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여덟 시, 학교 정문 앞에 새로운 공고문이 붙었다.
[안전 확보를 위한 일시 폐쇄. 내일이 확인될 때까지 교내 잔류를 권장함.]
학생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봤다. 잔류를 권장한다는 말은 남으라는 뜻인지, 나갈 수 없다는 뜻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기숙사에 남은 학생들의 부모는 정문 앞에서 항의했고, 마을 주민들은 다시 집이 사라지는 게 아니냐며 장바구니를 움켜쥐었다.
오르반은 교내 방송으로 모두를 안심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가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방송기의 빨간 램프가 켜졌다. 어제와 같은 젊은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현재 출석부와 미래 출석부의 대조를 시행합니다. 미등록 인원은 안전한 장소에 머무르십시오.”
“그 안전한 장소가 어디냐고!” 누군가 외쳤다.
방송은 답하지 않았다.
민규는 공고문을 읽고 가장 먼저 하단의 날짜를 확인했다. 작성일이 내년으로 돼 있었다. 발신 부서는 역일 관리실이었지만 서명란에는 사람의 이름이 없었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빈칸만 있었다.
“이 문서가 누가 만든 건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학교에서 정식으로 결정한 출입 제한과는 별개입니다. 지금 확인된 위험 구역부터 안내하겠습니다.”
그는 오르반에게 대외 공지를 직접 읽어 달라고 부탁했다. 오르반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교장으로서 지금 할 일을 분명히 하기로 했다. 정문을 닫을지 말지의 문제를 넘어, 누가 어디에 머물러도 안전한지 실제로 확인하는 일이었다.
학교 식당이 임시 안내소가 됐다. 나디아가 동선을 바꾸고, 바르트는 이동식 난간을 가져와 길을 표시했다. 셀레나는 위험 구역과 안전 구역을 다른 색의 빛으로 구분했다. 그러나 그 빛은 손전등이나 등불로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어느 한쪽 표시가 갑자기 사라져도 사람들은 길을 찾을 수 있어야 했다.
이날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학교가 없어지나요?'였다. 민규는 같은 대답을 무심하게 반복하지 않았다. 질문하는 사람이 학생인지, 자녀를 기다리는 부모인지, 장사를 멈춘 주민인지에 따라 필요한 정보가 달랐다.
“건물 전체가 사라진다는 사실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일부 계단과 출입구가 다른 날짜로 연결되는 현상은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위험한 통로를 막고 다른 출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물었다. “그럼 안전하다는 뜻이네요?”
“아니요. 위험이 있으니 준비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그 대답을 좋아하지 않았다. 민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안심시키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 확신을 만드는 일은 구조대의 역할이 아니었다.
오후가 되자 학교 평의회가 소집됐다. 마법학부 대표들은 시간을 되돌리는 주문으로 일을 해결하자고 주장했다. 학교의 기록을 사고 이전으로 복원하면 경보 자체가 지워질 것이라는 논리였다.
에일라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사고 이전으로 돌리면 구조된 아이는 어떻게 되나요? 하른의 삼십 년은 없던 일이 됩니까? 미라와 다른 아이들이 보낸 편지는요?”
평의회 의장은 답을 하지 못했다. 사라진 시간을 되돌린다는 말은 편리했지만 그 시간 속에서 누군가 살아온 하루도 함께 지운다는 뜻이었다.
서기관은 자신의 서류 더미를 책상 위에 올렸다. 그동안 폐기했다고 믿었던 명령들이었다. 몇 장은 검은 잉크가 번져 글씨를 읽기 어려웠다. 한 장에는 '미등록 인원의 출구 차단'이라고 적혀 있었고, 다른 장에는 '대체 경비원 지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저는 폐기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폐기 기록은 원본실에 남습니다. 그 기록이 시행 대기 상태로 넘어갔다면….”
“누가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오르반이 물었다.
서기관이 고개를 숙였다. “원본실이 아니라 역일 관리실이 새로 명령을 부르고 있습니다. ‘내일의 기록’이라는 이름으로요.”
민규는 문서 한 장을 들어 올렸다. 뒷면에 흐릿한 숫자가 있었다. 10825. 거울 속 아이가 남긴 것과 같은 숫자였다.
“하른 씨가 삼십 년 동안 교대한 횟수가 만 팔백이십사 번이었죠.”
“그렇습니다.” 하른이 대답했다.
“그럼 이 숫자는 다음 교대를 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른의 표정이 굳었다. 한참 동안 쉬는 법을 배우고 있었는데, 다시 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규는 그의 두려움을 놓치지 않았다.
“숫자를 확인하는 일이 곧 출근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제가 그리 쓰지도 않겠습니다.”
서기관은 검은 종이에 남은 다른 문장을 읽었다.
[관리인 퇴근 조건: 오늘의 인원 전원 확인.]
그 말은 얼핏 온당해 보였다. 모든 사람이 확인되고 나면 근무를 끝낼 수 있다는 뜻이니까. 그러나 오늘의 출석부에는 한 번도 들어온 적 없는 사람이 있었다. 확인할 수 없는 대상을 일부러 남겨 놓으면 관리인은 영원히 퇴근하지 못한다.
“조건 자체가 함정이네요.” 셀레나가 말했다.
“누가 함정을 만들었는지 아직 모릅니다.” 민규가 대답했다. “원래 구조 지침이 이렇게 바뀌었을 수도 있어요.”
민규는 칠판에 원래 지침과 폐기된 명령을 나란히 적었다.
[사람 발견 → 통로 확인 요청 → 구조.]
[미등록자 발견 → 신원 확인 대기 → 퇴근 불허.]
작은 화살표가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사람을 구하는 일을 멈추고 보고서가 완성될 때까지 기다리게 만드는 변화였다.
루카가 말했다. “그럼 아저씨가 말했던 것처럼 고치면 되잖아요. 사람이 있으면 일단 꺼내는 거로.”
에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누가 명령을 받아들이느냐야. 기록망은 이미 오래된 문장을 진짜 규칙으로 여기고 있거든.”
“그러면 기록망을 끄면요?”
“학교의 여러 시설이 함께 멈출 거다. 난방, 급수, 보건실의 보호 장치까지.”
민규는 평의회의 표결을 미뤄 달라고 요청했다. 사람을 구하려다 학교 전체를 위험에 빠뜨려서는 안 됐다. 전원을 끊기 전에 무엇이 함께 꺼지는지 조사해야 했다. 그는 바르트에게 비상 급수와 발전기를, 마레에게 보건실 장비를, 셀레나에게 마력 공급의 독립성을 점검하도록 부탁했다.
평의회에서는 기록망을 끊는 문제만 논의한 것이 아니었다. 학생 대표와 마을 대표는 피해자들에게 누가 설명할 것인지 물었다. 삼십 년 전 학교에서 사람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지만, 그 사람들에게 실제로 무엇이 일어났는지 교직원조차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지금 이름이 없어지는 현상을 겪은 학생은 저희 반에도 있어요. 수업에서 빠진 것도 아니고 도망간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어떤 교사는 다음 시험에 응시하지 못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이게 공정한가요?”
평의회는 한동안 침묵했다. 교사들은 출결 점수와 시험의 공정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이름표가 고장 났다는 이유로 학생의 노력을 지우는 것은 다른 의미의 불공정이었다.
민규는 교장을 바라봤다. 학생의 질문에 답할 사람은 경비원이 아니라 학교의 운영자였다. 오르반은 자신의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런 불이익이 생기지 않도록 시험과 출석 규정을 조정하겠네. 구체적인 방식은 학생 대표가 함께 정했으면 한다.”
“말만 그렇게 하시면요?” 다른 학생이 물었다.
오르반은 잠깐 웃었다. “맞네. 말만 해서는 안 되지. 기록으로 남기고, 내가 지키지 못하면 다시 요구해도 좋네.”
서기관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숙였다. 문서가 사람을 대신하는 일이 무엇이었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존재였다. 그는 처음에는 모든 결정을 서류로 완성하려 했다. 이제는 사람의 선택이 기록보다 앞설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는 중이었다.
마을 대표 바르트는 자신의 역할을 또렷하게 말했다. “학교가 무너진다면 마을이 피해를 보는 것도 사실이오. 시설이 우리 물길과 연결돼 있으니까. 그런데 마을 사람들에게 아무 설명 없이 위험한 작업을 해서는 안 될 거요.”
에일라는 위험 구역과 예상되는 영향 범위를 도면에 표시했다. 도면에는 비어 있는 부분이 많았다. 어떤 구역은 아직 조사하지 못했고, 어떤 구역은 날짜가 뒤틀려 지도가 맞지 않았다. 그녀는 빈 공간을 감추지 않았다.
“여기는 모른다고 표시하겠습니다. 모르는 상태에서 작업하면 마을 쪽에 위험이 갈 수도 있습니다.”
바르트는 끄덕였다. “모른다고 적어 놓으면, 우리가 확인할 수도 있는 거요.”
그들은 작업 범위를 세 개로 나눴다. 당장 대피시킬 수 있는 건물, 기술 점검이 필요한 건물, 출입을 멈춰야 하는 건물. 학교는 마을 경비대에 정보를 공개했고, 주민들이 위험을 모르고 접근하지 않도록 안내판을 설치했다. 처음에는 불안이 더 커졌지만,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위험을 피해야 하는지 알게 되자 무작정 정문 앞으로 몰리는 일은 줄었다.
회의가 끝난 뒤 민규는 에일라와 오래된 문서를 대조했다. 사고 조사위원회의 원본과 학교 기록망에 저장된 사본 사이에 작은 차이가 있었다. 원본에는 '피난동으로 인원 이송'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사본에는 '피난동의 인원 보관'이라고 돼 있었다.
“이송과 보관이라.” 민규가 중얼거렸다. “말 하나가 사람을 물건처럼 바꿨군요.”
에일라는 얼굴을 굳혔다. “제가 그때 이 사본을 승인했을 가능성이 있어요. 상황이 급하니 통일된 용어를 쓰자는 말에 동의했거든요.”
“당시 기록에서 승인한 사람을 확인합시다.”
“저라면요?”
“그 사실도 남겨야겠죠. 지금부터 어떻게 수정하는지도 함께.”
에일라는 숨을 내쉬었다. 말로만 사과하는 일은 쉬웠다. 하지만 자신이 남긴 문장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끝까지 확인해야 한다는 사실은 무거웠다. 그녀는 오래된 사본을 찢지 않았다. 대신 잘못 번역된 단어 옆에 수정 이력과 근거를 붙였다.
그 작업을 보는 동안 루카는 더 오래된 낙서를 발견했다. 한 회의록의 빈칸에 연필로 작은 국화꽃이 그려져 있었다. 꽃잎은 여덟 장이었다. 아홉 번째 꽃잎은 그려지려다가 지워진 듯 연필 자국만 남았다. 옆에는 조그맣게 한글로 글씨가 적혀 있었다.
[한 장은 집에 두고 왔다.]
민규는 문장을 다시 읽었다. 꽃잎의 수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장소에 나눠 둔 기록을 뜻할 수도 있었다. 어머니는 하나의 원본이 모두 사라지지 않도록 일부를 집에 남겨 두었을까.
그는 자신의 기억 속 낡은 아파트를 떠올렸다. 어머니가 소중하게 보관하던 작은 재봉 상자, 그 안쪽에 붙어 있던 국화 자수. 아홉 번째 꽃잎은 어린 민규가 실수로 끊어 버린 적이 있었다. 그때 어머니는 버리지 않고 다시 꿰매면 된다고 웃었다.
“집에 남은 기록을 찾아야겠군요.”
셀레나가 물었다. “어느 집이죠? 한국에 있던 집인가요?”
민규는 대답하기 전에 기억을 더듬었다. 학교에 온 이후 자신의 옛 주소를 단 한 번도 제대로 말한 적이 없었다. 누군가 물으면 막연한 동네 이름만 떠올랐다. 그는 경비실에서 쓰던 수첩에 주소를 적으려 했다. 그러나 첫 줄에서 손이 멈췄다. 집 이름은 떠오르는데 번지는 생각의 끝에는 계단만 남았다.
“주소가…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의 잃어버린 주소를 찾아 다녔지만, 정작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기록망 어딘가에서 지워졌을지 몰랐다.
민규는 잊어버린 주소를 억지로 만들어 적지 않았다. 수첩의 빈칸 아래에 '기억나지 않음'이라고 썼다. 자신의 불완전한 기억까지 증거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셀레나는 그 말을 듣고 그를 바라봤다. 사람의 이름과 주소를 찾아 주던 경비원이 정작 자기 집을 잊었다는 사실은 이상할 만큼 슬펐다.
그날 밤 서기관은 남몰래 민규를 찾아왔다. 작은 책 하나를 품에 안고 있었다. 표지에는 ‘폐기물 관리대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것이 제가 폐기한 모든 명령입니다. 원래는 제가 볼 수도 없게 봉인돼 있었어요.”
“왜 지금은 볼 수 있죠?”
“두 번째 경보를 준비하며 봉인이 풀린 듯합니다. 그 안에서 제가 지운 것과, 누군가 제 이름으로 지운 것이 섞여 있습니다.”
민규는 맨 마지막 장을 펼쳤다. 가장 최근 날짜는 역시 내년이었다. 명령의 내용은 지금까지와 달랐다.
[학교 전체 이관. 원위치 확인 전 주민 접근 금지.]
“이관이라니, 학교를 어디로 옮깁니까?”
서기관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내일의 학교입니다. 그런데 그 장소는 달력에만 있고, 지도에는 없습니다.”
책장을 넘기자 검은 글씨 사이에서 하얀 국화꽃이 피어났다. 꽃잎은 여덟 장이었다. 원래 아홉 장이어야 할 문양에서 하나가 빠져 있었다.
민규는 사본을 만들고 원본을 서기관에게 돌려주었다.
“없어진 꽃잎부터 찾아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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