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 아이는 민규를 보고도 반가워하지 않았다. 웃지도, 손을 흔들지도 않았다. 아이는 문틀에 등을 붙인 채 누군가 잘못을 지적하기를 기다리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민규는 그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을 찍은 사진에는 이마 오른쪽의 작은 흉터가 있었다. 지금 거울 속 아이에게도 비슷한 흉터가 보였다. 하지만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사람이라 판단할 수는 없었다. 그는 유리 너머를 향해 손바닥을 보였다.
“들리니? 나는 여기 있는 정민규야.”
아이는 입술을 움직였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뜻은 읽을 수 있었다.
[오늘을 끝내면 사람들이 다 나가요?]
루카가 대답하려다가 셀레나의 팔에 가로막혔다. 아이가 어떻게 듣고 어떻게 대답하는지 알 수 없었다. 민규는 바닥에 붙은 얇은 나무판을 가져와 글씨를 썼다.
[나갈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 지금 그곳은 안전하니?]
아이는 질문을 읽더니 자기 발밑을 보았다. 바닥에는 검은 물이 한 줄씩 흘러들고 있었다. 물은 책상 다리에 닿아도 젖은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다음 순간 거울에 글씨가 떠올랐다.
[시간이 새고 있어요. 이 방은 어제도 물이 찼고, 내일도 물이 찰 거예요.]
“어제도 물이 찼는데 지금 마른 이유가 뭐지?” 루카가 속삭였다.
“물이 아니라 시간이 흐른다는 뜻일 수도 있어.” 셀레나가 대답했다.
민규는 거울을 한 번 더 살폈다. 거울 한쪽 가장자리에 아주 작은 나사가 있었다. 학교의 다른 거울과 달리, 이 거울에는 유리를 떼어 정비할 수 있는 틀이 있었다. 그는 직접 손을 대지 않고 나디아에게 유리 뒤편을 확인해 달라고 했다. 청소 직원은 웃으며 대답했다.
“이런 건 예전부터 봤어요. 남학생 기숙사 옛 세면장에서도 똑같이 생긴 틀이 나왔어요. 고장이라며 막아 놓았죠.”
그녀가 안내한 세면장은 오래전에 창고로 바뀐 곳이었다. 수도꼭지는 없고 타일 자국만 남아 있었다. 벽걸이장을 치우자 같은 황동 거울틀이 드러났다. 뒷면의 작은 글씨는 마모돼 있었지만 끝부분만 읽혔다.
[관찰용. 통행용 아님.]
“맞네요.” 민규가 말했다. “거울로 들어가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셀레나가 입을 삐죽였다. “설명서가 있으니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거군요.”
“설명서에 없더라도 안 들어갔을 겁니다.”
“그건 맞겠죠.”
둘의 실없는 대화가 끝나기도 전에 세면장 문이 저절로 닫혔다. 문에는 학교의 공식 도장이 찍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역일 관리실 접근 시도 감지. 현장 복귀 명령.]
민규는 비상 개방 장치를 꺼냈다. 평범한 쇠막대였다. 손잡이를 올려도 문이 열리지 않자 문틀의 틈을 살폈다. 잠금쇠가 움직이지 않았다. 잠금 장치가 고장 난 게 아니라 문 바깥의 복도 길이가 바뀌고 있었다. 문틈 너머로 아주 멀리서 학생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저희는 출입이 아니라 관찰 중입니다.” 그는 종이를 향해 말했다. “현장 접근을 금지하려면 근거를 제시해 주십시오.”
종이는 아무 답도 내놓지 않았다. 대신 학교 안내 방송이 나왔다. 누구도 방송실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흘렀다.
“모든 구성원은 현재 시간을 확인하십시오. 확인되지 않은 하루는 종료될 수 없습니다.”
그 말투는 사람이 직접 읽는 안내 같았다. 민규는 목소리를 녹음했다. 잡음 사이에 아주 희미한 한글이 끼어 있었다. 그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발음과 닮았다. 하지만 문장은 서툴렀다. 누군가 통역의 일부만 흉내 낸 듯했다.
그때 문 옆 거울에 아이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눈물이 뺨을 따라 흘렀다.
[빨리 가요. 감시자가 와요.]
거울 뒤에서 손이 하나 나타났다. 길고 마른 손가락에 하얀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서기관이 평소 입던 장갑과 같았지만, 서기관 자신은 보건실에서 마레의 진료 기록을 정리하고 있었다. 민규는 동료의 위치를 무전으로 확인한 뒤 이 손을 별개의 존재로 취급했다.
“이쪽에 누가 있습니까?”
하얀 장갑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칠판에 네모난 칸을 그리기 시작했다. 첫째 칸에는 ‘오늘’, 둘째 칸에는 ‘어제’, 셋째 칸에는 ‘내일’, 마지막에는 ‘미완료’가 적혔다. 아이가 마지막 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울었다.
민규는 손바닥 크기의 작은 종이를 거울 앞에 붙였다.
[오늘이 끝나지 않아도,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아이는 글을 읽는 데 한참이 걸렸다. 눈을 문지르던 아이가 종이 쪽으로 손을 뻗었다. 거울 양쪽의 손끝은 닿지 않았다. 그런데 아주 작은 종이 조각 하나가 거울 아래에서 떨어졌다. 먼지보다 가벼운 것이었다. 그 조각에는 아이의 글씨로 이름 대신 숫자가 적혀 있었다.
[10825]
하른이 말하던 교대 횟수보다 하나 많았다. 민규가 숫자를 읽는 순간 문 잠금쇠가 풀렸다. 바깥 복도가 제자리로 돌아오고, 나디아가 들고 있던 손전등 불빛이 문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세면장 밖으로 나왔다. 셀레나는 그제야 숨을 크게 내쉬었다. 마력이 강해도 공간 자체가 다음 날로 밀리는 상황에서는 주문을 믿을 수 없었다. 민규는 문을 닫은 뒤 경고 표식을 붙였다. 그날 세면장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였다.
세면장에서 돌아오는 동안 나디아는 민규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십 년 전 자신이 처음 학교 청소 일을 시작했을 때, 밤마다 누군가 벽 안쪽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다. 청소를 마치고 손전등을 끄면 세면장 벽 너머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처음 들은 날 나디아는 고장 난 환풍기라 생각했다.
“기계에서 노래가 난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셀레나가 물었다.
“마법학교잖아요. 입학 첫날부터 걸레가 혼자 춤추는 데 놀라지 말라고 하던데요.”
민규는 웃음을 참았다. 나디아는 그를 흘겨봤다가 다시 말했다.
“그런데 노래는 매번 똑같은 곳에서 멈췄어요. 마지막 소절이 '집으로 돌아가자'였는데, 거기만 나오면 뚝 끊겼죠.”
민규는 어머니가 어린 시절 불러 주던 노래를 떠올렸다. 그 노래의 마지막 소절도 집으로 돌아가자는 뜻이었다. 다만 두 노래가 동일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는 나디아에게 당시 들었던 선율을 기억나는 만큼만 불러 달라고 부탁했다. 나디아는 서툴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몇 개의 음이 귀에 걸렸다. 그가 공기실의 피리를 통해 처음 확인했던 구조 멜로디와 비슷했다. 만약 어린 관리인에게 그 노래가 퇴근 신호로 입력돼 있다면, 누군가 일부러 마지막 음을 제거했을 수도 있었다.
그들은 음악실의 오래된 오르간으로 선율을 확인했다. 음악 교사 리안은 피아노 건반을 누르며 음을 맞췄다. 셀레나는 마력으로 소리를 증폭시키지 않았다. 역일 관리실이 음악 신호를 출입 명령으로 오인할 수도 있어서였다. 그 대신 녹음기에 하나씩 음을 새겼다.
“네 음이 아니라 다섯 음이군요.” 리안이 말했다. “마지막 음에서 곡이 집으로 돌아온 것처럼 안정되는 느낌이 들어요.”
“그 음을 지우면요?” 민규가 물었다.
리안은 마지막 건반을 누르지 않았다. 선율은 어딘가 매달린 채 끝나지 않았다. 루카가 얼굴을 찌푸렸다.
“듣기 싫어요. 자꾸 다음 음을 기다리게 돼요.”
“바로 그런 느낌이겠지.” 리안이 말했다. “끝나지 못한 노래는 사람을 계속 기다리게 해.”
민규는 종이에 음을 적어 두었다. 누구도 마지막 음을 지금 당장 거울에 대고 불러 보지는 않았다. 구조 신호가 될 수도 있었지만, 아이가 갑자기 반응해 위험한 출입구가 열릴 수도 있었다. 실험을 하려면 그에 따른 대피와 확인이 필요했다.
돌아오는 복도에서 그들은 벽시계 하나가 거꾸로 돌아가는 것을 발견했다. 손전등을 비추자 초침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그런데 시계 아래에는 분명한 표식이 있었다. '시계는 사람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학생들에게 주의를 주기 위해 붙여 둔 문장이었다.
민규는 그 표식을 사진으로 남겼다. 자신의 어머니가 직접 쓴 글씨는 아니었다. 필체는 오히려 에일라의 오래된 회의록과 닮아 있었다. 삼십 년 전에도 누군가 같은 위험을 알아채고 경고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학교가 숨긴 기록을 찾는 일은 쉽지 않겠네요.” 셀레나가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숨긴 건 아닐 겁니다.” 민규가 대답했다. “나디아 씨도 노래를 기억하고 계셨고, 사서님도 대본을 찾아주셨으니까요. 기록망 밖에 남은 기억이 많을수록 길은 더 보이겠죠.”
나디아는 그 말을 듣고 머쓱하게 웃었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일이 너무 많아졌어요.”
“정확한 근무 시간을 적어 두겠습니다.” 민규가 말했다.
“설마 마법으로 월급까지 해결해 주실 건 아니죠?”
“그건 교장 선생님께 직접 청구하셔야 합니다.”
셋이 작게 웃는 순간 학교 방송기의 붉은 불빛이 다시 켜졌다. 조용한 건물 속에서 누군가 여전히 끝나지 않은 노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실험에 참여한 음악 교사 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곡을 끝낸다는 건 단순히 마지막 음을 누르는 일이 아닙니다. 앞에 있었던 모든 음이 이 마지막 음으로 이어져야 해요. 앞부분이 틀렸다면 마지막 음도 다른 뜻이 되죠.”
민규는 그 말을 수첩에 적었다. 그동안 여러 번 잘못된 명령을 고치려다 원본과 충돌한 이유도 비슷할지 몰랐다. 마지막 명령만 바꾼다고 그 명령에 이르기까지의 기록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때 음악실 문 앞에 서 있던 어린 학생이 손을 들었다. “저는 어제 밤에 거울에서 노래를 들었어요. 그런데 마지막에는 다른 목소리가 따라 불렀어요.”
“어떤 목소리였니?” 셀레나가 물었다.
“아주 화난 어른 목소리요. 빨리 끝내라고 소리쳤어요. 그래서 무서워서 도망갔어요.”
민규는 학생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자 바로 질문을 멈췄다. 이미 위험한 장면을 목격한 아이에게 무리하게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것은 옳지 않았다. 그는 아이의 보호자에게 연락하고, 그날 밤의 이동 경로를 확인하는 일은 어른들이 맡기로 했다.
학생이 돌아간 뒤 리안은 음악실 구석의 낡은 축음기를 가리켰다. 그 기계는 사고 당시 학교 행사에서 쓰던 물건이었다. 바늘 아래에는 마지막 음을 연주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홈을 긁어 놓은 흔적이 있었다. 누군가 기계를 망가뜨린 게 아니라 같은 음을 계속 피하려 했던 것이다.
“이렇게 만들 이유가 있었을까요?” 셀레나가 물었다.
“마지막 음이 위험할 수도 있었겠죠.” 민규가 대답했다. “하지만 누군가 더 큰 위험을 막기 위해 임시로 막아 놓았을 수도 있습니다. 단서를 보기 전에는 판단할 수 없어요.”
그는 축음기를 움직이지 않았다. 기계의 속도가 정상인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틀었다가 학교 전체에 신호가 퍼지면 되돌리기 어려웠다. 대신 축음기의 바늘과 음반 표면을 사진으로 남기고 담당 교사와 함께 봉인했다.
서기관이 달려왔을 때 민규는 종이 조각을 보여 주었다. 서기관은 하얀 장갑이 나타났다는 설명을 듣고 즉시 얼굴을 굳혔다.
“그것은 제가 아닙니다.”
“압니다. 방금 확인했어요.”
“그렇지만 저와 같은 문장에서 만들어졌을 수는 있습니다. 서류가 한 번 작성돼도 사본이 여러 장 생기니까요.”
“그러면 당신 말고 다른 서기관이 있습니까?”
“사람으로 치면... 제 그림자라고 해야겠지요. 제가 지운 명령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폐기 기록에 남으니까요.”
셀레나는 조용히 말했다. “폐기 기록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뜻인가요?”
서기관은 피리를 꺼냈다. 바람에 대자 한 번도 듣지 못한 음이 흘렀다. 익숙한 구조 신호가 아니었다. 저음의 길고 낮은 소리였다.
“실행을 기다리는 명령입니다.”
민규는 그 말을 들으며 먼 종탑을 올려다봤다. 가을 해가 지고 있었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데 학교 첨탑 뒤쪽에서만 희끄무레한 비가 내렸다.
루카가 손에 쥔 종이 별을 폈다. 그 안쪽에는 누나의 답장이 짧게 적혀 있었다.
[그 애를 이름으로 부르지 마. 네가 생각하는 그 아이가 아니야.]
민규는 멈춰 섰다. 미라가 거울 속 아이를 보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녀가 있는 지하 공간과 역일 관리실은 직접 연결돼 있었다.
“아저씨, 그럼 아까 그 아이는 누구예요?”
“아직 모르지.” 민규가 대답했다. “그래도 지금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있어. 도움을 요청했다는 사실이야.”
멀리서 두 번째 종이 울렸다. 첫 번째 종보다 더 낮고 길었다. 종탑 위의 시계는 두 시 십칠 분으로 멎었고, 아이가 남긴 종이 조각에서 숫자가 지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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