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레나 교수의 실험실은 학교에서 가장 안전한 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보안 마법이 열두 겹이고, 복도에는 침입자가 들어오면 개구리로 변하는 함정이 있었다. 천장에 붙은 감시의 눈은 교직원 명단을 실시간으로 대조했고, 실험 도중 폭발이 일어나면 방 전체를 일시적으로 다른 차원으로 옮기는 비상장치까지 갖춰져 있었다.
정민규는 문앞에 서서 물었다.
“비상 대피로는 어디죠?”
“공간 이동 주문이 있어요.”
“주문이 작동하지 않을 때는요?”
“그럴 리가….”
“어젯밤 지하에서 작동 안 했죠.”
셀레나가 턱을 다물었다.
민규는 손전등으로 문틀을 살폈다. 마법 회로 열두 줄이 자랑스럽게 빛나고 있었지만 가장 아래 줄에는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다. 비상시 강제로 열리는 기계식 잠금장치는 철사 한 올만 남기고 녹슬었다.
“보안이 열두 겹이면 들어오는 사람은 확실히 막겠네요. 나가는 사람도 막겠습니다.”
“선생님은 칭찬을 하시는 법이 없나요?”
“문에 손잡이 달아 놓으면 해 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실험실 구석의 작은 정령이 킥킥 웃었다. 셀레나는 정령에게 조용히 하라고 명령한 뒤 민규를 실험대 앞으로 안내했다.
실험대에는 세 개의 반투명 마법구슬이 놓여 있었다. 첫 번째는 파란색, 두 번째는 붉은색, 세 번째는 아무 색도 없었다. 셀레나는 출입 명부의 기록 변조를 연구하려고 밤새 장치를 만들었다.
“첫 번째 구슬에는 어제 있었던 사실을 기억하게 하고, 두 번째에는 그 사실의 사본을 저장해 뒀어요. 세 번째는 아무것도 저장하지 않았고요.”
“그리고?”
“봉인의 잔여 마나를 흘려 보냈더니 첫 번째와 두 번째에서 같은 장면이 사라졌습니다.”
“세 번째는요?”
“처음부터 없었으니 변화도 없었죠.”
민규는 실험대를 한 바퀴 돌았다. 구슬 아래의 철제 받침 세 개는 하나의 마법선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의 눈에는 구슬보다 받침이 더 중요해 보였다.
“구슬을 서로 바꿔 놓고 다시 해 봅시다.”
셀레나는 수학 문제를 틀린 학생을 보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건 변수 통제가 안 되는 실험인데요.”
“아니요. 오히려 같은 조건을 분리하는 거예요. 받침과 구슬 중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야 하잖아요.”
셀레나가 못마땅해하면서도 구슬을 옮겼다. 이번에는 첫 번째 구슬의 기억은 남았고, 빈 세 번째 구슬에 있지도 않았던 장면이 나타났다. 셀레나의 입술이 서서히 벌어졌다.
“기억이 구슬 안에 저장된 게 아니었어요.”
“받침 아래 있는 배선에 들어 있었겠죠.”
“하지만 그건 단순한 마나 공급선인데….”
“전원선도 잘못 연결하면 데이터 신호를 타고 들어옵니다. 사람 머릿속 기록도 이런 식이라면 저장된 곳보다 연결된 곳을 찾아야 해요.”
셀레나는 손가락으로 복잡한 수식을 허공에 그렸다. 수식이 세 갈래로 갈라졌다가 지워졌다. 그녀는 다시 처음부터 그렸다. 이번에는 구슬이 아니라 받침대 사이의 연결선을 중심으로 계산했다.
“명부와 학생의 기억을 연결하는 공명로가 있다면, 그걸 거슬러 올라가 지우는 장치에 닿을 수 있어요.”
“좋습니다. 그 장치에 전원 차단 스위치 같은 건 없습니까?”
“최고위 마법이라 그런 간단한 건….”
“왜 고급 기술일수록 끄는 방법이 없습니까?”
그때 실험실 문 바깥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누군가 보안 마법에 걸려 개구리로 변한 모양이었다. 잠시 후 개구리가 인간의 목소리로 불평했다.
“루카입니다! 교수님, 제발 좀!”
민규는 셀레나에게 손잡이를 달기로 한 약속부터 지키라고 했다. 셀레나는 붉어진 얼굴로 보안 마법을 풀었다.
루카가 들어왔을 때 그는 커다란 종이 상자를 끌고 있었다. 상자에는 새벽에 경비실로 옮긴 과거의 출입 명부가 들어 있었다. 루카는 밤새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하지만 얼굴에는 두려움 대신 묘한 결심이 떠 있었다.
“어제 찾은 누나 사진이 계속 마음에 걸려서요. 제가 전학 오기 전에 쓴 수첩을 찾아봤습니다.”
그는 낡은 공책 한 권을 펼쳤다. 페이지마다 구겨진 메모와 지워진 글자들이 있었다. 어느 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미라가 없어졌다. 다들 원래 외동이었다고 한다.]
그 아래에는 다른 날짜가 적혀 있었다.
[어제 메모가 이상하다. 나는 미라가 누군지 모른다. 하지만 이 문장은 찢지 말자.]
다음 페이지에서는 필체가 훨씬 거칠어졌다.
[나까지 잊기 전에 지하로 내려가야 한다.]
셀레나는 공책을 덮지 못했다. 루카는 자신에게 누나가 있었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알아냈고, 반복해서 잊었다. 누군가 지워 놓은 기억의 자리를 매번 다시 파헤친 셈이었다.
“그래서 어제 지하 자료실에 있었던 거구나.” 민규가 말했다.
“아마도요. 기억은 안 나요. 근데 제가 하던 짓이니까 맞을 겁니다.”
“과거에 누가 너를 도왔는지 기억하나?”
“그것도 안 나요. 다만 공책 뒤에 같은 문장이 세 번 적혀 있었어요.”
그는 마지막 장을 보여 주었다.
[종을 세 번 울리지 마라.]
셀레나가 손을 멈췄다. “봉인 의식에서 종소리는 보통 시작과 종료를 표시하죠. 세 번이라는 건….”
“지하에서 루카 이름을 세 번 부르려고 했습니다.” 민규가 말했다. “그때마다 학생의 학년 표식이 흐려졌어요.”
“그럼 종소리와 호명이 같은 장치에 연결되어 있는 거예요.”
실험실 구슬들이 갑자기 진동했다. 맨 아래 받침의 마법선이 붉게 달아올랐다. 셀레나는 실험을 끄려 했지만 주문은 먹히지 않았다. 아까 변조된 기억을 재현한 실험이 학교 전체의 기록망과 연결된 모양이었다.
“제가 일부러 연결한 게 아닌데요!”
“절연이 안 된 겁니다.”
민규는 실험대 밑의 케이블을 살폈다. 마나 공급선은 벽을 통과해 복도의 안전장치와 이어졌다. 실험실에서 기록을 재생할 때마다 학교 어딘가의 기록을 실제로 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교수님, 다음부터는 모형으로 먼저 테스트합시다.”
“이 학교에는 그런 규정이 없어요!”
“그럼 오늘부터 만듭시다.”
민규가 고립용 집게로 공급선 하나를 들어 올렸다. 셀레나가 절연 주문을 걸었다. 동시에 붉은 빛이 꺼졌다. 세 구슬에는 동일한 장면이 떠올랐다. 어떤 학생이 본관의 긴 복도에서 등을 돌리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림자는 분명 사람 하나인데 발걸음 소리는 둘이었다.
“누군지 보입니까?”
셀레나는 숨을 삼켰다. “제 은사예요. 베르안 교수님.”
“지금 어디 계십니까?”
“이십 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들었어요.”
“들었다고요?”
셀레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구슬 속의 인물이 고개를 돌렸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입술만은 또렷하게 움직였다.
[수정 전 원본을 보존해.]
장면이 사라졌다. 실험실 천장에 매달린 감시의 눈이 갑자기 안쪽으로 뒤집혔다. 셀레나가 놀라 위를 올려다봤다. 안구의 뒷면에는 문자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유효하지 않은 학생: 루카.]
[유효하지 않은 경비원: 정민규.]
민규가 쓴웃음을 지었다. “저희 둘 다 출입 불가 인원이 됐나 보네요.”
경보가 울렸다. 실험실의 열두 겹 보호막이 한꺼번에 닫혔다. 문 밖에서는 지나가던 학생들이 놀라 달아났다. 셀레나의 비상 공간 이동 주문은 구슬에서 쏟아지는 붉은 빛에 튕겨 나갔다.
“비상장치마저 막혔어요.”
“말씀드렸잖습니까.”
민규는 공구함에서 쇠톱을 꺼냈다. 실험실 창문은 봉인되어 있지만 창틀의 작은 빗물 배수관은 그대로였다. 수백 년 된 석조 건물도 물 빠지는 구멍을 막을 수는 없었다. 배수관 너머는 외벽이었다.
“저걸로 탈출하겠다고요?” 루카가 물었다.
“사람이 들어갈 수는 없지. 밧줄은 들어가겠지.”
그는 밧줄 끝에 무거운 금속 너트를 묶어 배수관에 밀어 넣었다. 셀레나가 공기의 흐름을 제어해 너트를 밖으로 끌어냈다. 그러자 너트에 달린 밧줄이 보호막 외측의 긴급 차단 레버를 걸었다.
“당겨요!”
루카와 셀레나가 동시에 밧줄을 잡아당겼다. 레버가 내려가며 보안막 한 겹이 풀렸다. 그 한 겹이 풀리자 나머지 열한 겹의 마나 공급선이 연쇄적으로 고립되었다. 방이 조용해졌다.
루카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교수님, 이 연구실 진짜 안전한 거 맞아요?”
“오늘부터 안전해질 예정이야.” 셀레나가 민규를 힐끗 보며 대답했다.
세 사람은 남은 구슬 속 장면을 기록했다. 민규는 본관 복도가 보이던 구슬의 바닥에서 아주 작은 문양을 찾아냈다. 도면에서 지워진 지하층 표시와 비슷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층수는 지하 1층이 아니었다.
[0층 — 기억 보존실.]
“땅 위도 아래도 아닌 층?” 루카가 물었다.
“건물을 지을 때 중간층을 숨겼을 수 있어.” 민규가 말했다. “기계실이나 배관 통로처럼.”
“그게 학교 전체 기억을 지우는 장치의 위치일까요?” 셀레나가 물었다.
“가 봐야 알겠죠. 대신 이번에는 제대로 된 도면부터 찾읍시다.”
민규는 문밖으로 나오며 경고 표지를 한 장 써서 붙였다.
[실험 전 전원 차단 확인. 비상문 상시 개방.]
표지는 간단했다. 처음에는 몇몇 학생이 낄낄 웃었다. 그러나 방금 전 교수가 갇혔다는 소식을 들은 학생들은 그 표지를 자세히 읽기 시작했다.
점심때, 민규는 실험실에서 발견한 연결 원리를 확인하려고 마법학교의 정문까지 걸어갔다. 정문에는 학생들의 등교를 기록하는 여섯 개의 구슬이 매달려 있었다. 학생이 지날 때마다 구슬 속에 작게 이름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교문 옆에서는 파란 깃털 모자를 쓴 문지기 정령이 졸고 있었다.
“지난밤에 사라진 학생들의 통과 기록을 보여 주세요.”
정령은 코를 훌쩍였다. “기록은 교장실 허가가 있어야 열람할 수 있습니다.”
“허가장 가져왔습니다.”
민규가 오르반에게 받은 열람 허가증을 내밀자 정령은 종이의 모서리를 열심히 핥았다. 종이를 먹어서 내용을 읽는 종류의 정령인 듯했다. 표정이 조금씩 진지해졌다.
“이상하군요. 기록이 없다는 결과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건 무슨 말입니까?”
“루카 학생의 통과 여부를 질문한 사람이 이미 세 명 있었어요. 세 번 모두 ‘기록 없음’이라고 답했지요.”
“누가 질문했습니까?”
“첫 번째는 교수님, 두 번째는 행정실, 세 번째는…”
정령의 작은 얼굴이 찌푸려졌다. 깃털 모자가 저절로 떨리더니 대답이 끊겼다. 정령은 갑자기 졸린 눈을 비볐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민규는 숨을 내쉬었다. 같은 질문을 하는 순간 정령의 기억이 초기화된 것이다. 그는 다른 질문을 했다.
“정문 구슬 여섯 개 중 밤에 가장 많이 켜지는 건 어느 겁니까?”
정령은 곧바로 세 번째 구슬을 가리켰다. 이번에는 표정이 바뀌지 않았다.
“저거요. 늘 새벽 두 시 십칠 분에 혼자 깜박거려서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민규는 구슬 아래의 돌판을 만져 보았다. 다른 돌판은 따뜻했지만 세 번째 돌판만 차가웠다. 마나가 흐르는 방향도 정문 안쪽이 아니라 건물 중앙의 종탑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돌판 둘레에 작은 분필 표시를 남겼다. 정령은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봤지만 지우지는 않았다.
“저 표시는 뭐죠?”
“문제가 생긴 곳에 붙여 놓는 점검 표시입니다.”
“마법으로 하시면 더 예쁠 텐데요.”
“예쁘면 누가 청소할 때 지워 버릴 겁니다. 분필은 지워진 흔적도 남으니까요.”
민규는 구슬을 건드리지 않고 돌아섰다. 만약 보이지 않는 장치가 이름을 한꺼번에 지우고 있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이 그 구슬을 지나가는 순간에도 사건이 진행될 수 있었다. 문제는 단지 지하의 봉인이 아니었다. 교문과 연구실, 출석부와 식당 접시가 모두 같은 기록망에 달려 있었다.
이런 식으로 연결된 학교를 한 번에 끄면 학생들이 위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누군가 또 자신의 이름을 잃는다. 민규는 두 가지 위험 사이에서 손전등을 쥐었다. 전기를 끊기 전에 비상등을 확보하는 것. 오래된 시설을 손볼 때 배웠던 가장 기본적인 절차였다. 자신이 마법학교에서 배워야 할 첫 번째 마법은 어쩌면 주문이 아니라 학생들이 불을 끄고도 나갈 수 있는 길을 찾는 일이었다.
해질 무렵, 셀레나는 방금 발견한 0층 문양을 다시 분석했다. 놀랍게도 마법구슬이 마지막으로 보여 준 장면은 과거가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일이었다. 연구실 창문에 세 사람의 그림자가 비치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천천히 사라졌다.
“미래의 경고일까요?” 루카가 물었다.
민규는 창문 아래의 날짜를 살폈다. 그림자 옆의 벽시계는 02시 17분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이제 익숙해진 붉은 문장이 떠 있었다.
[다음 삭제 대상: 관찰자.]
셀레나가 창백해진 얼굴로 말했다.
“우리가 실험하는 동안, 누군가 우리를 실험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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