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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법학교 야간 경비원의 정체 · 53화
PAYLUA ORIGINAL · 제53화

53화. 교수님의 금지된 안전 수업

마법학교 야간 경비원의 정체 · 6,070자

오프라인 책장
셀레나 교수는 칠판에 원 세 개를 그렸다. 첫 번째 원에는 ‘지금’, 두 번째에는 ‘기록’, 세 번째에는 ‘사람’이라고 썼다. 강의실에는 학생 대신 정민규와 루카, 미라, 바르트, 그리고 잠을 제대로 못 잔 오르반이 앉아 있었다. 교수는 자신의 학생들에게 하던 버릇대로 출석을 불렀다가 멈췄다. “오늘은 이름을 부르지 않겠습니다.” 셀레나가 말했다. “대답을 강제하지 않는 수업이니까요.” 루카가 손을 들었다. “그래도 지각은 체크해요?” “네가 걱정할 정도로 네 출석률은 형편없어.” 강의실에 작게 웃음이 번졌다. 복구 작업이 시작된 뒤 웃음이 나온 건 오랜만이었다. 셀레나는 다시 칠판 앞으로 섰다. “문을 여는 주문은 어렵지 않습니다. 진짜 어려운 건 문이 어느 시각으로 열리는지 증명하는 일이에요.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바닥, 우리가 적은 지도, 그 안쪽에 있는 사람이 말한 경험이 서로 다를 수 있거든요.” 민규는 원 세 개가 겹치는 한가운데에 작은 점을 찍었다. “그럼 세 가지가 맞는 곳에서만 사람을 들이면 되겠네요.” “맞아요. 하지만 셋 중 하나가 거짓이라면요?” “기준부터 다시 점검해야죠.” 그는 낡은 줄자와 대피 명단을 책상에 놓았다. 셀레나는 손목의 마법진을 띄웠지만, 오늘은 장치를 작동시키는 데 쓰지 않았다. 마법진이 그리는 거리를 줄자와 비교했다. 같은 교실인데 문에서 창가까지의 거리가 날마다 달라졌다. 그녀는 평소라면 마력 측정기의 오차를 보정했을 것이다. 오늘은 줄자의 수치를 먼저 적었다. “교수님이 마법을 안 믿으면 학생들은 뭘 믿으라는 거예요?” 루카가 물었다. “마법을 쓰는 사람일수록 마법이 틀릴 수 있다는 걸 알아야지.” 수업은 밖에서 직접 이어졌다. 종탑에서 학교 남쪽 우물까지 이어지는 세 개의 오래된 점검구가 조사 대상이었다. 하나는 북측 종탑 아래, 하나는 동쪽 온실, 하나는 마을 제분소와 연결돼 있었다. 세 점검구는 삼십 년 전 사고 때 예비일을 바깥의 날짜에 붙잡아 두는 기준점으로 쓰였다. “한 점만 고장 나면 기록이 흔들립니다.” 셀레나가 설명했다. “두 점이 고장 나면 경로가 바뀌고, 세 점 모두 엉키면 어디가 오늘인지 구분할 수 없어요.” “그럼 셋을 동시에 수리하면 되겠네요.” 바르트가 말했다. “동시에 바꾸면 우리가 서 있는 지금도 움직일 수 있어요. 순서가 필요합니다.” 그들은 바닥에 분필선을 긋고 실험했다. 먼저 종탑의 점검구에 길이가 정해진 철사 하나를 밀어 넣었다. 철사의 끝은 분명히 안으로 들어갔는데 다른 쪽에서는 조금 짧아진 채 나왔다. 같은 실험을 온실 쪽 관에서 하자 끝에 축축한 흙이 묻었다. 제분소 쪽에서는 반대로 종이 가루가 쏟아졌다. 바르트는 흙 냄새를 맡더니 고개를 들었다. “이건 지금 온실 흙이 아니에요. 온실 지붕을 바꾸기 전에는 배수층에 이런 자갈을 썼습니다.” 미라는 어릴 때 자신이 온실에서 일하던 기억을 꺼냈다. “그때 온실관리인이 화분을 옮기다가 아래층 통로를 발견했어요. 문이 아주 낮았고 바람이 기분 나쁘게 불었다고 했죠.” 기록망은 동쪽 온실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표시해 왔다. 그러나 미라의 기억과 바르트의 흙 표본은 적어도 한 번 그쪽 통로가 열려 있었다는 사실을 가리켰다. 민규는 점검구 세 곳에 각기 다른 색의 끈을 묶었다. “기록이 사라지더라도 현장을 다시 찾을 수 있게 해 놓읍시다.” 오르반은 끈을 보다가 낯빛이 어두워졌다. “옛날에도 저런 표식을 썼네. 은희 씨가 가져왔던 방법이지.” 민규가 돌아봤다. 교장이 어머니의 이름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부른 건 처음이었다. “어머니가 뭘 하셨는데요?” “교사가 아니었어. 다른 세계에서 구조 통역을 하던 사람이었지. 우리 마법사들이 제각각 전문 용어를 쓰느라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을 때, 은희 씨가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하나씩 물었네. 숨 쉬는 사람의 수, 열린 문의 폭, 물이 차오르는 속도 같은 것들을.” 민규는 어머니가 자신의 집에서도 그런 사람이었다는 생각에 목이 메었다. 고장 난 세탁기가 있으면 무턱대고 전원을 켜기 전에 콘센트를 뽑고, 넘어져 우는 아이를 보면 왜 울었는지부터 물었다. 대단한 사람이라는 기억은 없었다. 다만 일을 성급하게 끝내지 않던 사람이었다. 온실 아래 점검구에서 시험을 하던 순간, 멀리서 작은 종소리가 났다. 셀레나의 마력 측정기가 갑자기 진동했고, 줄자의 금속 끝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바닥을 기었다. 루카는 손을 뻗으려다 민규가 가르쳐 준 수신호를 보고 즉시 뒤로 물러났다. “손 대지 마. 먼저 선부터 끊어.” 민규가 말했다. 바르트가 외부 지지대를 풀고 줄자를 격리했다. 셀레나는 온실의 마법 보호막을 켰지만 곧바로 끄고 바닥에 앉았다. 보호막 속에서 시간의 흐름이 더 느려진 것이다. 그녀는 손끝의 마력 흐름을 조절해 가까스로 장치를 정지시켰다. 루카는 교수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전에는 이런 실험이 멋있어 보였어요.” “나도 그랬어.” 셀레나가 말했다. “확실하지 않은 건 마법으로 더 크게 확인하면 된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아무리 큰 주문을 써도 잘못된 질문은 제대로 답해 주지 않아.” 미라가 가져온 기록판에 세 기준점의 위험도를 적었다. ‘종탑: 신호 존재. 온실: 경로 오염. 제분소: 과거 기록 배출.’ 셀레나는 위험도를 매기는 기준까지 적어 두었다. 누군가 나중에 다른 판단을 내리면 그 이유를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점검을 마친 사람들은 온실 옆 창고에서 임시 회의를 열었다. 미라는 칠판 대신 나무판 위에 지도를 펼쳤고, 루카는 학생들이 쓰던 색연필을 빌려 왔다. 지도는 아름답지 않았다. 점검구와 위험 구역에 덧댄 종이가 겹쳐 누더기처럼 보였다. 그러나 복도에 들어서면 어느 방향으로 나와야 하는지는 그 누더기 지도에서 가장 잘 보였다. “우린 항상 이 동쪽 통로로만 돌아왔어요.” 미라가 말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출구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은 익숙한 길을 진짜 길로 생각하는 법이지.” 바르트가 말했다. “내가 제분소에서 그랬어. 수차가 고장 날 때마다 같은 밸브만 돌리다가 결국 배수로를 막아 버렸거든.” 그는 그림 한쪽에 작은 문을 그렸다. 평소 잠겨 있어 먼지만 쌓이던 제분소의 외부 점검구였다. 거기서는 마을까지 이어지는 낮은 경사로가 보였다. 종탑의 문이 갑자기 닫혀도 뒤쪽으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었다. 민규는 그 표시를 지우지 않고 옆에 물음표를 달았다. 실제로 열리는지 확인하지 않은 문을 피난 통로로 확정할 수는 없었다. 확인 작업에는 정해진 순서가 필요했다. 첫째, 바깥에서 작동 여부를 시험할 것. 둘째, 문을 연 뒤 안쪽의 공기와 바닥 상태를 확인할 것. 셋째, 실험 인원과 돌아온 인원을 따로 셀 것. 그 세 문장은 너무 평범해서 루카는 처음에 종이에 적을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다. “너는 이미 두 번이나 숫자를 하나 빼먹었거든.” 미라가 대답했다. “누나, 그건 내가 숫자를 못 세서가 아니고 시간이 중간에…” “그러니까 더 적어 둬야지.” 루카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종이 귀퉁이에 자기 손으로 ‘들어간 사람: 5. 나온 사람: 5’라고 적었다. 숫자를 적는 일이 그렇게 큰 용기처럼 느껴질 줄은 본인도 몰랐을 것이다. 셀레나는 잠시 강의실로 돌아가 학생들의 지난 과제물을 꺼냈다. 과거의 자신은 정교한 마법식이 그려진 답안만 좋은 점수를 주었다. 오늘 유독 눈에 들어온 건 한 학생이 그린 단순한 안내 그림이었다. ‘위험할 때는 아는 어른에게 알리고, 모르는 문을 따라가지 마세요.’ 교수는 그때 너무 쉬운 과제라고 평점도 매기지 않았었다. 그녀는 낡은 답안 뒤에 새 메모를 썼다. [실제로 사람을 대피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지식. 다음 학기 필수 수업으로 제안.] 그 메모를 보고 루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다음 시험에는 주문을 외우는 대신 출입문 위치를 외워야 해요?” “외우지 말고 지도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해.” 셀레나가 웃었다. “현장이 바뀌면 옛날에 외운 위치가 틀릴 수도 있으니까.” 창고 한쪽에서는 하른이 새 근무표를 접고 있었다. 그는 더는 근무자가 아니었지만 남들이 늦은 밤까지 돌아다니면 자꾸 문을 점검하고 싶어졌다. 에일라는 그가 불안해하는 것을 눈치채고 말했다. “우리가 잘못하면 당신이 다시 들어가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잘못이 보이면 알려만 주세요.” 하른은 몇 번이나 ‘정말입니까’라고 물은 뒤에야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종탑을 지키는 인원이 늘어난 것은 누군가 희생해서가 아니었다. 오르반은 평의회에서 시간표를 다시 짰고, 나디아는 의료 지원팀의 교대 시간을 적었다. 마을 경비대는 종탑 가까이에 안전선을 설치했다. 몇몇 사람은 민규에게 고맙다고 했지만 그는 “누구 혼자 한 일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말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실제 담당자 이름을 기록에 나란히 남겼다. 늦은 오후 민규는 온실 벽에 걸린 색깔끈을 확인하러 갔다. 낮에는 분명 세 개였던 끈 사이에 낯선 네 번째 끈이 묶여 있었다. 아주 얇은 검은 실이었다. 누군가 가까이에서 매듭을 지은 흔적은 없었다. 그는 곧바로 손으로 풀지 않고 사진을 남겼다. 서기관이 왔을 때 그는 실을 보고 낯빛이 변했다. “저 매듭은 폐쇄된 명령을 다음 구역으로 옮길 때 쓰던 표시입니다.” “누가 달았습니까?” “저는 모릅니다. 기록망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밖에서 들어온 사람일 수도 있고요.” 민규는 매듭을 멀리서 바라봤다. 작은 매듭 하나가 지붕 위의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자꾸만 사람을 빌려 일을 끝내려는 시스템이, 이제는 외부의 누군가와 연결되고 있었다. 강의실로 돌아오는 길에 한 학생이 울타리 밖에서 그들을 불렀다. 교내 출입은 아직 제한되어 있었지만 학생들은 교사들의 수업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학생은 작은 쟁반에 종이별을 여러 개 올려놓았다. “저희가 만든 표시예요.” 아이가 말했다. “길 잃은 사람을 찾아야 할 때 문고리에 걸어 둬도 돼요?” 민규는 별을 받았다. “좋은 생각인데, 지우려는 사람이 바로 찾아낼 수도 있겠구나. 표식의 의미는 필요할 때만 알려 주자.” 학생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별 한쪽을 접었다. 접는 방향에 따라 다른 문양이 나타났다. “그럼 이건 ‘안전’, 반대로 접으면 ‘들어오지 마’예요.” “좋아.” 민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표시는 작아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으면 큰 도움이 되지.” 학생이 돌아간 뒤 미라가 말했다. “우리 어른들끼리만 해결하려는 동안 학생들도 기다리고 있었네요.” “맞아.” 셀레나가 대답했다. “다만 책임까지 넘기진 말자. 저 아이들은 도울 수 있는 만큼만 도우면 돼.” 저녁에 셀레나는 금지된 실험 기록을 뒤졌다. 사고 조사 이후 봉인된 문서들 가운데 ‘사람의 의사를 묻지 않은 위치 이동 실험’이라는 제목이 있었다. 그녀는 그동안 봉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지금은 제목만 읽어도 왜 금지했는지 알 것 같았다. 기록에는 학교를 옮기는 마법식을 완성한 교수가 고의로 실험 참가자의 숫자를 줄여 적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 사람은 교수였네요.” 셀레나가 중얼거렸다. 문서의 마지막 장에는 오래된 사진이 붙어 있었다. 셀레나보다 훨씬 젊은 오르반, 사고 조사위원 에일라, 한국인 통역사 정은희. 세 사람 뒤에 키 큰 남자가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지워져 있었지만 손에는 반짝이는 검은 우산이 들려 있었다. 사진 뒤에 글씨가 적혀 있었다. [안전 검증 책임자 방문 예정. 기록보존총국 감사관 입회 시 원본 전량 제출.] 셀레나는 사진을 민규에게 보여 주었다. 검은 마차가 정문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떠올랐다. 마차에서 내린 사람은 아직 정식 면담을 신청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실험 기록에 그 사람의 그림자가 걸쳐 있었다. 민규는 사진 속 어머니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녀는 카메라를 바라보지 않고 뒤쪽의 열린 문을 보고 있었다. 누군가 그 문에서 부르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교수님.” 민규가 말했다. “저 사람이 나쁜 사람인지 좋은 사람인지보다 먼저 확인할 게 있습니다.” “뭘요?” “저 우산을 든 사람이 그날 문을 닫았는지, 아니면 닫힌 문을 뒤늦게 보러 왔는지요.” 그때 학교 종이 한 번 울렸다. 다른 종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가장 북쪽에 있는 기준점 아래에서 누군가 검은 우산을 펼쳤다. 햇빛이 쨍한 정오였는데도 우산 아래에는 밤처럼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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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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