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학생 명단 공개 열람회는 오후 세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다.
학교 교정에는 원래 작은 분수와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었다. 분수 위로 떠다니던 투명한 물고기들은 수업 시간을 알려 주는 장식이었지만, 이날은 물속으로 내려가 움직이지 않았다. 학생들은 기숙사 창문에서 광장을 내려다봤다. 누구의 이름이 공개될지 모르는 날, 학교는 마치 시험 전날처럼 조용했다.
열람회가 시작되기 두 시간 전, 마레는 보건실에서 작은 소동을 겪었다. 학생 둘이 서로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찾아온 것이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보였다. 두 학생 모두 학년이 다르고 생김새도 달랐지만 마법 명찰에는 똑같은 글씨가 떠올랐다. 서로 자신이 원래 그 이름의 주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얼굴이 빨개졌다.
마레는 이름표를 떼고 학생들을 각자 다른 의자에 앉혔다. 이름을 증명하라는 요구 대신 오늘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 물었다. 한 학생은 달걀 수프를 먹었다고 했고, 다른 학생은 빵을 먹었다고 했다. 두 학생 모두 평범한 대답을 하면서 점차 진정했다.
“지금 이름표가 같다고 해서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야.” 마레가 말했다.
“그럼 누가 진짜예요?”
“둘 다 여기 앉아 있는 진짜 사람이지.”
학생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마법 명찰이 이름을 증명한다는 믿음이 워낙 강해서 그런 대답이 낯설었다. 마레는 종이에 두 학생의 손도장을 찍고 각자가 동의한 만큼만 확인 내용을 남겼다. 둘 중 누구의 이름이 잘못 표기됐는지는 나중에 보호자와 함께 확인하기로 했다.
그 소식은 금세 교장실로 전해졌다. 오르반은 학생의 이름이 바뀌는 현상이 복구 과정에서도 일어날 수 있음을 인정했다. 일부 교수는 고유 식별 마법을 개발하자고 제안했지만, 셀레나는 마법이 다시 오류를 일으킬 가능성을 먼저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가 마법을 싫어하는 건 아니에요.” 셀레나가 말했다. “잘못된 기록 위에 더 강한 기록을 얹는 방식이 위험하다는 거죠.”
교수들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들에게 강력한 주문은 훌륭한 업적이었다. 그러나 지난 몇 주 동안 학교가 겪은 일은, 강한 마법이 언제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줬다.
민규는 오르반에게 단순한 질문을 했다.
“학교에 학생이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창구가 있습니까? 명단에 이름이 없거나 잘못 적혀 있어도요.”
“보건실이 있지.”
“보건실에 들어가기 전에 출석부 확인이 필요합니까?”
오르반은 대답하지 못했다. 실제로는 필요했다. 지난 삼십 년간 학생들은 입실할 때마다 작은 마법진을 통과해야 했다. 명단에 없는 학생은 문 앞에서 돌아서야 했다. 그동안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르반은 직접 보건실로 갔다. 그는 교장 권한으로 출입 확인 기능을 잠시 끄고 대신 교사가 눈으로 인원을 확인하게 했다. 처음에는 마법진이 꺼지자 복도에 긴 정적이 흘렀다. 교직원들은 그 정적을 불안하게 여겼다. 하지만 그날 오후 이름표가 오류를 일으킨 학생들도 아무 문제 없이 치료를 받았다.
그 작은 변화는 열람회를 앞둔 학교에 전해졌다. 어떤 학생은 ‘이름이 없어도 치료받을 수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며 안도했다. 어떤 학생은 지금까지 그게 안 됐다는 사실에 화를 냈다. 민규는 그 반응들이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목숨을 지키는 규칙은 당사자가 실제로 쓸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광장으로 향하는 길, 셀레나는 민규에게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저는 당신이 마법을 못 쓰니까 학교가 불편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불편한 건 맞죠. 청소 도구 하나 찾는데도 주문을 외우라잖아요.”
“그런데 마법이 없는 사람이어서 보이는 게 있군요.”
“사실은 마법이 없어서라기보다, 안 되는 걸 안 된다고 말해도 되는 사람이라서 그런지도 모르죠.”
셀레나는 그 말을 천천히 되뇌었다. 그녀는 수석 마법사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화려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할 때마다 자신이 실패한 것처럼 느꼈다. 이제는 안전을 위해 ‘아직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이 전문성을 잃는 일이 아니라는 걸 배워 가고 있었다.
두 사람 앞에서 광장의 종이 울렸다. 공개 열람회가 시작될 시각이었다.
마레가 만든 새로운 보건실 규칙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시험대에 올랐다. 기숙사에서 학생 한 명이 숨이 막힌다며 찾아왔는데, 명찰에 적힌 이름은 아침과 달라져 있었다. 학생은 자기가 사칭자로 오해받을까 봐 문 앞에서 버티다가 결국 복도에 주저앉았다.
마레는 이름을 묻기 전에 맥박과 호흡을 확인했다. 셀레나는 남아 있는 이상 마법이 환자의 목을 조이고 있는지 살펴봤고, 교사는 그 학생과 함께 있던 친구를 불러 상황을 들었다. 실제로는 그림자가 늘어나는 현상 때문에 놀라 과호흡이 온 것이었다. 위험한 마법에 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당사자의 공포는 진짜였다.
“진짜 이름을 말하면 치료해 준다고 할 줄 알았어요.” 아이가 속삭였다.
“우리는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을 먼저 살펴봐.” 마레가 대답했다. “이름에 오류가 있으면 그건 나중에 고치면 돼.”
학생은 물을 조금 마신 뒤 친구의 손을 잡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자신의 이름이 제대로 적히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아무도 내보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크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소동이 지나간 뒤 마레는 교장실에 보고서를 냈다. 보건실 출입 규칙을 바꾼 뒤 처음 맞은 응급 상황에서 문이 제대로 작동했다고 적었다. 그런데 오르반은 그 보고서의 맨 아래에 짧은 문장을 추가했다.
[이번 조치로 알게 된 사실: 기록 오류가 있더라도 치료는 가능하다.]
민규는 그 문장을 읽고 수첩 한쪽에 옮겨 적었다. 종이 위의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한 일은 오래 남는다. 학교가 훗날 이 사건을 잊더라도, 누군가 같은 문제가 생겼을 때 이 기록을 보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광장으로 향하는 복도에는 학생들이 새 안내문을 붙이기 시작했다. 화려한 문구는 없었다. ‘친구가 넘어지면 먼저 일으켜 주기’, ‘고장 난 문은 억지로 열지 않기’, ‘모르는 이름이라고 놀리지 않기’. 민규는 문장 하나를 읽다 웃었다. ‘경비 아저씨에게 밤에 간식 가져다주기.’
“이건 누가 썼죠?”
뒤에서 루카가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다. 셀레나가 크게 웃었다. 오래된 규정 하나가 바뀌자 학생들은 자기 학교를 새롭게 쓰기 시작했다.
루카는 광장으로 나가는 민규에게 손전등을 건넸다.
“오늘은 대낮인데요.”
“쓸 일은 낮에도 많다.”
“아니, 다른 뜻이에요. 사람들이 보고 있으니까 혼자 서 있지 말라고요.”
민규는 손전등을 받았다. 아이가 오래전부터 자기만의 방식으로 ‘함께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르반은 열람회 자체를 금지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학교 법규를 담당하는 교수들은 서기관이 공식 권한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명단이 만들어진 뒤로 삼십 년 동안 그것은 거의 신성한 문서처럼 취급되었다. 아무도 이름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믿을수록, 문서를 만든 사람의 힘은 커졌다.
민규는 광장에 나가기 전에 세 가지 자료를 준비했다. 실제 현장에서 확인된 발자국 사진, 이름 없이도 주소를 복구했던 주민들의 증언, 그리고 소지품 보관함의 원래 경보 문구. 이를 한 종이에 섞지 않고 각각 다른 봉투에 넣었다.
“왜 따로 나눠요?” 셀레나가 물었다.
“서기관이 한 장을 없애도 다른 둘이 남게요. 그리고 서로 다른 자료를 하나의 사실처럼 말하지 않으려고요.”
광장에는 회색 천이 덮인 거대한 게시판이 세워져 있었다. 서기관은 잿빛 외투를 단정히 여민 채 사람들 앞에 나왔다. 목소리는 평소보다 또렷했고, 누군가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우리 학교를 어지럽힌 문제의 핵심은 등록되지 않은 이름입니다. 오늘 열람회를 통해 오랜 혼란을 끝내겠습니다.”
민규는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제야 손을 들었다.
“열람 전에 질문 하나만 하겠습니다. 명단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존재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 확인합니까?”
“관리자 서명과 기록상 이름입니다.”
“그 이름을 처음 적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서기관이 대답했다.
“저입니다.”
“그럼 지금까지 한 사람의 서명만으로 누가 존재하는지 결정하셨군요.”
사람들 사이에서 낮은 소리가 났다. 서기관이 설명하려 했으나 민규가 먼저 첫 번째 봉투를 열었다.
“마을에서는 본인의 집 그림과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증언으로 주소를 되찾았습니다. 누가 사는지 확인하는 데 다른 집주인의 이름을 빌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임시 조치입니다.”
“그럼 임시 조치를 정식 절차로 만들 수 있는지 논의합시다. 적어도 개인 기록을 공개하기 전에요.”
그때 광장의 게시판에서 천이 저절로 벗겨졌다. 하얀 글자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학생들은 자신과 비슷한 이름이 지나갈 때마다 뒤로 물러섰다. 마레가 서둘러 보호막을 폈지만 글씨는 방어막 안쪽에도 비쳤다.
[공개 대상 1: 이름을 지닌 자. 역할: 대기.]
[공개 대상 2: 이름을 잃은 자. 역할: 교대.]
[공개 대상 3: 이름을 두 번 지닌 자. 역할: 회수.]
루카가 낮게 말했다.
“이건 사람 이름이 아니라 역할 명단인데요?”
민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명찰 두 개에 관한 단서와 이어지는 부분이었다. 그는 게시판 아래로 걸어가 사람들 앞에 서서 자기 가슴의 경비 배지를 떼었다.
“제 이름은 정민규입니다. 직업은 야간 경비원이고요. 경비 업무를 그만두면 직업은 바뀌지만 제 이름은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배지를 손에 쥐었다.
“이곳에서는 이름과 역할을 한 장의 명찰에 적어 두었습니다. 역할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람도 퇴근하지 못한 거죠.”
하른이 군중 뒤에서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제복을 입지 않은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는 손목을 보여 주었다. 숫자들이 어지럽게 남아 있었지만, 그 아래에는 처음으로 글씨가 한 줄 나타났다.
[휴식 중.]
“저는 삼십 년 동안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근무했습니다.” 하른이 말했다. “지금 그 일을 계속하지 않아도 살아 있습니다. 제 존재는 근무표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서기관이 하른을 바라보았다. 그 표정에는 화보다 두려움이 먼저 스쳤다. 만약 역할과 사람을 분리하면, 자신이 지켜 온 삼십 년의 기록은 무엇이 되는가.
“그렇다면 이미 작성된 문서들은 어떻게 합니까?”
“고칠 수 있으면 고치고,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남겨야겠죠.” 민규가 대답했다.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게 아닙니다.”
오르반이 교직원에게 손짓했다. 몇 명이 함께 나와 기록 확인 방식 변경을 논의하겠다고 선언했다. 완전한 승리는 아니었다. 서기관에게는 여전히 원본실을 통제할 권한이 있었고, 열람회가 중단되는 동안 누군가 명단을 숨길 수도 있었다.
그런데 게시판의 하얀 글씨가 갑자기 붉어졌다.
[증명 책임 이양. 최초 기록 작성자 소환.]
모두가 서기관을 바라봤다. 그는 처음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아닙니다. 저는 작성자가 아닙니다. 저는 보존 담당자입니다.”
“그러면 최초 작성자가 따로 있다는 뜻이군요.”
서기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외투 안쪽에서 작은 철제 열쇠가 떨어졌다. 열쇠에는 국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민규가 그것을 주우려 하자 서기관이 손을 뻗어 막았다.
“그건 저를 열기 위한 열쇠가 아닙니다.”
“당신을 열다니 무슨 뜻이죠?”
“저는 문서에서 시작됐습니다.”
서기관은 말을 멈췄다. 처음으로 자신의 탄생을 설명하기가 무서운 사람 같았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누군가의 이름을 대신 적어 준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의 손이 움직이는 동안 저는 만들어졌습니다.”
민규의 눈이 열쇠로 향했다. 국화 문양은 어머니가 남긴 사진과 닮아 있었다. 그러나 비슷한 문양이 곧 같은 사람을 가리키지는 않았다. 그는 서기관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 사람이 저에게 명령했죠. 문 안에 있는 것들이 이름을 얻기 전에는 아무도 밖으로 내보내지 말라고.”
군중 위로 시계탑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났다. 게시판에는 새로운 한 줄이 나타났다.
[최초 기록 작성자: 확인 대기. 정은희의 통역 기록을 조회할 것.]
루카는 민규의 옆에 섰다.
“아저씨, 이제 진짜 누가 이 일을 시작했는지 알 수 있겠네요.”
민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열쇠를 바로 집지 않았다. 그 뒤에 어떤 문이 있는지 모르면서 주머니에 넣는 일은 그만두기로 했기 때문이다.
제36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