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마법학교 식당에는 이름표를 잃어버린 학생 하나와 밤샘 근무를 마친 경비원 하나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루카는 죽을 앞에 놓고도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 식당 배식용 마법 접시는 학생 명부와 연결되어 있었다. 등록된 이름을 말하면 정해진 식단이 나오고, 이름이 없는 사람에게는 빈 접시만 지급했다.
“루카. 3학년.”
접시는 반짝인 뒤 말했다.
[해당 학생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한 번 더.”
[해당 학생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런 고물.”
민규가 자기 식판을 루카 앞으로 밀었다. 빵 두 조각과 구운 감자, 달걀 한 개가 올려져 있었다.
“일단 먹어. 기계가 사람을 모른다고 배까지 굶을 필요는 없지.”
“선생님 식사는요?”
“경비실에 컵라면 있어.”
“그거 먹고 일하시면 쓰러져요.”
“어제 죽을 뻔한 학생이 남 건강 걱정까지 하고.”
루카는 감자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다행히 식당 안에서 루카를 직접 기억하는 학생은 몇 명 있었다. 그러나 기숙사 명패에 붙은 사진은 사라졌고, 출석 확인을 담당하는 수업용 마법구슬은 그를 결석자가 아니라 외부인으로 판정했다. 학적이 실시간으로 엉켜 가는 상태였다.
민규는 수첩을 펼쳤다. 밤새 적은 기록 여섯 장은 아직 그대로였다. 다만 무전기로 들었던 ‘두 번째 정민규’의 말은 어쩐지 글로 옮길 때마다 순서가 바뀌었다. 마침표를 찍으면 처음 문장이 맨 아래로 이동하는 식이었다.
“글씨가 마음대로 이동하는 종이는 처음 봐요.” 루카가 말했다.
“나도 처음이야. 그래서 따로 복사했지.”
민규는 탁자 위에 세 개의 물건을 놓았다. 종이에 적은 기록, 가죽 장갑에 낸 흠집, 녹음 기능이 있는 지구산 낡은 휴대전화. 휴대전화는 통신이 터지지 않았지만 간단한 녹음은 가능했다. 밤의 무전 음성은 남아 있었다. 그런데 재생 버튼을 누르자 민규의 목소리 부분만 물소리로 바뀌었다.
“기억뿐 아니라 매체마다 지우는 방식이 다르군.”
“그걸 실험하신 거예요?”
“일단 고장 현상부터 알아야 수리를 하지.”
루카가 감탄하던 중 셀레나가 식당에 들어왔다. 교수는 밤새 씻지도 못한 듯 은발을 대충 묶고 있었다. 식당 안에서 가장 마법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가장 불행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학생들이 길을 비켰다.
“정 선생님, 교장실에서 호출했습니다.”
“서면으로 주세요. 저는 퇴근 후입니다.”
“교장 선생님께서 중요한 자료를 보여 주시겠답니다.”
“그럼 오전 열 시에 갑시다. 지금은 루카 학생 아침부터 먹여야 합니다.”
셀레나는 빵을 뜯는 루카와 빈 식판을 번갈아 보았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고 식당 담당 정령에게 직접 아침 식사 두 개를 주문했다. 정령은 최연소 교수의 마나 서명을 알아보고 무릎을 꿇듯 접시를 채웠다. 셀레나는 그중 하나를 민규에게 내밀었다.
“이 정도는 교수 재량이겠죠.”
“식권은 나중에 드리겠습니다.”
“아니, 그냥 드세요.”
“회계상 남으면 안 되잖습니까.”
셀레나는 하늘을 보았다. 천장에는 분명한 구름 하나가 떠 있었다. 실내 날씨 주문 담당자가 어제의 비 예보를 해제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교장실에 가는 길, 민규는 게시판 앞에서 멈췄다. 야간 순찰 근무표에는 자신이 적힌 칸 외에 새로운 칸이 생겨 있었다. 그 칸에는 ‘경비 2조 정민규’라고 적혀 있었다.
“우리 학교 경비조가 둘이었습니까?”
셀레나는 표를 봤다. “어제까지는 분명 한 줄이었는데요.”
“이건 출석부와 달라요. 누군가 일부러 근무표를 고쳤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못 쓰는 줄이거든요.”
민규는 근무표 왼쪽 여백을 가리켰다. 과거에 게시판을 고정하던 못자국을 피해 종이를 새로 붙였는데 두 번째 이름이 그 못자국의 아래로 들어가 있었다. 종이가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보이게 만들려면 표 전체가 다시 작성돼야 했다. 마법으로 글씨만 바꾼 것이 아니었다.
“이전 표가 남아 있을까요?”
“학교 기록실에서 보관할 겁니다.”
“그럼 지금부터 복사본을 확보해야겠네요. 원본이 나중에 또 달라질 테니까요.”
행정동 복도에는 오래된 초상화가 열두 점 걸려 있었다. 마법학교 역대 교장들의 얼굴이었다. 오르반의 초상화는 맨 끝에 있었고, 그림 속 노인은 차를 마시고 있었다. 민규가 지나가자 그림 속 오르반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출근 시간은 한참 지났네.”
“저는 퇴근 중입니다.”
“경비원은 경비실에서 근무해야 하지 않겠나?”
“경비실은 한 군데면 됩니다.”
초상화가 잠깐 굳었다. 벽에 걸린 그림이 대답을 하지 못하자 셀레나는 웃음을 참느라 고개를 돌렸다.
교장실 책상에는 낡은 출입 명부 한 권이 놓여 있었다. 가죽 표지가 갈라졌고 모서리는 불에 그을려 있었다. 오르반은 민규를 앉히지도 않은 채 페이지 하나를 펼쳤다.
[제103기 안전 대피 기록. 사건 시각 02:17.]
그 아래에 학생 이름 서른한 개가 적혀 있었다. 스물아홉 개에는 붉은 선이 그어져 있었다. 마지막 두 칸은 서로 다른 글씨로 적혀 있었다.
[정민규 — 외부 귀환.]
[정민규 — 내부 잔류.]
“어제 들었던 목소리가 두 번째 칸의 주인입니까?” 민규가 물었다.
“그럴 가능성이 크다.” 오르반이 답했다.
“가능성이요? 교장 선생님은 저를 알고 채용하셨다면서요.”
“외부로 돌아간 아이가 다시 돌아온다면, 내부에 남은 기록이 반응할 것이라 예상했다.”
“누가 기록을 남겨 뒀습니까?”
오르반이 입술을 다물었다. 셀레나는 교장 책상 위의 은시계를 바라보았다. 은시계의 유리 안쪽에는 열쇠 모양의 흉터가 있었다. 한밤중 오르반이 만지고 있던 물건과 같았다.
“내부 잔류라는 건 무슨 뜻이죠?” 그녀가 물었다.
“사건의 순간을 떠나지 못한 사람. 아니, 사람이었던 무언가.”
“그럼 저와 닮은 허깨비가 학교에서 일하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함부로 허깨비라고 부르지 마라. 그 아이도 여전히 자신이 진짜라고 믿고 있을 수 있다.”
민규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인간의 복제나 기억의 분리는 공장 안전교육에서 다뤄 본 적 없는 문제였다. 하지만 새로운 문제가 생겨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똑같았다. 현장을 나누고, 원인을 찾고, 관계자의 진술을 서로 대조하는 일.
“그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위험해.”
“더 위험한 건 출입 통제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에게 제 명의의 열쇠를 쥐여 주는 일입니다.”
오르반이 처음으로 웃었다. 미소에는 따뜻함보다 피로가 많았다.
“삼십 년이 지나도 하나도 안 바뀌었군.”
“제가 열 살 때도 시설 관리를 했습니까?”
“그때 너는 출입문 앞의 고장 난 표시등을 보고 울었지. 모두가 마법을 외울 때 혼자 전선이 끊어졌다고 소리쳤다.”
“그럼 제 사진이 왜 여기에 있습니까?”
오르반은 다른 서류를 꺼냈다. 아동 입학 기록이었다. 민규와 똑같이 생긴 소년의 사진 아래에는 출생지가 적혀 있었다.
[소속 세계 미상. 임시 보호 대상.]
민규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한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분명한 기억이었다. 초등학교 운동회, 낡은 전셋집, 어머니가 끓이던 미역국,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했던 축구. 이 세계의 학교에서 열 살 때 학생으로 지냈다면 그 시간은 어디에 들어가야 하는가.
“가짜 기억일 수도 있나요?”
“그 판단은 네가 해야 한다.” 오르반이 말했다.
“왜 자꾸 반만 답하십니까?”
오르반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 “전부 말하면 지금 봉인이 무너질 수도 있다.”
민규는 고개를 저었다. “정보를 숨겨서 사고가 나는 경우는 봤어도, 정확한 설명 때문에 건물이 무너지는 경우는 처음 듣습니다.”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오르반은 민규에게 지하 열쇠를 주지 않았고, 대신 30년 전 사건 당시의 야간 경비 기록을 기록실에서 열람할 수 있도록 허가장을 써 주었다.
기록실은 본관 북쪽 구석, 온도와 습도가 일정한 작은 공간에 있었다. 관리인 대신 책상 위의 펜 하나가 서류를 내주었다. 셀레나가 허가장을 올리자 펜이 혼자 움직여 두꺼운 장부를 끌어냈다.
“제103기 경비일지요.”
그 안에는 민규가 전날 적은 것과 비슷한 글씨가 있었다.
[01:48 서쪽 회랑 비상등 점검.]
[02:02 동쪽 별관 창틀 수리.]
[02:17 실종 신고.]
기록은 매년 반복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한 해에 한 번, 그다음에는 한 달에 한 번, 최근에는 일주일에 한 번. 늘 새벽 두 시 십칠 분에 실종 신고가 접수되었고, 신고 내용에는 경비원 정민규가 등장했다. 그런데 학교 인사 기록상 정민규가 실제 고용된 기간은 일주일뿐이었다.
셀레나는 손가락으로 마지막 기록을 짚었다. “이건 미래에 작성된 기록이에요.”
[금일 23:40 제2경비원 교대 완료.]
“오늘 밤에 교대가 있다는 말이죠.” 민규가 말했다.
“선생님, 퇴근하실 생각이 아직도 있으세요?”
“오늘 같은 날은 쉬어야 다음 사고가 났을 때 똑바로 판단합니다. 쉬는 것도 안전관리입니다.”
그는 장부 뒷부분에서 종이 한 장이 삐져나온 것을 발견했다. 오래전에 접힌 근무교대표였다. 거기에는 붉은 글씨로 수기로 작성한 주의 사항이 있었다.
[같은 이름의 경비원에게 열쇠를 양도하지 말 것.]
민규는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 화면에서는 글자가 비었다. 그러나 손으로 문장을 베껴 적자 얼마 동안은 유지되었다. 장갑의 흠집에 이어 또 하나의 단서였다. 내용을 이해하고 직접 기록하는 사람에게는 지워지는 속도가 느렸다.
그는 셀레나에게 빈 노트 한 권을 건넸다.
“교수님도 중요한 내용만 직접 적어 두세요. 저 혼자 기억하면 저부터 지워졌을 때 끝입니다.”
“자기 자신이 지워질 가능성을 그렇게 차분히 말씀하시는군요.”
“무섭죠. 그래서 대비하는 겁니다.”
셀레나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각각 같은 사건을 기록했다. 한쪽에는 물리적 변화와 위치를, 다른 쪽에는 마법적인 변화와 이름의 흔적을 적었다. 서로 다른 방법으로 확인하면 한쪽 기록이 바뀌어도 오류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점심 무렵, 루카가 기숙사에서 가져온 작은 상자를 들고 기록실로 들어왔다. 상자에는 낡은 학생 사진 열두 장이 들어 있었다. 사진마다 얼굴 한 부분이 흐릿했지만 구석에 붙은 메모는 온전했다.
“이거 제 물건입니다. 왜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어제 경비실에서 본 이름표랑 비슷해서요.”
맨 위 사진에는 어린 소녀가 있었다. 활짝 웃는 얼굴 아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미라. 졸업 예정.]
루카는 사진을 보고도 아무 말이 없었다. 민규가 물었다.
“아는 학생인가?”
“모르겠어요. 그런데 사진을 보면 울 것 같아요.”
루카가 손바닥을 펴 보였다. 거기에는 밤새 자다가 손톱으로 긁은 듯한 세 글자가 남아 있었다.
[누나를 찾아.]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사진 속 소녀의 눈동자에는 지하에서 루카에게 나타났던 금빛 문양과 같은 빛이 어렸다.
민규는 사진을 뒤집어 보았다. 사진 뒷면에는 작은 숫자가 반복되어 있었다. 31, 30, 29. 그는 그것이 졸업 기수나 학번이 아니라 사람 수를 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진마다 숫자는 하나씩 줄어들었다. 가장 마지막 사진에는 숫자 대신 빈 동그라미만 있었다.
“처음에는 서른한 명이었군.”
“뭐가요?” 루카가 물었다.
“자료실에서 본 실종 명단. 교장실 기록에도 서른한 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워진 건 스물아홉 명이고 두 명이 남았죠. 이 사진 묶음도 같은 숫자에서 시작합니다.”
셀레나는 사진 가장자리를 빛에 비췄다. 정교한 마법 섬유가 아주 얇게 박혀 있었다. 고급 보존 주문이었다. 마나만으로 유지되는 기록이 아니라, 촬영 당시 빛을 직접 감광시킨 물리적 사진이었다.
“기록이 지워져도 사진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있네요. 마법이 아니라 빛으로 얼굴을 새겼기 때문이에요.”
“그럼 저걸 인쇄한 사람이 누군지 찾을 수 있겠군요.”
“사진의 현상 마법이 삼십 년 전 구식이에요. 지금은 쓰지 않는 방식이죠.”
루카는 미라의 사진을 소중히 품에 넣었다. 입술을 몇 번 움직이더니 갑자기 물었다.
“제가 누군가를 잊었다면, 그 사람도 저를 잊었을까요?”
민규는 선뜻 답하지 못했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지 묻는 것과도 같은 질문이었다. 기억이라는 것이 서로 주고받는 종이에 불과하다면, 한 사람이 놓치는 순간 관계 자체가 사라지는 것일까.
“모르지.” 그는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넌 오늘 아침 네 사진이 바뀐 걸 봤고, 어제 밤엔 누가 네 이름을 부르는지도 들었잖아. 기억이 흐려진다고 실제 있었던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야.”
“그럼 찾을 수 있겠죠?”
“찾을 거다. 우선 어디서부터 지워졌는지 알아봐야 해.”
셀레나는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사진 한 장을 노트의 첫 페이지에 끼웠다. 그녀는 교수로서 수많은 고대 마법을 연구했다. 그러나 아무리 강한 주문이라도 누군가의 부재를 증명하기가 이렇게 어렵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보이지 않는 것을 찾기 위해, 이제는 남아 있는 작은 흠집과 낡은 사진부터 조사해야 했다.
바로 그 순간 기록실 뒤쪽에서 종이 한 장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경비일지의 맨 마지막 페이지가 저절로 열렸다.
[제2경비원 정민규. 점검 의견: 원본이 되돌아왔다. 복사본은 폐기한다.]
그 아래에는 막 젖은 잉크처럼 반짝이는 문장이 한 줄 더 생겼다.
[오늘 밤 열두 시, 경비실에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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