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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법학교 야간 경비원의 정체 · 37화
PAYLUA ORIGINAL · 제37화

37화. 지워진 통역 기록

마법학교 야간 경비원의 정체 · 6,023자

오프라인 책장
문서 열람실을 만들기 전날 밤, 에일라는 숙소에서 오래된 동료의 편지들을 꺼냈다. 사고 조사위원회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학교를 떠났거나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중 베르안은 마지막까지 외부 사람의 말을 직접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뛰어난 설계자였지만 발표 자리에서 사람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버릇이 있었다. 대신 한 번 본 설비의 모양을 정확하게 기억했고, 현장에 가면 벽을 손으로 두드려 속이 빈 곳을 찾아냈다. 에일라는 그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읽었다. [우리가 이 통로를 설계한 이유는 물건을 가두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고가 나면 누구라도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다. 이름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문이 고장 난 게 아니라 우리가 준비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녀는 편지를 오래 바라봤다. 사고 직후에는 베르안이 너무 이상적인 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서류가 쌓이고 외부의 비난이 늘자 빠르게 책임을 가릴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녀는 ‘기록이 먼저’라는 말에 동의했다. 기록이 사실보다 앞서도 된다고 생각한 순간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날 그녀는 민규에게 편지를 가져왔다. 서명만 있고 공식 도장은 없었다. 법적인 증거로는 약했지만 설계 의도를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이걸 더 일찍 보여 주지 못한 이유가 뭡니까?” 민규가 물었다. “베르안을 믿지 않았어요. 아니, 믿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의 말이 맞다면 제가 틀렸다는 걸 인정해야 하니까.” 민규는 편지를 접어 원본 봉투에 넣었다. “이번에도 그분이 무조건 맞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알아요. 그런데 그 말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네요.” 민규는 웃지 않았다. 누군가 과거의 책임을 이야기할 때는 쉬운 위로보다 끝까지 듣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에일라는 비로소 오랫동안 숨기고 있던 일을 털어놓았다. 사고가 난 날, 조사위원회는 출입문을 닫으라고 명령했고 그녀는 압력 이상을 알고도 현장 명령을 멈추지 못했다. 정확히는 멈출 권한이 자신에게 없다고 스스로 설득했다. “그때 제가 경보를 울렸다면 사람들은 나왔을까요?” “모릅니다.” “그게 제일 무서운 대답이네요.” “하지만 오늘은 경보를 들을 준비를 했습니다. 같은 상황이 와도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게요.” 에일라는 처음으로 고개를 깊이 숙였다. 민규는 그녀가 자기 잘못을 잊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못을 정확히 기억하기 때문에 지금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침이 되자 열람실의 창문으로 해가 비쳤다. 오르반은 일부 교직원이 과거의 책임을 밝히는 일을 방해할까 봐 걱정했다. 민규는 자료 보관 방식을 공개하되 민감한 이름은 당사자 동의 없이 공개하지 않는 규칙을 다시 확인했다. 누군가 비밀을 고백하는 과정이 또 다른 사람의 비밀을 강제로 밝히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됐다. 하른이 조심스럽게 열람실에 들어왔다. 자신의 과거가 기록에 어떻게 남아 있는지 읽어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는 한 손으로 낡은 근무복의 단추를 만지작거렸다. “제가 사람들을 가둔 기록이 있으면 보여 주세요.” “있으면 보여 드리겠습니다. 다만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당신 혼자 죄로 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는 기록을 찾아 읽었다. 대부분 서기관의 표준 문구였지만 몇 군데에는 직접 쓴 서툰 글씨가 남아 있었다. ‘밖에 사람 두 명’, ‘작은아이 울음’, ‘출구 열어 달라는 요청’. 교대가 수없이 반복된 시간 속에서도 그는 완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은 아니었다. 도와달라는 소리를 적어 둔 적이 있었다. 하른은 그 문장들을 소리 내 읽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강제로 나쁜 사람이나 좋은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됐다. 자신이 했던 일을 조금씩 확인하는 과정이 중요했다. 민규는 하른과 함께 기록의 끝에 새로운 줄을 추가했다. [현장 진술 확인 중. 단독 책임 판단 보류.] 오래된 종이 위에 그런 문장이 처음 생겼다. 그것은 면죄부가 아니었다. 적어도 누군가 충분히 확인하기 전에 영원한 유죄를 결정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열람실에서 자료를 검토하던 중 셀레나는 평범한 회계장부 한 권을 발견했다. 제방과 학교가 공동으로 구입한 소모품 내역이었다. 다른 날보다 사고 전날의 수량이 지나치게 많았다. 누군가 마른 빵과 담요, 어린아이용 신발을 대량으로 주문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사고가 날 걸 알았던 겁니까?” 루카가 물었다. “그럴 수도 있지만, 구조 훈련을 준비했을 가능성도 있어요.” 셀레나가 말했다. 민규는 물품이 실제로 어디에 들어갔는지 확인하려 했다. 주문서와 인수증의 날짜가 맞지 않았다. 일주일 뒤에 배달된 담요가 사고 하루 전에 이미 사용됐다고 적혀 있었다. 단순한 오류로 보기에는 내용이 너무 정확했다. 누군가 과거의 날짜로 기록을 옮긴 흔적이었다. 에일라는 창백해진 얼굴로 말없이 장부를 받아 들었다. “시간을 되감는 기록 보정이 여기에 쓰였어요. 원래는 물품이 늦게 도착해도 물류 명부를 맞추려고 만든 기능이었죠.” “물건의 날짜를 바꾸던 방식이 사람의 근무 날짜를 바꾸는 데까지 쓰인 건가요?” “그럴 수 있습니다. 더 확인해야 해요.” 민규는 물품명에 표시를 했다. 담요 스물아홉 장, 작은 신발 스물아홉 켤레, 금속 피리 두 개. 숫자가 다시 나타났다. 서기관이 실종자 수라고 믿어 왔던 스물아홉은 실은 구조 준비 물품의 수량일 수도 있었다. 소지품 보관함의 표식과도 이어지는 부분이었다. “그럼 실종자 숫자가 틀렸단 말이에요?” 루카가 물었다. “정확히 말하면 숫자의 뜻이 틀렸을 수 있어. 사람은 하나씩 확인해야 해.” 그들은 회계장부를 별도의 봉투에 넣고 발급 번호를 적었다. 물건의 수량이 사람의 존재를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눈앞에 놓였다. 서기관은 그 수량을 보자 깊이 숨을 들이켰다. 누군가 잘못 읽은 장부가 수만 번의 근무와 실종 사건을 만들었다는 가능성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민규는 서기관에게 작은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이 사실이 불편하다면 불편하다고 적어도 됩니다. 대신 확인하기 전에는 진짜라고 말하지 맙시다.” 서기관은 잠시 펜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적었다. [스물아홉은 사람의 수라고 확정할 수 없다.] 국화 문양의 열쇠는 자물쇠보다 먼저 사람들을 갈라놓았다. 학교 교수 중 일부는 그것을 원본실에 제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사람들은 악한 마법의 근원일 수 있으니 녹여 버리자고 말했다. 경비대장은 위험물이 발견되면 일단 보관해야 한다고 했고, 바르트는 너무 오래된 쇠라 녹이는 동안 독한 연기가 날 거라고 말했다. 누구의 의견도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서두르면 위험하다는 점은 같았다. 민규는 열쇠에 손대지 않고 서기관이 떨어뜨린 자리에 작은 상자를 씌웠다. “내 물건인데 그럴 권리가 있습니까?” 서기관이 항의했다. “가져갈 생각은 없습니다. 방금 사람들이 밀려서 다칠 뻔했으니까 잠시 보호하겠습니다. 원하시면 여기서 함께 지키시죠.” “당신은 저를 의심하는군요.” “의심을 기록하면 확인할 수 있어요. 믿는다는 말만 하면 나중에 서로 원망하게 됩니다.” 서기관은 이해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상자 옆에 섰다. 자신을 적으로 몰아붙이는 사람은 많이 봤지만 소유권을 인정하면서도 안전조치를 요구하는 사람은 처음인 듯했다. 오르반은 오래된 문서 창고에서 정은희의 통역 기록을 찾아냈다. 문서는 대부분 젖거나 불에 그을렸지만, 몇 장은 유리 틀에 끼워 보관되어 있었다. 학교의 공식 연표에는 당시 여러 마법사가 언어 장벽을 해결했다고 적혀 있었으나 실제 통역자 명단에는 그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 “왜 빠졌죠?” 민규가 물었다. 오르반은 대답을 망설였다. “외부인은 임시 협력자로만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름을 정식 명부에 올리면 학교가 다른 세계와 연결됐다는 사실을 설명해야 했고, 당시 이사회는 그걸 원하지 않았어.” “그럼 어머니는 일을 했는데 기록에는 없는 사람인 겁니까?” “그래.” “이 세계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일이 처음부터 특수한 마법 때문만은 아니었군요.” 교장은 고개를 숙였다. 관리하기 귀찮다는 이유, 학교의 명성을 지키고 싶다는 이유, 규정을 어기기 싫다는 이유가 사람을 기록 밖에 두었다. 마법의 오류는 그 틈을 따라 더 크게 자랐다. 민규는 문서 한 장에서 익숙한 한국어 문장을 찾았다. 번역 전 원문과 번역 후 문장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원문: ‘이 아이가 밖으로 나올 길을 찾아 주세요.’] [공식 번역: ‘미등록 물품의 반출 경로를 지정하라.’] 셀레나의 눈썹이 올라갔다. “완전히 다른 뜻이에요.” “저 말이 제대로 전달됐다면 상황이 달랐겠죠.” “이걸 누가 바꿨는지 알아야 해요.” 문서 아래에는 번역 검수자란이 비어 있었다. 그러나 비워진 칸의 테두리는 다른 칸보다 유난히 진했다. 누군가 글씨를 지우고 다시 그린 흔적이었다. 민규는 종이를 빛에 비추었다. 뒷면으로 눌린 자국이 희미하게 남았다. 글자가 아니라 세로로 긴 두 줄과 점 한 개. 국화 문양 옆에 늘 함께 붙어 있던 표시였다. “작성자 이름은 없지만 문서 번호가 있네요.” “그 번호를 확인할 수 있습니까?”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같은 시기의 다른 문서를 비교해야 해요.” 에일라는 오래된 직원 출입증을 가져왔다. 출입증에는 자기 얼굴도 낯설 만큼 젊은 그녀의 사진이 있었다. 구석에는 국화 문양과 같은 번호가 찍혀 있었다. 그녀는 출입증을 뒤집으며 손을 떨었다. “이 번호는 특정 사람 것이 아니에요. 사고 조사위원회 전체가 사용한 임시 인장입니다.” “그럼 어머니의 기록을 바꾼 사람이 위원회 안에 있었다는 뜻이군요.” “네. 저도 그 안에 있었고요.” 민규는 그녀를 몰아붙이지 않았다. 감리인과 조사위원의 책임이 같을 수는 없었다. 실제로 누가 어떤 문서를 작성했는지 확인하지 않은 채 누군가를 범인으로 정하는 순간, 또 다른 서기관이 되는 셈이었다. 그들은 보존 창고를 임시 열람실로 바꾸었다. 반출 기록을 남기고, 두 사람이 함께 장부를 확인하며, 원본에는 어떤 수정도 하지 않는 규칙을 세웠다. 루카는 열람자에게 작은 연필을 나눠 주었다. 연필 끝이 부러지면 자리에서 깎아 쓰면 된다는 것까지 말해 주었다. 민규는 그 아이의 진지함에 잠깐 웃었다. 낮이 저물어 갈 무렵 하나의 숫자가 자꾸 눈에 걸렸다. 통역비 지급 내역에 적힌 '17'. 출입 기록의 '17'. 조사 회의록에 적힌 '17'. 그런데 다른 이름들 옆에는 숫자가 붙지 않았다. 숫자는 사람이 아니라 절차를 가리키고 있었다. 셀레나가 오래된 회의록을 펼쳤다. [제17안: 미등록 아동의 임시 보호 및 출구 개방. 표결 연기.] 그 아래 다음 날의 기록이 있었다. [제17안 폐기. 사유: 대상을 특정할 명칭 없음.] “이름을 정하지 못해서 출구를 안 열었다는 겁니까?” 루카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민규는 담담히 말했다. “그때 누군가 다른 결정을 했어야 했죠.” 루카는 회의록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그는 누나를 찾아 달라는 부탁을 했을 때 자꾸 이름을 묻던 어른들을 떠올렸다. 이름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었다. 이름을 모른다고 돕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날 밤 열쇠를 담은 상자 안에서 가벼운 소리가 났다. 세 번 두드리고, 두 번 멈추는 규칙적인 신호였다. 민규는 곁에 앉은 서기관에게 물었다. “당신도 들립니까?” “들립니다.” “이 소리의 의미를 압니까?” 서기관은 오랫동안 침묵했다. 그리고 마침내 작게 말했다. “사람 발견. 통로 확인 요청.”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저도 처음에는 그 뜻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미등록 물품 이동 금지’라는 문장만 읽을 수 있게 됐어요.” 민규는 기록지를 내밀었다. “그러면 지금 기억난 문장부터 적읍시다. 잊지 않도록.” 서기관은 떨리는 손으로 펜을 쥐었다. 글씨는 매우 서툴렀다. 그러나 처음으로 그는 누군가를 명단에 등록하는 문구 대신 자신이 들은 소리를 그대로 적었다. [사람 발견. 통로 확인 요청.] 글씨를 마친 순간 열쇠의 국화 무늬 한가운데 작은 구멍이 생겼다. 문을 여는 용도처럼 보였던 쇠붙이는, 사실 소리를 전달하는 아주 작은 피리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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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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