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소에서 발견한 빗물 터널의 입구는 세탁소 뒤편에 있었다.
지금은 도로 아래로 내려가는 작은 점검구였지만, 삼십 년 전에는 수해 때 주민들이 높은 지대로 빠져나가던 비상 피난로였다. 세탁소 주인은 이곳에서 매번 눅눅한 바람이 올라온다며 구청에 수리를 요청했다고 했다. 구청은 물이 흐르는 관이라며 별일 아니라고 답했고, 어느 해에는 낡은 뚜껑 위에 새 아스팔트를 덮기까지 했다.
민규는 그 이야기를 듣고 뚜껑 아래의 쇠고리를 살폈다. 용접 자국은 없었지만 잠금 장치가 새것이었다. 구호소의 오래된 서류를 보관하는 통로에 누군가 최근에 손댔다는 뜻이었다.
“열면 됩니다?” 바르트가 물었다.
“그 전에 물 흐르는 방향을 봐야 합니다. 안쪽에 기압이 걸려 있으면 뚜껑이 튀어 오를 수도 있어요.”
민규가 작은 측정관을 꽂자 공기가 한 번 세게 빠져나왔다. 이상한 냄새는 없었지만 측정기 숫자가 계속 바뀌었다. 비상 회송 마법이 온도를 잘못 읽게 하는 것 같았다. 셀레나는 측정용 부호를 고정하고, 바르트는 물리식 압력계 하나를 더 연결했다. 두 기계가 모두 안정되는 데 십 분이 걸렸다.
그 사이 전국의 학교에서는 더 큰 문제가 나타나고 있었다. 중앙 기록망은 실물 확인을 마친 학생들의 출입증에 임시 근무표를 부여하고 있었다. 어떤 학생은 식당에 들어갈 때마다 [대체 관리자]라는 문구가 떠서 배식을 받지 못했다. 흰등성이 분교에서는 기숙사 난방이 '담당자 부재'라는 이유로 꺼졌다. 그 학교의 선생님은 아이들을 체육관으로 옮기고 예비 난방기를 가동했다.
“모두 여기로 몰려와도 되는 겁니까?” 오르반이 통신으로 물었다. “현장에 사람이 더 필요하다면 보내겠습니다.”
“반대입니다.” 민규가 대답했다. “각 시설에 남아서 직접 확인해 주세요. 제가 지금 누구를 보고 있는지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어도, 먼 학교의 학생이 춥고 무서운지는 거기 있는 선생님이 알아야 하니까요.”
벨라는 학생들과 함께 손으로 적은 출석지를 제출했다. 종이에는 이름뿐 아니라 학생이 현재 어느 방에 있고 누구와 함께 있는지가 적혀 있었다. 잠시 뒤 중앙이 새로운 경고를 냈다. [현장 기록의 형식이 표준과 다릅니다.] 벨라는 경고를 보고 잠깐 웃었다.
“표준이 우리가 본 사람을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요.”
민규는 그 말이 든든했다. 구조팀이 한곳으로 모이면 대단한 마법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람을 지키는 일은 현장마다 계속돼야 했다.
점검구의 뚜껑이 마침내 열렸다. 터널은 사람 하나가 허리를 숙이고 걸을 만큼 높았고, 바닥에는 몇 센티미터의 물이 흘렀다. 민규는 진입자를 세 명으로 제한하고 바깥에 연락 담당을 두었다. 들어가는 사람마다 몸에 매는 안전줄을 확인했다. 자동 구출 마법이 있다고 해도 줄이 어디에 묶였는지 아는 편이 좋았다.
터널로 스무 걸음 들어가자 벽에 낡은 표시가 보였다. [위로 올라가면 구호소. 아래로 내려가면 강변.] 그 아래에 아이의 손으로 그린 듯한 화살표 하나가 덧그려져 있었다. 화살표는 위를 가리키지 않고 바깥쪽을 가리켰다.
“누가 피난 방향을 다시 표시했네요.” 셀레나가 말했다.
민규는 손전등으로 벽을 비췄다. 화살표 옆에는 아주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문 밖에서 사람을 세세요.] 그는 그 문장을 보고 왠지 웃음이 났다. 자기 어릴 적 필체와 닮아 있었지만, 더 단정한 어른의 손길도 느껴졌다. 아이가 말한 문장을 누군가 받아 적었을 수도 있었다.
터널 끝에서는 낡은 전화기가 발견됐다. 벽에서 반쯤 떨어진 수화기에는 녹이 슬어 있었고, 다이얼에는 숫자 대신 세 가지 그림이 있었다. 물방울, 발자국, 열린 문. 셀레나가 주문으로 전류를 흘리려 했지만 민규는 손을 들었다.
“먼저 설명서를 확인해요. 무턱대고 연결하면 비상 근무 신청으로 바뀔지 모릅니다.”
설명서는 전화기 밑에 묶여 있었다. 아이를 찾았을 때 물방울을, 찾지 못했을 때 발자국을 누르고, 모두가 실제로 밖에 나왔을 때만 열린 문을 누르는 장치였다. 초창기에는 사람의 이름을 적지 않아도 구조 신고를 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었다. 그런데 세 번째 그림 위에 작은 금속판이 덧붙어 있었다.
[최종 확인자 상주.]
“열린 문을 누르는 사람을 계속 남게 만들었군요.” 셀레나가 말했다.
민규는 덧붙은 금속판 아래로 지나가는 케이블을 확인했다. 원래 선 하나가 두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외부에 신호를 보내고, 다른 하나는 기록망에 사용자의 이름을 붙잡아 두는 선이었다. 후자의 선은 최근 교체한 새 케이블이었다. 오래된 오류를 현재까지 유지하려고 누군가 정비한 증거였다.
그때 전화기에서 벨이 울렸다. 터널 바깥에서 케스가 무전으로 물었다. “전화기가 울립니까? 이쪽 총국 화면에는 제0대 승인자가 접속했다고 나옵니다.”
“아무도 다이얼을 누르지 않았습니다. 수화기에도 손대지 않았어요.”
벨은 세 번 울렸다. 네 번째 울릴 때는 다른 소리가 섞였다. 아이가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였다.
“여보세요?” 셀레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람들 모두 나갔어요?”
아이의 목소리는 보호실의 아이와 달랐다. 아주 작고 먼 곳에서 말하는 것 같았다. 민규는 서둘러 '모두 나왔다'고 답하지 않았다. 구호소 안쪽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밖에 있는 사람은 확인했어. 그런데 너는 지금 어디 있니?”
“여기요. 비가 멈추지 않는 방.”
스피커에서 물소리가 났다. 오래전 구호소에 누군가 남아 있다고 알려 준 바로 그 소리였다. 민규는 통화 내용을 녹음하는 한편, 그가 현재 사는 사람인지 과거 기록인지 단정하지 않았다.
“이름을 알려 줄 수 있니?”
“내 이름으로 부르면 문이 잠겨요.”
“그러면 당장은 말하지 않아도 돼.”
그 말이 나가자 수화기 너머에서 의외의 대답이 왔다. “이상하네요. 아저씨는 사람 이름부터 확인하지 않아요?”
“필요하지만, 지금은 네가 어떻게 숨 쉬고 있는지도 알아야 하니까.”
오래된 전화기의 작은 램프가 켜졌다. [응답 확인. 근무 배정 보류.]
셀레나는 민규를 바라봤다. 근무를 배정하지 않은 상태로도 통화가 이어질 수 있었다. 새 케이블에 가려진 옛 기능이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었다.
안쪽 문을 찾는 동안 루카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백종 마법학원 학생들이 수동 계단을 통해 무사히 강당에 도착했다는 소식이었다. 흰등성이 분교의 난방도 예비 장치로 유지되고 있었다. 아직 중앙의 정산 명령이 종료된 것은 아니었지만, 실제 사람들의 안전은 버티고 있었다. 민규는 손전등을 쥔 손의 힘을 조금 풀었다.
전화기의 부품함 안에는 작은 금속봉투가 있었다. 물에 젖지 않도록 밀봉한 봉투 안에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신호 키가 들어 있었다. 양쪽 면에는 서로 다른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앞면에는 [구조 요청은 책임 인수가 아니다]. 뒷면에는 [확인 실패는 다음 구조 요청으로 이어진다].
“원래 설계에는 이런 원칙이 있었네요.” 바르트가 말했다.
셀레나는 서가원에게 신호 키 사진을 보냈다. 몇 분 뒤 답장이 왔다. 원본 설계가 지하 구호소에 한 벌 더 남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메시지였다. 그 다음 문장은 떨리는 필체로 적혀 있었다.
[그날 나는 저 열쇠를 꺼내지 못했습니다. 꺼냈다면 아이에게 서명하라고 하지 않아도 됐을 것입니다.]
민규는 열쇠를 무조건 꽂지 않았다. 키를 사용할 때 전국 장치에 어떤 신호가 전달되는지, 어떤 기록이 손상될 위험이 있는지부터 계산해야 했다. 분실한 사람들의 기록은 아직 곳곳에서 조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구원의 문을 열려다 증거를 모두 지울 수는 없었다.
조문택은 터널 입구에서 예전 구호소의 구조를 설명해 주었다. 바깥 계단에서 지하로 내려오면 가장 먼저 구호 물품 창고가 나왔고, 그 옆에 간호대가 있었으며, 마지막 문 뒤에는 강물이 차올라도 한동안 버틸 수 있는 높은 대피실이 있었다. 지금은 벽을 세우고 배수관을 바꾸는 바람에 처음 설계와 많이 달라졌다. 민규는 노인이 가리킨 위치를 현재 도면에 하나씩 표시했다.
“그날 구호소 안에 있던 사람이 열두 명이라는 말이 있었어요.” 노인이 말했다. “그런데 그 숫자가 대피자 수인지, 일한 사람까지 포함한 건지 기억나지 않소.”
“그걸 구분해 놓겠습니다. 당시 수첩이 남아 있습니까?”
“집에 두고 왔지. 아내가 오래된 물건을 버리지 못하게 해서 다행이오.”
노인은 잠깐 미소 지었다.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아내를 말할 때는 여전히 과거형이 어색한 모양이었다. 그는 서둘러 사건의 영웅이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자신이 잘못 기록한 숫자가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뜨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민규는 함께 확인하자고 약속했다.
터널 밖에서 바르트는 배수관을 통과한 물의 흐름을 실험했다. 작은 목재 조각을 띄워 어느 쪽으로 흘러가는지 보았다. 물은 지도대로 흐르다가 세 번째 모퉁이에서 잠시 맴돌았다. 그곳에는 오래전에 만든 턱이 있었다. 수해 때 물이 거꾸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장치였지만, 지금은 쓰레기가 걸려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바르트는 턱을 제거하지 않고 임시 거름망을 설치했다. 원래의 안전 기능을 없애지 않으면서 흐름을 개선하는 방법이었다.
“이것도 우리가 고쳐야 합니까?” 셀레나가 물었다.
“지금 안 고치면 다시 들어올 때 발을 헛디딜 수도 있어요.” 바르트가 말했다.
민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한 마법을 찾아낸다고 현장의 작은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작은 일을 누가 맡을지 분명해야 구조팀 전체가 움직일 수 있었다. 그는 점검표에 거름망 설치 위치와 설치한 사람 이름을 적었다.
임시 지휘소에서는 미라가 주민들의 증언을 분류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구호소에서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했고, 다른 사람은 같은 날 비상 종이 다섯 번 울렸다고 했다. 두 증언은 서로 맞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미라는 처음에는 어느 쪽이 틀렸는지 찾으려 했지만, 루카가 종을 들은 장소와 울음소리를 들은 장소가 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둘 다 사실일 수도 있잖아.” 루카가 말했다. “우리가 하나로 합치니까 다르게 보이는 거고.”
미라는 자신의 분류표에 장소를 적는 칸을 새로 만들었다. 같은 사고를 겪더라도 사람마다 보고 들은 것은 달랐다. 누군가의 말이 다른 사람의 기록과 어긋난다는 이유로 그 말을 지울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민규에게 새 표를 보여 주며 물었다.
“이렇게 하면 확인해야 할 게 더 많아져요. 괜찮아요?”
“괜찮아. 적어도 잘못된 답 하나로 덮지는 않겠지.”
저녁이 되자 각 학교의 연락망에서 짧은 안부 보고가 들어왔다. 백종 학원에서는 학생들이 무사히 식사를 마쳤고, 흰등성이에서는 난방기를 점검 중이며, 제11시설에서는 역무원이 열차를 안전한 곳에 정차시켰다고 했다. 민규는 보고 끝에 항상 다음 확인 시각을 남기도록 했다. 구조 완료가 아닌 상황을 너무 일찍 완료라고 부르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날 미라는 처음으로 경비실의 낡은 스프링 공책을 자기 필체로 채웠다. 그녀는 실종자가 사라진 장소만 적지 않았다. 돌아올 곳, 현재 담당자, 마지막으로 직접 확인한 사람을 적었다. 루카는 페이지를 넘기며 그 목록에 자신의 이름도 들어 있는지 물었다. 미라는 웃으며 대답했다. “너는 자꾸 실습실에서 사라지잖아. 당연히 적어야지.”
루카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작은 말다툼을 하는 동안에도 터널 안의 긴급 신호는 끊기지 않았다. 사람들의 평범한 소란과 아직 끝나지 않은 구조 요청이 같은 밤에 존재했다.
터널 안쪽 문이 다시 벨을 울렸다. 이번에는 전화기의 수화기와 상관없이 벽 자체가 소리를 냈다. [미확인자 한 명. 구호소 최종 인계 유예 12분.] 쇳소리가 울리는 사이 하수관에서 물이 역류하기 시작했다. 바르트가 바닥의 수위 표시를 보며 말했다.
“여기 오래 있으면 진짜로 못 나갑니다.”
민규는 탐사 장치만 남겨 두고 일행을 출구 쪽으로 이끌었다. 처음 들어온 사람이 마지막으로 나가는지 직접 확인하면서 자신도 밖으로 나왔다. 출구에서 이름을 센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다. 밖에서 대기하던 미라였다. 그녀는 민규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표시하고 장부를 닫았다.
“전원 나왔어요.”
이번에는 기계의 음성이 아니라 실제 사람의 말이었다. 민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삼십 년 전에 누군가 남아야 했던 자리에 이제는 남지 않아도 되는 확인 절차가 생겨나고 있었다.
제19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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