의 물건은 아니잖아요.” “맞아.” 밤 열한 시, 수동 확인으로 바꾼 정문에서 뜻밖의 손님이 왔다. 흰 분필이 묻은 작업 장갑을 낀 젊은 여자였다. 그녀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중앙 피난동을 지은 사람의 제자입니다. 사라진 얼굴을 고치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민규는 출입대장을 밀어 주었다. “그럼 먼저 이름을 적어 주세요.” 여자는 펜을 집어 들고 한 글자를 적었다. 그러나 이름이 완성되기 전에 종이가 검게 그을렸다. 검은 부분을 손으로 가린 여자가 말했다. “그분은 이름 대신 구조물 안에 서명을 남겼어요. 마지막 서명이 여덟 번째 피난동에 있습니다.” 민규는 장갑에 묻은 분필이 세탁소 골목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하얀색임을 보았다. 문밖의 바람이 멈췄다. “당신이 어젯밤 담장 밖을 지나간 사람이군요.”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83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83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