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에서 나온 첫 소리는 사람이 입으로 내는 소리와 전혀 달랐다.
민규가 불지 않았는데도 열쇠의 작은 구멍을 통해 낮은 휘파람이 흘렀다. 제방에서 불어온 바람이 철제 피리를 스치자 짧은 소리가 세 번, 긴 소리가 두 번 울렸다. 몇 초 뒤 학교 북쪽 계단에서 같은 신호가 돌아왔다. 사람 발견. 통로 확인 요청. 삼십 년 전 작업자들이 사용한 구조 신호였다.
“이게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라고 생각한 게 문제였군요.” 민규가 말했다.
서기관은 구멍을 들여다봤다.
“저도 자물쇠를 찾았습니다. 수백 개를 만들었죠. 맞는 구멍이 없는 건 제가 잘못된 열쇠를 가지고 있어서라고 생각했어요.”
“물건의 용도가 잘못 기록돼 있었던 겁니다.”
하른은 소리를 듣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곧게 폈다. 자동으로 대답하려는 몸의 반응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무도 그에게 출근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숨을 고르고 피리 소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마지막 두 번은 바람의 세기를 조절하라는 신호입니다.”
“기억났습니까?”
“아니요. 몸이 먼저 알고 있었어요. 오래 전에 누군가 저한테 설명해 줬던 것 같아요.”
그날 민규는 구조 신호를 학교 전체에 알렸다. 이름과 역할을 바꾸는 마법은 사용하지 않았다. 사람을 발견하면 세 번, 통로를 확인할 때는 두 번. 누구나 두드릴 수 있도록 마룻바닥을 가진 나무판을 배포했다. 마법을 못 쓰는 아이도 손으로 쳐서 신호를 보낼 수 있었다.
학교 연극부 학생들은 나무판을 무대 소품으로 만들겠다고 달려들었다. 원래 연습을 쉬라는 지시가 내려왔지만, 안전한 소리를 모두가 알아듣게 한다는 명분에 오르반도 웃으며 허락했다. 셀레나는 처음에는 시끄럽다고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가장 열심히 박자를 맞추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원래는 정교한 마법 신호망을 만들자고 했거든요.” 그녀가 말했다.
“그것도 필요할 겁니다. 다만 망이 고장 나면 손으로 두드릴 수 있어야죠.”
“마법학교에서 나무판으로 신호 보내는 걸 누가 믿겠어요.”
“아까 교수님이 제일 크게 쳤던데요.”
셀레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긴밤을 버티는 사람에게 웃음이 필요한 이유를 민규는 잘 알았다. 경보가 없는 시간이라고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누군가 마음의 힘을 잃지 않도록 돕는 일이, 다음 사고를 막는 준비가 될 수 있었다.
신호를 익히는 일은 쉬워 보였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 앞에서 시험하자 뜻밖의 문제가 생겼다. 키가 작은 학생은 큰 나무판을 힘껏 두드려야 했고, 손가락을 다친 교사는 아예 두드리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세 번 두드리는 속도를 너무 빨리 해서 한 번의 긴 소리처럼 들렸다. 마법을 쓰지 않는 도구라고 해서 누구에게나 같은 방식으로 편한 것은 아니었다.
연극부 학생 하나가 작은 망치를 만들어 왔다. 손에 힘이 없는 사람도 가볍게 칠 수 있도록 손잡이 끝에 고무를 씌웠다. 셀레나는 방마다 울리는 소리의 높낮이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고 나무판의 아래에 작은 금속판을 덧댔다. 민규는 그들이 제안한 개선안을 하나씩 시험해 봤다. 마법으로 소리를 멀리 보내는 기능은 별도의 장치로 만들되, 가까운 곳에서 듣는 기본 신호는 손으로 낼 수 있게 남겼다.
“잘 됐다고 끝난 게 아니네요.” 루카가 말했다.
“그래. 한 사람이 이해했다고 모두가 이해한 건 아니지.”
“그럼 모든 학생이 성공할 때까지 연습해야 하나요?”
“연습이 어려운 학생을 탓할 게 아니라 장치를 먼저 고쳐 봐야겠지.”
그날 오후에는 학교 뒤편의 작은 종탑에 신호기를 설치했다. 학교의 큰 종은 시간을 알려 주는 역할을 했지만, 그것과 구조 신호가 섞이면 학생들이 혼란스러워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신호기는 일부러 다른 소리를 내는 얇은 금속으로 만들었다. 오르반은 새 종이 울릴 때마다 창밖을 내다봤다. 과거의 사고와 닮은 소리가 들리는데도 이번에는 아이들이 무서워하지 않고 서로의 위치를 확인한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운 듯했다.
하른은 작은 종 앞에 서서 눈을 감았다. 소리가 울릴 때마다 몸이 저절로 경직됐다. 마레는 그에게 당장 적응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필요하다면 귀를 막아도 되고, 다른 사람이 종을 맡아도 된다고 했다. 하른은 그렇게 허락받고서야 자신이 종소리를 견디지 못하는 날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저는 그동안 소리가 나면 반드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먼저 확인하시면 돼요.”
“그게 이렇게 어렵군요.”
민규는 옆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습관은 위험을 없앴다고 바로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 수만 번이나 듣던 명령을 몸에서 지우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할 수 있었다. 그는 하른에게 신호 시험을 도와 달라고 억지로 부탁하지 않았다. 대신 원하면 멀찍이 앉아 관찰만 해도 된다고 했다.
마을에서는 경비대장이 새 신호 체계를 알리는 작은 안내판을 세웠다. 주민 중에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경비대장은 안내판 옆에서 직접 세 번, 두 번 소리를 내보였다. 아이들은 그것을 게임처럼 따라 했고 어른들은 혹시 필요할 때를 대비해 집에서도 연습했다.
그러던 중 한 노인이 나무판의 소리를 듣자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그는 오래전 제방에서 보조 작업을 했던 사람으로, 삼십 년 전에 똑같은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때 자신은 어떤 창고에서 두드리는 소리라고 생각해 보고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직도 그곳에서 들릴 줄 누가 알았겠소.” 노인이 말했다.
경비대장은 노인의 이야기를 바로 소문내지 않았다. 그가 말한 창고의 위치만 표시하고, 기억하는 다른 사람이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며칠 전까지는 오래된 기억을 말하는 것이 마을에 금기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사람이 사라진 경위를 제대로 찾으려면 누군가 듣지 못한 소리까지 모아야 했다.
민규는 노인의 진술을 전달받고 배수로 도면의 작은 빈 공간 하나를 다시 표시했다. 지금까지 폐쇄된 창고라고만 생각했던 곳이었다. 그가 알던 길이 아니라,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이 기억한 길이었다. 두 가지를 대조하니 벽이 실제보다 두껍게 그려진 부분이 보였다.
“여기 안쪽에 또 공간이 있습니다.” 민규가 말했다.
바르트가 손끝으로 종이를 두드렸다. “그럼 물길 위의 종소리는 누군가 저 공간에서 우리를 기다린다는 뜻일 수도 있겠군.”
그렇게 해서 첫 번째 종을 세울 정확한 위치가 정해졌다. 단순히 피리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각자 들었던 소리를 함께 놓았기 때문에 알게 된 위치였다.
새 신호기의 첫 단체 시험이 시작되던 오후, 학교의 반짝이는 마법 종탑이 잠시 멈췄다. 학생들은 모두 조용해졌다. 언제나 정해진 시각에 시간을 알려 주던 종이 울리지 않으면 다음 수업에 늦을까 봐 걱정하는 게 평범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조금 달랐다. 누군가 먼저 나무 신호판을 세 번 두드렸다. 다른 교실에서 두 번의 응답이 돌아왔다.
오르반은 창밖을 내다봤다. 학생들은 자신이 어느 교실에 있는지 서로 확인한 뒤, 종이 수리될 때까지 자리에 머물렀다. 선생님들은 당황했지만 학생들이 먼저 움직여 준 덕분에 복도가 혼란스러워지지 않았다. 교장은 오래된 학교의 문이 바뀌는 모습을 직접 보고 있었다.
그때 종탑에 남아 있던 마법진에서 짧은 붉은 글씨가 나타났다.
[등록되지 않은 경보 수신. 불법 행위 의심.]
교수 한 명이 서기관에게 연락하려 했으나 오르반이 말렸다. 구조 신호가 불법이라는 문구는 안전을 판단할 기준이 될 수 없었다. 실제로 사람을 위험에서 빼내고 서로의 위치를 알릴 수 있다면, 그 기능을 먼저 확인해야 했다.
오르반은 학생회에 새 신호에 관한 의견을 물었다. 아이들은 재미있다고 했고, 일부는 소리가 너무 커서 무섭다고 말했다. 교사는 신호를 더 부드럽게 울릴 방법을 고민했다. 누구도 한 번 만든 규칙을 무조건 따르라고 말하지 않았다. 고칠 수 있는 규칙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학교에 필요한 새로운 교육이었다.
시험이 끝난 뒤 하른은 종탑 아래에서 짧은 메모를 남겼다.
[첫 번째 자유로운 근무: 종을 지키지 않고 종의 뜻을 들었다.]
민규는 하른의 글씨를 보고 오래도록 웃지 않았다. 너무 오랫동안 빼앗긴 일상의 작은 기쁨이었다. 이제는 누군가의 이름으로 지켜야 하는 곳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곳이 생겨 가고 있었다.
오후, 바르트가 배수로 안쪽에서 돌아오는 소리의 간격을 분석했다. 그곳에서는 세 번의 짧은 신호가 바로 돌아왔지만, 두 번의 긴 신호는 유난히 늦게 돌아왔다. 민규는 막힌 통로가 소리를 튕겨 내는 것인지, 누군가가 신호를 듣고 한참 뒤에 답하는 것인지 구분해야 했다.
그들은 일정 간격마다 시간을 달리해 신호를 보냈다. 첫 번째는 짧게, 두 번째는 길게, 세 번째는 잠시 쉬고. 돌아오는 신호는 항상 조금씩 다른 간격을 가졌다. 사람이 듣고 판단해 대답하는 방식이었다.
“누군가 살아 있는 겁니까?” 루카가 물었다.
“현재 밖에서 사는 사람처럼 같은 시간에 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신호를 이해하고 반응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게 누나라면요?”
“우리가 고른 신호를 보내면 누나가 아는 방식으로 답할 수 있겠지.”
루카는 나무판 앞에 앉아 연극부가 무대 뒤에서 사용하던 장난스러운 박자를 두드렸다. 두 번 빠르게, 한 번 길게, 다시 두 번 빠르게. 그는 웃지 않았다. 그 박자는 어릴 적 누나와 비밀로 정했던 신호였다. 식탁 아래에서 ‘괜찮아?’라고 묻는 방식이었다.
긴 정적 끝에 배수로 안에서 답이 왔다. 한 번 길게, 두 번 짧게. 루카의 눈가가 붉어졌다.
“누나예요.”
“뜻이 뭔데?” 셀레나가 물었다.
“‘괜찮아. 아직 여기 있어.’예요.”
민규는 그 대답을 증거로 적었다. 루카가 그 신호를 알고 있다는 사실과 실제 응답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나누어 기록했다. 물론 둘을 합치면 미라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한 번의 감동적인 순간이 모든 위험을 없애 주지는 않았다.
미라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그들은 ‘들어가지 않고 도울 방법’을 물었다. 답은 아주 느리게 돌아왔다. 한 단어씩 끊어서 보내는 신호를 루카가 해석했다.
[물 / 길 / 위 / 종 / 소 / 리.]
“물길 위에서 종을 울리라고요?”
에일라가 도면을 확인했다. 배수로 바로 위에는 지상으로 이어진 긴 공기실이 있었다. 삼십 년 전 화재를 막으려고 격벽을 세웠지만 이후로 누구도 들어가 보지 못했다. 그곳에 종을 설치하면 구조 신호가 공기를 타고 더 깊이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민규는 대피 계획을 수정했다. 학생이나 주민을 위험한 배수로에 들이지 않고 지상의 공기실만 열어 보기로 했다. 에일라는 통로의 압력 시험 결과를 확인해 주었고, 바르트는 오래된 철판에 남은 균열을 찾아 표시했다.
작업이 시작되자 공기실 안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왔다. 사람들은 뒤로 물러섰다. 바르트는 익숙한 냄새라며 들어가려 했지만 민규가 막았다.
“여기서는 익숙한 게 안전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기다리는 동안 그들은 공기실 앞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누군가 위험한 곳에서 일을 시작하면 반드시 큰 사건이 벌어질 것 같았지만, 실제 작업의 상당 부분은 기다림과 확인이었다. 루카는 반쯤 식은 감자를 먹으며 미라가 귀환하면 제일 먼저 해 주고 싶은 일을 말했다.
“누나가 좋아하던 사과 파이를 굽고 싶어요. 근데 제가 만들면 매번 바닥이 타요.”
“그럼 바르트한테 굽는 법을 배워.” 민규가 말했다.
바르트가 빵 대신 제분소 기계를 아는 사람이라고 항의했다. 웃음이 터졌다. 그 틈에 하른은 조용히 감자 껍질을 벗겨 냈다. 처음에는 누군가 자신을 부를까 봐 모든 소리에 반응하던 사람이 이제는 식사 시간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해 질 무렵 공기실의 압력은 안전한 수치로 내려갔다. 에일라가 손을 들어 출입 가능을 알렸다. 그러나 민규는 서두르지 않았다. 공기실의 안쪽 벽에 아무 도면에도 없던 작은 문이 보였기 때문이다. 문에는 장식도 자물쇠도 없었다. 그저 어른의 허리 높이에 구멍 두 개가 뚫려 있었다.
루카가 구멍을 바라보며 말했다.
“피리 두 개를 꽂는 자리처럼 생겼어요.”
서기관이 맨 뒤에서 중얼거렸다.
“맞습니다. 하지만 하나는 저에게 있고, 다른 하나는 제가 삭제한 사람에게 있습니다.”
“누구한테요?” 민규가 물었다.
서기관이 아주 천천히 대답했다.
“이름 없는 아이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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