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을 삼십 분 앞둔 시각, 학교와 마을의 모든 수동 시계가 같은 때를 가리켰다. 전날 밤 소년의 방을 향해 기어오던 하얀 눈금은 창틀 아래에서 멈춰 있었다. 주민들이 외부 명령으로 자동 배정된 작업을 중단하고, 필요한 일은 서로 동의를 확인하며 나누자 회수 장치가 가져갈 시간을 충분히 찾지 못한 것이다.
케스의 손에 본부의 짧은 통지가 도착했다.
[원천 시간 확보 실패. 예비 회수 절차로 전환. 현장 잔여 시간: 48시간.]
“완전히 멈춘 건 아니네요.” 루카가 말했다.
“맞아. 오늘은 한 번 막았어.” 민규는 눈금 끝에 날짜를 적었다. “마흔여덟 시간이 남았으면 그 안에 명령을 내리는 곳과 그 명령이 잘못된 이유를 찾아야 해.”
사람들은 자축하지 않았다. 다만 긴 밤 끝에 뜨는 햇빛을 잠깐 바라봤다. 소년은 살아 있었고, 마을의 길에는 사람들이 다시 걷고 있었다. 다음 명령이 오기 전에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는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서기관은 자기 손으로 기록을 쓸 때마다 손가락이 조금씩 닳았다. 잉크가 흐려져 관절 사이가 투명하게 보이는 날이면 그는 오래된 책장을 만지지 못했다. 하른은 그런 손을 숨기려는 서기관에게 낡은 장갑을 내밀었다.
“써 보시오. 가끔 손이 없어질 것 같을 때는 장갑이 도움이 되더군.”
“당신은 왜 저를 돕는 겁니까?”
“나를 붙잡아 두는 장부를 쓴 놈이 누군지 아직 따져야 하니까.”
하른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서기관은 장갑을 받아 들었다. 둘은 화해하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복도를 천천히 걸을 수는 있었다.
그들이 향한 곳은 처음 기록 명령이 만들어진 동쪽 제7교실이었다. 복구가 끝난 교실은 이제 임시 조사실로 쓰였다. 벽에는 소거된 글자의 윤곽이 남았고, 바닥에 놓인 분필 자국은 아무도 지우지 않았다. 민규는 이 방에 더 이상 아이들이 갇히지 않도록 문을 열어 두었다.
에일라가 첫 보고서를 펼쳤다. 삼십 년 전 작성된 통역 기록은 ‘사람 발견, 통로 확인 요청’이었다. 그러나 서기관의 자동 명령은 ‘미등록 물품 이동 금지’로 바뀌었다. 단어가 조금 잘못된 수준이 아니었다. 행동이 정반대였다.
“왜 이렇게 바뀌었죠?” 에일라가 물었다.
“저는 원래 통로를 안내하는 서류 조정 장치였습니다.” 서기관이 말했다. “긴급 대피 때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제가 기록을 빠르게 정리해야 했죠. 그런데 누군가 정리 속도를 높이기 위해 애매한 문장을 모두 제한 명령으로 처리하라고 했습니다.”
“사람도 애매한 문장으로 분류했군요.”
“예.”
서기관은 처음으로 짧게 대답했다. 변명할 말이 없었다.
서기관의 진술이 시작되기 전에 에일라는 삼십 년 전의 음성 기록을 틀었다. 낡은 은색 실린더에서 나오는 소리는 거칠었다. 사람들의 비명과 발자국 소리, 금속문이 내려오는 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여성의 목소리 한 줄이 유독 분명했다.
‘사람이 있습니다. 통로를 확인해 주세요. 이름은 나중에 적으면 됩니다.’
정은희의 목소리였다. 루카가 숨을 멈췄다. 교실에 있던 모두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어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하면 출입 명부가 맞지 않습니다.’
이 대답은 오르반의 것이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삼십 년 전 자신이 급히 열려 있던 문을 닫으라고 지시했던 장면이 다시 돌아왔다. 문제를 없애기 위해 사람이 없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지 못했던 날이었다.
실린더는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다. ‘명부를 고쳐야지, 사람을 고칠 순 없잖아요!’ 은희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소리가 끊기며 그 문장은 거꾸로 반복되었다. 서기관의 기계음이 이어졌다.
[미등록 개체는 통로 이동을 금지합니다.]
“여기입니다.” 에일라가 재생을 멈췄다. “원문과 자동 명령 사이에 바로 이 변환이 일어났어요.”
셀레나는 변환 당시의 언어 규칙을 펼쳤다. 긴급 상황에서는 애매한 기록을 보류하라는 규칙이 아니라, 애매한 기록을 가장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라는 규칙이 적용되었다. 단 한 줄의 상위 지시였다.
“출입 인원을 모른다는 것이 곧 미등록 물품이라는 말이 된 거죠.”
서기관은 시선을 내렸다. “저는 잘못됐다는 경고를 세 번 받았습니다. 첫 번째는 은희 씨의 목소리였고, 두 번째는 하른 씨가 보낸 교대 중지 신호였죠. 세 번째는 제가 직접 확인한 문 앞의 발자국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장부가 허용하지 않는 정보를 무시했습니다.”
하른의 얼굴이 굳었다. “내가 교대 중지를 요청했었소?”
“예. 그런데 저는 당신이 정식 당직자로 등록되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하른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기억을 잃고도 몸에 남은 습관으로 계속 문을 지켰다. 장갑을 껴도 사라지지 않던 손바닥의 작은 흉터는, 그날 문을 억지로 열려다 다친 흔적이었다.
“나도 그냥 나가려고 했던 게 아니었군.” 하른이 중얼거렸다. “그 문 너머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려 했던 거야.”
서기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시도한 일을 제가 막았습니다.”
“그 말만 들으려고 여기 온 건 아니오. 왜 그랬는지도 알아야 하니까.”
에일라는 더 오래된 도면을 가져왔다. 거기에는 초보 기록 장치와 수동 확인대가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원래는 자동 판단이 오류를 일으키면 사람이 직접 확인하고 수정할 수 있도록 설계된 구조였다. 그런데 사고가 난 해에 수동 확인대가 제거되었다. 도면 가장자리에는 ‘처리량 향상을 위한 간소화’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사람이 판단해야 할 일을 없애 버린 거예요.” 민규가 말했다.
“시간을 줄이려고요.” 셀레나가 답했다.
“결국 삼십 년을 잃었군요.”
교실은 조용해졌다. 당시 공사 비용이 부족했고 학교는 외부 압박을 받았다. 그러나 그 사정은 잘못된 선택을 설명할 뿐 정당화하지 않았다. 민규는 수동 확인대를 복구할 수 있는지 바르트에게 물었다.
“도면이 남아 있으면 가능하겠지. 다만 실제 문에 붙이려면 지금의 회수 장치가 방해할 거야.”
“그럼 이번에는 두 개를 함께 준비합시다. 증언도 남기고, 실제 문을 수리할 방법도 만들고요.”
하른은 서기관의 장갑을 잠깐 바라봤다. “내가 그때 문을 못 열었더라도 지금은 열 수 있겠지?”
“혼자 하실 필요는 없어요.” 민규가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서기관은 처음으로 자기 책상에서 내려와 사람들 사이에 섰다. 바닥에서 그의 그림자는 여전히 글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림자의 끝은 사람의 발자국과 같은 방향을 향했다.
민규는 그가 지운 이름들 가운데 일부를 이미 복원했음을 알고 있었다. 회복을 위한 노력은 사실이지만 과거에 사람이 사라진 책임도 사실이었다. 그는 기록을 정확히 남기자고 했다. 가장 아픈 문장까지.
그때 교실 칠판에 오래된 마법문서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비상대피 교육 자료처럼 보였다. 그러나 문서 아래쪽에서 보이지 않던 주석 하나가 올라왔다.
[이용자가 동의하지 않는 경우에도, 이관 담당자는 안전을 이유로 작업을 수행할 수 있음.]
셀레나가 즉시 주석을 가리켰다. “원본 문서에는 없는 문장입니다.”
에일라가 확대하자 주석의 서체만 시대가 달랐다. 사고 당시 쓰던 잉크가 아니었다. 불과 십이 년 전부터 중앙 기록보존총국이 사용하기 시작한 표준 서체였다.
“삼십 년 전 문제가 저절로 남은 게 아니군요.” 민규가 말했다. “지금도 누군가 계속 고치고 있어요.”
서기관은 문서 끝에 찍힌 서명을 보더니 뒷걸음질쳤다. 종이에는 사람 이름 대신 세 개의 작은 국화가 겹쳐 있었다. 오래된 국화 문양의 가운데가 비어 있었고, 그 빈자리에서 숫자가 빛났다.
[중앙 원본 유지과. 승인번호 0.]
케스는 그 부서 이름을 듣고 얼굴이 굳었다. “원본 유지과는 외부 문서에는 존재하지 않는 부서입니다. 저도 감사관이 된 뒤 한 번밖에 보지 못했어요.”
“누가 거기서 일합니까?”
“서류로 확인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민규는 피식 웃었다. “이 정도면 이름 없는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데에도 이유가 있겠네요. 자기들부터 이름이 없으니까.”
아무도 웃지 못했지만, 짧은 농담 덕에 교실의 긴장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들은 서기관의 첫 번째 명령을 재현했다. 문서 원본과 수정본을 나란히 놓고, 각 기록이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 작은 구역에서 확인했다. 두 문장 모두 ‘안전’이라는 단어를 갖고 있었지만, 원본이 사람에게 통로를 안내하는 동안 수정본은 문을 닫았다. 한 문장 차이가 세상의 구조를 바꿔 놓았다.
민규는 단순히 원본으로 되돌리는 실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사라진 사람들을 돌아오게 하려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밝히는 공적인 절차도 필요했다.
“서기관 씨, 할 수 있겠어요?”
“무엇을 말입니까?”
“당신이 직접 읽었던 명령을, 당신 목소리로 증언하는 거요.”
서기관은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는 많은 사람을 기록에서 삭제했었다. 그 사실을 듣는 사람들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알고 있었다.
“저를 처분하면 될 텐데요.”
“그럴지 아닐지는 사람들이 판단해야 합니다. 하지만 없어져 버리면 당신만 아는 경로도 같이 사라져요.”
서기관은 하른을 바라봤다. 하른은 접힌 장갑의 주름을 바로 펴 주었다.
“도망가지 말고 말하시오. 그게 내가 받고 싶은 인계야.”
서기관은 증언서를 쓰기 시작했다. 잉크가 손끝에서 떨어질 때마다 책상 위에 낡은 시간표가 하나씩 떠올랐다. 거기에는 구출되지 않은 사람들의 근무 시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교실 뒤쪽에서는 오르반이 혼자 오래된 사진을 살펴보고 있었다. 사진에는 삼십 년 전 제7교실에서 열린 작은 회의의 참석자들이 찍혀 있었다. 그는 자신과 은희, 기술자 두 명, 그리고 얼굴이 흐려진 인물 하나를 알아봤다. 인물은 맨 뒤에 서 있어 몸의 절반이 창문에 가려져 있었다.
“저 사람을 기억하십니까?” 민규가 물었다.
“학교 설계 자문관이라고 소개받았지. 그런데 이름이 생각나질 않아.”
“사고 전에도 회의에 참여했습니까?”
“그렇네. 역일 관리 장치를 설치하기 전날, 그 사람이 안전 검증을 통과했다고 말했어.”
민규는 사진을 자세히 살폈다. 흐릿한 인물의 가슴에는 명찰이 달려 있었고, 손목에는 오래된 태엽시계가 있었다. 명찰의 글씨는 잉크가 아니라 유리 조각처럼 반짝였다. 확대 마법을 쓰자 사진의 잉크가 도망가듯 흐려졌다.
“원본을 손상시키지 맙시다.” 민규가 말했다.
에일라는 사진의 그림자 길이와 창문에 비친 손목시계 위치를 수작업으로 비교했다. 사진 속 인물은 실제 햇빛의 방향과 다른 곳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 사람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현장 사진에 나중에 끼워졌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시간을 거슬러 기록을 남기는 존재라면?” 셀레나가 말했다.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지금은 사진이 변조되었을 가능성부터 적어 두겠습니다.” 민규가 답했다.
오르반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가 사고의 책임을 인정하기까지 삼십 년이 걸렸는데, 이제 사고를 설계한 사람의 신원마저 불분명해졌다. 그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처음으로 실감했다.
“내가 교장 자리를 계속 지켜도 되겠나.”
“그건 학교 구성원들이 결정할 일입니다.” 민규가 답했다. “하지만 지금은 교장님이 아는 것을 숨기지 않는 게 더 중요할 겁니다.”
사진을 보관하는 동안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다. 유리 명찰로 추정되는 작은 빛이 사진 가장자리로 새어 나온 것이다. 셀레나는 종이를 만지지 말라고 했고, 에일라는 투명한 덮개를 씌웠다. 빛은 덮개 안에서 시계바늘처럼 천천히 돌다가 멈췄다.
“누군가 사진이 조사 증거가 된 것을 알아챘을까요?” 오르반이 물었다.
“가능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빛이 반응한 사실만 확인됐어요.” 민규가 답했다.
그들은 독립된 시계 세 개로 시간을 재며 현상을 촬영했다. 놀랍게도 유리 빛이 돌 때마다 한 시계만 거꾸로 움직였다. 그 시계는 삼십 년 전 학교 설비에 들어 있던 부품으로 만든 것이었다. 반면 바르트의 기계식 시계와 민규가 가져온 전지 시계는 정상적으로 움직였다.
“원래 장치에 속한 시간만 조정할 수 있군요.” 셀레나가 말했다.
그 차이는 중요했다. 중앙의 기록망이 세상 모든 시간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었다. 영향받는 장치와 그렇지 않은 장치가 있었다. 민규는 안전 구역에 독립 시계를 더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바르트는 공구 가방을 들며 말했다. “이번엔 돈을 제대로 주겠지?”
오르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한 만큼 지급하고, 쉬는 시간도 보장하겠네.”
“이제야 좀 배운 것 같군.”
바르트가 웃었지만 교장은 웃지 못했다. 그 말은 너무 늦게 도착한 칭찬이었다.
오르반은 사진을 조사 증거에 제출했다. 자기 서명이 들어간 과거 회의록도 함께 냈다. 변명을 내려놓고 한 장씩 제출하는 과정은 느렸다. 그래도 실제로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었다.
그날 조사실의 임시 게시판에는 세 문구가 나란히 붙었다. ‘정은희의 원문’, ‘서기관의 잘못된 명령’, ‘확인되지 않은 자문관의 사진’. 사람들은 어떤 것이 사실이고 어떤 것이 의혹인지 구분할 수 있었다. 진실을 찾는 데에는 빠른 결론보다 분명한 구분이 필요했다.
그때 한 장의 시간표가 소년이 있는 방으로 날아갔다. 에일라가 쫓아가려 하자 소년이 먼저 그것을 집어 들었다. 적힌 문구는 이상했다.
[근무자: 정민규. 근무 장소: 내일의 학교. 출근 예정: 오늘 일출.]
소년이 종이를 읽었다. “저, 여기서 나가면 또 일해야 해요?”
민규는 소년의 옆에 섰다. “아니. 허락하지 않았잖아.”
그는 말뿐인 약속이 되지 않도록 시간표를 공적인 조사 증거에 포함했다. 아이에게 온 미래의 명령도 증거가 될 수 있었다. 그 밤, 동쪽 제7교실의 모든 벽이 흰색으로 바뀌었다. 지워져서가 아니라, 누군가 지운 자리에 새 증언을 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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