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학교 본관의 계단은 언제나 일정한 수를 유지했다.
1층에서 지하 1층까지 열여덟 칸. 열여덟 칸을 내려가면 정확히 지하 자료실 입구에 도착했다. 학교 설립 이후 한 번도 바뀌지 않은 구조였다. 그런데 민규가 낡은 설계도를 들고 계단의 높이를 재자 이상한 결과가 나왔다.
열여덟 칸의 높이를 모두 더하면 바깥에서 잰 층고보다 두 미터가 짧았다.
“공간을 접는 마법이 있거든요.” 셀레나가 설명했다.
“왜 접었습니까?”
“건물 내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려고요.”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면서 두 미터를 어디다 버렸죠?”
셀레나는 입을 다물었다. 루카는 낄낄 웃다가 오늘 아침 잠을 거의 자지 못한 탓에 하품했다.
세 사람은 곧바로 계단을 부수지 않았다. 민규는 먼저 계단 두 곳에 분필 표시를 했다. 첫 번째와 열여덟 번째 칸에 흰 선을 긋고, 각각 다른 길이의 밧줄을 고정했다. 셀레나는 밧줄에 보호 주문을 걸었다. 루카는 손목에 종이띠를 감아 자신의 이름과 동행자의 이름을 세 번 적었다.
“이제 그만 긴장해도 될까요?” 루카가 물었다.
“긴장은 내려놓아도 안전띠는 풀지 마.”
“아저씨는 대체 학교에서 뭘 하시던 분이에요?”
“천장 누수 고치고, 계단 난간 수리하고, 교실에 비상구 표지 붙이던 사람.”
“그게 이렇게 도움이 된다고요?”
“고장 난 곳에서는 대부분 비슷한 질문을 하게 되거든. 어디서부터 틀어졌나, 어떤 조건에서 다시 고장 나나, 사람은 안전한가.”
셀레나는 민규가 하는 말의 절반은 마법학 이론과 비슷하고 나머지 절반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론은 틀린 계산을 찾을 때까지 반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하에 갇힌 학생은 계산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들은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여섯 번째 칸에서는 돌바닥이 차갑게 울렸고 열 번째 칸에서는 공기가 한 번 가벼워졌다. 열세 번째 칸에 이르자 민규가 손을 들었다.
“정지.”
“왜요?”
“발소리.”
세 사람의 발소리는 분명 세 개였는데, 뒤쪽에서 네 번째 발소리가 따라오고 있었다. 모두 멈추자 네 번째 발소리도 멈췄다. 다시 한 걸음 걷자 낯선 발소리가 반 박자 늦게 들렸다.
루카가 팔을 문질렀다. “저희 뒤에 누구 있어요?”
“아직 모르지. 서로 위치부터 확인해.”
민규는 손전등을 뒤로 비췄다.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난간 아래쪽의 먼지에는 네 사람 분량의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새로 찍힌 발자국은 민규의 것과 같은 크기였다. 발바닥 바깥쪽이 유난히 닳아 있는 것도 같았다.
“두 번째 경비원이 따라오는 걸까요?” 셀레나가 속삭였다.
“아니면 이 계단이 네 번째 발소리를 기록해 놓은 걸까요.”
민규는 앞으로 두 걸음 걷다가 갑자기 뒤로 한 걸음을 옮겼다. 네 번째 발소리는 앞으로 두 걸음을 걷고 뒤로 한 걸음을 옮기는 대신 같은 자리에서 두 번 울렸다. 장치가 걷는 사람의 발걸음을 정확히 복제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저건 발이 아니라 녹음된 반응이야.”
그는 열세 번째 계단의 난간을 두드렸다. 안쪽이 텅 빈 소리가 났다. 벽돌 틈에서 찬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도면의 점선 구역과 정확히 일치하는 곳이었다.
“여기다.”
셀레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봉인을 해제할까요?”
“아직은요. 안쪽 압력부터 확인해 봅시다.”
민규는 가느다란 종이 조각을 틈에 가져갔다. 종이는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루카가 가지고 온 붉은 실을 걸어 보니 실 끝이 흔들리다가 갑자기 멈췄다. 바깥의 공기가 어디론가 들어가지만 바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안에 사람이 있다면 숨쉬기 어렵겠군.”
“마나로 공기를 만들어 주면 되죠.” 셀레나가 말했다.
“그 마나 공급원이 똑같은 기록망이라면요?”
셀레나는 그제야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사람들을 지우는 장치에 연결된 공기 공급 장치는, 장치가 고장 나는 순간 생명 유지 기능도 잃을 수 있었다.
민규는 난간 옆의 환기 덮개 나사를 풀었다. 낡은 덮개가 떨어지자 그 뒤에 작고 둥근 열쇠 구멍이 나타났다. 민규가 검은 열쇠를 넣자 아무 저항 없이 들어갔다. 돌벽이 희미하게 진동했다.
“정말 맞아요!” 루카가 몸을 기울였다.
“잠깐. 아직 돌리지 마.” 셀레나가 손목을 잡았다.
그녀는 구멍 둘레를 살펴보고 말했다. “이건 봉인을 여는 열쇠가 아니에요. 내부에 있는 관리자를 확인하는 열쇠예요. 돌리는 순간 누가 바깥에 있는지 안쪽에 통보됩니다.”
“그럼 이미 알려졌겠네요. 누가 이렇게 친절하게 자물쇠를 노출해 놨겠습니까.”
민규는 열쇠를 빼지 않고 그 자리에서 금속 표면을 살폈다. 아래쪽에는 얕은 홈 세 개가 있었다. 그는 홈을 따라 실을 감고 난간에 묶었다. 문이 열릴 때 얼마나 움직이는지 관찰하기 위한 표시였다.
“이제 열겠습니다. 안에 있는 사람이 우리를 모르고 있으면 좋겠지만,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 들어갑시다.”
열쇠가 돌아갔다. 계단의 열세 번째 칸과 열네 번째 칸 사이에 수평의 틈이 생겼다. 돌바닥이 엘리베이터 문처럼 양옆으로 갈라졌다. 그 안에는 또 다른 층계가 있었다. 따뜻한 빛이 아래에서 흘러나왔다.
0층은 생각보다 넓었다.
학교의 모든 복도가 하나로 모인 듯한 긴 홀. 천장은 너무 높아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양쪽 벽에는 유리 등불이 수백 개 매달려 있었다. 등불 안에는 불꽃 대신 흐릿한 사람의 얼굴이 비쳤다. 어디선가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들리고, 또 어디선가 학생들이 웃었다. 한쪽 모퉁이에서는 아이가 훌쩍이는 소리까지 났다.
“저거, 학생들 기억이에요.” 셀레나가 속삭였다.
민규는 등불에 가까이 가지 않았다. 바닥을 먼저 살폈다. 세 사람의 발자국 외에도 최근 누군가 지나간 흔적이 있었다. 작은 구두 밑창과 바닥에 끌린 천 조각. 그리고 경비원 구두와 비슷한 발자국 하나.
“지금도 사람이 드나듭니다.”
루카는 등불 쪽으로 달려가려 했다. 등불 하나에 사진 속 미라의 모습이 비쳤기 때문이다. 민규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약속했지. 혼자 앞서가지 마.”
“저기 누나요!”
“먼저 확인하자.”
민규가 손전등을 켜 등불을 비추자 얼굴이 사라지고 숫자가 나타났다. 숫자는 학생의 학적번호였다. 셀레나는 옆의 등불을 조사했다. 그 안에는 마나가 흐르지만 완전한 정신체는 없었다.
“사람이 들어 있는 게 아니라 기억을 보관하는 그릇이에요.”
“그럼 살아 있는 사람은 어디 있습니까?”
“등불과 연결된 곳이 따로 있을 거예요.”
홀 구석에는 의자 서른한 개가 일렬로 놓여 있었다. 크기도 모양도 달랐지만 각 의자 등받이에는 낡은 학생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민규는 이름표들이 삼십 년 전 실종 기록에 있던 것과 같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가장 끝 의자 두 개만은 조금 달랐다. 하나에는 앉았던 사람의 체온이 남아 있는 듯 따뜻한 흔적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바닥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서 누가 기다리기라도 했나요?” 루카가 물었다.
“대피소였다면 그럴 수 있지.”
민규는 주변을 살폈다. 손잡이가 달린 물통과 포장된 비상식량, 낡은 모직 담요가 벽장에 남아 있었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물건들이 아니었다. 사용 순서에 맞춰 정리되어 있었다. 한때 이곳이 정식 대피 시설이었다는 흔적이었다.
“지하 괴담의 장소가 아니라 대피실이었군요.” 셀레나가 말했다.
“처음부터 사람을 가두려고 만든 곳은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그녀는 벽장 안의 오래된 명패를 꺼냈다. 명패에는 '기억 보존 및 아동 보호'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뒤쪽에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대피 중 어린 학생에게 거짓 보호자 영상을 보여 주지 말 것.]
루카가 미라의 등불을 다시 바라봤다. 방금 전 자신을 불렀던 목소리를 생각하자 등골이 서늘했다. 이 장치는 원래 학생을 안심시키거나 기억을 보존하려던 도구였을 것이다. 누군가 용도를 바꾸기 전까지는.
민규는 의자 하나에 걸쳐진 담요를 집어 들었다. 담요 모서리에는 누군가 실로 꿰맨 이름이 있었다. 마법이 아니라 손으로 수놓은 글씨라서 여전히 남아 있었다.
[정민규.]
그는 자기 이름을 손끝으로 문질렀다. 손등 위로 희미한 감촉이 올라왔다. 아주 오래전 누군가 감기에 걸린 어린 자신을 담요로 감싸 주던 장면이 번개처럼 스쳤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사람이 낮게 말했다.
‘네가 무서워하면 내가 대신 확인할게.’
“괜찮으세요?” 셀레나가 물었다.
“기억이 하나 났습니다. 그런데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기억 회복은 급하게 진행하면 위험해요.”
민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담요를 들고 가고 싶었지만 우선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이곳의 물건을 함부로 옮길 때 어떤 기록이 함께 지워지는지 아직 몰랐다. 대신 수첩에 담요의 위치, 수놓은 이름, 당시 느낀 감각을 적었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기록이겠지만 그에게는 세상을 연결하는 유일한 실마리였다.
루카도 자신의 노트에 의자와 등불의 위치를 그렸다. 처음에는 손이 떨렸으나 곧 선이 또렷해졌다. 이름을 잃는다는 두려움은 여전했다. 하지만 누군가 잘못된 장치를 찾아내고, 자신은 그 위치를 기록할 수 있었다. 무서움을 참는 것보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만드는 편이 훨씬 나았다.
홀 가운데에는 커다란 원형 책상이 있었다. 책상 위에는 오래된 장부가 세 권 놓여 있었다. 첫 번째는 학생의 원래 이름을 보관하는 원본 명부, 두 번째는 학교가 지금 사용 중인 명부, 세 번째는 비어 있었다. 그런데 빈 장부의 첫 장에는 작은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교체 대상 대기.]
민규는 장부들을 서로 대조했다. 원본 명부에는 미라와 레온, 루카의 이름이 모두 있었다. 사용 중인 명부에는 루카 대신 낯선 학생의 이름이 있고 레온의 칸은 텅 비어 있었다. 미라의 칸은 아예 페이지째 뜯겨 있었다.
“원본은 남아 있네요.”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왜 아무도 못 찾았을까요?” 루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때 장부 뒤쪽에서 의자 끄는 소리가 들렸다. 미소를 지은 소녀가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사진 속 미라였다. 루카는 숨을 멈췄다.
“누나…?”
소녀는 눈물을 흘리며 두 팔을 벌렸다.
“루카, 드디어 왔구나.”
루카가 한 걸음 다가가자 민규가 앞을 막았다. 그는 소녀의 그림자를 비췄다. 소녀의 그림자는 바닥에 닿지 않았다.
“실례지만, 성함부터 말씀해 주세요.”
“미라예요. 저 애의 누나.”
“어느 학년, 어느 반이었습니까?”
“그걸 왜 묻죠?”
“학생을 찾으려면 기본적인 확인은 해야 하니까요.”
소녀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한 번에 너무 많은 목소리로 말했다.
“루카는 날 알아. 당신이 끼어들 일이 아니야.”
민규는 서류철을 가리켰다. “저 책상에 원본 명부가 있어요. 당신이 진짜 미라라면 이름을 알려 주세요. 저희가 확인할 수 있도록.”
소녀의 얼굴이 마치 물 위에 비친 그림처럼 흔들렸다. 아름다운 미소가 사라지고 빈 구멍이 나타났다. 루카가 뒷걸음질쳤다.
“저거… 누나 아니에요.”
“그렇지.”
가짜 미라는 흉측한 형체로 변해 등불 사이로 녹아들었다. 순간 수십 개의 등불에서 같은 소녀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름을 부르는 소리였다. 루카는 귀를 막고 무릎을 꿇었다.
셀레나가 보호막을 펼쳤다. 민규는 들고 온 작은 탁상 종을 거꾸로 뒤집어 바닥에 엎어 놓았다. 등불들의 소리가 줄었다. 목소리가 종의 공명을 따라 증폭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이건 목소리를 증폭하는 공간이군요.”
“한 번에 여러 명의 기억을 조작하려는 장치예요.” 셀레나가 대답했다.
민규는 원본 명부를 바로 들고 나가고 싶었지만 책상은 바닥과 연결되어 있었다. 장부를 조금 들어 올리자 먼 벽의 등불들이 일제히 꺼졌다. 셀레나가 급히 손을 내렸다.
“원본을 여기서 뽑으면 저장된 기억도 같이 떨어져 나갈 수 있어요.”
“그럼 복사해야겠네요.”
“마법 복사본은 같이 지워져요.”
“인쇄실 있잖습니까.”
루카가 고개를 들었다. “도면하고 사진을 복사했던 그 기계요?”
“그렇지. 원본을 옮기지 않고 기록만 빼낼 방법을 찾아야지.”
그들은 홀을 둘러보았다. 기둥마다 얇은 금속관이 이어져 있었는데 하나는 인쇄실 방향으로 향했다. 민규는 설계도에 없는 낡은 관을 손으로 두드렸다. 관 안에서 규칙적인 소리가 울렸다.
톡. 톡. 톡.
어젯밤 지하 문 안에서 들었던 소리와 같았다. 셀레나는 관 끝의 마나 서명을 분석했다. 놀랍게도 누군가 벽 너머에서 같은 관을 두드리고 있었다.
“누가 있어요.”
루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나?”
두드림이 잠깐 멈췄다. 다음에는 두 번, 한 번, 세 번의 짧은 신호가 이어졌다. 민규는 자신이 경비실에서 쓰던 구조 확인 신호를 떠올렸다. 내부에서 살아 있는 사람이 의도적으로 보낸 신호일 수 있었다.
그는 철관에 손가락을 대고 같은 리듬으로 답했다.
그러자 관 끝에서 작은 종이가 말려 나왔다. 종이는 아주 오래된 수첩에서 찢은 듯했다. 거기에는 흐릿한 연필 글씨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원본은 여기 있다. 지우지 마라.]
그리고 아래쪽에는 누군가 급히 덧붙인 경고가 있었다.
[교장 오르반을 믿지 마. 그날 문을 잠근 건 그다.]
종이 맨 아래에 찍힌 낡은 손도장은 작고 둥글었다. 어린아이의 손이었다. 손도장 옆에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정민규, 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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