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관은 손잡이가 닳은 검은 우산을 들고 있었다.
학교 정문에 도착한 마차에서 내린 남자는 비가 오지 않는데도 우산을 접지 않았다. 빛나는 책 모양의 휘장 아래에는 기록보존총국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그의 제복은 구김 하나 없이 단정했고, 가죽 구두는 장거리 여행을 마친 사람답지 않게 먼지조차 없었다.
“케스 로엔.” 남자가 말했다. “중앙 기록보존총국 사고 검증관입니다. 통행 허가와 봉인 명령서를 제출하겠습니다.”
민규는 경비실 창구를 열고 서류를 받았다. 처음부터 검은 우산이 신경 쓰였지만 그것에 대해 묻지 않았다. 손님이 우산을 들고 왔다는 이유로 출입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는 봉인 명령서의 날짜와 서명부터 확인했다.
“여기에는 학교 건물을 보존하라고 쓰였는데요.”
“기록을 보존하라는 뜻입니다.”
“그럼 구조 통로도 보존해야겠군요. 현재 지하에 확인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감사관은 서류를 한 장 더 내밀었다. 두 번째 문서에는 ‘원본 이송 중 안전상 출입 제한’이라고 쓰여 있었다. 민규는 문서의 끝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제한 구역에 구조 대상이 있는 경우의 예외 조항이 빠졌습니다.”
케스는 잠시 민규를 바라봤다. “이곳은 학교이지, 당신의 공장이 아니오. 우리에게는 별도 절차가 있습니다.”
“그 절차를 보여 주시면 따르겠습니다. 다만 사람을 못 나오게 하는 건 안전 조치가 아닙니다.”
케스는 우산을 조금 기울였다. 그늘이 민규의 수첩 위로 드리웠다. 순간 수첩의 날짜 숫자가 흐려졌다. 민규는 서둘러 수첩을 닫지 않았다. 그늘 밖으로 천천히 밀어냈다. 숫자는 다시 선명해졌다.
“우산에 보존 마법이 걸려 있군요.” 셀레나가 다가와 말했다.
“외부 마력으로부터 공식 문서를 보호하기 위한 겁니다.” 케스가 대답했다. “사고 직후의 학교에는 문서에 손대는 것만으로 날짜를 바꾸는 주문이 퍼졌으니 말입니다.”
“그 때문에 밖에서 작성한 서류도 훼손될 수 있죠.” 셀레나가 말했다. “그늘이 너무 넓습니다.”
케스는 우산을 접었다. 민규는 그것을 기록했다. ‘감사관 입교. 보존 우산 접음. 문서 변형 없음.’ 곁에서 지켜보던 루카가 속삭였다. “아저씨, 오늘따라 진짜 경비원 같아요.”
“오늘만 그랬던 건 아니거든.”
감사관의 동행인은 세 명이었다. 두 명은 봉인함을 든 기록관이고, 마지막 사람은 붉은 바퀴가 달린 큰 수레를 끌었다. 수레에는 ‘문서 소거 장치’라는 금속 표지가 붙어 있었다. 에일라는 그것을 보고 곧바로 총국의 요청을 확인하러 왔다.
“검증하러 오셨다면서 소거 장치는 왜 가져왔습니까?”
“검증 중 악성 기록이 증식하면 처리해야 합니다.” 케스가 말했다. “재난 지역의 기록은 사람이 읽기만 해도 감염될 수 있어요.”
“저희는 원본을 보존하면서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에일라가 반박했다.
“그동안 다섯 번이나 학교의 날짜가 바뀌었습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이 마을 전체가 지도에서 지워졌을 겁니다.”
그의 말에 반박할 사람은 없었다. 사실이었다. 안전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언제나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아니었다. 민규는 서류를 양쪽으로 정리했다. 확인된 위험과 아직 확인되지 않은 위험을 따로 적었다.
“그럼 오늘은 출입할 자료실을 먼저 정하시죠. 현재 진행 중인 구조 작업은 건드리지 마시고요.”
“구조 작업의 자료가 사고 원본이라면 어떡합니까?”
“복사본과 원본을 구분해 줄 수 있습니다. 무엇을 가져가야 하는지 직접 확인하세요.”
케스는 예상보다 오래 민규를 바라봤다. 그동안 그는 학교를 방문할 때마다 교장이 먼저 고개를 숙이거나 교수가 마법으로 위협했다. 경비원이 종이의 모서리를 맞추며 절차를 제안하는 경우는 없었다.
검증을 시작하기 전에 케스는 자료실 바깥에 작은 봉인대를 설치했다. 원래는 문서가 빼돌려지는 것을 막는 장치였다. 소속 기록관들은 반사적으로 봉인대 밖의 사람들을 밀어내려 했다. 그러자 에일라가 멈춰 섰다.
“저희 현장 증인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까?”
“규정상 승인받은 감시자는 가능합니다.” 케스가 대답했다.
“승인 신청서는 누가 받죠?”
케스는 잠깐 답을 못 했다. 마을에는 총국 문서를 접수하는 사무실조차 없었다. 그는 서류 양식을 꺼내려다 다시 집어넣었다. “내가 여기서 접수하겠습니다. 이름을 밝히기 싫은 분은 역할과 확인 가능한 연락처만 적어 주세요.”
그날 처음으로 하른은 자기 이름을 적지 않은 채 ‘현장 출입 경험자’란에 서명했다. 글씨가 아니라 작고 둥근 점 세 개였다. 케스는 그 점을 보고 이름을 다시 쓰라고 하지 않았다.
자료실 한쪽에는 아직 손대지 못한 상자들이 쌓여 있었다. 겉면에는 삼십 년 전 사고와 관련된 서류라고 되어 있었지만, 봉인 날짜는 모두 달랐다. 에일라는 상자 번호를 세다가 하나가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열셋부터 열여섯까지 이어지는 번호 중 열다섯만 없었다.
“열다섯 번은 어디 있습니까?”
기록관이 종이를 찾아봤다. “소거 완료로 처리돼 있습니다.”
“누가 승인했죠?”
“자동 조항입니다.”
민규는 그 말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자동 조항은 사람에게 설명을 요구할 수 없다는 핑계로 쓰이기 쉬웠다. 그는 기록관에게 소거 일자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놀랍게도 날짜는 다음 달이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처리가 완료로 적혀 있었다.
“미래에 할 일을 미리 끝냈다는 말이네요.” 루카가 말했다.
케스는 그 문서를 직접 받아 들었다. “이건 나도 승인한 적이 없소. 총국의 자동문서가 잘못된 날짜를 접수했군.”
“그런데 취소할 수는 있습니까?” 에일라가 물었다.
“내 권한으로는 미정 상태로 되돌릴 수 있습니다. 원본을 보지 않고 영구 삭제하는 건 승인할 수 없어요.”
케스가 봉인 인장을 바꾸자 비어 있던 열다섯 번 자리에 작은 상자가 나타났다. 처음부터 그곳에 놓여 있었던 것처럼 먼지가 묻어 있었다. 그러나 바르트가 선반을 손끝으로 훑자 상자 바닥만 따뜻했다. 조금 전까지 다른 시간에 있었던 물건이라는 뜻이었다.
상자 안에는 사진첩이 들어 있었다. 사진 속 사람들의 얼굴을 확인하기 전에 민규는 발행 정보부터 살폈다. 삼십 년 전 사고조사팀 내부 배포용. 표지는 한 번 뜯겼다가 다시 봉인된 흔적이 있었다. 케스는 사진첩을 빠르게 넘기다 갑자기 손을 멈췄다.
사진 한쪽에는 어린 소녀가 있었다. 머리를 짧게 자른 아이는 하얀 손수건을 흔들고 있었다. 손수건에는 별 여덟 개가 수놓여 있었다. 케스가 가지고 있던 손수건과 같은 모양이었다.
“저 아이는…” 루카가 말을 꺼냈다.
“내 여동생입니다.” 케스가 대답했다. “그날 학교에 견학을 왔지요. 사고 보고서에는 입교 사실이 없다고 적혔습니다.”
그는 더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사진 속 얼굴은 또렷했지만 이름을 적어 둔 칸은 긁혀 있었다. 케스는 사진을 손수건으로 가리지 않았다. 대신 아래쪽 빈 칸에 아주 작은 글씨로 적었다. ‘존재 확인. 신원 추가 조사 필요.’ 그는 서명할 때 손을 떨었다.
“제가 왜 서류를 두려워하는지 이제 아시겠습니까?”
민규는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기록을 보호하려다 사람을 다치게 할 수도 있었고, 기록을 없애려다 정말 있었던 사람을 지워 버릴 수도 있었다. 둘 중 어느 쪽도 충분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러니 이번에는 여동생이 직접 나올 길도 찾읍시다. 기록을 어떻게 분류할지는 그다음에 정하고요.”
케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방금 처음으로 기록에 남긴 이름 없는 존재가 실제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가능성은 기쁘기만 한 일이 아니었다. 삼십 년 동안 닫아 둔 문을 또 열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들은 복구된 아카이브 입구로 함께 걸었다. 복도 끝에서는 나디아가 보건실 앞에 대기표를 붙이고 있었다. 환자들 가운데 몇 사람은 감사관의 제복을 보자 몸을 움츠렸다. 케스는 그 모습을 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거 장치가 환자들의 가까운 곳을 지나가자 그는 수레를 멈추게 했다.
“사람 있는 곳에서 가동하지 마시오.” 그가 기록관에게 말했다.
민규는 그 말을 수첩에 적었다. 위험을 줄이려는 행동은 누가 했든 남길 가치가 있었다. 케스는 그가 무언가 쓰는 걸 보고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을 전부 기록합니까?”
“중요한 건 기록합니다. 특히 잘한 것도요.”
감사관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아카이브의 봉인실에서 그들은 삼십 년 전 규칙 변경 문서를 꺼냈다. 오르반은 감독자로 서명했지만, 실제 변경 지시서는 다른 기관에서 내려왔다. 결재란의 맨 위에는 기록보존총국의 옛 직인이 있었다. 케스는 그 문서를 잠시 바라보다 장갑을 꼈다.
“이건 소거 장치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총국이 관여한 기록이라면 총국의 책임도 검증해야 하니까.”
에일라는 놀라 그를 쳐다봤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기관이 한 일을 없는 일로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처분 가능 명령을 내렸죠?”
“그 명령은 오늘 내가 내린 것이 아닙니다.” 케스가 대답했다. “사고 뒤 계속 살아 있는 자동 조항이지요. 나는 그 조항을 집행하러 왔지만, 상황을 보니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민규는 그 말에 안심하지 않았다. 조항을 고치겠다는 사람이 마음을 바꾸면 또다시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그는 케스에게 구체적인 요청서를 내밀었다. ‘미접수 문서 임시 보존, 구조 신호 통로 훼손 금지, 현장 입회자 세 명 이상.’ 케스는 요청서를 읽고 세 번째 항목에 줄을 그었다.
“입회자가 너무 많습니다. 정보가 새어나갈 수 있습니다.”
“세 명이면 한 사람의 실수로 기록이 바뀌기 어렵습니다.”
“세 사람이 같이 틀릴 수도 있지요.”
“그러니 현장에 있는 다른 사람도 물어봐야죠.”
복도 끝에서 하른이 모자를 벗은 채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케스의 눈길이 그의 얼굴에서 멈췄다. 짧은 침묵 뒤에 감사관이 말했다. “당신은 그날 야간 경비원이었군요.”
하른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저는… 지금은 퇴근했습니다.”
“알고 있소.” 케스는 우산 손잡이를 내려놓았다. “내가 갖고 있는 서류에도 당신의 퇴근 기록이 있어요. 삼십 년 전 날짜로.”
민규는 곧바로 물었다. “그게 실제 퇴근을 확인한 서류입니까, 아니면 퇴근했다고 쓰인 서류입니까?”
케스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가진 서류 역시 인계부처럼 사람보다 앞서 결론을 내려 버린 문서였던 것이다.
케스는 서류를 접으며 창밖의 대피소를 바라봤다. 한 학생이 다친 친구의 팔을 잡아 주고 있었다. 소거 명령서의 표에는 ‘이동 완료 인원’이라는 숫자만 보였지만, 창문 밖의 사람들은 걸음이 느린 친구를 위해 속도를 늦추고 있었다. 그는 잠깐 더 지켜보다 수레의 위치를 건물에서 먼 곳으로 옮기도록 지시했다.
“검증 중에는 학생들이 지나는 길을 비워 두시오. 기록보다 먼저 다쳐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오.”
감사관은 가방에서 작고 하얀 손수건을 꺼냈다. 가장자리에 오래된 자수가 있었다. 어린아이가 서툴게 꿰맨 듯한 일곱 개의 별이었다. 그는 손수건을 손에 쥐었다가 다시 넣었다.
“나도 누군가의 실종을 공식 문서 한 장으로 종결한 적이 있소.” 그가 말했다. “그 결과가 얼마나 끔찍한지 알아요. 그래서 위험한 기록망이 다시 사람을 삼키는 일도 막으려는 겁니다.”
루카가 나서려 했지만 미라가 팔을 잡았다. 케스는 자기 이야기를 더 하지 않았다. 대신 임시 보존 요청서에 제한적 승인을 표시했다. 오늘 하루, 종탑의 구조 신호 통로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날 밤, 감사관 일행이 배정받은 빈 숙소에는 켜지 않은 촛불 세 개가 놓여 있었다. 케스는 우산을 문 옆에 세우고 손수건을 펼쳤다. 일곱 개의 별 사이에서 여덟 번째 별의 실밥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는 손톱으로 그 자국을 눌렀다.
“이번에는 이름을 잃게 두지 않겠다.”
그가 촛불을 켜자 손수건의 자수가 잠깐 검게 변했다. 문 밖에서 기록관 한 명이 낮게 말했다.
“검증관님, 중앙의 새 명령입니다. 학교 동쪽 교실을 먼저 폐기하라고 합니다.”
케스는 문을 열었다. “아직 검증이 끝나지 않았소.”
기록관은 서류를 내밀었다. 그 위에는 이미 명령이 발동한 것을 알리는 붉은 인장이 떠 있었다.
[동쪽 제7교실 격리·소거 시작. 현장 승인 불필요.]
제5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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