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경보가 울리기까지 남은 시간은 다섯 분 사십구 초였다.
민규는 제방 아래의 철문을 노려보는 대신 무전기의 송신 버튼을 눌렀다. 시간은 가장 먼저 사람을 조급하게 만든다. 조급해지면 확인되지 않은 문을 열고, 위험한 계단을 뛰어 내려가고,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잊는다. 삼십 년 전의 실패가 정확히 무엇이었든, 오늘 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수는 없었다.
“북문.”
“경비대장입니다. 주민 대피 안내 완료. 주소가 복구된 집들까지 확인했고, 혼자 남은 사람은 없습니다.”
“제분소.”
“바르트입니다. 우회 수로 정상. 터빈은 절반 출력. 압력이 높아지면 직접 댐퍼를 열겠습니다.”
“학교.”
“오르반이다. 학생 전원 확인 중. 기숙사 뒤편의 마지막 두 방이 남았어.”
셀레나는 민규가 적는 숫자를 보고 말했다.
“다섯 분 안에 그 모든 곳을 고칠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오늘은 고치는 게 아니라 망가지는 범위를 좁히는 겁니다.”
그는 제방 지도를 바닥에 펼쳤다. 지도는 이미 여러 번 접고 펴서 모서리가 헤져 있었다. 바르트가 굵은 손가락으로 수로의 방향을 짚었다. 제방을 따라 흐르는 물은 학교 동쪽으로 가다가 마을 앞에서 갈라졌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 문제 없는 물길이었다. 다만 수로 아래의 숨은 길은 사람이 사라질 때마다 조금씩 길이가 바뀌었다.
“여기서 한 사람이라도 출입 기록을 잃으면 주소 복구가 다시 풀릴 수 있소.” 바르트가 말했다.
“그렇다고 전원을 제분소에 묶어 둘 수는 없어요.” 경비대장이 무전으로 답했다. “임시 주소가 부착된 집은 지금도 주민이 드나듭니다.”
민규는 양쪽을 억지로 하나로 만들지 않았다. 물길을 닫으면 압력이 쌓이고, 길을 열어 두면 잘못된 출입이 기록될 수 있었다. 그는 종이에 작은 네모를 네 개 그렸다. 각 장소에는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씩 있어야 했고, 한 사람이 현장을 떠나면 다른 사람이 그 사실을 무전으로 확인해야 했다.
“누가 책임자냐는 질문이 계속 나올 겁니다.” 셀레나가 말했다.
“장소마다 책임은 있어야죠. 다만 책임자가 사라졌다고 장소가 같이 사라져서는 안 됩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북문 무전에서 울음소리가 났다. 한 주민이 주소를 되찾은 집에 돌아갔는데, 현관 안쪽이 모르는 계단으로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주민은 남편이 집 안에 남아 있다고 생각해 문을 열려 했고, 경비대원이 겨우 제지한 상황이었다.
“현재 위치에서 문을 열지 마세요. 집 안에 있는 사람과 먼저 연락할 방법을 찾습니다.” 민규가 말했다.
“안쪽에서 누가 문을 두드리고 있어요!”
“노크 횟수를 세어 주세요. 발신자가 답할 수 있는 질문을 하나 해 보세요.”
경비대장이 주민에게 말했다. “이 집에서 제일 오래된 물건이 무엇입니까?” 주민은 울다가 대답했다. “결혼할 때 산 파란 찻주전자예요.”
잠시 뒤 안쪽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주전자가 아니라 그 밑에 깔린 나무 받침이지.” 주민은 그제야 웃으면서 다시 울었다. 남편의 목소리였다. 민규는 그들에게 문을 열지 말고, 두 사람이 같은 자리에서 서로의 말을 들을 수 있도록 기다리라고 부탁했다. 몇 분 뒤 경비대의 다른 출입구 확인이 끝나자 부부는 안전하게 만났다.
루카는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감사 인사를 듣다가 말했다. “문이 하나 있다고 꼭 그걸 써야 하는 건 아니네요.”
“그렇지. 문이 있다고 길은 아니고, 길이라고 안전한 것도 아니야.”
바르트가 수첩의 네 번째 네모에 체크 표시를 그렸다. 실제로 사람을 꺼낸 사람은 북문의 경비대원이었고, 두 사람을 안심시킨 것은 부부끼리 주고받은 오래된 생활의 기억이었다. 민규의 기록에는 그 사실도 빠짐없이 들어갔다.
구조 상황이 정리되자 그는 무전기를 잠시 내려놓았다. 손이 생각보다 많이 떨렸다. 위험을 헤쳐 나갈 때보다 위험이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순간 힘이 풀리는 법이었다. 셀레나가 그의 앞에 찬물 한 잔을 놓았다. 물표면에도 시간의 이상 때문에 작은 파문이 반대로 움직였다. 민규는 컵을 손으로 가려 파문을 멈추고 한 모금만 마셨다.
“가장 중요한 현상은 과거에서 일어나는 게 아닐지도 몰라요.” 셀레나가 말했다. “과거를 보느라 지금 사람을 놓치게 만드는 것. 이 장치는 그걸 잘 알아요.”
민규는 무릎을 털었다. “그럼 우리도 지금 사람부터 보죠.”
그때 루카가 현장 표지의 문구를 다시 읽었다. ‘시간 이상. 물리적 출입 금지.’ 아이는 그 앞에 쪼그려 앉아 한참 생각하다가 아래에 작은 문장 하나를 더 써 넣었다.
[혼자 목소리를 따라가지 말 것.]
민규는 루카를 돌아봤다. “그건 왜 썼어?”
“저도 누나 목소리가 들리면 달려갈 것 같아서요. 아저씨만 위험한 건 아니잖아요.”
그 말은 자신을 향한 경고였다. 루카는 누나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충동적으로 문을 열고 싶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이 흔들릴 때 먼저 볼 수 있게 글씨를 써 놓은 것이다. 민규는 표지 아래에 서명했다. 루카도 자기 이름 대신 작은 별 그림을 그렸다. 누구의 명령이 아니라 모두가 안전을 위해 합의한 표지였다.
제방 바깥에서 순찰하던 경비대원은 그 표지를 보고 다른 통로에도 같은 문장을 붙이자고 제안했다. 마을 주민 중에는 밤마다 돌아가신 가족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고, 일부는 그 소리를 따라 담장 밖으로 나갔다가 길을 잃었다. 지금까지는 그들을 미신을 믿는 사람으로 취급했지만, 학교에서 일어나는 기록 오류를 생각하면 그냥 웃어넘길 수 없었다.
민규는 귀환자의 증언을 모으되, 실제 사람의 목소리와 흉내 낸 목소리를 구분하는 방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루카는 누나와의 비밀 신호를 떠올렸지만 지금은 말을 하지 않았다. 너무 서둘러 공개하면 누군가 그 신호까지 흉내 낼지 몰랐다.
그 순간 무전기에서 오르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마지막 두 방도 확인했다. 학교 안의 아이들은 전부 함께 있다.”
민규는 지도에 크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첫 번째 경보의 대상이 무엇이든, 지금 이곳의 아이들부터 안전하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는 창 너머의 과거를 볼 준비를 하며 장갑을 다시 끼었다.
그들이 서 있는 제방 통로는 비에 젖은 돌 냄새가 났다. 바깥에서는 새벽 안개가 풀숲을 덮고 있었다. 이상한 것은 철문 아래쪽이었다. 문틈의 물방울이 떨어지다 중간에 멈추었고, 바닥에 떨어진 물방울은 다시 올라가 원래 자리로 붙었다. 같은 문 안에 서로 다른 시간이 공존하는 것처럼 보였다. 민규는 경고 표지를 붙였다.
[시간 이상. 물리적 출입 금지. 관측만 허용.]
루카가 표지를 보더니 입술을 삐죽였다.
“아저씨는 괴물이 나타나도 주의 표지부터 붙일 것 같아요.”
“괴물이 표지를 읽으면 서로 편하겠지.”
“못 읽으면요?”
“글씨를 크게 써야지.”
웃음은 짧았다. 통로 아래에서 한국어로 누군가 자장가를 흥얼거렸다. 민규는 수첩을 든 손을 멈췄다. 어렸을 적, 좁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어머니가 이불을 널며 부르던 선율이었다. 그는 그 노래의 가사를 오래전에 잊었다. 그런데 멜로디가 들리자 말보다 먼저 장면이 떠올랐다. 비 오는 날. 붉은 고무장화. 손바닥에 묻은 하얀 밀가루.
“정민규 씨.” 셀레나가 불렀다. “소리에 반응해서 문 쪽으로 걸어갔어요.”
그는 자신의 발이 안전선 앞에 와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하마터면 한 걸음 더 내디딜 뻔했다.
“내가 왜 여기 왔는지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앞에 안 서겠습니다.”
루카가 말없이 그의 손목에 작은 끈을 묶었다. 끈 끝은 바닥에 박힌 쇠고리에 이어졌다. 구명줄이 아니라, 무심코 움직였다는 사실을 알아채게 하는 표시였다.
“마법으로 묶으면 끊어질지도 모르니까요.”
“네가 만든 거냐?”
“누나가 가르쳐 줬어요. 연극 소품 만들 때요. 무대 뒤에서 문이 어디 있는지 헷갈리면 발목에 끈을 묶었다고.”
민규는 고맙다고 말했다. 자기보다 어린 학생에게 도움받는 일이 체면을 깎는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도리어 누군가 그만큼 현장을 잘 보고 있다는 사실이 든든했다.
[최초 사고 발생까지 00:04:10.]
숫자가 줄어들자 경보 장치의 내부에서 느릿한 쇳소리가 세 번 났다. 에일라가 벽돌 틈을 살펴보며 말했다.
“준비 경보예요. 본경보는 아직 아니에요. 이 신호 다음에는 아래쪽 구역을 봉쇄하도록 되어 있었죠.”
“봉쇄 전에 사람을 빼내려는 경보가 아니었습니까?”
“설계 도면에는 그렇게 쓰여 있어요. 하지만 현장 장부에는 ‘불명확한 대상의 이탈 차단’이라고 적혀 있어요.”
“사람이 나가는 걸 막으려는 쪽으로 바뀌었군요.”
에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가 감리했던 설비라는 사실이 그녀를 작게 만드는 듯했다. 민규는 두꺼운 장부를 밀어놓고 작은 수동 경보 종을 꺼냈다.
“사람에게 위험을 알리는 소리는 막을 이유가 없습니다. 본경보가 시작되면 종을 바깥에서도 울려 주십시오.”
“그러다 옛 규칙이 사람을 교대자로 등록하면요?”
“명령선과 경보선을 끊어서 분리했잖습니까. 이제 실험 결과를 믿되, 예상이 틀리면 즉시 멈춥니다.”
그 순간 철문 위의 금속 유리창이 맑아졌다. 안쪽에는 복도가 보였다. 삼십 년 전의 복도였다. 천장에 달린 안내판, 초록색 타일, 종이 상자를 옮기는 직원들. 그 가운데 열 살 정도의 아이가 서 있었다. 검은 머리, 헐렁한 운동복, 왼쪽 무릎의 작은 상처. 민규는 자신의 얼굴을 알아봤다.
어린 민규는 울고 있지 않았다. 부서진 문손잡이를 들고 어른들을 향해 무언가 설명하고 있었다. 아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은 출입문이 아니라 복도 바닥의 환기구였다.
“저때도 고장 난 것부터 보고 있었네요.” 셀레나가 속삭였다.
민규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이 옆에 어머니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는 어머니의 얼굴을 눈으로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얼굴은 기억보다 젊었고 머리에는 비에 젖은 잔머리가 달라붙어 있었다. 하지만 아이의 손을 잡으려다가, 아이가 부품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먼저 받아 주는 동작은 그가 아는 그대로였다.
유리 너머에서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때 은시계에 글씨가 떠올랐다.
[관측자가 과거와 직접 대화하면 경보 시작점이 현재로 이전될 수 있음.]
루카가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 물었다. ‘그럼 못 부르는 거예요?’ 민규는 끄덕였다. 어머니가 바로 앞에 있어도 부를 수 없었다. 지금 이곳에서 이름을 불렀다가는 경보가 현재의 학교와 마을에서 처음 울릴지도 몰랐다.
[00:02:17.]
익숙한 숫자를 보자 유리 속 소년이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소년은 유리 바깥을 볼 수 없는 듯했지만, 어딘가에서 시선을 느낀 사람처럼 복도 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바닥에 세 개의 짧은 선을 그었다. 그 옆에 동그라미를 하나 그렸다.
셀레나가 숨을 들이켰다.
“증인 셋과 관측 대상 하나. 우리가 썼던 표시예요.”
“아니요.” 민규가 말했다. “우리가 저 그림을 따라 그렸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린 민규가 마지막 선을 긋는 동안, 복도 반대쪽에서 검은 종이들이 날아들었다. 누군가의 이름을 적은 종이가 아니라, 이름을 적을 공간 자체를 가린 검은 종이였다. 어린아이는 그것들을 피해 문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어머니가 소년의 어깨를 감쌌다.
[00:01:03.]
서기관의 목소리가 천장에서 들렸다.
“기록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감지된 관측자를 대체 근무자로 지정합니다.”
“지정 중단.” 민규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는 관측자이고 근무자가 아닙니다.”
“대체 대상이 없으면 경보는 끝나지 않습니다.”
“끝내지 않아도 됩니다. 위험을 알리는 경보라면 들리게 두세요.”
종탑 쪽에서 짧은 진동이 울렸다. 은시계의 유리에는 새로운 글씨가 나타났다.
[대체 근무자 지정 거부. 최초 경보 원문 확인 필요.]
민규는 자신도 모르게 주머니에서 펜을 꺼냈다. 원문을 확인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경보를 무력화할 마법이 아니라, 경보가 최초에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알아내는 일이었다.
[00:00:00.]
철문이 열리는 대신 바깥의 수동 종이 한 번 울렸다. 매우 평범하고 가느다란 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유리 속 어머니가 몸을 돌려 어린 민규의 입을 막았다. 복도 끝의 벽에 거대한 문장이 떠올랐다.
[경고: 대피시킬 대상은 학생이 아니다.]
루카가 얼굴을 창백하게 굳혔다.
“학생이 아니라면 대체 뭘 피신시키려던 거죠?”
유리 안쪽의 어머니는 그 질문을 이미 알고 있던 사람처럼 환기구를 가리켰다. 그 아래,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좁은 공간에서 작은 손이 모습을 드러냈다. 손목에는 종이로 접은 별이 묶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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