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일라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성은 학교 정문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정문 바깥에 서서 밤바람에 젖은 망토를 여몄다. 나이는 서른쯤으로 보였지만 얼굴에 세월의 흔적이 거의 없었다. 민규는 사람들이 그녀를 둘러싸지 않도록 경비대에 부탁했다.
“감리인 에일라 씨입니까?”
“그렇게 불려 왔습니다.”
“신분을 확인할 만한 문서가 있습니까?”
여자는 낡은 측량자를 건넸다. 손잡이에는 공사 설계도에서 보던 별 모양의 눈금이 새겨져 있었다. 도구가 진짜일 수는 있다. 하지만 진짜 도구를 가졌다고 진짜 주인이라는 법은 없었다.
“이 물건은 감리인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민규가 말했다. “다만 본인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보기는 어렵겠습니다.”
에일라가 피식 웃었다.
“교장이 당신을 다시 데려온 이유를 조금 알겠네요.”
“제가 왜 온 겁니까?”
“그걸 묻고 싶으면 이름이 적히지 않은 원본을 봐야 합니다.”
“그보다 먼저 이 기록망이 마을 주소를 바꾸는 걸 멈춰야 합니다.”
“원본을 열지 않으면 고칠 수 없어요.”
“열면 어떤 위험이 있습니까?”
에일라는 한참 말이 없었다.
“원본실은 가장 먼저 신고한 사람을 새로운 관리자로 인식합니다. 그것이 이 설비의 오래된 규칙이에요. 그래서 들어오는 사람의 이름을 적지 말라고 했죠.”
민규는 수첩을 펴고 방금 들은 내용을 적었다. 그러고는 물었다.
“그 규칙은 다른 사람이 제 이름을 말해도 적용됩니까?”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그럼 방문자 셋만 보내라는 조건도 믿기 어렵군요. 누군가 밖에서 저희 이름을 말할 수도 있으니까요.”
에일라는 그 질문을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맞아요. 그러니까 저는 당신들이 들어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먼저 말했어야 했어요.”
그 말은 적어도 그녀가 모든 위험을 숨기고 있지는 않다는 증거였다. 그렇다고 그녀를 믿기로 결정할 근거까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르반은 민규가 원본실에 들어가는 데 강하게 반대했다. 이번에는 교장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삼십 년 전 열 살이던 민규가 문을 열려다 사라졌고, 그의 어머니가 찾아냈을 때 아이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고 했다.
“두 번 다시 그 일을 겪게 할 수는 없소.”
“저도 그럴 생각 없습니다.” 민규가 대답했다. “원본실을 열 방법을 찾되, 사람이 먼저 들어갈 필요는 없어요.”
그는 종이 한 장을 들어 보였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백지였다. 루카가 어리둥절하게 바라봤다.
“아무것도 없는데요?”
“좋아. 그게 필요해.”
“백지를 가져가면 문이 열려요?”
“그건 아직 모르지. 다만 원본실은 이름을 읽어서 문을 움직인다고 했어. 그렇다면 이름 대신 숫자만 적힌 점검표와 빈 종이를 보내 먼저 반응을 봐야 해.”
셀레나는 물체만 통과할 수 있는 얇은 관측 통로를 만들었다. 마레는 혹시 모를 생명 반응 감지 기능을 모두 차단했다. 바르트는 조합 건물의 수압을 지켜봤고 루카는 학교에서 열두 개의 대피문이 안정적으로 연결되는지 확인했다.
첫 번째 시험에서 숫자만 적힌 종이를 보냈다. 종이는 일 분 뒤 돌아왔다. 숫자 셋 중 둘이 바뀌어 있었다.
두 번째 시험에서는 아무것도 적지 않은 종이를 보냈다. 종이가 되돌아왔을 때는 묘한 문장이 생겨 있었다.
[신고자 미확인. 관리자 지정 보류.]
“이거예요!” 루카가 외쳤다.
“좋은 단서지만 아직 끝은 아니야.” 민규가 답했다.
세 번째 시험에서는 서로 다른 두 명이 도장을 찍은 종이를 보냈다. 두 도장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별과 물방울 모양이었다. 종이는 다시 돌아왔고 그 아래에 한 문장이 생겼다.
[복수 목격자 확인. 관리자 지정 불필요.]
셀레나가 눈을 크게 떴다.
“원본실이 독립 증인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어요.”
“서기관은 이름 하나를 빌리게 만들었지만, 원래 시스템에는 복수 확인 절차가 있었던 겁니다.”
에일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베르안이 만들려고 했던 방식이에요. 사람을 명부에 소속시키는 대신, 여러 사람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하는 방법.”
그들은 실험을 멈추고 결과를 각각 다른 종이에 기록했다. 성공했다고 바로 통로를 열지 않았다. 소량의 종이가 무사히 돌아오는 것과 사람이 지나가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에일라가 학교 정문을 떠나기 전, 민규는 작은 시험을 제안했다. 자신들이 새로 만든 임시 주소 표지를 통과시키되, 이름을 적지 않고 목적지와 시간을 기록하는 시험이었다. 에일라는 한참 망설였다.
“제가 보기엔 위험합니다. 원본실은 시험과 실제 요청을 구별하지 못할 수 있어요.”
“그럼 바로 하지 않겠습니다. 먼저 어떤 자료를 보내면 요청으로 인식하는지부터 물어보죠.”
에일라는 민규의 수첩을 받아 한 장을 넘겼다. 놀랍게도 그녀는 종이 위에 마법진이 아닌 낡은 기계 기호들을 그렸다. 차단 밸브, 확인 창, 수동 복귀 손잡이. 민규가 낯익다고 느끼는 표시였다.
“베르안은 이 세 가지를 반드시 넣자고 했어요. 기록이 틀렸을 때 사람이 직접 빠져나오는 출구, 장치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창, 그리고 고장 났을 때 원래 자리로 되돌리는 손잡이.”
“왜 빠졌습니까?”
“값이 비싸다고 했죠. 하지만 솔직히 그게 다는 아니었어요. 권한을 가진 사람들은 누군가 스스로 문을 열 수 있게 되는 걸 두려워했거든요.”
민규는 에일라가 처음으로 누군가를 비난하는 듯한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분노보다 지친 기색이 더 짙었다. 그 역시 비슷한 회의를 여러 번 겪어 봤다. 사용자의 안전보다 관리자에게 편리한 기능이 우선되는 순간, 고장은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 문제가 된다.
“그 사실을 증명하는 서류가 있습니까?”
“있었어요. 삼십 년 전엔요.”
“그럼 지금 남은 것도 찾겠습니다.”
에일라는 작은 소리로 웃었다.
“당신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군요.”
민규가 고개를 들었다.
“저를 아십니까?”
그녀는 곧 말을 고쳤다.
“아는 것 같다고 해야겠네요. 옛날에 비슷하게 묻던 아이가 있었거든요.”
민규는 더 묻고 싶었지만 지금 그 자리에서 그녀를 몰아붙이지 않았다. 그녀가 정확히 기억하는 것과 자신을 보고 떠올린 느낌을 구분할 필요가 있었다.
다음 날 경비실에는 새 게시판이 걸렸다. 맨 위에는 큼직한 글씨로 '안전 확인 / 주소 확인 / 개인 신원 확인'이 적혀 있었다. 아래에는 세 개의 분리된 칸이 있었다. 서로 관련이 있어도 같은 절차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셀레나는 그 게시판이 지나치게 평범해서 웃음이 난다고 했다.
“이 학교에는 시간을 잠그는 마법도 있어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 발명품이 칸 세 개짜리 게시판이네요.”
“복잡한 마법이 있다고 사람이 잘못 기억하지 않는 건 아니니까요.”
루카는 게시판에 첫 항목을 붙였다. '북문 부근 집 세 채, 주민 진술 확보.' 그 아래 두 번째 쪽지에는 '진술자 이름은 본인 허락 없이 공개하지 않음'이라고 적었다. 오르반은 묵묵히 그 규칙을 교직원 공지로 만들었다.
오후가 되자 하른이 잠깐 찾아왔다. 그는 손목의 글씨가 지워질 때마다 몸에서 힘이 빠지는 듯하다고 했다. 의무실에서 검사를 받았지만 특별한 질병은 발견되지 않았다. 마레는 기억의 긴장 때문일 수 있다며 쉬기를 권했다. 하른은 쉬는 방법을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근무가 끝났다는 종이 울리면 다음 종을 기다렸어요. 수만 번이나요. 그런데 끝났다고 말해 주니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민규는 그에게 청소나 순찰 같은 일을 맡기지 않았다. 일을 주면 안심할 수도 있었겠지만, 근무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첫 행동이 또 다른 근무를 주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일을 하지 않는 연습부터 해 봅시다.”
“어떻게 하는 건데요?”
“식당에 가서 좋아하는 걸 고릅니다. 먹고 나서는 쉬어도 되고요.”
하른은 진지하게 물었다.
“고르지 않으면 벌점을 받습니까?”
“아니요.”
“늦게 먹어도요?”
“괜찮습니다.”
하른은 오래 망설이다 점심을 먹으러 갔다. 루카가 옆에서 이야기 상대가 되겠다고 나섰다. 학생과 삼십 년을 잃은 경비원이 한 테이블에 앉아 메뉴를 고르는 모습은 묘하게 어울렸다. 루카는 감자 수프가 얼마나 맛없는지 설명했고 하른은 그것을 듣고도 기어이 감자 수프를 골랐다.
“왜 하필 그걸요?”
“이건 내가 직접 고른 거잖니.”
민규는 멀리서 그들을 보았다. 회복은 기록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자기 시간을 다시 자기 것으로 느끼는 연습이 필요했다.
해가 지기 전에 에일라는 한 번 더 연락했다. 그녀가 말한 세 가지 안전장치 중 수동 복귀 손잡이는 원본실 안쪽에 아직 남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손잡이를 사용하려면 기록망이 마지막으로 인정한 관리자를 찾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민규는 그 조건을 듣고 질문했다.
“마지막 관리자가 꼭 살아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원본에는 그렇게 적혀 있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면 이름 없이 확인한 증인 둘이 관리자의 역할을 나눌 수도 있겠군요.”
에일라는 수화기 너머에서 오랫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 사이로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말했다.
“당신들이 문을 열지 않고도 원본을 읽을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날 밤 하른이 정문으로 찾아왔다. 그는 이제 자신의 이름을 말할 때 조금 덜 망설였다. 민규는 하른에게 자리를 권했다.
“이제 퇴근할 시간이 됐습니까?”
하른은 고개를 저었다.
“저한테는 퇴근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름이 바뀌면 다음 근무가 시작됐거든요. 하지만 오늘은 이상한 기억이 났어요.”
그는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삼십 년 전 어린아이의 필체로 쓴 메모였다.
[하른 아저씨, 문을 지켜 줘서 고마워요. 내가 꼭 돌아올게요. 민규가.]
“이건 어디서 나왔습니까?”
“제 외투 안감에서요. 오늘 아침에는 없던 겁니다.”
민규는 메모를 조용히 살폈다. 글씨가 자신의 어린 시절과 닮았다. 틀린 철자까지 기억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지막 줄이 마음을 흔들었다.
[우리 엄마가 그랬어요. 문을 닫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이 경비원이라고.]
하른의 눈가가 붉어졌다.
“저는 그 말을 지키고 있었던 것 같아요.”
민규는 잠깐 시선을 내렸다. 그는 하른에게 무리하게 기억을 떠올리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두 사람 사이에 메모를 놓고 물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계속 정민규라는 이름으로 근무하셨는지는 아직 설명되지 않네요.”
하른이 미소를 지으려다 멈췄다.
“혹시 그 이름을 누군가에게 빌려 주면, 문 안에 있는 아이들을 살릴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요?”
대답은 없었다. 그때 메모가 놓인 책상 아래에서 낡은 경비모 하나가 나타났다. 18화에서 두 번째 경비원이 남겼던 모자였다. 모자의 안감에 적힌 글씨가 천천히 변하고 있었다.
[내부 잔류 / 정민규]
그 아래 새 문장이 생겼다.
[원본실 문 앞에서 대기 중 / 하른]
오래된 경비모는 보기보다 무거웠다. 안감에 들어 있는 작은 금속판이 축축한 천에 눌려 있었다. 민규가 판을 꺼내자 교대 시간 대신 서로 다른 세 개의 선이 나타났다. 하나는 학교 경비실, 하나는 북문, 마지막 하나는 기록 원본실을 가리켰다. 그는 그 방향을 바로 지도로 옮기지 않았다. 먼저 학교 종탑과 북문의 실제 방향을 나침반으로 확인했다.
“두 개는 맞는데 마지막은 아닙니다.” 셀레나가 말했다.
“이상한 곳을 가리키나요?”
“아예 방향이 아니라 시간을 가리키는 것 같아요. 새벽 두 시 십칠 분.”
민규는 금속판을 다시 안감에 넣었다. 원본실에 들어갈 입구는 여전히 찾지 못했다. 하지만 원본실이 위치와 시간을 동시에 주소처럼 사용한다는 점은 의심할 수 있었다. 그곳으로 향하는 길을 알게 되더라도 아무 때나 문을 열어서는 안 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하른이 조용히 물었다.
“저 모자, 다시 써야 할까요?”
“원하실 때 결정하세요. 근무 명령으로는 쓰지 않겠습니다.”
그는 모자를 하른의 손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의 빈 의자에 올려놓았다. 어느 쪽도 가져갈 필요 없는 자리였다.
민규는 경비모를 들어 손가락으로 안감을 눌렀다. 그리고 잠시 후 말없이 문밖을 바라봤다. 멀리 북부 시설관리조합에서 아주 낮은 종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누군가의 이름으로 시간을 벌어서는 안 됐다.
제2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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