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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법학교 야간 경비원의 정체 · 2화
PAYLUA ORIGINAL · 제2화

2화. 되감기는 초침과 지워지는 이름

마법학교 야간 경비원의 정체 · 6,395자

오프라인 책장
지하층의 종은 한 번 울렸는데, 소리는 세 번 들렸다. 첫 번째는 귀로 들렸다. 두 번째는 돌계단을 타고 발바닥으로 올라왔다. 세 번째는 정민규의 손목시계 안에서 났다. 초침이 숫자 4를 지나 3으로, 다시 2로 후퇴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의 옆에 붙어 있던 루카의 그림자가 두 계단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교수님, 학생부터 위로!” 민규가 외쳤다. 셀레나는 루카의 팔을 잡고 마법을 펼쳤다. 발밑에 하얀 원이 그려지더니 두 사람의 몸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곧 원이 종이처럼 접혔다. 내려가던 계단이 위로 향하고, 위로 올라가던 두 사람은 제자리로 떨어졌다. “공간 좌표가 반전됐어요!” 셀레나가 말했다. “그러니까 계단이 잘못 설치됐다는 거네요.” “지금 그런 비유를 하실 때가—” “비유 아닙니다. 올라가는 방향을 믿으면 안 돼요.” 민규는 루카의 허리를 붙잡았다. 학생은 금빛 눈동자를 깜박이며 식은땀을 흘렸다. 문 너머에서 뭔가가 루카의 이름을 아주 천천히 읽고 있었다. 루. 카. 한 글자가 끝날 때마다 루카의 소매에 새겨진 학년 표식이 흐려졌다. “저 소리가 세 번 끝나면 어떻게 됩니까?” 셀레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대신 오르반을 보았다. 교장은 불 꺼진 복도 끝에 서서 손목의 낡은 은시계를 만지고 있었다. “기록에서 빠진다.” 그가 말했다. “이 학교가 학생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거지.” “그럼 출석부부터 들고 와야겠군요.” 민규는 주머니에서 시설 점검 수첩을 뽑았다. 땀에 젖은 페이지에는 조금 전 자신이 적은 시각과 루카의 이름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런데 글씨 끝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잉크도 지워집니다!” “기록을 역행시키는 봉인이야.” 오르반이 낮게 말했다. “일반 물질도 예외가 아니다.” 민규는 수첩을 덮었다. “그럼 사람 머릿속은요?” “그게 가장 먼저 무너진다.” “저는 아직 기억합니다. 루카, 3학년, 오른쪽 실내화 앞코에 잉크 얼룩. 지하에서 발견. 혼자 내려왔고요.” “정 선생님.” 루카가 힘겹게 웃었다. “실내화는 왼쪽인데요.” “좋아. 반박할 정신은 있구나.” 민규는 학생을 등에 업었다. 그리고 계단 위를 향해 걷는 대신, 벽을 손전등으로 비추며 발을 옆으로 옮겼다. 계단마다 높이가 달랐다. 그런데 측면의 난간은 완벽하게 같은 간격으로 박혀 있었다. 계단 자체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계단의 ‘방향’만 바뀌는 것이었다. “사람이 걷는 쪽을 판단하는 장치라면, 걸어가지 않으면 됩니다.” “무슨 소리죠?” “난간 타고 갑시다.” 셀레나가 마법봉을 든 채 굳었다. 그녀의 앞에서 마나가 전혀 없는 경비원이 학생을 업고 난간 위에 엎드렸다. 민규는 공구 벨트에서 두 개의 금속 고리를 빼내 난간에 걸었다. 한국의 낡은 체육관 천장을 수리할 때 쓰던 안전고리였다. “교수님, 저희를 위에서 당겨 주세요. 공간을 옮기는 마법 말고, 그냥 밧줄 당기는 힘으로.” “마법으로 밧줄을 당기라는 말인가요?” “힘센 분이 도와주셔도 됩니다.” 셀레나는 자존심을 상한 얼굴로 밧줄에 강화 주문을 걸었다. 그리고 팔로 당겼다. 셀레나의 손바닥이 새빨개졌고, 민규의 장갑은 난간을 긁으며 삐걱거렸다. 하지만 세 사람은 한 계단씩, 정확히 위쪽으로 움직였다. 그때 루카가 민규의 어깨 너머를 가리켰다. “아저씨. 저 밑에 누가 있어요.” 손전등 빛의 끝에서 어린아이가 올려다보고 있었다. 열 살쯤 된 소년. 헐렁한 제복에 왼쪽 눈썹 위로 흉터가 있었다. 이름표에는 ‘정민규’라고 적혀 있었다. 소년은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문 열지 마.” 민규가 눈을 깜박인 순간 소년은 사라졌다. “봤습니까?” “뭘요?” 셀레나가 되물었다. “아래에 어린애가….” 오르반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저기서 보이는 것은 믿지 마라.” “저도 압니다. 방금 돌아가신 어머니까지 봤으니까요. 그런데 그 애는 제게 문을 열지 말라고 했어요. 속일 거면 문을 열라고 하는 게 더 편하지 않습니까?” 교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민규는 그 침묵을 수첩에 적으려다 손을 멈췄다. 수첩은 이제 새하얀 종이뿐이었다. 그는 공구 벨트에서 유성 매직을 꺼내 자신의 손등에 쓰기 시작했다. 루카. 학생. 살아 있음. 글자는 지워졌다. 그는 이번에는 손톱으로 장갑의 가죽을 긁었다. 얇은 흠집은 사라지지 않았다. “기록을 지울 수 있어도 흠집까지 되돌릴 수는 없는 모양이네요.” 셀레나의 눈빛이 번쩍였다. “역행이 완전한 시간 조작이 아니란 말씀이군요.” “당연하죠. 정말 시간이 돌아갔으면 교수님 손바닥도 안 아파야죠.” 셀레나는 밧줄을 잡은 손을 바라보았다. 손바닥에는 조금 전 없던 물집이 잡혀 있었다. “이 공간은 시간의 방향을 보여 주면서, 기록에 해당하는 것만 이전 상태로 되돌리고 있어요.” “그럼 이름 말고 상처를 남겨 놓으면 학생이 사라지는지 알 수 있겠네요.” “상처를 낼 수는 없어요!” “장갑 말입니다. 학생은 다치게 안 해요.” 민규는 루카의 교복 허리띠에 가죽 장갑 한 짝을 묶었다. 장갑 표면에는 손톱으로 네 개의 굵은 선을 새겼다. 각각 루카의 이름 글자 수와 학년, 발견 위치, 현재 살아 있다는 사실을 뜻했다. 셀레나가 간단한 암호를 보태자 마지막 선이 작은 고리 모양이 되었다. 계단 위 돌문이 가까워졌다. 그러나 그 앞에서 오르반이 지팡이를 뻗었다. “잠깐. 지금 나가면 다시 들어오는 일이 훨씬 어려워진다.” “다시 들어갈 생각 없습니다.” “여기엔 네 과거가 있어.” “제 과거가 여기 있으면 지난 삼십 년 동안 누가 관리를 했어야죠. 지금은 실종 학생이 우선입니다.” 오르반은 어둠 속에서 한참 민규를 바라보았다. 낡은 눈꺼풀이 한 번 내려갔다 올라왔다. “삼십 년 전에도 네가 그 말을 했지.” 민규가 몸을 돌리려는 순간, 돌문에 없는 손잡이가 생겼다. 문은 열려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사이에는 물결치는 검은 막이 걸려 있었다. 셀레나가 지팡이를 대자 마법봉 끝이 새하얗게 변했다. 접촉한 부분의 문자들이 차례로 지워졌다. “이 문은 누군가의 이름을 대가로 요구하고 있어요.” 셀레나가 말했다. “루카를 데리고 나가면 학교의 기억에서 루카가 지워질 겁니다.” “그럼 못 나가나요?” 루카의 입술이 떨렸다. 민규는 복도 바닥을 다시 살폈다. 문틀은 오래된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고, 경첩 부분만 금속이었다. 처음 지하에 내려올 때 문을 연 방법은 봉인을 해독한 것이 아니었다. 튀어나온 핀을 뽑았을 뿐이었다. “문이 사람을 분류한다면, 문을 통과하지 맙시다.” 그는 난간과 경첩 사이에 금속 고리를 끼웠다. 셀레나는 그의 의도를 알아채고 눈을 크게 떴다. “벽을 뜯어내려는 건가요?” “비상구가 안 열리면 벽을 부숩니다. 화재 대응 원칙입니다.” “저건 삼중 봉인된 고대 석벽인데요.” “석벽 뒤에 빈 공간이 있잖아요. 먼지가 빨려 들어갔습니다.” 오르반이 급히 말했다. “그 벽까지 손상시키면 아래층이—” “지금 수리 중입니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 민규는 마지막 말과 함께 접이식 지렛대를 밀었다. 셀레나가 진동만 차단하는 주문을 걸었다. 돌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들렸다. 이음매 한쪽이 벌어지고 그 안에서 찬 공기가 쏟아져 나왔다. 사람이 겨우 기어갈 만한 틈이 생겼다. 민규는 루카를 먼저 밀어 넣었다. 셀레나가 뒤에서 받쳤다. 세 사람이 틈을 통과하자 검은 막이 세차게 요동쳤다. 돌문에는 붉은 글자가 떠올랐다. [규정 외 탈출. 관리자에게 통보.] “관리자요?” 민규가 코웃음을 쳤다. “출입문 관리자면 제가 맞는데요.” 그때 지하 전체를 흔들던 종소리가 뚝 멎었다. 잠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계단 너머에서는 마치 수백 명이 동시에 숨을 참은 듯 고요했다. 벽 틈에서 민규는 또 하나의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석재와 석재 사이에 원래 있어야 할 회반죽 대신 얇은 종잇장이 수백 겹 끼워져 있었다. 그 종이들은 같은 크기로 접혀 있었고, 모서리마다 붉은 선이 하나씩 그어져 있었다. 민규가 손가락으로 종이 한 장을 살짝 뽑자 아주 작은 글씨가 보였다. [출입자 본인 확인 실패.] 그 아래에는 서로 다른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처음에는 오래된 문서의 폐기분인가 싶었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니 명단 속 글씨들이 실시간으로 바뀌고 있었다. 조금 전에 ‘루카’였던 글자가 ‘로카’로, 다시 낯선 성명으로 흐트러졌다. 민규는 종이를 도로 끼우지 않았다. 대신 장갑 안에 접어 넣었다. “봉인 벽 안쪽에 명단을 넣는 이유가 뭘까요?” 셀레나가 숨을 골랐다. “봉인에 쓰이는 정식 기록은 보통 사본을 허용하지 않아요. 본래의 이름과 소유자의 동의가 있어야 기능합니다.” “그럼 이건 정식이 아닌가요?” “그럴 수 있어요. 누가 출입자를 흉내 내도록 기록을 조작한 거라면….” “도난 방지 장치인 척하는 출입자 바꿔치기군요.” 민규는 학교 현관에 붙은 마법 출입 인증표를 떠올렸다. 낮 동안 그 표는 학생의 얼굴 대신 교복의 색깔과 마나 서명만 검사했다. 타인의 교복을 입은 학생이 한 번 경비실 앞을 지나간 적도 있었다. 규정 위반을 기록하자 행정실에서는 ‘학교 마법이 실수했을 리 없다’며 신고를 반려했다. 그런데 마법이 사람을 확인하지 않는다면 실수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었다. “내일 제일 먼저 출입 인증 방식을 바꿔야겠습니다.” “지금 내일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셀레나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오늘 밤은 일단 끝내야 하니까요.” 루카는 민규의 등에 매달린 채 아주 작게 물었다. “선생님, 저 학교에서 쫓겨나요?” “왜?” “출석부에서 이름이 사라지면 존재하지 않는 학생이잖아요. 장학금도, 기숙사 방도….” 민규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정색했다. “출석부가 틀렸으면 출석부를 고쳐야지. 사람이 출석부에 맞춰 사라질 수는 없어.” 루카는 대답 대신 경비복 어깨를 꾹 움켜쥐었다. 손끝의 떨림이 조금 줄었다. 그 무렵 열린 돌 틈 바깥쪽으로 희미한 희뿌연 빛이 스며들었다. 밤새 켜 두는 별관의 비상 유도등이었다. 민규는 그 빛을 보고서야 자신이 얼마나 오래 지하에 있었는지 가늠했다. 안전표지는 화려하지 않았다. 학생들의 생명을 지키는 데 굳이 화려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그 방향으로 루카의 어깨를 밀고 낮게 말했다. “저 빛만 따라가면 됩니다. 교수님, 학생은 제가 놓지 않겠습니다.” 셀레나는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지팡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마법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루카의 등을 받쳤다. 세 사람은 동쪽 별관의 자료실 바닥으로 굴러 나왔다. 루카가 기침하며 몸을 일으켰다. 셀레나가 맥박과 마나 흐름을 살폈고, 민규는 다시 수첩을 펼쳤다. 지워졌던 글씨는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그는 새 페이지에 ‘02:17 지하 격리, 루카 구조, 비상문 옆 벽 임시 개방’이라고 적었다. “이제 정말 두 시 십칠 분이에요?” 셀레나가 물었다. 손목시계는 새벽 세 시 정각이었다. 무전기에서도 사감이 구조 요청에 응답하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위층에서는 마흔 분 이상이 흐른 셈이었다. “안전한 쪽 시간으로 기록합시다.” 오르반은 늦게 벽 틈에서 나왔다. 그는 찢어진 제복 소매를 털며 자신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는 듯 천장을 올려다봤다. “이렇게 빠져나오는 방식이 또 있을 줄은 몰랐군.” “전에도 있었습니다?” “전에는 누군가 문을 닫으면서 나머지를 내보냈지.” “그게 저였습니까?” “그때 네가 한 일은 단순한 구조가 아니었다.” 오르반은 말끝을 흐렸다. 민규는 더 묻지 않았다. 지금은 루카가 기숙사로 돌아갈 수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 먼저였다. 하지만 사감이 들고 온 출석부는 민규의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출석부의 ‘루카’ 자리는 분명히 있었다. 다만 학생 사진만 모르는 아이의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교수님, 이 사진 누구 겁니까?” 셀레나가 차갑게 굳었다. “처음 보는 학생인데요.” “이름 옆에 학적번호가 두 개네요.” 하나는 현재 학적번호. 다른 하나는 오래된 잉크로 적힌 번호였다. 세 자리만 남은 번호 위로 작은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대체 등록 완료.] 민규는 루카를 보았다. 루카도 자신의 얼굴이 낯선 학생의 사진으로 바뀐 것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경비 아저씨, 저 사람이… 저 대신 들어가려는 건가요?” “확인해 봐야지.” 그때 민규의 무전기에서 또렷한 목소리가 울렸다. 사감도 셀레나도 말하지 않았다. “동쪽 별관 경비실입니다. 정민규 선생님, 교대 준비하십시오.” 민규는 무전기를 움켜쥐었다. 목소리가 자신과 같았다. “교대할 경비원이 또 있습니까?” 사감은 당황했다. “아뇨. 우리 학교 야간 경비는 선생님 한 분뿐인데요.” 무전기가 다시 울렸다. “정민규 선생님. 제가 지하를 지키겠습니다. 당신은 이제 근무를 마치셔도 됩니다.” 그 말이 끝나자 민규의 수첩 맨 뒤 페이지에 낯선 글씨가 나타났다. [두 번째 경비원, 03시 00분 근무 시작.] 그 아래에는 아직 아무에게도 보여 준 적 없는 그의 서명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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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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