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희는 종이별을 접는 법을 잊지 않았다. 그녀의 손끝은 예전보다 느렸지만 종이를 한 번 반듯하게 접고 모서리를 맞추는 버릇은 그대로였다. 병실 침대 곁에서 소년은 그 손을 따라 했다. 세 번 접고 나면 삼각형이 되고, 두 번 접으면 작은 주머니가 되는 아주 단순한 방법이었다.
“이거, 옛날에 저한테 가르쳐 주셨어요?”
은희는 고개를 들었다. 질문은 소년이 아니라 어른이 된 아들에게도 닿아 있었다. 민규는 침대 끝에 앉아 조용히 기다렸다.
“열 살 때 가르쳐 줬지. 너한테.”
“어느 저요?” 소년이 물었다.
은희는 대답 대신 두 장의 종이를 꺼내 각자에게 한 장씩 건넸다. “일단 둘 다 만들어 봐.”
민규는 어릴 적 순서가 기억나지 않아 종이를 몇 번 거꾸로 접었다. 소년은 금방 만들었다. 별 두 개가 병실 창가에 놓였다. 민규의 것은 한쪽이 조금 찌그러졌고 소년의 것은 지나치게 반듯했다.
“보렴.” 은희가 말했다. “같은 방법을 배워도 이렇게 달라.”
소년은 두 별을 번갈아 쥐었다. “그러면 저도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은희는 망설였다. 진실을 아는 척 쉽게 약속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운 사람이었다. “네가 원한다면 부를 수 있어. 다만 내가 모르는 네 이야기도 분명히 있을 거야. 그건 네가 가르쳐 줘야 해.”
소년은 고개를 숙였다. 민규는 침대의 맞은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머니가 삼십 년간 느꼈을 두려움과 기다림은 자신이 알 수 없는 깊이였다. 그 세월을 대신 설명해 달라고 요구하는 건 또 다른 일을 떠넘기는 것 같았다.
그때 병실 문이 열리고 나디아가 들어왔다. 그녀는 은희의 혈압을 확인한 뒤 민규를 복도로 불렀다.
“진료 결과가 나왔어요. 어머니는 당분간 깊은 기록 마법에 노출되면 안 됩니다. 아이도 마찬가지고요.”
“몸이 어떤 상태입니까?”
“아이의 몸은 분명 자라고 있어요. 어제보다 손가락 길이가 아주 조금 달라졌어요. 하지만 마법적 나이를 측정하는 수정에는 계속 ‘대기 중’이라고만 나타납니다. 앞으로 어떤 영향을 받을지는 저도 몰라요.”
“지금 할 수 있는 일은요?”
“규칙적인 식사, 휴식, 안전한 사람들과의 생활. 그리고 장부 때문에 아이를 검사대 위에 계속 올리지 않는 것.”
민규는 웃음이 나올 뻔했다. 결국 의사가 내린 가장 중요한 처방은 경비실에서 이미 시작한 것과 비슷했다.
에일라가 가져온 자료는 병원 기록보다 더 위험했다. 삼십 년 전 긴급 대피 당시 정은희의 이름 아래에 ‘보호자 대리 인계’라는 문구가 생성되어 있었다. 아이 하나를 출구로 내보내기 위해 남아 있던 보호자의 시간을 담보로 잡는 구조였다. 서류에는 ‘상호 동의’라고 적혀 있었으나, 당시 통신 녹음에는 은희가 그런 말에 동의했다는 증거가 없었다.
“그럼 아이라는 존재를 만들려고 어머니의 시간을 가져간 거예요?” 민규가 물었다.
“그렇게 단정하면 안 돼요.” 셀레나가 선을 그었다. “아이는 이미 안에 있었을 수도 있고, 긴급 대피 시 남겨진 기억과 시간으로 새로운 의식을 형성했을 수도 있어요. 지금 우리가 아는 건 한 사람을 대신해 다른 사람이 일을 계속하게 만든 구조가 있었다는 사실이에요.”
하른은 그 말을 듣고 팔짱을 풀었다. “나는 교대가 끝나면 내가 누구인지 몰랐소. 저 아이는 아마 자기 이름을 읽을 때마다 일해야 할 거라고 느꼈겠지.”
“그래도 아이가 누구인지 정하는 사람은 우리가 아닙니다.” 미라가 말했다. 그녀는 실종된 동안 세 개의 문과 수십 개의 명찰을 보았다. 이름을 붙여야 구출할 수 있다고 주장하던 장치들이 결국 아무도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점심 때 소년은 미라의 연극부를 구경했다. 학교 강당에는 아직 복구하지 못한 천장 장식이 매달려 있었다. 무대 바닥에는 지난 공연 때 긁힌 자국이 있었고, 객석 앞쪽에는 오래된 나무 의자가 불규칙하게 놓여 있었다. 소년은 멀리서 배우들이 대사를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대사가 정해져 있는데 왜 자꾸 틀려요?”
“사람이니까.” 미라가 말했다. “말을 잘못하면 다시 연습하고, 싫으면 배역을 바꿀 수도 있어.”
소년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미라가 낡은 제복을 보여 주자 소년은 어깨를 웅크렸다. “저거 경비원 옷이에요?”
“연극 소품이야. 하고 싶으면 입고, 싫으면 입지 않아도 돼.”
“전 안 입을래요.”
미라는 옷을 접어 상자에 넣었다. 단순한 거절이 아이에게는 처음으로 무언가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점심을 마친 뒤 민규는 어머니의 과거 수첩을 읽었다. 은희가 직접 쓴 기록인지 에일라가 먼저 검증한 사본이었다. 사소한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어린 민규가 감기에 걸렸을 때 배를 얇게 썰어 먹인 일, 수학 숙제를 싫어해 숫자 대신 별을 그리던 일, 비 오는 날 양말 한 짝만 신어 혼이 났던 일이 적혀 있었다.
민규는 첫 두 장을 읽다가 미소 지었다. 기억나는 일도 있었고 처음 듣는 일도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특별한 힘을 가졌는지보다 오늘 점심을 먹었는지를 먼저 적는 사람이었다.
마지막 장에는 ‘민규가 무서워하는 것’이라는 짧은 제목이 있었다. 그 아래에 어두운 복도, 잠기지 않는 방문, 그리고 ‘엄마가 오지 않는 밤’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민규는 손가락을 움직이다 멈췄다. 삼십 년 전 문 너머의 아이는 그 공포 속에서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는 소년의 방으로 갔다. 소년은 아린이 준 공책을 펼쳐 놓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만든 종이별 옆에 또 하나의 별이 놓여 있었다. 둘 다 다른 크기였다.
“어떤 밤이 제일 무서웠니?” 민규가 물었다.
소년은 무심코 창문을 닫았다. “종이 안 울리는 밤이요.”
“왜?”
“종이 울리면 다음 날이 오잖아요. 그런데 안 울리면 오늘이 안 끝나요.”
민규는 침대 곁 의자에 앉았다. 아이가 겪은 시간은 한밤중에 문이 닫히는 공포가 아니라 내일이 영영 오지 않는 공포였다. 어른이 된 자신은 그 공간에서 빠져나와 삼십 년을 살았다. 소년은 그동안 같은 밤을 지나고 있었다. 누군가 하루를 넘겨 주지 않으면 늘 그날이었다.
“오늘은 종이 울리지 않아도 내일이 와. 우리가 달력을 확인할 수 있어.”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자면 또 그곳으로 돌아가요.”
민규는 불쑥 다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방 문 옆에 작은 야광 시계를 설치했다. 전지로 움직이는 시계였다. 마법이 작동하지 않아도 초침은 한 칸씩 움직였다. 민규는 소년이 눈앞에서 시계를 관찰하도록 한 뒤, 몇 분 뒤에도 똑같이 움직이는 걸 확인시켜 주었다.
“이 시계가 멈추면 저를 불러 주세요. 저도 매시간 확인할게.”
“아저씨는 그럼 못 쉬어요.”
“저 혼자 안 해. 하른 아저씨랑 교대하고, 나디아 선생님이 안전을 확인하고, 밤에는 둘 다 쉬는 시간도 있어.”
소년은 그 말이 이상하다는 듯 웃었다. 처음으로 근무라는 말이 누군가를 붙잡는 명령이 아니라 함께 지키는 약속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 순간이었다.
병실로 돌아와 민규는 어머니에게 수첩을 돌려주었다. 은희는 바래진 모서리를 만졌다. “그 애도 내 이야기 속에 들어오게 해 줘야겠구나.”
“어머니가 혼자 다 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안다. 그래도 엄마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말을 못하게 하고 싶진 않다.”
“어머니도 힘들면 쉬세요. 이제 삼십 년을 쉬셔야 해요.”
은희가 웃었다. “삼십 년을 한꺼번에 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도 오늘은 낮잠을 한 시간 잘 수 있겠네.”
창문 밖에서는 소년이 아린과 손을 흔들며 작별하고 있었다. 스스로 아는 사람을 만들고, 작은 약속을 쌓고, 하루를 보내는 모습이었다. 은희는 그 광경을 바라보다 한참 뒤 말했다.
“나는 저 아이가 누구의 일부인지보다 내일 누구를 만나고 싶어 하는지가 궁금해.”
민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질문이야말로 기록망에는 없는 것이었다. 기록망은 언제 출근하고 어디로 이동해야 하는지 물었지만, 내일 누구를 만나고 싶으냐고 물은 적이 없었다.
오후에 케스가 병실을 방문했다. 그는 우산을 밖에 세우고 인사를 했다. 소년은 그의 제복을 보자 은희의 뒤로 숨었다. 케스는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기록보존총국에 법적 보호 절차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중앙이 자동 인계를 추진하고 있어요. 오늘 안으로 서류가 내려올 수도 있습니다.”
은희가 물었다. “저 아이를 데려가려는 겁니까?”
“그렇게 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막으려 합니다.”
“왜요?”
케스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별 일곱 개가 남아 있는 천이었다. “과거에 제 동생도 명부에서 지워졌습니다. 당시 저는 기록에 없는 사람은 보호할 방법이 없다는 말을 들었죠. 그 말을 믿은 대가를 아직 치르고 있습니다.”
민규는 손수건을 보았다. 여덟 번째 별이 사라진 자리가 남아 있었다. “그 동생을 찾으려고 학교에 온 겁니까?”
“처음엔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다시는 다른 사람에게 반복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케스는 아이를 보며 말했다. “당신이 무슨 이름을 고르든, 결정할 시간을 확보하겠습니다.”
그러자 소년이 은희 뒤에서 작게 물었다. “근데 저한테도 고를 이름이 있나요?”
“많지.” 은희가 대답했다. “처음 듣는 것도 있고, 네가 직접 만드는 것도 있겠지.”
그날 밤 어른이 된 민규는 어머니와 둘이 차를 마셨다. 삼십 년 동안 묻지 못했던 질문이 목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갔다. ‘저를 기다렸어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기다린 세월만큼 지금의 자신이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은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를 내보내던 날, 나는 어린 네 손을 놓았어. 그 손을 놓지 않은 채로 붙잡혀 있던 아이도 있었던 것 같아.”
“그럼 그 아이는 저의 일부입니까?”
“어쩌면. 하지만 넌 그 애의 전부는 아니야.”
민규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 말은 위로이면서 책임이었다.
창밖에서 소년이 종이별 두 개를 난간에 올려놓았다. 바람이 불어 하나가 떨어지자 다른 하나까지 떨어질까 봐 급히 손을 뻗었다. 민규는 창문을 열고 그 아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두 번째 별이 스스로 떨어지지 않도록 작은 유리컵으로 눌렀다.
그날 밤 소년은 악몽을 꾸었다. 방 안의 커튼이 천천히 파랗게 변하더니, 종탑 시계가 두 시 십칠 분에서 멈췄다. 소년은 침대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달려갔다. 문고리에는 ‘지금은 쉬고 싶어요’라는 표지가 걸려 있었다. 꿈속의 천장은 그 표지를 보지도 않고 출근하라고 말했다.
눈을 뜬 소년은 숨을 몰아쉬었다. 침대 옆의 전지 시계는 세 시 십팔 분을 가리켰다. 한 분, 두 분. 시계는 계속 앞으로 갔다. 그는 문을 열고 민규를 불렀다. 문 밖에서 대기하던 사람은 하른이었다. 경비실의 평범한 교대표대로라면 민규는 이제 쉬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 있었니?” 하른이 물었다.
“시계가 멈출까 봐요.”
하른은 방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문간에 쪼그려 앉았다. “내 시계도 한때 멈춘 적이 있었단다. 그럴 땐 다른 사람에게 시간을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지.”
“그러면 아저씨가 대신 일해야 하잖아요.”
“난 지금 네 곁에서 잠깐 있어 주기로 약속했어.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해.”
소년은 작은 담요를 손에 쥐었다. 하른은 복도에서 천천히 열을 셌다. 열을 셀 동안 시계의 초침은 한 바퀴 돌았다. 또 열을 셀 동안 한 바퀴 더 돌았다. 새벽의 시간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흐를 수 있었다.
아침이 되어 민규가 아이를 보러 왔을 때 소년은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민규는 깨우지 않았다. 은희가 병실에서 걸어 나와 그 광경을 보았다. 그녀는 하른에게 작은 목례를 했다. 하른은 어색하게 답례했다. 가장 오래된 근무자에게도 누군가 고맙다는 말을 하는 아침이었다.
민규는 새벽 근무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는 빈자리를 채우는 데만 관심이 있었는데, 이제는 각 사람이 언제 쉬는지도 표시했다. 하른과 나디아에게 교대를 맡기면서도 서로의 동의를 확인했다. 어느 한 사람이 그날의 모든 밤을 책임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은희는 아들의 근무표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렸다. “너 쉬는 시간은 어디 있니?”
민규가 민망해하며 빈칸을 가리켰다. “여기 추가할게요.”
“어릴 때도 네 시간은 늘 맨 마지막이었지.”
그녀는 꾸중하지 않았다. 다만 장부의 한 줄을 자기 손으로 채웠다. [정민규 휴식. 누구도 대체 근무자로 불리지 않음.] 그 문장을 보자 민규는 조금 웃었다.
다음 날 아침, 중앙의 임시 인계장이 도착했다. 보호자 서명란에는 정은희의 이름이 이미 쓰여 있었다. 은희가 손을 댄 적 없는 종이였다.
서류 가장 아래에는 더 이상한 문장이 있었다.
[두 번째 정민규는 독립된 사람으로 판정되지 않음. 보호 대상이 아닌 대체 동력으로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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