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실 문 앞에는 출입 금지 표지가 두 장 붙어 있었다. 하나는 셀레나가 쓴 것이었다. [외부 기록 이상자 진료 중. 당사자 동의 없이 신원 조사 금지.] 다른 하나는 학생회가 급히 가져온 종이였다. [실종 학생과 구조된 학생을 구경하러 오지 마세요.]
루카는 두 번째 표지를 직접 붙였다고 자랑했다. 글씨 끝이 삐뚤었지만 말만큼은 정확했다.
“애들이 자꾸 문틈으로 들여다봐요. 뭘 구경하는데요. 사람이잖아요.”
민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날까지만 해도 루카는 사건을 게임처럼 여겼다. 문 앞에 서 있는 아이의 표정은 그때보다 한층 성숙했다.
북문 남자는 보건 교수 마레의 진찰대에 앉아 있었다. 마레는 채혈용 마법 바늘보다 먼저 평범한 청진기를 꺼냈다. 생명 반응을 읽는 주문이 외부 기록망에 연결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심장은 정상적으로 뛰고 있습니다. 체온도 정상이고요. 그런데 혈액 속에 오래된 수면 약재 성분이 조금 남아 있어요.”
“얼마나 오래된 겁니까?” 민규가 물었다.
“말하기 어렵습니다. 이곳 안쪽 시간과 밖의 시간이 다르게 흘렀다면 약물이 분해된 양만으로 바깥 시간을 측정할 수 없거든요.”
남자는 멍하니 자기 팔을 보았다. 그를 사람으로 확인하는 데는 긴 주문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은 훨씬 어려웠다.
“저는 원래 누구였을까요?”
질문이 너무 조용해서 루카도 장난을 치지 않았다. 민규는 침대 곁 의자를 끌었다.
“지금 갖고 계신 이름 말고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까? 작은 것도 좋습니다. 좋아하는 음식이나 어릴 때 살던 동네 같은 것.”
“붉은 콩 수프가 싫어요.”
“그건 아주 분명하군요.”
“누군가 먹으라고 하면 화가 났습니다. 자다가도 그 냄새가 나면 일어났어요.”
마레가 기록했다. 남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덧붙였다.
“발끝이 늘 젖어 있었습니다. 창문 없는 방에서 잤고, 문 옆 바닥에는 노란 줄이 있었어요. 줄 밖으로 걸으면 누가 이름을 빼앗는다고 했습니다.”
셀레나가 눈썹을 찌푸렸다.
“0층 보존실의 안전선과 같아요. 하지만 거긴 원래 학생용 피난 표시인데요.”
“학생용으로 만든 것이 다른 목적으로 쓰였을 수도 있지.” 민규가 말했다.
그가 남자에게 좀 더 물으려는 순간 창밖에서 종이 울렸다. 오전 아홉 시의 시작 종이었다. 마레가 학생을 진료할 때마다 듣던 익숙한 소리였지만 남자는 갑자기 두 귀를 막았다.
“출근해야 합니다.”
“지금은 진료 중입니다.”
“종이 울리면 출근해야 해요. 출근하지 않으면 다음 사람이 사라져요.”
그는 손목을 움켜쥐었다. 피부에 검은 글씨가 떠올랐다.
[정민규 / 야간 경비 / 현재 근무 중]
민규는 즉시 벽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아홉 시. 낮이었다. 그런데 보건실 전등이 순식간에 밤빛으로 바뀌었다. 창밖에서 학생들이 웃으며 지나가고 있었지만 방 안의 그림자만 길어졌다.
“급격한 기록 역전이에요.” 셀레나가 말했다. “지금 저 사람 주변에만 다시 야간 근무가 시작되고 있어요.”
“사람을 멈추게 해야 하나요?” 루카가 물었다.
“아니. 우선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지 관찰하자.”
남자는 진찰대 끝에 앉아 두 손을 꽉 잡고 있었다. 마레가 이름을 세 번 물어도 대답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종이 완전히 멎자 다른 답이 흘러나왔다.
“하른.”
민규가 고개를 들었다.
“어떤 뜻입니까?”
“하른. 나한테 그렇게 부르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그 이름을 사용해도 괜찮겠습니까?”
남자는 한참 동안 눈을 감았다가 끄덕였다.
“네. 다시 들으니까 조금 편안해요.”
민규는 차트의 표지에 '북문 남자' 대신 적었다. [하른 — 본인 요청에 따른 임시 호칭.] 그의 옆자리에는 마레가 독립적으로 기록한 진료 번호를 남겼다. 기록망의 글씨가 언제 다시 변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마법장부에 하른이라고 등록할까요?” 셀레나가 물었다.
“지금은 안 됩니다. 이름이 한 번 지워졌다 쓰이는 동안 무슨 일이 생기는지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그때 학교 행정실에서 급한 연락이 왔다. 아침 출근 명부에 야간 경비원 정민규가 다섯 명으로 늘었다는 내용이었다. 한 명은 실제 경비실에서 숙직한 민규. 한 명은 북문에서 돌아온 하른. 나머지 세 명은 얼굴도 보지 못한 이름뿐인 출근자였다.
오르반은 사무실에서 장부를 펼쳐 보였다. 세 명의 서명은 모두 다른 필체였다. 입사 날짜도 달랐다. 하지만 공통된 부분이 있었다.
[야간 경비 정민규 / 북쪽 점검 구역 / 출근 시간 02:17]
“제가 언제 사람을 다섯이나 뽑았습니까?” 교장이 물었다.
“직원 채용보다 먼저 확인할 게 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임금이 지급된 기록이 있습니까?”
오르반은 당황했다.
“지금 이 상황에 임금부터 따지자는 건가?”
“이게 실제 근무자라면 급여가 있는 것이 정상입니다. 실존하지 않는 기록이라면 돈이 어디로 갔는지 흔적이 남겠죠.”
학교 회계실의 장부는 마법 깃펜이 자동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셀레나가 읽기 전용 복사 마법을 걸고, 민규는 낡은 종이 영수증과 대조했다. 지난 삼십 년 동안 북문 야간 경비 수당이 끊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학교가 폐쇄된 기간에도 급여가 나갔다. 수취인 이름은 언제나 정민규였다.
“금액은 적습니다.” 회계 담당 교수가 말했다. “매달 경비원 한 사람의 급료만큼입니다.”
“삼십 년이면 작지 않죠.” 민규가 대답했다. “어디로 보내셨습니까?”
“북부 시설관리조합. 학교와 마을이 함께 운영하는 곳입니다.”
바르트가 무전으로 듣더니 욕설을 삼켰다.
“그 조합은 십오 년 전에 해산됐소! 회계 장부만 남아 있다니.”
“해산됐는데도 돈을 계속 받은 셈이군요.”
민규는 행정실 벽에 종이를 세 장 붙였다. 첫째, 실제로 만난 사람의 목록. 둘째, 종이에만 존재하는 출근자의 목록. 셋째, 수당이 지급된 계좌와 기관. 셀레나는 각 목록을 서로 다른 마법망에서 분리해 저장했다.
“혹시 돈을 받는 존재가 사람의 이름도 받는 걸까요?” 루카가 물었다.
“가능성은 있지만 증거는 아직 없어. 이름과 돈의 흐름이 같은 장소에서 만난다는 사실까지만 적자.”
회계실의 창고는 습했고, 오래된 밀랍 냄새가 났다. 민규가 장부를 읽는 동안 루카는 종이를 넘기는 역할을 맡았다. 장부를 제멋대로 펼쳤다가 원본 훼손으로 오해받지 않도록 흰 장갑을 끼고 한 장씩 넘겼다. 모범생이 된 건 아니었다. 루카는 십 분마다 지루하다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자기 누나에게 보낼 편지가 막혀 있는 이유와 이 장부가 연결돼 있을 수 있다는 말에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장부에는 수당과 함께 오래된 물품 구매 내역이 있었다. 방수 외투 두 벌, 안전모 두 개, 손전등 네 개, 겨울용 담요 일곱 장. 매달 똑같이 기록되던 물품들이 어느 해부터 사라지고 '교대 인수 비용'이라는 알 수 없는 항목으로 바뀌었다. 그 항목에는 수령인의 이름도, 사용 목적도 없었다.
“교대 인수 비용이 뭡니까?” 민규가 물었다.
회계 담당 교수는 오래된 회계 규정집을 펼쳤다.
“직원이 야간 근무를 마치고 다음 직원에게 출입 열쇠를 인계할 때 지급하는 수당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만 계속 근무했다면 이 항목이 생길 수 없죠.”
“월마다 무조건 지급됐네요.”
“예. 자동 지급 결재를 끊어 놓지 않았습니다.”
민규는 수첩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장부가 말한 것은 돈의 액수만이 아니었다. 누군가 지난 삼십 년 동안 야간 경비원이라는 자리를 비워 두지 않으려 애썼다는 흔적이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실제 사람이 매번 같은 사람일 필요는 없었다.
루카가 종이를 들고 말했다.
“여기에는 '근무 인수 확인'이 매달 찍혔어요. 근데 사인하는 사람이 다 달라요.”
민규는 세 장을 비교했다. 첫 장의 서명은 성인 남성의 힘찬 필체, 둘째는 손이 떨리는 사람의 필체, 셋째는 글씨를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어색한 필체였다. 모두 '정민규' 세 글자였다. 이름은 같지만 쓴 사람은 분명 서로 달랐다.
“도용된 서명일까요?” 셀레나가 물었다.
“그럴 수도 있고, 서로 다른 사람이 같은 이름을 쓰도록 강요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 가능성은 더 불편하군요.”
“어떤 건데요?”
“어쩌면 어떤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잊어서 이 이름이 본명이라고 믿었을지도 모릅니다.”
회계 담당 교수는 말없이 장부를 덮었다. 학교가 지난 수십 년 동안 관리비를 정확히 납부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신원이 계속 바뀌었을 수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단순한 분노보다 책임감에 가까운 감정이 떠올랐다.
“이 지급을 지금 끊겠습니다.”
민규는 한 발 앞을 막았다.
“일단 연결된 설비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끊죠. 돈이 지급되지 않는 순간 안에 있는 사람을 강제로 퇴근 처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계속 줘야 한다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자동 지급을 중지할 계획을 세우고, 영향을 받을 사람을 먼저 보호하자는 겁니다.”
셀레나는 회계 장부에서 종이 한 장을 떼지 않고 그대로 복제했다. 복제본에는 '원본 훼손 방지용'이라는 표시를 넣었다. 민규는 그 사본을 회계실 금고와 경비실 수첩에 각각 남기도록 했다. 서로 다른 두 장소의 기록이 같은 날 바뀌는지 확인하면 어떤 변조가 일어나는지도 추적할 수 있었다.
그때 회계실 천장에 걸린 작은 종이 바람도는 바람이 없는데도 한 바퀴 돌았다. 바람도 끝에 매달린 이름표 하나가 까맣게 변했다.
[교대 인수 예정: 금일 자정]
“예고가 시작됐군요.” 셀레나가 중얼거렸다. 민규는 바람도 끝을 만지지 않고 시각만 적었다. 아직 뭔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은 아니었다. 다만 선택을 강요하려는 장치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행정실 문 앞에서 마레가 하른을 데리고 왔다. 하른은 진료를 마치고 쉬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지만, 혼자 있기 싫다고 했다. 그는 벽에 붙은 조합 이름을 보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저 거기를 압니다.”
“언제 가 보셨습니까?”
“어제인지 삼십 년 전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름을 잊을 때마다 저기를 통해 다시 출근시켰어요.”
“누가요?”
“말을 잘하는 남자. 흰 장갑을 끼고, 사람들에게 규정을 설명하는 사람.”
서기관이었다.
“그 사람이 직접 받습니까?” 민규가 물었다.
하른은 고개를 저었다.
“그 위에 다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얼굴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목소리도요. 그런데 그 사람이 가까이 오면 모든 종이 위의 숫자가 영으로 바뀌었습니다.”
셀레나의 손이 멎었다.
“숫자를 지워요?”
“이름만 지우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일했던 시간도 지웠어요. 그러면 새 사람이 출근할 수 있었습니다.”
민규는 조용히 하른을 봤다.
“당신의 근무가 몇 번이나 시작됐는지 기억하십니까?”
하른은 소매를 걷었다. 손목 안쪽에 오래된 긁힘이 줄지어 있었다. 스스로 낸 상처 같았지만 규칙적으로 일정했다. 그 위에는 숫자가 아주 작게 떠올랐다.
[교대 10824회]
루카가 숨을 들이켰다. 삼십 년 동안 밤마다 교대했다면 대략 맞아떨어질 법한 횟수였다.
“그러면 하른 씨는 매일 밤 출근했던 건가요?”
하른이 대답하기 전에 장부에서 소리가 났다. 쉴 새 없이 일하던 깃펜이 혼자 움직여 새로운 문장을 썼다.
[경고: 이름 사용권 만료까지 12시간.]
[새 교대자 지정: 경비실의 정민규.]
오르반은 얼굴을 굳혔다. 민규는 문장을 끝까지 읽었다. 서기관이 제출했던 오래된 해고 명령보다 명확한 협박이었다.
그는 자신의 근무 수첩을 뒤집었다. 앞표지에는 오늘 날짜가 적혀 있었다. 뒷표지에는 어젯밤 구조 성공 시 찍어 둔 안전 점검 확인 도장이 있었다.
“근무를 사람처럼 갈아 끼울 수는 없죠.”
민규가 말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은 우리가 무엇을 고쳐도 결국 저를 새로운 야간 경비원으로 등록하려 합니다. 이유를 찾아야겠습니다.”
하른이 처음 자기 이름을 소리 내어 불렀을 때, 민규는 그 순간을 기록하지 않았다. 녹음기는 이미 책상 위에 있었지만 손을 대지 않았다. 이름을 되찾은 사람에게 가장 먼저 줄 수 있는 것은 증거가 아니라 침묵할 권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른은 손가락을 세며 기억나는 하루를 더듬었다. 아침에 비가 왔던 날, 경비모가 젖었던 날, 학생 하나가 자기에게 우산을 빌려준 날. 그 모든 기억에서 날짜는 사라져 있었지만 사람의 표정은 남아 있었다. 그는 웃으려다 고개를 숙였다.
“저는 계속 교대를 기다렸어요. 나가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대신 갇힐 거라고 했거든요.”
민규는 의자 옆에 놓인 빈 근무표를 뒤집었다. 그 위에 펜으로 '지금은 휴식'이라고 적었다. 하른은 그 종이를 오래 바라봤다. 종이 한 장이 마법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다만 누군가 처음으로 그에게 쉬어도 된다고 말해 주었다.
하른이 떨리는 목소리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북쪽 조합 지하에 진짜 근무표가 있어요. 이름을 전부 모아 놓은 표가.”
“어디에 있습니까?”
“배수로 안쪽입니다. 학교 담장 밖인데, 계단을 내려가면 0층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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