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마법학교 야간 경비원의 정체 · 35화
PAYLUA ORIGINAL · 제35화

35화. 미라의 두 번째 명찰

마법학교 야간 경비원의 정체 · 6,083자

오프라인 책장
마을 배수구에서 발견된 발자국은 일곱 걸음과 한 번의 망설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어린아이의 발자국은 왼발과 오른발이 번갈아 찍혔지만 여덟 번째 자리에서는 발끝이 옆으로 틀어져 있었다. 누군가를 뒤돌아본 흔적이었다. 그 뒤에 찍힌 어른의 발자국은 조심스럽게 거리를 두고 있었다. 짓밟으려는 사람의 걸음은 아니었다. 따라가되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아저씨 어머니일까요?” 루카가 물었다. 민규는 신발 자국을 자세히 살폈다. 어머니는 발이 작았다. 사진에서 보았던 운동화는 낡은 회색이었고 뒤축을 늘 눌러 신었다. 하지만 이 발자국의 뒤꿈치는 날카로웠고 밑창에는 공장 안전화에 쓰는 홈이 있었다.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크기도 다르고요.” “그러면 누가 따라간 거예요?” “아직은 모르죠. 그래서 발자국이 지워지기 전에 기록해야 합니다.” 바르트는 물길을 잠시 다른 곳으로 돌렸다. 모두가 배수구 안으로 들어가자고 했지만 민규는 거절했다. 좁은 관은 사람이 한 번 들어가면 뒤돌아 나오기 어려웠고, 바닥에는 오래된 녹이 쌓여 있었다. 그는 관 안으로 작은 유리 구슬을 굴렸다. 구슬이 움직이는 동안 밖에서는 실을 풀어 거리를 쟀다. 삼십 보쯤 들어간 곳에서 구슬이 멈췄다. 셀레나가 붙인 미약한 빛이 관 벽을 비추었다. 그곳에는 수십 개의 종이 별이 달려 있었다. 별들은 젖지 않았다. 물이 닿지 않는 높이에 작은 철사로 매달린 채, 바람이 불 때마다 아주 천천히 흔들렸다. 마치 누군가 이 길을 잃지 말라고 걸어 놓은 작은 표지판 같았다. 루카가 숨을 삼켰다. “누나가 별을 저렇게 걸어 둬요. 어두운 창고에서도 찾을 수 있게.” “그렇다면 미라가 이곳에 다녀갔다는 뜻일 수 있겠군.” “누나가 지금도 안에 있잖아요.” “이곳이 한 시각만 담고 있지 않다는 걸 기억해야 해.” 루카는 입술을 다물었다. 누나가 가까워질수록 그는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을 견디기 어려워했다. 민규는 그의 얼굴을 못 본 척하지 않았다. “나도 당장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우리가 들어가서 하나 더 사라지면 미라가 얼마나 화내겠냐.” “누나는 진짜 화낼 거예요. 제가 뛰어다니는 것도 싫어해요.” “그럼 기다리는 동안 할 수 있는 걸 찾자.” 그들은 천장에 매달린 별의 위치를 그렸다. 하나씩 번호를 붙여 보니 별은 출구로 이어지는 길을 가리키는 화살표처럼 놓여 있었다. 그런데 가장 마지막에 있는 별은 끝이 안쪽을 향했다. 출구로 나가다 돌아서게 만든 자리였다. 셀레나가 유리 구슬의 빛을 그쪽으로 움직이자 벽에 새겨진 문장이 나타났다. [가벼운 사람만 통과 가능. 이름을 가진 사람은 머물 것.] “이름을 가진 사람은 머물라니.” 루카가 투덜거렸다. “이 학교는 이름이 있어도 문제, 없어도 문제네요.” 민규는 그 말이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출구의 크기나 압력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이름을 가진 사람을 통과시킬지 판단하는 규칙이 사람들을 가둔 것이다. 아무 이름도 등록하지 않고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름을 모른다는 이유로 기다릴 수밖에 없는 사람을 다시 만들지 않으려면. 배수로 조사가 끝나자 루카는 연극부 창고로 향했다. 학교에는 크고 작은 무대 장치가 많았다. 무대 위를 날아다니는 의자, 배우가 손짓하면 방향을 바꾸는 커튼, 배우의 그림자를 두 배로 길게 만드는 조명. 민규가 보기에는 사고를 부를 만한 물건들이었지만 학생들에게는 익숙한 도구였다. 연극부 창고를 관리하던 선배 학생은 루카가 갑자기 찾아오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요즘 연습도 안 나오더니 무슨 일이야?” “누나가 만든 소품을 찾아야 해요.” “미라 선배 것? 아직 보관하고 있어.” 선배는 먼지를 털어 낸 상자 하나를 꺼냈다. 상자에는 마른 꽃잎이 붙어 있고, 모서리에는 작은 별들이 그려져 있었다. 루카가 뚜껑을 열자 낡은 가면과 종이 왕관, 두 개의 똑같은 명찰이 나왔다. 하나에는 인물 이름이, 다른 하나에는 배우 이름이 적혀 있었다. “연극에서는 역할과 사람을 구분하려고 두 개를 썼어.” 선배가 말했다. “무대에서 다치면 배우 이름을 부르라고 미라 선배가 그랬거든.” 루카는 명찰을 들었다. 미라의 꼼꼼한 글씨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는 누나가 학교 밖에서 사라지기 전 어떤 사람이었는지 갑자기 또렷하게 기억했다. 공연이 끝난 밤이면 미라는 무대 뒤 바닥을 청소했고, 누가 다쳤는지 확인한 뒤 가장 마지막에 나왔다. 모두가 박수를 받으러 나갈 때도 커튼에 발이 걸린 후배가 없는지 살폈다. “누나는 이런 걸 왜 만들었을까요?” “본명과 역할명이 자꾸 바뀌는 마법을 쓰다가 사고가 난 적이 있었거든. 그때 미라 선배가 규칙을 만들었지. 공연이 끝나면 반드시 배우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라고.” 루카는 손끝으로 상자를 만졌다. 미라가 배수로에 들어갔다면 누군가의 이름이 바뀌는 문제를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혼자 무리해서 들어간 것이 아니라, 다른 학생들이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의 방식으로 준비했을 수 있었다. “그럼 누나가 쓴 연극 대본도 있어요?” 선배는 안쪽 서랍에서 얇은 책을 꺼냈다. 제목은 《끝나지 않은 마지막 장면》이었다. 줄거리는 단순했다. 배우 한 명이 퇴장할 때 무대 뒤 출구가 사라지고, 모든 배우가 그를 다시 무대 위로 부르려 한다. 마지막에는 주연이 무대 중앙에 서서 ‘퇴장하지 않아도, 쉬어도 된다’고 말하며 끝난다. 루카는 대본의 끝장을 읽었다. 거기에는 미라의 연필 글씨가 있었다. [사람이 맡은 역할이 끝나지 않아도, 사람은 집에 갈 수 있다.] 그는 당장 제방에 있는 민규에게 대본을 보여 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전처럼 창고에서 뛰어나가지 않았다. 학교 밖 대피 통로는 안전하다고 확인된 곳만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선배와 함께 교장실로 가서 대본의 내용을 두 군데에 복사한 뒤 무전으로 먼저 소식을 알렸다. 민규는 이야기를 듣고 잠시 침묵했다. “미라가 아주 중요한 걸 알고 있었네요.” “누나를 본 적도 없잖아요.” 루카가 대답했다. “네가 이야기해 준 걸로 알 수 있는 부분은 있지. 그렇지만 직접 만나야 더 많이 알겠지.” “제가 누나 만나면 아저씨부터 소개할게요. 별로 말재주는 없지만 사람 찾는 건 잘한다고.” “거기에 시설 점검도 한다고 넣어 줘.” 루카가 오랜만에 크게 웃었다. 창고 밖으로 나오자 학교 운동장에는 늦은 오후 햇살이 깔려 있었다. 그 빛 아래서 사람들은 아직 자신의 이름으로 걸어 다니고 있었다. 루카는 손에 쥔 대본을 조금 더 꼭 쥐었다. 연극부 창고에서 가져온 대본은 의외의 장소에서 도움이 되었다. 오르반은 학교의 오래된 행사 기록을 뒤져 미라가 공연을 준비하던 날의 작업 일지를 찾았다. 그날 연극부는 명찰이 바뀌는 마법이 위험하다고 항의했고, 공연 담당 교수는 명찰을 두 개로 분리하는 방식으로 일단 해결했다고 적었다. 하지만 기록 옆에는 작은 주석이 있었다. [사용된 명찰 마법의 원본은 학생 동아리 제작물이 아님. 제방 조합 창고에서 공급된 장치와 형식 일치.] 루카는 종이 위의 주석을 손끝으로 눌렀다. 누나가 사라진 이유가 단지 우연히 잘못된 연극 소품을 사용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알았다. 누나는 문제를 알아차린 뒤 다른 학생들이 다치지 않도록 조사하러 다녔을 수도 있었다. “그럼 누나는 처음부터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걸까요?” “일부는 알았겠지.” 오르반이 말했다. “그렇다고 모든 일을 혼자 책임져야 했다는 뜻은 아니다.” 루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며칠 전까지 그는 누나가 왜 자기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지 원망했었다. 지금은 누나가 얼마나 무서웠을지를 생각하게 됐다. 그래도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그 사람에게 질문할 권리를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날 오후 민규는 루카와 함께 대본을 다시 읽었다. 주인공이 무대 뒤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는 장면에는 이상할 만큼 상세한 지시가 있었다. 오른쪽 조명 세 번 깜박임, 왼쪽의 낮은 문, 배우를 부르는 대신 나무판에 표시하기. 미라가 배수로에서 사용한 신호와 닮아 있었다. “누나가 실제 길을 연극 대본에 숨겼을까요?” “그럴 수도 있고, 연극 때 쓰던 방법이 나중에 도움이 됐을 수도 있지.” “아저씨는 맨날 그럴 수도 있다고만 해요.” “틀린 답을 확실하다고 말하는 것보단 낫잖아.” 루카는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렸지만 곧 웃었다. 그는 대본의 낮은 문이 그려진 자리에 종이 별을 붙였다. 누나가 남긴 길과 자신의 기다림을 함께 표시한 셈이었다. 잠시 뒤 경비대장이 제방 아래의 창고를 확인했다는 보고가 도착했다. 오래된 연극 장치의 공급처인 그곳에는 국화 문양의 상자가 여러 개 남아 있었다. 누군가가 학생들의 놀이에까지 제방의 기록 장치를 흘려보냈다는 단서였다. 경비실로 돌아온 루카는 대본을 제자리에 펴 놓고 그 위에 종이 별 세 개를 나란히 올렸다. 하나는 자신이 접은 것, 하나는 미라가 보내 준 것, 나머지 하나는 하른이 처음 완성한 것이었다. 모양은 조금씩 달랐고 꼭짓점도 똑바르지 않았다. 그러나 서로 다른 손이 같은 방법을 배워 하나의 모양을 만든다는 점은 같았다. 루카는 이 별들을 절대로 이름 대신 사용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별은 누구를 가두는 표식이 아니라,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음을 알려 주는 작은 인사여야 했다. 그날 밤, 미라가 종이관으로 답장을 보내왔다. 종이에는 글씨 대신 작은 그림이 있었다. 낡은 배수구, 세 갈래로 나뉜 물길, 그리고 물길 사이에 앉아 있는 소녀. 소녀 옆에는 두 개의 명찰이 떨어져 있었다. 하나에는 ‘미라’, 다른 하나에는 알아볼 수 없는 잉크 얼룩이 있었다. “다른 사람 명찰일까요?” 셀레나가 물었다. “아니면 같은 사람한테 두 개를 붙인 건지도요.” 루카가 먼저 대답했다. 누나가 보내는 물건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싶어 하는 목소리였다. 민규는 답장의 뒤편에 비스듬히 쓰인 글씨를 발견했다. [첫 번째 명찰은 나를 부르는 데 써. 두 번째 명찰은 절대로 읽지 마.] 그날 처음으로 루카는 누나가 자신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받아들였다. 당장 이름을 크게 부르면 두 번째 명찰이 반응할 수도 있었다. 그는 외투 속에 넣어 둔 쪽지를 꺼내 누나 이름의 글자를 천천히 지웠다. 지워야 할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누군가 훔쳐 듣는 곳에서는 조용히 기다려 주기 위해서였다. “누나한테 뭐라고 답장할까?” “네가 하고 싶은 말로 해. 읽히면 안 되는 이름만 빼고.” 루카는 오래 썼다. 편지에는 지난 며칠 동안 먹은 음식과 학교 운동장의 냄새, 하른이 별을 접는 법을 배웠다는 사실까지 적었다. 마지막에는 글씨가 흔들렸다. [나 기다리는 거 잘 못해. 그래도 이번엔 할게. 대신 나올 수 있을 때는 꼭 말해 줘.] 셀레나는 그 편지를 관으로 보냈다. 답장이 돌아올 때까지는 스물세 번의 숨이 필요했다. 작은 종이별 하나가 굴러 나왔다. 별의 한 면에는 아주 작게 ‘응’이라고 써 있었다. 그 무렵 서기관은 학교 정문 앞에 낯선 공고문을 붙였다. [유령 학생 명단 공표 예정. 미등록자의 정체 확인을 위한 공개 열람회.] 오르반은 공고문을 떼어 교장실 책상에 놓았다. 공개 열람을 한다면 이름을 되찾기 전에 사라진 학생들의 과거가 마을에 퍼질 것이다. 주민들이 서로의 얼굴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지금까지 힘들게 만든 대피 질서도 무너질 수 있었다. 민규는 열람회를 막는 방법부터 찾지 않았다. ‘유령 학생’이라는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를 물었다. 마레가 학교의 옛 신문을 가져왔다. 삼십 년 전 신문에는 평범한 동아리 공연 소식과 함께 작은 기사 하나가 있었다. [연극부 학생, 공연 중 명찰이 두 개로 보이는 현상 제보. 목격자에게는 기억 착오 가능성 안내.] 루카는 기사를 한참 읽었다. 누나가 연극부에서 일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었다. 누군가 같은 방식을 오래전부터 공연 소품에 사용했던 것이다. 민규가 신문을 뒤집자 뒷면 광고에 적힌 문구가 드러났다. [이름이 두 개라면, 한쪽은 역할이고 다른 한쪽은 사람이다.] 광고주 칸에는 상호 대신 작은 국화 문양이 있었다. 민규가 어린 시절 사진 뒤에서 보았던 바로 그 문양이었다. 그는 신문을 접었다. 배수구에서 찾아야 할 것은 또 하나의 출구만이 아니었다. 누군가 사람과 역할을 갈라 놓은 다음, 역할만 영원히 근무하도록 만든 오래된 무대 장치였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35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35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