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선 터널로 가는 길은 지도에서 두 번이나 방향이 달라졌다.
토마가 운전하는 작은 운송차는 강둑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앞자리에는 바르트가 앉았고 뒷자리에는 정민규와 케스, 셀레나가 나란히 앉았다. 정은희와 별은 학교에 남기로 했다. 별은 함께 가고 싶다고 했지만 장거리 이동을 견딜 수 있을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민규는 남으라고 명령하지 않고 출발할 사람과 남아 있을 사람의 위험을 설명했다. 별은 미라와 루카가 학교에서 자신과 점심을 먹기로 했다는 사실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오면 터널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려 줄게.” 민규가 말했다.
“제가 그릴 때는 기차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별이 대답했다.
자동차가 마을 끝을 지나자 길 양편의 집이 드문드문 떨어졌다. 가을비가 내린 뒤라 강물에는 잿빛 하늘이 비쳤다. 낡은 철로는 갈대 사이를 뚫고 물가로 이어졌다. 예전에는 사람과 물자를 나르던 길이었지만, 지금은 폐선이라는 글자가 적힌 나무판이 세워져 있었다. 판자 뒤쪽에는 최근 누군가 고쳐 박은 못 세 개가 반짝였다.
“누군가 계속 관리하고 있어요.” 바르트가 말했다.
“그래서 실제 사람이 있는지부터 보러 온 겁니다.” 민규가 대답했다.
터널 입구 앞에는 낡은 주택이 한 채 있었다. 지붕에서는 얇은 연기가 오르고, 창가에는 젖은 양말이 널려 있었다. 케스는 한 번 깊게 숨을 들이쉰 뒤 문을 두드렸다. 세 번 두드린 뒤 그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안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케스라고? 이제야 왔구먼.”
문을 연 사람은 백발의 여성 아녜스였다. 손가락 끝에는 바느질로 굳어진 살이 있고, 허리에는 등유 냄새가 밴 앞치마를 둘렀다. 그녀는 케스를 보고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오래 기다려서 지친 얼굴이었다.
“제가 누군지 아십니까?” 케스가 물었다.
“네 동생이 오빠를 찾고 있었으니까. 그때는 네가 어렸지만, 이젠 많이 컸구나.”
케스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아녜스는 그를 집 안으로 들인 뒤 따뜻한 차를 주었다. 케스는 손수건을 꺼냈지만 말을 잇지 못했다. 아녜스는 니아가 아직 터널 안에 있다고 단정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을 날짜순으로 이야기했다. 삼십 년 전 사고 뒤 폐선 터널의 출구 하나가 고장 났고, 그날 밤 아이의 노랫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이후 소리는 끊겼다가 몇 년에 한 번 돌아왔다. 지난주에는 종이 표 한 장이 문 아래에서 나왔다.
아녜스가 꺼낸 표에는 가격 대신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정시 통과권. 사용 시 하루 차감.]
“처음엔 승차권인 줄 알았지.” 노인이 말했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이 이걸 들고 터널에 들어갔다가 하루를 잊었다고 하더구나. 들어갔다 나온 건 분명한데 그날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대.”
“아직도 사람들이 사용합니까?” 민규가 물었다.
“사용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말리지. 하지만 때로는 돌려보내기 전에 표가 손에 들어가 버려.”
아녜스는 냄비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종이 승차권 여러 장이 있었다. 노인은 버려서 다른 사람이 주울까 봐 모아 두었다고 했다. 민규는 표를 바로 만지지 않았다. 우선 표가 보관된 시간을 확인했다. 어떤 종이는 십 년 전의 날짜를 갖고 있었고, 어떤 것은 오늘 아침의 날짜였다.
케스는 여동생이 생존했을 수 있다는 기대와 누군가 여전히 위험하다는 두려움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그는 차 한 모금을 마시지 못한 채 입술을 깨물었다. 민규는 그에게 지금 돌아가도 괜찮다고 말했다.
“여기까지 왔는데요?”
“계속 조사하려면 마음을 추스를 시간도 있어야죠.”
“아뇨. 갑시다. 다만 제가 모르는 걸 아는 척하며 앞장서진 않겠습니다.”
아녜스의 집을 나서기 전 민규는 거실의 오래된 벽시계와 작은 책상을 보았다. 책상 위에는 촘촘히 적힌 식료품 장부가 있었다. 몇 주에 한 번씩 토마가 물건을 배달한 날짜와, 같은 날 터널에서 울린 소리를 적은 기록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장부를 들여다보아도 되냐고 물었다. 아녜스가 허락하자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기간에도 꾸준히 적힌 날짜들이 눈에 들어왔다.
“왜 이렇게 오래 기록하셨어요?” 민규가 물었다.
“처음에는 내가 늙어서 잘못 듣는 줄 알았거든.” 아녜스가 대답했다. “우리 집은 철길 옆에 있어서 원래 소리가 많이 나. 기차가 끊긴 뒤에도 바퀴 소리가 들리니까 이상했지. 그러다 어떤 날은 노랫소리도 들었어. 젊은 사람한테 말하면 귀신 본 늙은이라고 할까 봐 그냥 적어 놨지.”
케스는 장부에 적힌 수십 년의 날짜를 따라갔다. 어떤 날에는 ‘두 번 울림’, 어떤 날에는 ‘방향이 다른 노래’, 어떤 날에는 ‘조용함’이라고 적혀 있었다. 니아가 살아 있었다면 노래한 날들이 있었을까. 그의 가슴이 저릿했지만, 이번에도 단정하지 않았다.
아녜스는 케스에게 또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십 년 전 어느 여름, 터널 앞을 지나던 아이가 출구를 찾지 못해 울고 있었다. 아녜스는 손을 잡고 밝은 길로 안내했다. 아이는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다만 ‘문을 열 때마다 다른 사람의 생일이 지워진다’고 말했다. 아녜스는 아이를 지역 보호소로 데려갔다. 얼마 뒤 연락이 끊겼지만 장부에는 당시 담당자의 이름이 남아 있었다.
“그 아이도 찾아보겠습니다.” 민규가 말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어딨는지, 지금 만나고 싶은지는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아녜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누구도 자신의 기록을 읽어 주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달라진 것 같았다. 케스는 다음 방문 전에는 반드시 먼저 연락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집을 나설 때 아녜스는 등유가 담긴 작은 병을 챙기라고 했지만, 민규는 위험한 터널에서 불을 피우지 않겠다고 설명했다. 노인은 잠시 웃더니 대신 마른 장갑 세 켤레를 건넸다. 세상에는 마법보다 장갑이 먼저 필요한 밤도 있었다.
그들은 아녜스가 허락한 곳까지 함께 걸었다. 터널 안은 서늘했다. 바닥에는 옛 철로의 자갈이 있었고 벽면에는 흰색 분필로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다. 화살표 옆 글씨는 누군가 여러 번 덧쓴 듯 두꺼웠다.
[이쪽으로 가면 어제로 돌아감.]
“이런 표시는 누가 붙였습니까?” 바르트가 물었다.
“원래는 대피로 표시였어.” 아녜스가 말했다. “그런데 사고 뒤 갑자기 방향이 바뀌었지.”
민규는 화살표를 따라가지 않았다. 그들은 터널의 실제 기울기를 먼저 확인했다. 바르트가 물을 조금 떨어뜨리자 물은 바깥쪽으로 흘렀다. 그러나 마법식 나침반은 안쪽을 내리막으로 표시했다. 기록과 현실이 어긋나는 현상은 학교에서 보았던 것과 같았다.
“여기에도 동기화 장치가 있네요.” 셀레나가 말했다.
터널 중간의 대피소에는 개찰구가 세워져 있었다. 누군가 임시로 만든 목재 구조물인데, 나무 표면에 새겨진 글자는 마법으로 깜박였다.
[통행료: 현재 시각에서 하루.]
케스는 허탈하게 웃었다. “사람이 길 하나 지나가려면 하루를 내야 합니까?”
개찰구가 대답하듯 삐걱거렸다. 문 옆에는 사용 완료 표가 가득 쌓여 있었다. 서기관이 가르쳐 준 기호로 읽어 보니 표마다 누군가의 휴식 시간, 생일, 집에 돌아간 날짜 같은 기록이 잘려 있었다. 개찰구는 사람의 돈이 아니라 시간을 거두는 장치였다.
“시간세군요.” 바르트가 말했다. “그걸로 중앙 원본 장치에 전력을 공급했겠지.”
민규는 입구에서 가져온 경로도와 현장 표시를 비교했다. 개찰구 오른편에는 낡은 비상 보행로가 있었다. 나무판으로 막혀 있었지만 판자 사이에 바람이 드나들었다. 그는 바르트에게 비상문 상태를 점검해 달라고 부탁했다. 바르트가 나사를 풀자 바깥으로 이어지는 좁은 통로가 드러났다. 통로는 위험했지만 완전히 막혀 있지는 않았다.
“통행료 없이도 다닐 수 있는 길이 있다는 뜻이네요.” 케스가 말했다.
“원래는 여기가 주 출구였을 겁니다. 유료 개찰구는 나중에 붙여 둔 것이고요.”
민규는 현장을 촬영하고 개찰구의 경고음을 기록했다. 부수고 싶었지만 안쪽에 누가 있는지도 모른 채 장치를 끊으면 사람을 가둘 수 있었다. 먼저 비상통로를 사용할 수 있게 보수해야 했다. 셀레나는 안쪽의 공기가 안전한지 확인했고, 바르트는 낡은 지지대에 임시 보강재를 달았다.
개찰구 옆 벽에는 작은 창문이 하나 있었다. 오래전에 유리로 막아 놓았지만 아랫부분에는 사람이 손을 뻗을 수 있을 만큼 작은 틈이 남아 있었다. 바르트는 창문을 부수지 않고 걸쇠 상태부터 확인했다. 걸쇠에 묻은 녹은 두꺼웠지만 누군가 최근 기름칠한 자국이 있었다.
“문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 건 아니겠군.” 바르트가 말했다.
민규는 얇은 종이를 접어 틈 아래로 밀어 넣었다. [밖에서 사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친 사람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두 번 두드려 주세요. 문을 열어도 되는지는 천천히 알려 주세요.] 그는 이름을 적지 않았다. 안쪽에서 어떤 이름을 강요받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곧 창문 너머에서 두 번의 두드림이 들렸다. 셀레나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민규는 아직 문이 안전한지 확인해야 했다. 창문 가장자리에는 오래된 대피 표시가 있었고, 그 위에 추가된 마법식 철자가 빛났다. [통행 허가를 받은 사람 외 접근 금지.]
“이게 원래 있던 표시일까요?” 민규가 물었다.
바르트가 도면과 비교했다. 원래는 ‘대피 시 누구나 이용 가능’이라고 적혀 있었다. 추가 마법이 이전 표시를 덮어 쓴 것이다. 그들은 과거 문구를 사진으로 기록한 뒤 개찰구의 연결선을 살폈다. 서둘러 복구하면 문이 닫힐 수도 있었다.
안쪽에서는 아이가 손가락으로 창문을 한 번 긁었다. 민규는 재촉하지 않았다. 종이를 똑바로 접은 채 다음 대답을 기다렸다. 안전하다는 확신은 큰 소리로 선언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가 언제 어떻게 움직일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생겨나는 것이었다.
그때 개찰구 안쪽에서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는 표가 없어서 못 와.”
케스가 무릎을 굽혔다. “니아, 나야. 케스야.”
“누구도 여기서 하루를 더 내면 안 돼.”
“내가 널 데리러 왔어.”
“안 돼. 먼저 표를 되돌려 줘.”
목소리는 벽 뒤에서 아주 희미하게 울렸다. 케스는 앞으로 달려가려다 멈췄다. 그가 아는 여동생의 목소리와 똑같았지만, 이곳에서는 기록이 사람을 흉내 낼 수도 있었다. 민규는 그를 막지 않고 옆에 섰다.
“니아라면 오빠에게 뭘 물을까요?” 민규가 속삭였다.
케스는 한참 생각하다 대답했다. “어릴 적 우리 집 고양이 이름이요. 그걸 맞히면 니아가 진짜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그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동생을 흉내 내는 누군가에게 사적인 기억을 알려 줄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최근 동생이 보낸 편지에서 확인 가능한 신호를 반복했다. 짧게 두 번, 길게 한 번, 다시 짧게 두 번. 미라와 루카가 쓰는 신호와는 다른, 남매만의 박자였다.
안쪽에서 같은 박자가 돌아왔다. 바로 뒤에는 울음에 젖은 숨소리가 들렸다. 케스는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억지로 부숴도 되는 문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알았다.
“니아. 우리가 비상통로부터 확인할게. 네가 밖으로 나오고 싶은지, 들어가도 되는지 알려 줘.”
한참 뒤 목소리가 대답했다. “나올 거야. 그런데 내가 나갈 때마다 다른 사람이 하루를 잃어.”
바르트가 개찰구의 뒷판을 살폈다. 통행료를 거두는 장치의 선이 터널 안쪽뿐 아니라 학교 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학교가 아침부터 평범하게 움직이던 동안, 누군가는 이곳에서 시간을 빼앗겼다. 민규는 그 연결을 표시하고 바로 총국과 학교 양쪽에 조사 요청을 보냈다.
터널 입구로 돌아오자 하늘은 이미 저녁이었다. 그런데 민규의 시계는 여전히 오후 두 시를 가리켰다. 그들이 안에서 보낸 시간은 두 시간 남짓이었지만 바깥에서는 다섯 시간이 지났다고 했다. 누군가 그들의 하루를 몰래 가져갔다는 뜻일까.
민규는 바로 날짜를 기록했다. 누구도 표를 쓰지 않았고 누구도 동의한 적 없었다. 이 시간 차이는 허락하지 않은 요금이었다.
아녜스는 집 문 앞에서 작은 봉투를 건넸다. 안에는 그녀가 오래전부터 모아 둔 표 중 처음 나온 한 장이 있었다. 다른 표와 달리 뒷면에는 어린아이의 글씨가 적혀 있었다.
[처음 시간을 낸 사람은 학교 경비원이 아니었다. 처음 계산서를 쓴 사람을 찾아라.]
그 아래에 낯익은 이름이 보였다.
[정민규. 설계 검증 완료.]
민규는 종이를 오래 바라보다 천천히 접었다. 본 적 없는 자기 이름이 또 다른 곳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명찰이 아니라 통행료 영수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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