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철우는 삼십 년 만에 처음으로 퇴근 신청서를 직접 썼다.
그가 쓴 글씨는 예상보다 작았다. 오랫동안 기록판이 대신 이름을 적어 주는 데 익숙해져, 종이에 자기 이름을 쓰는 것이 어색하다고 했다. 케스는 철우가 손을 멈추자 서둘러 펜을 빼앗지 않았다. 아프면 잠시 쉬고, 원하면 다른 사람에게 대신 받아 적게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는 내 손으로 하겠소.” 철우가 말했다.
민규는 신청서 첫 줄에 서명한 시각과 장소만 확인했다. 몇 가지 행정사항이 남았지만 퇴근은 처벌이나 포상이 아니라 일의 종료였다. 철우가 오래 남았다는 이유로 특별한 영웅이 돼야 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자신이 원하면 문밖으로 나가 평범하게 저녁을 먹을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장치는 아직 마지막 확인을 거부했다. [수해 당시 잔여 승객 미확인. 출구 관리인 유지.]라는 문장이 문 옆에 남았다. 철우가 손잡이에 가까이 갈 때마다 글자가 밝아졌다. 민규는 이 장치가 신고자의 안전을 위한 규칙과 직원을 붙잡는 규칙을 혼동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를 분리하는 데 필요한 것은 엄청난 마력보다 원래 설계에 남은 독립 회선이었다.
“서가원 씨 설계에서 미확정 신고가 따로 존재한다고 했죠?” 민규가 물었다.
“네. 사람의 출입과 신고는 다른 권한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케스가 답했다.
“그럼 오늘도 두 가지를 나눠서 확인하겠습니다.”
바르트는 예비 기록판을 문밖에 설치했다. 작동 중인 회선에서 실종 신고 내용만 복사하고, 원본과 사본을 함께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셀레나는 사람이 출입한 사실을 자동으로 근무 배정으로 바꾸는 명령을 차단했다. 루카는 종이에 적힌 숫자를 기계의 숫자와 비교하지 않고, 실제 밖에 나온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확인하는 역할을 맡았다.
현장 작업자들은 마지막 구조를 준비하기 위해 벽에 붙어 있던 공구를 한곳으로 모았다. 삼십 년 동안 사용한 작은 드라이버와 펜치, 손잡이가 부러진 망치가 있었다. 철우는 망치 하나를 손에 쥐고 “이건 처음 들어올 때 가져온 물건이오”라고 말했다. 손잡이 끝에는 자기 이름이 칼로 새겨져 있었다. 설비가 사람의 이름을 인정하지 않던 시간에도 물건에는 그 이름이 남아 있었다.
민규는 망치를 철우의 개인 물품으로 분류했다. 증거로 남겨야 할 물건과 본인이 가져가고 싶은 물건을 구별하지 않으면 구조 뒤에도 사생활을 빼앗길 수 있었다. 그는 철우에게 망치를 가져갈 것인지 물었다. 철우는 잠깐 생각하다가 시설의 점검 기록과 함께 전시해 달라고 했다. 나중에 누군가 자신이 어떤 일을 했는지 알고 싶어 할 때 그 망치를 보면 좋겠다고 했다.
출구 앞 바닥에는 오래된 물길 자국이 있었다. 민규는 문 밖으로 이어지는 경사가 큰지 확인하고 미끄럼 방지 매트를 깔았다. 철우는 보행에 자신이 있다고 말했지만 첫걸음에서 무릎이 흔들렸다. 민규는 괜찮다고 강요하지 않았다. 필요한 만큼 천천히 걸어도 된다고 했다. 작업자 둘은 철우의 앞뒤에 섰지만 몸을 붙잡지는 않았다. 그는 스스로 걸음을 옮기고 싶은 사람이었다.
셀레나는 독립 신고 장치의 상태를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기존 회송 장치에서는 원래의 신호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조그만 불빛 하나가 켜져 있었다. 예전에는 철우의 발목에 붙어 있었던 잔여 인원 경보였다. 지금은 사람에게 붙지 않고 별도의 기록판에 표시됐다. 누군가 해야 할 확인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계속 알렸지만 그 일을 수행할 사람을 강제로 지정하지는 않았다.
“저 불빛은 언제 꺼집니까?” 철우가 물었다.
“실제 신고 대상의 상태를 확인하면 꺼질 수 있겠지요. 다만 그때까지 당신이 여기 갇혀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민규가 말했다.
철우는 문 위의 오래된 명패를 바라봤다. [관리인 마철우.] 녹슨 글자를 손으로 훑은 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랫동안 이름을 쓸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저 명패였다. 이제 바깥에서도 그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출구로 이동하기 전 철우는 제11시설의 벽을 돌아봤다. 손전등 아래에는 그가 매일 적은 날짜가 빽빽했다. 그중 대부분은 같은 날의 반복이었다. 그는 기록을 전부 지우고 싶지 않다고 했다. 두 번 다시 이곳에 갇히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아무 흔적도 남지 않는 것 역시 견디기 어려웠다.
민규는 벽 사진을 찍고 기록탑에 원본 보존을 요청했다. “기록을 남기는 것과 계속 근무해야 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철우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바깥에 나가면 아직 살아 있는 친구가 있을까요?”
“확인할 수 있는 연락처를 찾아보겠습니다. 먼저 필요한 진료와 쉴 곳부터 마련하지요.”
그들이 계단을 내려갔을 때 별이는 대피실 창가에 앉아 있었다. 아이는 문을 통과하려는 철우를 보고 일어섰다. 처음에는 겁을 먹은 듯했지만 곧 조심스럽게 손을 흔들었다.
“아저씨, 오늘은 다섯이라고 적으세요.”
철우가 멈춰 섰다. “누가 다섯이라고 말했니?”
“잘 몰라요. 제가 숫자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 한마디가 철우를 붙잡았다. 그는 오래된 수첩에서 '다섯 번째'라는 항목을 찾았다. 이름이 없다는 이유로 숫자만 적어 둔 사람. 지금 눈앞에 있는 아이가 그 아이인지 확정할 수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지금까지 자신이 기계의 요구대로 한 사람을 숫자로만 불러 왔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그는 별이를 향해 허리를 굽혔다. “별이라고 불러도 되겠니?”
“네.”
“별아. 네가 거기 있는 걸 확인했다.”
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자신을 숫자가 아니라 이름으로 불렀다. 그녀는 잠깐 웃었지만 곧 물었다. “그럼 다른 목소리도 들어 주세요. 저한테만 말해 주면 안 돼요.”
철우는 다시 문 안으로 돌아가려 했다. 민규가 길을 막지 않고 물었다. “당신이 꼭 남아 있어야 합니까?”
“그 아이 목소리를 찾고 싶소.”
“그 일은 이제 여러 사람이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밖에서 신고를 계속해도 됩니다.”
서명 절차가 마무리되자 바르트는 장치의 마지막 시험을 했다. 사람 이름을 쓰지 않은 상태에서 방수문을 열고 닫았고, 이전처럼 새 근무자가 생성되는지 살폈다. 아무 이름도 나타나지 않았다. 셀레나는 독립 신고 회선의 기록이 그대로 남아 있는지도 확인했다. 과거의 도움 요청을 무효화하지 않고 사람의 출입을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직접 확인한 것이다.
오르반은 현장 기록의 가장 아래에 자신이 확인한 내용을 썼다. [현재 출입한 인원 확인. 강제 대체 근무자 없음. 미확정 신고 유지.] 학교장으로서 법률 서류를 잘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세 줄의 의미는 알았다. 학생을 구했다고 해서 기록을 아무렇게나 끝내지 않는 일, 구조를 돕던 직원이 함께 안전하게 나오는 일, 아직 찾지 못한 사람의 신고는 계속 남기는 일. 그런 기준이라면 다른 학교에서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철우는 그들에게 자신이 나가면 혹시 문 안의 목소리가 다시 고통받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민규는 그의 걱정을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구조대가 매일 정해진 시각에 장치를 확인하고 실제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발견되면 출동하도록 계획했다고 설명했다. 철우가 평생 혼자 해 온 일을 이제 여러 사람이 번갈아 책임질 수 있었다. 그 말을 듣자 철우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갔다.
그가 직접 문을 열었을 때 밖에서는 서늘한 공기가 불어왔다. 삼십 년 전의 빗물 냄새가 아닌 현재의 풀 냄새였다. 아직은 한 걸음 더 나가야 했다. 철우는 급하게 걷지 않았다. 이 문턱에서 넘어지는 일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철우는 문턱에 서서 오래된 조끼의 단추를 만졌다. 누구도 자신 대신 영원히 갇힐 필요가 없다는 말을 믿고 싶어 했다. 그는 발목의 문자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고는 천천히 문턱을 넘었다. 방수문은 닫히지 않았다. 기록판에도 다른 사람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았다.
밖에서는 엘룬 차장이 임시 대기소의 안내판을 고치고 있었다. 열차가 갑자기 멈춘 뒤 보호자들에게 전달할 안내문을 작성하는 중이었다. 그는 철우가 걸어 나오는 것을 보고 잠시 놀랐지만 곧 의자를 내왔다. 철우가 앉자 옆에 있던 구조대원이 따뜻한 차를 내밀었다.
“이제 집에 가도 되는 겁니까?” 철우가 물었다.
“상태 확인을 받고, 본인이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누군가 허락서를 안 주면요?”
“오늘 허락서는 이미 완료됐습니다. 이제는 귀하의 선택을 확인하면 됩니다.” 케스가 말했다.
민규는 병원과 숙소에 연락한 뒤 대기실 바깥으로 나왔다. 오랫동안 붙잡혀 있던 사람 하나가 문을 넘었다. 그는 잠깐 기뻤지만, 철우가 밖으로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문제가 끝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과거의 어린아이 목소리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었고, 오늘 하린이를 데려간 장치 역시 원인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다.
철우가 임시 대피실 의자에 앉았을 때 누군가 사진을 찍으려고 손을 들었다. 현장에 있던 직원이었다. 삼십 년 만에 출입한 사람의 귀환은 뉴스가 될 수 있었다. 민규는 본인의 동의 없이 사진을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직원은 순간 당황했지만 곧 단말기를 내렸다. 누구를 구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마음대로 세상에 내놓을 권리를 얻는 것은 아니었다.
엘룬은 철우에게 열차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여 주었다. 새 객차에는 안전한 난간과 비상 경보가 설치돼 있었고 승객들은 예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철우는 기술이 신기하다며 잠깐 웃었지만, 화면에 보이는 출입 인원 숫자에는 눈을 오래 두지 않았다. 엘룬은 숫자 대신 학생들이 차창을 보고 웃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철우는 그제야 조금 편안한 얼굴이 됐다.
별이는 철우가 대피실을 나갈 때 손을 흔들었다. 철우는 그녀에게 앞으로 어디서 지낼 것인지 묻고 싶었으나 아직 모든 것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대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연락해 달라며 간단한 메모를 남겼다. 별은 그 메모의 이름을 천천히 읽었다. 마철우. 한때 자신을 숫자로 불렀던 사람이 이제 자기 이름을 써서 인사를 남기고 있었다.
현장에는 저녁이 찾아왔다. 구조대는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을 정리하고 폐쇄 구역에 출입 통제를 설치했다. 내일 다시 조사하겠다고 약속하더라도 오늘 밤 누군가 잘못 들어오지 않게 하는 일이 필요했다. 바르트는 출입문에 노란 표식을 붙였고 케스는 안전 경고를 공식 기록에 올렸다. 민규는 사람의 구조와 설비의 안전한 폐쇄가 같은 순서로 이루어졌는지 살폈다.
마지막으로 엘룬은 대피실의 분실물 봉투를 정리했다. 하린이의 필통은 친구가 가져온 기록과 함께 보호자에게 인계됐다. 민규는 그 작은 물건의 이동까지 확인했다. 위험한 장치에서 아이를 꺼냈지만 아이의 생활 물품을 돌려주지 않았다면 무언가 한 부분이 비어 있는 것 같을 것이다. 그는 분실물 목록 마지막에 [소유자에게 반환]이라고 적었다.
케스는 철우에게 새 연락처를 남겼다. 앞으로 어떤 총국 담당자가 찾아오더라도 혼자 답변할 필요가 없으며, 자신이 원하면 증언을 미루거나 법률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철우는 그 말을 듣고 작은 종이를 반으로 접어 조끼 안쪽에 넣었다. 그는 삼십 년 동안 명령을 전달받을 때마다 무조건 대답해야 한다고 배웠다. 이제는 대답할 시간을 스스로 정할 수도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민규는 대피실 한쪽에 앉아 오늘 현장에 들어간 사람들의 이름을 읽었다. 구조가 끝났으므로 장비를 옮긴 직원도, 통로를 지킨 직원도 모두 밖으로 나왔는지 확인해야 했다. 누락된 이름은 없었다. 그는 마지막 줄에 오늘 날짜를 적었다. 과거의 시간이 반복되던 시설에서 현재 날짜를 쓰는 일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벽에서는 여전히 익숙한 경보가 들리기도 했지만, 그날만큼은 그 경보가 다시 누군가를 붙잡을 수 없었다.
그날 밤 하린이는 병원에서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손은 좀 아프지만 괜찮아요. 그리고 선생님, 제 지도에 다섯 번째 칸이 아직 남아 있어요.] 민규는 그 지도의 사본을 다시 펼쳤다. 지도에는 다섯 번째 칸 옆에 처음 보지 못했던 작은 화살표가 있었다. 화살표 끝에는 다른 단어가 적혀 있었다.
[출구가 아니라 시작점.]
민규는 방금 구조가 끝난 장소가 사고의 끝이 아니라, 삼십 년 전 잘못된 확인 절차가 전국으로 퍼져 나간 시작점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라진 학생과 돌아온 직원의 이름을 각각 회복 목록에 남기고, 지도에서 해당 화살표를 표시했다.
제18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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