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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법학교 야간 경비원의 정체 · 33화
PAYLUA ORIGINAL · 제33화

33화. 유리 너머의 열 살

마법학교 야간 경비원의 정체 · 6,262자

오프라인 책장
유리창 안의 아이는 정민규를 닮은 사람이 아니었다. 정민규 자신이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 특별한 마법적 증명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소년의 왼쪽 눈썹 끝에 있는 작은 흉터, 오른손 약지에 남은 점, 생각에 빠질 때 윗입술을 깨무는 버릇까지 같았다. 다만 그 소년은 어른의 민규가 기억하지 못하는 날을 살고 있었다. “삼십 년 전이라고 했죠.” 루카가 말했다. “그럼 아저씨 나이가…….” “계산하지 마. 상처만 남아.” 루카가 웃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농담할 때와 아닐 때를 구분하기 시작한 아이의 표정이었다. 그들은 학교 경비실에 관측 결과를 전달했다. 학교는 유리창에 보이는 장면을 마법 영상으로 받아 보길 원했지만 민규는 허락하지 않았다. 이 영상은 실종 사건의 단서이면서 동시에 한 가족의 사적인 기억이었다. 안전과 직접 관련된 정보만 공유하면 충분했다. 오르반은 짧은 침묵 뒤 동의했다. “네 어머니를 본 게 맞느냐?” “맞습니다.” “그분이 너를 처음 발견했을 때는 학교 밖 수로에 있었어. 아이가 너무 오래 추위에 노출됐는데도 열이 없었지. 우리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어.” “그래서 그냥 한국으로 돌려보냈습니까?”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어.” 교장의 목소리가 가늘어졌다. 마치 오랫동안 연습한 변명을 이제야 버리기로 한 사람 같았다. “너희 어머니는 그날 네 이름을 기록에서 지워 달라고 부탁했어.” 민규는 철문에서 눈을 떼었다. “어머니가요?” “그분은 누군가 너를 찾을 때마다 문이 열릴 거라고 했어. 한동안은 기록이 없어야 너를 보호할 수 있다고.” 루카가 항의했다. “이름을 지우는 게 어떻게 보호예요?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라졌는데!” “어쩌면 다른 종류의 삭제였겠지.” 셀레나가 조용히 말했다. “종이에 쓰인 이름을 없애는 것과 사람의 존재를 없애는 건 달라.” 민규는 기억을 더듬었다. 어릴 적 이사를 자주 다녔고 어머니는 학교 상담 선생님에게 가끔 그의 과거를 말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누군가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알고 싶었다. 무엇을 피하기 위해 어머니가 그렇게까지 했는지. 민규는 자신이 어린아이였을 때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눈을 감아 보았다. 그러나 처음 떠오른 것은 마법학교가 아니었다. 한국의 여름이었다. 작은 다세대주택, 비가 내리던 저녁, 부엌 선반에 놓인 노란 주전자. 어머니가 식빵 가장자리를 잘라 별 모양으로 만들어 주었던 날이었다. 어릴 적 그는 유난히 고장 난 물건을 못 지나쳤다. 집 앞 가로등이 깜박이면 왜 깜박이는지 알고 싶어 했고, 운동장 수도꼭지가 한쪽으로 기울면 흙바닥에 엎드려 배관을 들여다봤다. 어머니는 그러다 다치면 안 된다며 장갑을 사 주었다. 작은 손에 너무 커서 손가락 끝이 늘 남았지만, 민규는 그 장갑을 자랑스럽게 끼고 다녔다. 기억 속에서 어머니는 한 번 이렇게 말했다. “망가진 걸 보면 고치고 싶지? 그런데 먼저 누가 다칠지부터 봐야 해. 물건은 다시 살 수도 있지만 사람이 놀라는 건 오래 남거든.” 그때는 그 말을 잔소리로 들었다. 지금은 자신이 수첩 첫 줄에 적는 내용이 바로 그 말에서 시작됐다는 걸 알았다. 그는 낡은 손전등을 두 손으로 잡았다. 한국에서 가져온 물건도 아닌데 손잡이의 무게가 묘하게 익숙했다. “어머니를 만나면 뭘 물어볼 거예요?” 셀레나가 조용히 물었다. “왜 날 여기 데려왔는지요. 그리고 왜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는지.” “화가 나나요?” “조금은요. 하지만 살아 있는 분인지부터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 말은 솔직했다. 사람은 그리운 사람을 다시 만났을 때 꼭 아름다운 말만 해야 하는 게 아니었다. 오랫동안 궁금했던 일에 답을 듣고 싶을 수도 있고, 자신이 겪은 외로움을 말하고 싶을 수도 있었다. 민규는 언젠가 어머니 앞에 서게 되면 그 모든 감정을 숨기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루카는 저보다 더 어려운 질문을 하고 있을 겁니다.” 그가 덧붙였다. “미라가 왜 자기를 두고 떠났는지요?” “그보다, 돌아온 누나에게 화를 내도 되는지 같은 질문일 겁니다.” 셀레나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루카는 미라를 기다리는 동안 외로웠지만, 미라 또한 스스로 갇혀 있는 삶을 선택한 건 아니었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순간 기쁨과 원망이 함께 올지도 몰랐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어린 민규의 기억에는 또 다른 장면이 있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낡은 그림책이었다. 한쪽 눈이 가려진 왕자가 긴 복도를 달리다가 작은 문을 발견하는 이야기. 왕자는 문을 열 수 있는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지만 문 뒤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느라 한참을 기다렸다. 어린 민규는 그 부분을 재미없어했다. 빨리 문을 열어야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왜 망설이느냐며 투덜거렸다. 어머니는 웃으며 페이지를 접었다. “저 문은 잘못 열면 반대쪽에 있는 아이가 다치거든.” 그림책 제목은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표지 안쪽에 손으로 그린 국화 문양이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민규는 눈을 떴다. 어머니가 학교에 오기 전부터 국화 문양을 알고 있었다면, 그 표식의 주인은 사고 조사위원회만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는 셀레나에게 기억을 말해 주었다. 셀레나는 마법으로 기억을 확인해 보자고 제안하다가 곧 말을 멈췄다. 앞서 기억을 열쇠로 쓰지 않기로 했던 일을 떠올린 것이다. 그 대신 민규가 말한 그림책의 모양과 날짜를 수첩에 적었다. “실제로 그런 책이 있는지는 나중에 확인하죠.” “맞습니다. 그때 본 줄 알았던 것이 지금 새로 만들어진 기억일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그들은 기억을 소중히 다루되 그것 하나로 사실을 결정하지 않기로 했다. 이상하게도 민규는 그 원칙을 세우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답을 모르겠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건, 거짓 답을 하나 만들어 억지로 믿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그들이 한국어 문서에 대해 이야기하던 사이, 오르반이 오래된 명찰 하나를 무전으로 보내 주었다. 명찰의 글자는 대부분 닳았지만 뒷면에 그려진 작은 도형만큼은 분명했다. 삼각형 셋을 나란히 그린 뒤 가운데 점 하나를 찍은 표시였다. 어린 민규가 유리창 아래에 그려 놓은 증인 표식과 닮아 있었다. “이게 학교의 공식 표식입니까?” 민규가 물었다. “아니다. 한때 안전 훈련을 맡았던 외부 협력자가 만든 도형이지.” “그 협력자가 누구였습니까?” 오르반은 잠시 침묵했다. “정은희 씨였다. 널 데리고 왔던 그분 말이다.” 민규는 표식을 다시 살폈다. 어머니는 다른 세계의 언어를 통역한 데 그치지 않고,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안전 표시를 만들려고 했던 것 같았다. 사람들이 이름을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세 개의 선과 한 점은 따라 그릴 수 있었다. 어린 민규가 그 도형을 알고 있었던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는 오르반에게 학교에 남아 있는 표식들을 사진으로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학교 정문, 보건실 앞, 오래된 계단 난간에서 비슷한 그림이 나왔다. 어떤 것은 마법진과 겹쳐져 알아보기 어려웠고, 어떤 것은 칠이 벗겨져 거의 사라져 있었다. 학생들이 매일 지나가면서도 의미를 알지 못했던 안전 표시였다. “왜 안내문을 바꾸지 않았습니까?” 민규가 물었다. 오르반은 대답했다. “우리가 잊었기 때문이겠지. 사고가 난 뒤 그분의 이름을 숨기는 데만 급급했으니까.” 민규는 화를 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지금이라도 표시의 의미를 돌려놓는 일이었다. 그는 루카에게 도형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세 명이 같은 사람을 지켜본다는 표시일 수도 있어. 누군가 숨겨진 이름을 찾으려 들 때도 서로 확인하자는 뜻이지.” 루카는 종이에 선 셋과 동그라미를 다시 그렸다. 그림은 놀라울 만큼 평범했다. 그러나 그 속에 삼십 년 전 어머니가 남긴 한 문장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먼저 사람을 확인할 것. 관측창에서는 과거의 경보가 울리기 직전이었다. 이상하게도 장면은 빨리 흘러가지 않았다. 창에 표시된 시각은 현재의 정각과 무관하게 그때 그 순간을 붙잡고 있었다. 셀레나는 이것을 마법의 영상 기록이 아니라 ‘완료되지 않은 절차의 재현’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장면이 반복될 때마다 문에 연결된 이름이 달라진다면, 실제 과거를 바꾸는 게 아니라 남은 절차가 새로운 대상을 찾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면 어린 나는 위험하지 않다는 거예요?” “위험하죠. 그런데 우리가 지금 내린 선택이 그 아이에게 영향을 주는지는 아직 알 수 없어요.” 민규는 손전등을 들고 창의 가장자리만 비췄다. 안쪽의 어머니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바로 그곳에서 그림자 하나가 가늘게 찢어졌다. 누군가 그 틈으로 보려는 듯했다. 민규는 불빛을 껐다. “관측 자체가 신호일 수 있습니다. 직접 눈으로만 봅시다.” 에일라는 창 위에 오래된 차광막을 걸었다. 천은 보기 흉했고 가장자리가 헤졌지만, 빛을 막는 기능만큼은 확실했다. 하른은 차광막의 고리를 보자 손을 떨었다. 자신이 삼십 년 전 이 고리를 끊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기억나지 않으면 했다고 단정하지 마세요.” 민규가 말했다. “기억나는 일이 있으면 그때 이야기해 주세요.” “그럼 기억나지 않는 시간은 누가 책임집니까?” “기록이 대신 설명해 줄 겁니다. 지금부터는 우리가 기록하고요.” 하른은 차광막 아래에 앉았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제복을 벗어 걸어 두었고, 아무 이름도 쓰이지 않은 두꺼운 담요를 무릎에 덮었다. 루카는 옆에 앉아 종이 별을 접었다. 하른은 처음에 그것을 만지는 것조차 주저했지만 루카가 방법을 알려 주자 조심스럽게 한쪽 귀퉁이를 접었다. “삼십 년 동안 못한 일이 이것일 줄 몰랐어요.” “별 접기요?” “일을 마치고 그냥 앉아 있는 일이요.” 그들은 한동안 말을 멈췄다. 과거를 복구하는 작업이 언제나 거대한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저 잠깐 쉬어도 된다는 말을 듣는 일이 가장 낯선 변화였다. 오후 무렵, 제방의 물이 빠지기 시작했다. 바르트가 수압을 조정하면서 오래 묻혀 있던 나무 표지가 드러났다. 표지는 학교와 마을의 경계에 세워졌지만 글씨는 한국어로 적혀 있었다. [되돌아갈 때에는 먼저 돌아올 곳을 확인할 것.] “누가 저걸 썼죠?” 민규가 물었다. 에일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마도 당신 어머니요. 그분은 우리가 쓰던 설계 문구를 자기 말로 바꿔서 적었어요.” “어머니가 설계에 참여했습니까?” “그분은 설계자가 아니었어요. 통역을 해 주셨죠. 한국에서 왔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요.” 민규는 더 놀라지 않았다. 놀랄 일은 너무 많았고, 놀라는 데 시간을 다 써 버리면 정작 중요한 질문을 놓쳤다. “그분은 누구를 위해 통역한 겁니까?” 에일라가 답하려는 순간 서기관의 목소리가 조합 지하에서 올라왔다. “미등록 대상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말을 하니까 통역이 필요했던 것 아닙니까?” 민규가 반문했다. “기록상 그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거겠죠.” 서기관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유리창 위에 오래된 서류 한 장이 나타났다. 아주 오래된, 색이 바랜 출입 신청서였다. 작성자는 한글로 ‘정은희’라고 서명되어 있었다. 민규는 어머니 이름을 발견하자 눈을 감았다가 떴다. [요청 사항: 구조 대상의 국적과 종족, 기록 유무에 관계없이 같은 출구를 사용할 권리를 보장할 것.] 그 아래에는 다른 사람이 붉은 잉크로 적은 답변이 있었다. [반려. 모든 인원은 기록상 존재해야 한다.] 민규는 잠시 서류를 읽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어머니는 언제나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고장 난 수도꼭지를 직접 고쳤고, 아파트 관리실에 전화를 걸기 전에는 물이 새는 위치부터 표시했다. 그런데 삼십 년 전 이 낯선 세계에서 그녀는 사람으로 기록되지 않은 누군가를 위해 서류를 냈다. 왜 그랬는지 아직 알 수 없었다. 다만 자신의 이름을 지키려는 요청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루카가 서류를 들여다봤다. “아저씨 어머니가 여기서 일하셨어요?” “모르겠어. 다만 여기에서 누군가를 밖으로 보내려고 한 모양이야.” “그럼 그 사람이 우리 누나인가요?” “삼십 년 전의 사람과 지금의 미라를 곧바로 연결할 수는 없어.” 루카는 실망한 얼굴을 숨기지 않았다. 민규는 설명을 줄이지도, 희망을 약속하지도 않았다. 사실대로 말하면서도 옆에 앉아 있어 줄 수는 있었다. 은시계가 갑자기 무겁게 움직였다. 바늘이 한 바퀴 돌아 유리창 안쪽의 시각과 일치했다. 그리고 천장에 또 다른 문구가 나타났다. [미등록 대상 보관함. 첫 번째 반환 요청 접수. 수취인: 정은희.] 뒤이어 아주 익숙한 글씨가 떠올랐다. [엄마가 맡긴 물건이 아직 하나 남아 있다. 열쇠가 아니라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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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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