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보관소로 가는 길은 지도에 표시된 것보다 길었다.
구호소의 빗물 터널은 중간에서 두 갈래로 나뉘었고, 왼쪽은 오래전에 건축 폐기물로 막혀 있었다. 오른쪽은 사람의 키보다 낮은 배수관 아래로 이어졌다. 바르트는 터널 끝의 벽돌을 하나 두드려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벽돌 사이의 모르타르는 아직 굳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누군가 최근에 길을 막으려 했다는 뜻이었다.
“벽을 부수면 됩니다.” 루카가 말했다.
“부술 수는 있지.” 민규가 대답했다. “그런데 저 뒤에 누구의 방이 있는지도 아직 모르는데?”
그들은 초음파와 마법 감지기를 함께 사용했다. 벽 너머에는 작은 빈 공간이 있었고, 그 안쪽으로 오래된 배관이 지나갔다. 살아 있는 사람이 있는 흔적은 없었지만 물이 갑자기 들이칠 가능성은 있었다. 민규는 먼저 반대쪽의 비상 배수문을 확보하고 구조대에게 대기 위치를 알렸다.
새벽의 공기는 축축했다. 셀레나는 손끝의 빛으로 벽에 작은 표시를 그렸다. 위험한 구역은 붉은색, 확인한 출구는 푸른색이었다. 마법진이 실수로 뒤집힐 때도 색이 뒤바뀌지 않도록 바르트의 금속 표식을 붙였다. 두 사람은 이번 일로 말싸움을 했다.
“제 표시만으로도 충분해요.” 셀레나가 말했다.
“마력이 끊기면요?”
“그럼 당신 철판을 보겠죠.”
“그러니까 둘 다 필요한 겁니다.”
루카는 웃음을 참다가 먼지에 재채기를 했다. 긴장한 분위기가 조금 풀렸다. 민규는 그 소리를 듣고 사람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서로 농담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여유의 한 징후였지만, 아무도 피곤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었다. 안쪽 진입은 짧게 끝내기로 했다.
그들이 벽 뒤에 도달했을 때 또 다른 문이 나타났다. 나무로 된 작은 문이었다. 손잡이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 조각이 새겨져 있었다. 문 위에는 낯익은 글씨가 남아 있었다.
[구조 요청 접수 창구. 보호자 부재 시에도 문을 열 것.]
민규는 그것을 보며 숨을 고르게 쉬었다. 적어도 원래 구호소에서는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아이를 구조하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하려 했다. 비상 장치의 첫 설계는 틀리지 않았다. 누군가 나중에 그 뜻을 바꾼 것이다.
케스가 외부에서 연결한 작은 화면에는 중앙의 폐쇄 명령이 계속 흘렀다. [원본 보관소 접근 중. 최초 승인자 자격 검증.] 이 문장을 보는 순간 민규의 얼굴이 검게 변한 거울처럼 화면에 비쳤다. 어른의 목 옆 흉터가 가려지자 그는 잠시 여덟 살 아이처럼 보였다. 셀레나가 얼른 그 화면을 가렸다.
“그냥 기록 확인 화면이 아니에요. 우리 얼굴과 발걸음을 승인의 일부로 사용하려고 해요.”
“출입 그 자체를 동의라고 처리하는군요.” 민규가 말했다.
“이런 때는 어떡하죠?”
“원본 열람과 동의 절차가 서로 독립적이라는 걸 보여 줘야죠.”
바르트는 수동 통화구를 찾았다. 구호소에는 원래 문을 열지 않고도 안쪽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는 장치가 있었다. 민규는 거기에 연결된 선을 바깥 독립 회선으로 빼내어 요청을 남겼다.
“여기는 현장 구조팀입니다. 원본을 보존하기 위한 안전 진입을 요청합니다. 출입은 승인도 근무 신청도 아닙니다.”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그러다가 낡은 창구 안에서 종이 한 장이 미끄러져 나왔다. [열람 신청을 수신했습니다.]
모두가 동시에 숨을 내쉬었다. 두 번째 문장도 떴다. [신청 자체에 신규 책임을 부여하지 않습니다.] 셀레나가 즉시 원문 사진을 찍었다. 이 원칙이 살아 있다는 건 중앙의 강제 배정 기능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문을 열자 좁은 자료실이 나타났다. 천장에는 오래된 환기팬이 매달려 있었고 바닥에는 철제 서류함이 줄지어 있었다. 제일 안쪽 선반에는 소형 인쇄기가 있었다. 그것은 여전히 가동 중이었다. 사람이 없는데도 종이를 접고 도장을 찍었다. 기계 옆에는 공란이 많은 보고서 더미가 있었다.
[구조 요청 없음. 현장 인계 완료.]
[현장 확인자 부재. 최초 승인자 대체.]
서로 반대인 문장이 같은 날짜에 같은 기계에서 나왔다. 민규는 그 두 장을 나란히 놓았다. 누군가 실제 구조를 확인하지 않았어도 보고서가 끝나도록 만든 기능이었다.
“이 기계를 멈추면 정산도 멈춥니까?” 루카가 물었다.
“여기에서만 멈출 수 있겠지. 중앙에는 다른 기계가 더 있을 거야.” 셀레나가 대답했다.
민규는 선반 뒤에서 원본 변환표를 찾았다. 겉장에는 [비상 구호 시스템 제1형]이라고 적혀 있었다. 페이지를 넘기자 절차는 간단했다. 신고가 들어오면 즉시 구조 요청을 저장한다. 사람이 확인되지 않으면 미확인 상태로 남겨 다음 구조대를 호출한다. 구조된 인원은 실제로 밖에 나온 것을 현장 두 사람이 확인한 뒤 기록한다. 여기까지는 합리적이었다.
그 다음 장의 종이는 다른 색이었다. 새로 끼워 넣은 페이지에 [최초 확인자는 다음 확인자가 올 때까지 현장을 떠날 수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볼펜 잉크는 첫 장보다 훨씬 선명했다. 종이의 하단에는 수정 승인 도장이 찍혀 있었지만 도장 주인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케스가 마법식 문서 검사기를 대자 도장이 잠깐 반짝였다. 거기에는 사람의 서명 대신 임시 장치번호가 들어 있었다. 수해 당시 긴급 접수 담당자들에게 지급된 번호였다. 도장을 찍은 사람은 한 명으로 특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번호를 이용해 변경한 날짜와 이를 재승인한 기관들은 추적할 수 있었다.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핑계는 이제 못 하겠군요.” 케스가 통신으로 말했다.
서류함 아래쪽에서 또 다른 책이 발견됐다. 구조자 출입 장부였다. 삼십 년 전 사고 당일, 두 시 십칠 분에 구조 요청이 접수되고 두 시 십구 분에 어린 민규가 구호소 밖으로 인계됐다. 그런데 두 시 이십일 분에 새로운 행이 생겼다.
[신원 미확인 아동: 구조 요청 유지.]
“그럼 그 아이는 실제로 남아 있었던 겁니까?” 미라가 물었다.
“가능성이 있지. 그런데 이 장부만으로는 아직 말할 수 없어.” 민규가 답했다.
독립 회선의 아이는 조용히 장부를 읽었다. 그가 말을 하지 않아도 제어반은 경보를 울리지 않았다. 잠시 뒤 아이는 말했다. “나는 문 뒤에서 울음소리를 들었어. 그걸 알리려고 했어. 그런데 어른들이 자꾸 내가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했어.”
민규는 서류함의 마지막 칸을 열었다. 그 안에는 두 장의 출구 확인지가 있었다. 첫 장은 어린 민규가 밖으로 인계됐다는 자료였고, 둘째 장은 비어 있었다. 두 장은 한 사람의 앞뒤가 아니라 서로 다른 용도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빈 장이 왜 있어요?” 루카가 물었다.
“나중에 확인할 사람을 적으려던 걸 수도 있고, 특정 대상이 없는 안전 확인 칸일 수도 있어.”
셀레나는 표의 각주를 읽었다. [미확인 인원 발생 시 실존 여부 확인 전까지 빈칸 유지.] 민규는 그 문장을 표시했다. 이 시스템은 원래 빈칸을 허용했다. 그런데 현행 시스템은 빈칸을 '남아 있을 사람'으로 읽고 있었다.
원본 보관소의 서류함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의 필체가 섞여 있었다. 민규는 그동안 중앙의 명령이 하나의 거대한 의지에서 나오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실제 페이지를 넘기자 서로 다른 시대의 사무실 냄새가 났다. 잉크가 번진 종이도 있고, 바늘로 모서리를 꿰맨 페이지도 있었다. 표지에는 '긴급 후속 조치'라고 적혀 있었지만 그 후속 조치가 언제 끝났는지는 아무도 표시하지 않았다.
케스는 자료를 촬영하면서 개인 정보가 포함된 부분을 임의로 공개하지 않았다. 이름이 적힌 사람이 지금 어디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원본 전체를 전송하면 또 다른 피해가 생길 수 있었다. 대신 서식의 변경 이력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부분과 실제 구조 요청 기록을 나눠 보존했다. 원본을 덮어쓰지 않고 접근 이력을 남기는 방식이었다.
자료실의 구석에는 작은 방명록이 있었다. 페이지마다 조그만 동그라미가 하나씩 찍혀 있었다. 민규는 그것이 대피 인원의 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르트가 뒷표지의 안내를 찾아냈다. 동그라미는 사람 수가 아니라 점검해야 할 출입문의 수였다. 오래전 담당자는 문을 열어 보았을 때마다 하나씩 찍었다. 그 목록에 사람이 몇 명 나왔는지는 별도로 적도록 되어 있었다.
“여기서도 문과 사람을 섞으면 잘못된 숫자가 되겠네요.” 미라가 말했다.
“그렇게 된 적이 많았다는 증거겠지.” 민규가 답했다.
오래전 구호소 관리자는 출입문 점검을 끝내면 동그라미 아래에 짧은 선을 그었다. 그런데 사고 다음 날의 페이지에는 마지막 선이 없었다. '문을 아직 확인하지 못했음'이라는 뜻이었다. 누군가 그 빈칸을 채우려고 했고, 그것이 살아 있는 사람의 근무로 바뀌었을 수도 있었다.
서가원은 통신으로 원래 설계의 세부 내용을 설명했다. 그는 아이가 실제로 어디에 있는지 확인할 때 문을 세고 사람을 세는 절차를 분리하려 했다고 했다. 사람을 구조한 뒤 문이 닫혔다는 보고를 받으면 기계는 구조 완료 문장을 기록한다. 그러나 확인이 부족하면 새 구조 요청을 남겨야 한다. 마지막에 있는 사람을 남게 하는 기능은 그가 처음 그린 설계도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 왜 보존하지 못했습니까?” 민규가 물었다.
“정식 제도가 채택되는 과정에서 내 설계서가 여러 번 수정됐고, 나는 그 사실을 알고도 강하게 반대하지 못했소.”
“그럼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해 주세요. 원래 기능을 증명할 시험이 필요합니다.”
서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기가 만든 안내 마법진이 당시의 임시 보호 목적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동정받기 위한 고백이 아니라 기술적 검증에 참여하겠다는 뜻이었다.
민규는 어린 시절 쓴 듯한 낙서 한 장도 발견했다. 작은 집과 나무가 그려져 있었고, 문 앞에는 우산 든 사람 셋이 서 있었다. 그중 가장 작은 사람 아래에 [엄마]라고 적혀 있었다. 민규는 그것이 자기 그림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옆의 글씨가 익숙했다. [안에 있는 사람도 나와야 해요.] 그 종이는 누군가의 서명이 아니라 바람을 적은 그림 같았다.
그는 그림을 사진으로 남기고 원본을 제자리에 두었다. 만약 자신의 그림이라고 확인되더라도 개인적인 기억을 장치의 소유로 넘기고 싶지 않았다. 기록은 사건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지만, 모든 기억이 중앙 기관의 자료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미라는 그를 보며 말했다. “아저씨는 어릴 때도 문 그림을 그렸네요.”
“어릴 때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는 모르지만, 지금도 문이 잘 열리는 건 중요해.”
루카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럼 다음에는 정문 대신 창문으로 나가는 법을 배우죠.”
“창문이 출입구로 설계됐으면. 아니면 안 돼.”
세 사람은 낮게 웃었다. 심각한 증거가 있는 방에서도 잠깐 웃을 수 있었다. 그들 모두 나중에 실제로 그 문을 지나 밖으로 나가야 했다.
민규는 장부의 표지를 다시 닫았다. 표지를 닫는 일이 자료를 덮어 버리는 것은 아니었다. 케스가 번호를 붙여 둔 봉투에는 지금까지 발견한 서류가 어떤 순서로 나왔는지 적혀 있었고, 외부 보존소에는 읽기 전용 사본이 전달됐다. 그 기록을 남긴 이유는 훗날 누군가 같은 종이를 보고 다른 질문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날의 진실을 자신 한 사람의 판단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자료실의 조명이 갑자기 꺼졌다. 중앙에서 원본 보관소를 폐쇄하는 명령이 내려온 것이다. 민규는 이미 확인한 출구 쪽을 바라봤다. 바르트가 비상등을 켰고, 셀레나는 독립 전원으로 환기팬을 돌렸다. 종이함 뒤에서 작은 기계음이 들렸다. 새로 인쇄된 종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미완료 구조 한 건. 빈칸을 채울 현장 확인자를 지정합니다.]
민규는 종이를 집어 들지 않았다. 대신 무전기에 말했다.
“우리는 지금 이 방을 나갑니다. 빈칸은 그대로 두세요. 그게 누군가 실제로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뜻이라면 먼저 찾겠습니다.”
그들은 가져올 원본을 지정하고 사본과 촬영본을 확보한 뒤 밖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자료실 안쪽의 낡은 전화기에서는 여전히 작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녹음처럼 정확히 반복되지 않았다. 물이 차오르는 속도에 따라 숨이 가빠졌다. 민규는 걸음을 멈추려다가 계단 위의 사람들을 보았다.
“안쪽에 누가 있는지 확인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다시 들어가는 건 다른 구조 계획이 필요합니다.”
그는 현장을 그냥 떠나는 게 아니었다. 길을 지키는 사람을 남기지 않고, 다시 들어갈 길을 만들기 위해 나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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