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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법학교 야간 경비원의 정체 · 68화
PAYLUA ORIGINAL · 제68화

68화. 지워지지 않는 증언

마법학교 야간 경비원의 정체 · 6,061자

오프라인 책장
학교 강당에는 빈 의자가 많았다. 외부 기록보존총국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주최한 공개 증언회였기 때문이다. 누구든 말하고 싶으면 말할 수 있었고, 말하기 어렵다면 종이에 적어 상자에 넣을 수도 있었다. 민규는 강당 문에 ‘출입자 명단은 대피 목적 외 사용 금지’라는 공고를 붙였다. 오르반이 사회를 맡으려 했지만 린타 할머니가 손을 저었다. “교장 선생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말하면 또 학교 이야기만 되잖소. 오늘은 사람들 이야기를 먼저 듣자고.” 결국 마을 제분소의 바르트가 진행을 맡았다. 그는 사람들 앞에 서는 걸 몹시 싫어했지만, 마법 수정구보다 종이 장부가 믿을 만하다는 이유로 부탁을 받았다. 무대 위에 놓인 물통을 두 번 확인한 뒤 그는 짧게 말했다. “이름을 말하고 싶지 않은 분도 발언할 수 있습니다. 시간을 빼앗겼다는 걸 느낀 분은 자기 방식대로 이야기해 주세요.” 첫 발언자는 빵집 배달원 토마였다. 그는 빠진 열일곱 분 때문에 다섯 번째 배달을 하지 못했고, 주문한 할머니가 저녁을 굶을 뻔했다고 말했다. 둘째 발언자는 학교 식당의 베티였다. 그녀는 조리사로 일하는 자신과 보조 학생들이 쉬지도 못한 채 다른 날짜의 교대자로 등록되어 있었다고 했다. 세 번째 발언자는 루카였다. 교복 차림의 아이가 무대에 오르자 몇몇 어른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루카는 종이별을 들어 보였다. “저는 누나가 없어졌을 때 출석부에서 누나 이름이 지워진 걸 봤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누나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뻔했어요. 그런데 방에 가면 누나가 벗어 놓은 외투가 있었고, 제가 빌려 먹은 사탕 봉지도 있었어요. 그게 다 누나였어요. 출석부보다 먼저요.” 미라는 객석에서 고개를 숙였다. 루카가 말을 마치자 박수가 나왔다. 화려한 마법은 없었다. 아주 평범한 기억을 남의 앞에서 지키는 일이었다.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강당에는 서로 다른 감정이 쌓였다. 몇몇 주민은 왜 이런 일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는지 화를 냈다. 한 남자는 자기 아버지가 야간 수리 작업 후 돌아오지 않았다며 학교를 떠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사람은 학교에서 배운 학생들이 마을의 병을 치료해 준 적이 있다며 모든 것을 부정하면 안 된다고 했다. 바르트는 발언이 커지자 물통을 가볍게 두드렸다. “지금 여기서 누가 옳았는지 전부 결정할 수는 없소. 다만 서로가 겪은 일을 지우지 맙시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던 린타는 손을 들었다. 그녀는 삼십 년 전 어린 두 자녀를 키우며 제분소에서 일하던 시절을 이야기했다. 학교에서 늦은 밤까지 장비를 수리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날이 있었다. 그때는 급한 사고라니 기꺼이 도왔다. 하지만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니 다음 날이 되어 있었다. “모두가 나더러 늦잠 잤다고 했지. 사실은 집에 오는 길 열일곱 분이 없어졌던 거요. 그때부터 나는 시간표를 믿지 않았어.” 한 주민이 물었다. “그걸 이제 와서 증명할 수 있습니까?” 린타는 낡은 손수건을 꺼냈다. 끝자락에 바느질한 날짜가 적혀 있었다. 그녀는 시간표가 아니라 아이들 옷에 꿰매 놓은 날짜를 믿었다고 했다. 자녀가 아팠던 날과 처음 걸었던 날을 기억하고 싶어서였다. 그날의 날짜는 학교 장부에서 지워졌지만 손수건에는 남아 있었다. 셀레나는 손수건을 기록 장치 위에 놓았다. 실의 매듭 사이에 남아 있던 마법적 잔향이 약하게 반짝였다. 매우 미약해서 법정의 결정적 증거로 쓰기 어려웠지만, 적어도 린타가 그런 물건을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다. “증명되지 않으면 거짓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에일라가 말했다. “지금은 증언과 물증을 각각 모아서 서로 대조하는 과정입니다.” 또 다른 주민은 불편한 질문을 던졌다. “그동안 학교에서 일한 사람들도 책임이 있는 겁니까? 경비원도 기록을 봤다면서요.” 민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들이 그를 바라봤다. “저도 놓친 일이 있을 겁니다. 제가 언제 무엇을 확인했고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 근무일지를 공개하겠습니다. 다만 가족과 환자의 비밀은 보호해야 합니다.” “그러면 당신이 잘못했을 때도 밝힐 거요?” “그게 확인되면 밝혀야죠.” 민규는 잘못이 없다고 자신을 방어하지 않았다. 삼십 년의 사건이 복잡할수록 누구 한 사람의 선의만으로는 모든 피해를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날 기록을 맡은 에일라는 공개용 자료와 보호용 자료를 따로 나눴다. 공개용에는 사건 발생 시각과 재발 방지 조치가 적혔고, 보호용에는 당사자가 밝히길 원하지 않는 가족 관계와 신체 상태가 들어갔다. 열람을 요청할 때 당사자 동의를 확인하는 절차도 마련했다. 미라는 그 일을 돕다가 자신이 실종된 동안 쓴 공연 일지를 발견했다. 종이 한 장에는 배역을 맡았던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지만 다른 한 장에는 사람들이 무대 뒤에서 어떻게 서로를 도왔는지가 기록되어 있었다. 미라는 두 번째 장을 공개했다. “이름을 모두 외우지 않아도 기억나는 건 있어요. 제 옆에서 손을 잡아 준 사람이 있었다는 것. 제가 무서워할 때 괜찮다고 말해 준 사람이 있었다는 것. 그분들을 다시 찾고 싶어요.” 루카는 누나에게 작은 물컵을 건넸다. 미라가 물을 마시자 강당의 누군가가 조용히 훌쩍였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자리에서 누군가의 말이 누군가에게 닿는 순간이었다. 잠시 뒤, 강당 뒷문에 기대 서 있던 데로스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중앙의 젊은 집행관이었다. 주민들이 불편한 표정을 짓자 그는 우산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저도 증언하겠습니다. 저는 문서의 내용을 확인하지 않은 채 인계를 집행하려 했습니다. 제 행동이 누군가의 자유를 빼앗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명령을 핑계로 했습니다.” 데로스는 목이 잠긴 채 말을 이어 갔다. “본부가 정해 준 절차를 따르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제가 본 것을 직접 기록하려 합니다.” 케스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봤다. 누군가 잘못된 조직에서 돌아오는 과정은 거창한 탈출이 아니라 이렇게 한 문장을 자기 목소리로 말하는 일일 수도 있었다. 케스의 순서가 되자 강당은 조용해졌다. 중앙의 검증관이 자기 기관을 상대로 증언한다는 것은 이곳 사람들에게도 낯선 일이었다. “저는 기록이 사람을 지킨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기록은 사람을 찾는 도구여야 합니다.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사람을 제거하는 장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는 동생의 실종을 짧게 말했다. 이름과 날짜는 본인의 허락 없이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기록에서 여덟 번째 별이 지워졌던 날, 가족들이 겪은 일을 설명했다. 그때 그는 서류에 적힌 ‘이의 제기 기간 만료’라는 문장을 믿었다. 실제로는 그 기간이 시작된 적도 없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청중 사이에서 낮은 탄식이 흘렀다. 정은희는 마지막 순서에 가까워서야 일어났다. 나디아가 곁에서 부축했지만 은희는 강단까지는 혼자 걸었다. 삼십 년 동안 목소리를 잃을까 봐 두려워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마이크 앞에서 처음 꺼낸 말은 과거의 비밀이 아니었다. “제가 돌아온 뒤 제일 먼저 먹고 싶었던 건 따뜻한 밥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뜻밖이라는 듯 바라봤다. 은희가 미소 지었다. “종이에는 제가 오랫동안 일했다고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 저는 밥을 먹을 시간도 쉬는 시간도 잃어버렸어요. 저를 보고 ‘다 끝난 것 아니냐’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런데 밖에 나온 사람은 앞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지워진 시간을 돌아오게 하는 것뿐 아니라 지금의 시간을 지켜 주는 게 필요합니다.” 은희는 두 아이에 대해 말했다. 하나는 어른이 되어 자신을 찾았고, 하나는 아직 열 살 얼굴을 하고 세상이 어떤 곳인지 배우고 있었다. 사람들이 둘을 한 사람의 복사본으로 부를까 봐 걱정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날 사람들 앞에서는 구별되는 두 존재로 말하기로 했다고 했다. “저는 두 아이가 모두 안전하길 바랍니다. 그것이 어머니로서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말입니다.” 은희의 목소리는 마지막에 떨렸다. 민규는 객석에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어머니가 자신을 알아보는지 두려워했던 지난밤보다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서기관은 강단에 올라 자기 명령을 읽었다. 처음에는 오래전 자동 문구가 입에서 나왔다. “미등록 물품 이동 금지.” 그는 숨을 멈췄다. 몇몇 사람들이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하른이 뒤쪽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문장은 제가 사람을 가두는 데 사용한 명령입니다. 원문은 ‘사람 발견. 통로 확인 요청’이었습니다. 저는 두 문장이 다른 뜻임을 이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제가 한 일을 기록할 수 있도록 증언합니다.” 그의 손이 떨렸다. 사람들이 박수치지는 않았다. 대신 에일라가 증언서를 받아 적었다. 잘못을 인정하는 말은 시작이지 끝이 아니었다. 공개 증언회가 끝난 뒤 에일라는 주민들에게 자기 증언을 다시 읽어 볼 시간을 주었다. 너무 긴장해서 다르게 말한 부분이 있거나, 공개를 원하지 않는 내용이 있다면 수정할 수 있게 했다. 몇몇 사람은 자신의 글을 그대로 두었고, 어떤 사람은 가족의 이름을 지웠다. 증언을 지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공개 범위를 정한 것이다. 루카는 자기 증언에서 한 문장을 고쳤다. ‘누나는 언제나 나를 지켜 줬다’라는 문장을 ‘누나는 내 곁에 있으려고 노력했다’로 바꿨다. 미라가 이유를 묻자 루카는 머뭇거렸다. “누나도 힘든 날이 있었는데 제가 몰랐어요. 꼭 항상 그래야 하는 사람처럼 써 놓은 것 같아서요.” 미라는 동생의 머리를 헝클었다. “그렇게 생각해 줬으면 됐다. 나도 항상 멋진 누나일 필요는 없으니까.” 한편 케스는 증언을 별도의 금고 세 곳에 보관할 계획을 세웠다. 마을 회관, 학교 기록실, 외부의 독립 조사위원에게 각각 한 부씩 맡기는 방식이었다. 한곳에서 소거 명령이 내려오더라도 나머지 기록과 대조해 복구할 수 있게 하려는 계획이었다. “사본이 다 같다는 걸 어떻게 확인합니까?” 바르트가 물었다. 에일라는 페이지의 모서리에 각기 다른 작은 구멍을 뚫고 번호를 매겼다. 사본마다 같은 구멍 수와 페이지 배열을 갖게 했다. 마법이 아닌 물리적인 검증 방식이었다. 케스는 중앙에서도 사용하는 진위 확인 주문을 추가하되, 주문이 실패하더라도 종이가 남도록 했다. 민규는 각 보관 장소의 출입구와 창문을 확인했다. 외부 금고를 지키려다 안쪽에 사람을 가두는 일이 없도록 피난 경로도 마련했다. 누군가 ‘문을 닫아야 안전하다’고 말하면 이제 모두가 먼저 ‘안에 누가 있는가’를 묻게 되었다. 증언회를 마치고 나오던 린타는 경비실 앞에서 정은희에게 작은 봉투를 건넸다. 그 안에는 삼십 년 전 함께 먹기로 했던 빵집의 오래된 할인권이 들어 있었다. “이제는 쓸 수 없겠지?” 은희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새로 사 먹으면 되지.” 두 사람은 다음 주에 함께 빵을 먹기로 했다. 민규는 그 약속이 지켜질 수 있도록 누구의 시간도 자동으로 가져가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건의 진상을 찾는 일은 과거를 위해서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 미래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다. 강당 바깥에는 중앙 집행관들이 와 있었다. 그들은 회의장을 폐쇄할 권한이 있다는 통지서를 내밀었다. 오르반은 대응할 준비를 했지만 민규는 먼저 복도 양쪽의 대피문이 열려 있는지 확인했다. 증언회가 또 하나의 감금 현장이 되어서는 안 됐다. 집행관들은 강당 안에서 형성된 작은 빛을 보고 멈췄다. 무대 위의 종이 서류가 아니라, 청중이 서로의 말을 들으며 만들어 낸 기억이 천장에 희미한 선으로 이어져 있었다. 한 사람이 지워져도 다른 사람이 기억하는 연결이었다. 셀레나가 말했다. “분산 증언이군요. 기록망의 단일 원본을 거치지 않으니까 지우기 어렵습니다.” 민규는 청중을 바라봤다. 장치에 대항하려고 일부러 마법을 쓴 사람이 없었다. 모두 자기 경험을 잊지 않으려고 말했을 뿐이었다. 서기관의 출입장부에 새 항목이 생겼다. [수정 명령 접수 실패. 현장 독립 증언망 확인.] 그 아래에 검은 도장이 찍혔다. [원본 유지과 직접 개입 승인. 제3회수 통로 가동.] 케스가 강당 뒤쪽 문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문 밖에는 이미 없던 승강기의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복도 벽이 조금씩 벌어졌고, 학생들이 쓰지 않는 오래된 엘리베이터 번호가 나타났다. 3. 민규는 강단을 내려오며 나직이 말했다. “저 통로는 우리가 쓰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누가 이쪽으로 올라오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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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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