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기는 학교 도면에 없었다. 그런데 민규는 그것을 본 적이 있는 것처럼 느꼈다. 삼십 년 전의 기억 때문이 아니었다. 새벽 순찰 때 지나간 벽 너머에서 쇠줄이 떨리는 소리를 몇 번 들었던 것이다. 그는 그냥 오래된 배관이 움직이는 줄 알았다.
“이제야 찾았네.” 바르트가 말했다. “늘 저 벽 안쪽에서 나는 진동이었어.”
복도 벽에는 회색 철문이 생겨 있었고, 위에 숫자 3이 떠 있었다. 호출 버튼은 두 개였다. 올라가는 버튼과 내려가는 버튼 사이에 작은 명찰 모양의 홈이 있었다. 홈 아래에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승강기 호출 자격: 미등록 인원.]
루카가 이를 읽고 코웃음을 쳤다. “또 이름 없는 사람한테만 시키려고요?”
“그렇지.” 민규는 버튼에 손을 대지 않았다. “미등록자가 이 문을 열면 또 다른 근무가 시작되겠군.”
케스가 낡은 회수 문서를 펼쳤다. 제3회수 통로는 원래 사고 당시 사람들이 빠져나올 수 있도록 만든 마지막 피난 경로였다. 그런데 지금의 문서에는 ‘미등록 인원 운반 전용’이라고 적혀 있었다. 마법학교가 구출 통로를 화물용 승강기로 분류해 버린 셈이다.
오르반은 학교의 강력한 해제 주문을 준비하려 했다. 셀레나가 막았다. 내부 공간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문을 부수면 승강기 안에 있는 사람이 다칠 수 있었다.
민규는 철문 아래를 살폈다. 바람이 새어 나오는 틈에 작은 종이가 끼어 있었다. 그는 긴 자를 이용해 종이를 조심스럽게 빼냈다.
[승강기 안에서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밖에서 눌러 주세요.]
글씨가 삐뚤빼뚤했다. 어린애의 필체 같았지만 종이에는 손때가 오래 묻어 있었다.
“안에 사람 있어요?” 민규가 문 쪽으로 외쳤다.
잠시 뒤 두 번의 두드림이 들렸다. 그 소리는 오래전 지하 통로에서 구출을 요청하던 사람들이 보낸 신호와 같았다. 민규는 두드림 사이의 간격을 수첩에 적고 대답했다.
“현재 위치 확인하고 있습니다. 밖에서 무리하게 열지 않겠습니다. 안쪽에서 다친 분 있으면 한 번, 없으면 두 번 두드려 주세요.”
두 번이 돌아왔다.
케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중앙은 지금까지 빈 통로라고 보고했습니다.”
“사람이 안에 있다는 사실부터 틀렸군요.”
바르트는 철문을 건드리지 않고 벽 옆의 기계실을 열었다. 한때 엘리베이터가 있던 자리에 연결된 안전 와이어가 아직 남아 있었다. 와이어는 엉뚱하게도 학교 종탑의 시계추와 이어져 있었다.
“이 문을 열면 종이 울리겠군.”
“종이 울리면 무슨 일이 나죠?”
“기록상 교대 시각이 시작될 테지. 그게 문제야.”
민규는 와이어에 손을 대기 전에 승강기의 내부 위치를 확인하고 싶었다. 셀레나가 투시 수정으로 안쪽을 비춰 보려 했으나 화면은 하얗게만 변했다. 기록망이 내부 인원을 미등록으로 처리해 조회 자체를 막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원래 사고 대피 경로였다면 왜 문을 밖에서만 열 수 있을까. 민규는 도면을 펼쳐 질문을 적었다. 단순한 기계적 결함이라면 수동 장치를 바꾸면 되겠지만, 자동 명령이 사람을 가두도록 바뀐 것이라면 더 근본적인 문제가 남아 있었다.
바르트는 오래된 축을 닦으며 말했다. “이 장치는 손잡이로 열리게 되어 있어. 그런데 손잡이를 누르면 출입 명부가 먼저 열려. 기계의 구조보다 마법문서가 앞서도록 바뀐 거지.”
셀레나는 바르트의 설명을 들으며 전송 주문을 분석했다. 그녀는 복잡한 마법진을 분필로 그렸다. 원래 주문은 ‘내부 안전 확인 후 개방’이었다. 수정된 주문은 ‘탑승자 명부 확인 후 개방’이었다. 사람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한 절차가 이름을 확인하기 위한 절차로 바뀐 것이다.
“이름을 알 수 없다면 영원히 문을 못 여는군요.” 미라가 말했다.
“그렇죠.” 셀레나가 답했다. “그리고 이름을 쓰면 기록망으로 인계됩니다. 나갈 수 있게 하는 척하면서 다른 문으로 보내 버리는 거예요.”
민규는 문 앞에 작은 접이식 의자를 놓았다. 안쪽 사람들과 긴 대화를 해야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무전기와 랜턴, 응급 상자, 안전줄을 준비했다. 도움을 요청한 사람에게 ‘잠시 기다리라’고만 말하지 않기 위해 진행 상황을 일정한 간격으로 알려 주기로 했다.
“지금 외부에서 문을 검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다시 세 번 두드리면 괜찮다는 표시로 두 번 대답해 주세요.”
안쪽에서 두 번의 두드림이 왔다.
루카는 문 옆에서 얼굴을 찌푸렸다. “아저씨는 언제나 세 번씩 확인해요?”
“위험할 때는 더 자주.”
“그러면 제가 여기서 확인 기록을 적을게요. 몇 시에 두드렸는지.”
“좋아. 다만 지치면 미라에게 넘기고 쉬어.”
루카는 수첩을 받았다. 첫 줄에는 ‘문 안에서 두 번 대답, 현재 생존 반응 있음’이라고 적었다. 두 번째 줄에는 자기가 누나에게 교대할 시간도 함께 썼다. 예전에는 혼자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 했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일을 넘겨도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우고 있었다.
케스는 복도에 전송 회선이 하나 더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제3회수 통로는 원본 유지과와 직접 연결돼 있었다. 그는 회선을 끊으려 했으나, 그 순간 승강기의 내부 등 하나가 꺼졌다. 회선을 끊으면 사람에게 필요한 환기와 조명까지 사라질 수 있었다.
“우리가 기계를 먼저 고쳐야겠군요.” 바르트가 말했다.
“맞아요.” 민규는 도면 위에 동그라미 두 개를 그렸다. “환기와 인계 명령을 분리합시다. 인계를 막기 위해 사람의 숨쉴 공기를 빼앗으면 안 됩니다.”
바르트는 아날로그 환풍기를 연결했고 셀레나는 회수 마법이 환기 장치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작은 차폐막을 설치했다. 작업은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맨손으로 부품을 조이던 바르트가 찰과상을 입자 나디아가 소독해 주었다. 그제야 민규는 누군가를 구조하는 일이 구조자 자신을 무시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생각했다.
“교대합시다.” 그는 바르트에게 말했다. “손 다쳤으면 쉬어야죠.”
바르트는 처음에는 고집을 부렸다. “아직 나사가 두 개 남았는데.”
“제가 하겠습니다. 규격을 알려 주세요.”
바르트가 공구를 넘기자 민규는 한참 서툴게 나사를 돌렸다. 마법학교에 와서 가장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오히려 마법 때문에 복잡해져 있었다. 바르트는 옆에서 지켜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경비원이 공구를 쓸 줄도 아는구먼.”
“한국에선 경비원이 이것저것 다 합니다.”
“그건 자랑할 일이 아닌데.”
“그러게요.”
둘은 짧게 웃었다. 복도 끝 시계가 아주 작게 한 칸 움직였다. 다른 사람에게 일을 넘겨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소리 같았다.
그들은 아예 방식부터 바꿨다. 바르트가 철문 아래에 얇은 거울을 넣었다. 작은 빛을 비추니 승강기 바닥에 놓인 신발 세 켤레가 보였다. 사람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안에 최소 세 명이 있다는 사실만은 확인할 수 있었다. 더구나 세 신발은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다. 하나는 문 쪽, 하나는 안쪽 벽, 마지막 하나는 구석을 향하고 있었다.
“세 명이 대기 중이고, 문 근처에 한 분이 있군요.” 민규가 말했다.
안쪽에서 누군가 목이 잠긴 소리로 말했다. “세 명 아니에요. 두 명하고… 하나가 더 있는데 그건 사람이 아니에요.”
미라는 루카의 손목을 잡았다. 겁이 난다는 이유로 복도에서 도망치게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아이가 위험한 소리를 계속 듣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작은 종이를 건네며 뒤쪽의 안전 구역으로 가 달라고 했다.
“싫어. 나도 돕고 싶어.”
“그럼 도와줘. 학생들이 이쪽으로 오지 않게 안내해 줘.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네가 먼저 선생님께 알려야 해.”
루카는 문 쪽을 한 번 더 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자기를 중요한 사람으로 대하는 것과 위험한 일에 아무 준비 없이 밀어 넣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을 배운 덕이었다.
루카는 계단 아래로 뛰어갔다. 조금 뒤 무전기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동쪽 복도 학생 이동 완료. 안전 구역 인원 확인 중.”
민규가 짧게 답했다. “확인. 잘했어.”
복도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루카가 무심코 뒤로 물러섰다. 민규는 당황하지 않고 물었다.
“그게 어떤 모양인지 설명할 수 있어요?”
“사람을 흉내 내요. 하지만 이름을 부르면 고개를 돌리지 않아요. 대신 여기 있던 사람이 없어져요.”
케스는 천천히 우산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본부의 회수 장치가 이미 통로 안에 들어와 있다는 뜻이었다. 그는 우산을 펼치지 않고 서류를 한 장 꺼냈다. 명령을 취소할 수 없더라도 부당한 사용을 기록할 수는 있었다.
“제가 문을 열도록 요청하겠습니다. 강제 인계는 중단된 상태라고 보고하죠.”
“거절할 겁니다.” 에일라가 말했다.
“알아요.” 케스는 사본을 민규에게 넘겼다. “그래도 정식으로 남겨야 합니다.”
민규는 그 사이 안쪽의 두 사람과 대화를 이어 갔다. 한 명은 노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중학생쯤 되는 소녀였다. 노인은 자신이 삼십 년 전 피난 중에 들어왔다고 했고, 소녀는 불과 한 시간 전 길을 잃었다고 말했다. 같은 통로 안에서 두 사람이 겪은 시간은 달랐다.
“우리는 여러분이 나오는 데 필요한 시간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혹시 창문이나 비상손잡이가 보입니까?”
소녀가 말했다. “문 옆에 손잡이가 있어요. 그런데 누르면 제 이름을 쓰라고 해요.”
“누르지 마세요. 다른 방법을 찾겠습니다.”
민규는 이 승강기를 부수지 않고 열 수 있는 구조를 찾아야 했다. 그는 하른에게 과거 경비원들이 사용하던 비상 해제 장치를 기억하는지 물었다. 하른은 한참 고개를 기울이더니 희미하게 웃었다.
“바닥에서 세 뼘 위에 작은 구멍이 있을 거요. 어린애들도 손이 닿는 높이지. 거기에 금속 핀을 꽂으면 문을 수동으로 잠깐 열 수 있어.”
구멍이 있었다. 바르트가 준비한 핀을 넣자 문이 손가락 두 개 정도 벌어졌다. 안쪽에서 서늘한 바람이 쏟아졌다. 민규는 틈으로 안전줄을 먼저 넣고 안쪽의 사람들이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한 분씩 나갑니다. 손잡이 잡지 마세요. 저희가 안내할 겁니다.”
노인의 발은 바닥에 닿자마자 휘청거렸다. 오랫동안 좁은 통로에서 서 있었던 탓에 무릎이 굳어 있었다. 미라와 나디아가 그를 받쳐 의자에 앉혔다. 그는 누군가 자기 이름을 물을까 봐 입술을 떨었지만, 아무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나디아는 먼저 호흡과 맥박을 확인하고 물을 건넸다.
소녀는 손에 작은 놋쇠 열쇠를 쥐고 있었다. 열쇠 손잡이는 오래되어 매끈했지만 끝부분은 최근에 깎은 것처럼 밝았다. 민규가 그것을 바라보자 소녀는 한 걸음 물러섰다.
“이건 안 줄 거예요.”
“괜찮아요. 당신 물건이면 당신이 가지고 계세요.”
“그런데 안에서 어떤 사람이 계속 내놓으라고 했어요. 그러면 집에 보내 주겠대요.”
“그래서 안 줬군요.”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잃어버리지 말라고 했거든요.”
민규는 놋쇠 열쇠의 모양을 눈으로만 확인하고 기록했다. 무언가를 빼앗으면서 안전을 약속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 더 중요했다. 소녀가 진정되자 미라가 따뜻한 차를 건넸다.
노인은 한참 뒤 입을 열었다. “저 안에 또 있습니다.”
“사람이 더 있습니까?” 민규가 물었다.
“모르겠소. 그건 사람처럼 생겼는데 사람의 말을 따라 할 뿐이오. 내가 밤새 말을 걸면 내 목소리로 대답했지.”
민규는 노인의 말을 적었다. 대상이 실제로 무엇인지 추정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 존재가 소리와 이름을 이용해 사람을 통제했다는 정황은 있었다.
“문을 닫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케스가 물었다.
“안쪽에 사람이 더 있는지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하지만 누구도 들어가면 안 돼요. 현재는 외부에서 관찰합시다.”
오르반은 복도에 임시 울타리를 설치했고 루카는 학생들을 다른 계단으로 안내했다. 한때 사람을 가두는 데 쓰였던 표지가 이번에는 위험한 통로에 접근하지 않도록 사람을 지키는 표지로 바뀌었다. 말은 비슷했지만 목적이 달랐다.
노인이 먼저 나왔고, 다음으로 소녀가 나왔다. 그들은 숨이 가빴지만 큰 부상은 없었다. 민규는 곧바로 문을 닫지 않았다. 안에는 ‘사람을 흉내 내는 것’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문틈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정민규의 목소리였다.
“교대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근무자에게 넘기세요.”
민규가 등골에 차가운 기운을 느꼈다. 소년과 어른의 목소리를 모두 닮은 소리였다. 그가 아무 답도 하지 않자 목소리가 다시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정민규 씨. 당신의 출근은 이미 접수됐습니다.”
문이 닫혔다. 철판에는 새로운 서명이 남았다.
[제3회수 통로 운용자: 정민규. 본인 확인 완료.]
서명에 사용된 글씨는 민규가 지금 쓰는 필체가 아니었다. 어릴 적 연습장에서도 본 적 없는 글씨였다. 누군가 세 번째 사람의 이름으로 문서를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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