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 십 분, 마을 광장의 임시 대피소에는 학생들 대신 따뜻한 수프 냄새가 가득했다. 학교 식당에서 가져온 큰 솥이 불 위에 걸려 있었고, 나디아와 조리사들이 늦은 저녁을 먹지 못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 주고 있었다. 위기가 커질수록 사람들은 사소한 일에 더 예민해졌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뜨거운 음식을 주는 일은 마법보다 중요한 대책일 때가 있었다.
민규는 마지막 대피 확인표를 손에 들고 있었다. 지상의 학생과 교직원은 모두 안전한 장소에서 확인됐다. 다만 지하에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고, 거울 속 아이는 역일 관리실에 남아 있었다. 학교 본관에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셀레나가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학교 기록망을 완전히 끊으면 경보가 멈출까요?”
“모릅니다. 하지만 아까 확인한 발전기와 물 공급이 정상이라면 일부 장치는 끊을 수 있겠죠.”
“몇 시간만이라도 멈출 수 있다면 구조 시간을 더 벌 수 있을 거예요.”
민규는 망설였다. 기록망을 끊으면 거울 속 아이와의 연락도 끊길 수 있었다. 서기관은 그 위험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피리를 들고 종탑 아래의 통신함 앞에 서 있었다.
“제가 먼저 연락을 맡겠습니다.”
“무리하지 마세요.”
“누군가 제게 오래전부터 맡겼던 일을 다시 배워 볼 생각입니다. 사람 발견. 통로 확인 요청. 그 두 문장만 제대로 지켜도 오늘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민규는 통신함을 임의로 뜯지 않았다. 바르트가 배선도를 확인하고, 셀레나가 마력의 흐름을 한 회선씩 점검했다. 그들은 학교를 이루는 여러 장치 중 역일 관리실로 향하는 하나의 회선만 분리하기로 했다. 전체를 끊는 것보다 위험이 적었다.
두 시 십삼 분, 첫 번째 회선이 분리됐다. 종탑 꼭대기의 푸른 빛이 꺼졌다. 운동장 가장자리에 비치던 기숙사 그림자가 한 겹 사라졌다. 마을 광장에서는 학생들이 조용히 박수를 쳤다.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두 시 십사 분, 두 번째 시계가 움직였다. 이미 멎었던 본관 시계가 빠르게 돌기 시작한 것이다. 분침은 한 바퀴, 또 한 바퀴를 돌았다. 하늘에는 같은 별이 두 개씩 나타났다. 일부 학생은 자기가 어제도 같은 광장에 있었던 것처럼 기억했다.
“회선을 끊었는데 왜 더 빨라지죠?” 셀레나가 소리쳤다.
에일라는 계산표를 보며 대답했다. “역일 관리실이 다른 회선을 찾아 붙고 있어요. 지금까지는 한 곳에서만 날짜를 조정했는데, 이제는 여러 건물에서 시간을 끌어오는 겁니다.”
민규는 즉시 작업을 중단시켰다. 예상과 다른 반응이 나타났다면 더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먼저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바르트는 손전등으로 작업 인원을 세고, 나디아는 학생들을 광장 중앙으로 옮겼다. 누가 어디에 서 있는지 직접 확인하는 모습이 기묘한 조명 속에서 이어졌다.
두 시 십오 분을 지나며 이상한 현상은 광장 가장자리부터 번졌다. 학교의 그림자가 길을 넘어오자 서 있던 사람들 가운데 몇 명이 갑자기 다른 말을 하기 시작했다. 빵집 주인은 자기 가게가 어제 폐업했다고 주장했고, 농부는 아직 오지 않은 다음 봄의 씨앗값을 걱정했다. 어떤 학생은 아침에 졸업식을 했다며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민규는 그들을 억지로 설득하지 않았다. 그들의 기억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틀렸다'고 외치면 더욱 혼란스러워질 수 있었다. 그는 마레와 함께 증상을 구분했다. 기억이 엇갈려도 현재 위치와 주변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 잠시 자기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사람, 몸을 움직이기 어려울 만큼 혼란스러운 사람으로 나눴다.
“저를 모르겠어요?” 어떤 학생이 울먹였다. 옆에 있던 친구가 안절부절못했다.
“아니, 네가 날 잊은 거잖아!”
두 아이는 서로 화를 냈다. 민규는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어느 쪽이 옳은지 판정하지 않았다. 마레가 먼저 아이들에게 앉을 자리를 내주고 물을 건넸다. 그리고 각각 자신이 확실히 기억하는 일을 말해 달라고 했다. 한 아이는 오늘 아침 함께 빵을 먹은 일을 기억했고, 다른 아이는 어제 비를 맞으며 뛰어간 일을 기억했다.
“둘 다 다른 시간을 보고 있을 수 있어.” 마레가 말했다.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할지는 함께 정할 수 있지.”
아이들은 천천히 숨을 골랐다. 한 아이가 친구의 손을 다시 잡았다. 그것으로 모든 기억이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이 자신을 도우려 한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다.
마을 광장 뒤편에서는 더 위험한 일이 벌어졌다. 대피소의 한쪽 통로가 갑자기 본관 복도와 이어진 것이다. 잠시 전까지 보이던 나무 울타리 대신 학교의 돌벽이 서 있었다. 학생 둘이 익숙한 교실을 보고 달려 들어가려 했다. 나디아가 몸으로 길을 막았다.
“그쪽은 오늘의 길이 아니에요!”
학생들은 황당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자기 교실이 바로 눈앞인데 왜 들어가지 못하느냐는 표정이었다. 나디아는 문에 손전등을 비췄다. 문 아래로 바람이 들어왔는데, 먼지의 방향이 이상했다. 바람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두 방향으로 동시에 흐르고 있었다.
민규는 바르트의 가벼운 실끈을 가져와 문 앞에 매달았다. 실끈은 반쪽이 안으로, 다른 반쪽이 밖으로 당겨져 팽팽했다. 출입구가 두 공간 사이에 안정적으로 열려 있지 않았다. 사람이 지나간다면 몸의 어느 부분은 다른 시간으로 옮겨질 위험도 있었다.
“이 길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는 분명하게 말했다.
나디아는 교실을 보고 울던 학생에게 부드럽게 물었다. “안에 두고 온 물건이 있니?”
“엄마가 준 연필이요.”
“그 연필이 소중한 건 알아. 하지만 지금은 네가 더 소중해. 건물이 안전해지면 함께 찾으러 가자.”
아이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디아는 작은 손을 잡고 대피소로 돌아갔다. 민규는 그 모습을 보며 학교가 기억 속에서 사라져도 사람들이 서로를 기억하게 돕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서기관은 급히 가져온 폐기 명령을 펼쳐 보였다. 그 안에는 지금 광장에서 일어난 현상과 비슷한 기록이 있었다. 삼십 년 전 최초 사고 때도 학교 복도가 마을 골목과 이어졌다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당시 문서에는 그 현상을 '대피소 확장 성공'이라고 표시했다. 사람들이 원치 않는 곳에 갇혀도 기록은 성공이라고 주장했다.
“이걸 누가 승인했습니까?” 민규가 물었다.
“원본에는 이름이 없습니다. 당시에는 승인자의 이름이 사라져서 대조가 불가능하다고 처리했어요.”
“그럼 승인자가 없는 결정을 자동으로 집행했다는 뜻이군요.”
서기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록망은 빈칸을 오류로 처리하지 않고 새로운 담당자를 요구했다. 그래서 항상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왔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하른과 민규, 그리고 거울 속 아이가 모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었다.
민규는 서기관을 향해 말했다. “지금 이름이 비어 있다고 새 사람을 끌어오게 두면 안 됩니다. 승인자가 불명확하다고 표시하고 실행을 멈추세요.”
서기관은 무거운 표정으로 손을 움직였다. 그러나 기록망이 거부했다. 검은 글씨가 계속 나타났다.
[필수 항목 누락. 대체 이름 지정 요청.]
셀레나가 말했다. “빈칸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군요.”
“그래서 우리가 사람을 보호하는 절차를 따로 만든 겁니다.” 민규가 답했다. “기록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사람을 움직일 수는 없죠.”
그는 안전 확인표를 펼쳐 광장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시 확인했다. 그 표에도 빈칸은 있었다. 아직 몸 상태를 확인하지 못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빈칸을 남긴 채로도 보호와 구조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것이 잘못된 기록망과의 가장 큰 차이였다.
두 시 십오 분의 마지막 몇 초가 지나자 광장 전체가 낮게 진동했다. 사람들은 발밑을 바라봤다. 땅은 여전히 단단했다. 그러나 어딘가에서 거대한 종이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났다. 민규는 알았다. 누군가 학교의 다음 페이지를 강제로 넘기려 하고 있었다.
두 시 십오 분, 종탑 아래 바닥에 문이 하나 나타났다. 문은 가로로 누워 있었고, 경첩이 하늘을 향해 있었다. 문 너머에서는 역일 관리실의 어린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을 끝내도 돼요?”
민규는 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손잡이에 손을 대지는 않았다.
“네가 끝내고 싶다면 끝낼 수 있어. 다만 다른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우리가 같이 방법을 찾자.”
“그럼 누가 다음 날을 열어요?”
“너 혼자 할 필요는 없어.”
그 말이 끝나자 문 아래로 작은 손이 나타났다. 손에는 종이로 접은 국화꽃이 들려 있었다. 꽃잎은 아홉 장이었다. 민규는 손을 잡으려다 멈췄다. 아이가 원하면 스스로 다가올 수 있도록 기다렸다.
서기관이 피리를 불었다. 세 번 짧고 두 번 길게. 구조 신호였다. 그러나 문 안쪽에서는 한 번도 듣지 못한 다른 신호가 돌아왔다. 두 번 빠르게, 한 번 길게, 두 번 빠르게. 미라의 비밀 박자였다.
루카가 멀리서 외쳤다. “누나가 거기 있어요!”
민규는 무전기를 들었다. “우물 통로, 들립니까?”
미라의 목소리가 잡음 사이에서 들렸다. “들려요. 안쪽 문이 하나로 합쳐지고 있어요. 우리 쪽 계단도 움직여요!”
“움직이지 말고 고정된 난간을 잡으세요. 인원수 확인하고 바로 알려 주세요.”
“셋이에요. 저랑 아이 두 명. 한 명은 다리를 다쳤지만 의식은 있어요.”
그때 큰 종이 울렸다.
두 시 십칠 분이었다.
종소리가 한 번 퍼지자 학교 본관의 가장 높은 첨탑이 흐려졌다. 두 번째 종이 울릴 때는 첨탑 아래의 시계가 사라졌고, 세 번째 종에서는 교실 창문이 하나씩 검게 변했다.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는 없었다. 오히려 무섭도록 조용했다. 학교가 사람들의 시야에서 천천히 지워지고 있었다.
“두 번째 경보!” 셀레나가 외쳤다.
마을 광장의 사람들은 학교를 보며 얼어붙었다. 어떤 아이는 자신이 왜 이 학교에 다녔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다른 학생은 친구의 손을 붙잡고도 같은 반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기록망이 건물을 지우는 동시에 그 건물과 이어진 기억까지 흔들고 있었다.
민규는 종탑을 향해 뛰지 않았다. 대피소의 스피커를 켜고 말했다.
“여기는 오늘의 대피소입니다. 학교가 보이지 않아도 여러분이 여기 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을 확인하고, 몸이 아프거나 기억이 혼란스러운 분은 안내소에 말씀해 주세요.”
그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문장은 분명했다. 학생들이 하나둘 주변을 돌아봤다. 자신들이 지금 서 있는 자리와 손에 쥔 물건을 확인했다. 나디아는 대피 명단을 다시 펼쳤고, 바르트는 지상의 발전기를 지켰다. 사람들이 같은 순간에 같은 장소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가장 먼저였다.
학교 본관이 절반쯤 사라졌을 때, 서기관이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그의 장갑에서 검은 종이들이 떨어져 나왔다. 그동안 폐기했던 명령들이 한꺼번에 펼쳐졌다. 종이들은 바람에 날리지 않았다. 공중에서 하나의 긴 줄을 만들며 역일 관리실 문으로 들어가려 했다.
“저것들을 막아야 합니다!” 서기관이 외쳤다. “폐기 명령이 새 원본이 되려 하고 있어요!”
셀레나는 마법진을 그렸다. 그러나 검은 종이를 불태우지는 않았다. 종이가 사라지면 어떤 명령이 잘못됐는지 증명할 증거도 사라질 수 있었다. 대신 그들을 하나의 원 안에 가두고 사본을 만들었다. 에일라는 기록의 날짜와 서명을 빠르게 받아 적었다.
민규는 하른에게 물었다. “아까 그 아이가 퇴근하면 학교가 사라진다고 했죠?”
“그렇습니다.”
“그러면 아이를 계속 일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학교를 지탱하는 일을 다른 장치로 옮겨야겠습니다.”
“그런 장치가 어디 있습니까?” 바르트가 물었다.
민규는 학교 설립 도면에서 오래된 피난동의 원래 목적을 떠올렸다. 대피소는 원래 사람들이 안전하게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이었다. 누구 하나를 가두어 날마다 문을 여닫게 하는 장치가 아니었다.
“역일 관리실을 유지하는 장치는 모르지만, 사람이 안전하게 빠져나갈 통로는 우리가 이미 준비했습니다. 오늘은 그게 먼저입니다.”
그는 종이 별의 신호를 우물 통로로 보냈다. 안쪽에서 두 번의 대답이 돌아왔다. 미라와 아이들이 살아 있었다.
민규는 숨을 내쉬었다. 학교 본관은 이제 보이지 않는 벽만 남은 듯했다. 그러나 그 안쪽에는 아직 누군가 손잡이를 붙잡고 있었다. 두 번째 경보는 시작됐지만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문 안쪽에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아저씨. 마지막 종은 제가 쳐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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