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시설의 안쪽 문은 예상보다 작았다.
도면에서는 사람 두 명이 나란히 지나갈 수 있을 듯 보였지만 실제 통로에는 물에 불은 나무 상자가 쌓여 있었다. 철우는 상자들을 한쪽으로 밀어 두려 했으나 허리가 굽어 힘을 쓰기 어려웠다. 민규가 먼저 안쪽으로 들어가 장비를 옮겼다. 상자 안에는 삼십 년 전의 종이 차표가 있었다. 바깥 바닥에서 말라붙은 먼지와 달리 차표는 촉촉하고 아직 인쇄 냄새가 났다.
“여기 시간이 멈춰 있는 겁니까?” 루카가 물었다.
“어떤 물건은 그렇겠지. 그런데 우리 시계는 지금 흐르고 있어. 우선 현재 시간을 기준으로 구조합니다.”
복도 끝에서 하린이는 손잡이를 붙들고 의자에 걸터앉아 있었다. 마철우가 옆에 앉아 낮은 목소리로 숫자를 세어 주고 있었다. 아이는 민규가 나타나자 손을 뻗으려다가 스스로 멈췄다. 놓을 수 없다는 경고가 머릿속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하린아. 잘 버텼어.” 민규가 말했다.
“제가 잘못해서 여기 온 건가요?”
“아니. 네가 길을 확인하려고 했다고 들었어. 위험한 장치가 학생을 불렀다는 게 문제야.”
“제가 대신 가겠다고 했어요.”
“그런 말을 했다고 네가 여기 남아 있어야 하는 건 아니야.”
하린이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그럼 제 손 놔도 돼요?”
민규는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손잡이 아래 바르트가 설치한 지지대가 흔들리지 않는지 확인했고, 셀레나가 출석 회선 차단 여부를 교신으로 알려 왔다. 그는 철우에게 손잡이 주변에 끼인 옷자락이 없는지도 확인해 달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하린이의 손에 상처가 있는지 보고 부드럽게 말했다.
“이제 조금씩 힘을 풀어 봐. 내가 여기서 보고 있을게.”
아이의 손가락이 하나씩 펴졌다. 경보등이 잠깐 붉게 깜빡였지만 문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린이는 두 손을 완전히 떼고도 몇 초 동안 손잡이를 바라봤다. 다시 잡으라는 명령이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민규는 아이에게 곧장 일어나라고 하지 않았다. 조금 쉬어도 안전하다는 사실을 직접 느낄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구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철우의 발목에는 가느다란 빛의 사슬이 남아 있었다. 사람이 만든 족쇄가 아니라 출입 기록판에서 바닥까지 이어진 문자들이었다. [근무자 미인계. 관리 책임 유지.] 철우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봤다.
“나는 나갈 수 없을 거요.”
“누가 그렇게 말했습니까?”
“삼십 년 동안 같은 말을 들었으니까.”
“오랫동안 반복됐다고 사실인 건 아닙니다.”
민규는 사슬을 강제로 끊지 않았다. 장치가 철우에게 남긴 책임과 실제 사람이 동의한 책임은 다를 수 있었다. 우선 철우가 처음 이곳에 남게 된 경위를 들을 필요가 있었다.
마철우는 자기 발목의 빛나는 글씨를 손으로 만질 수 없다는 사실을 처음 민규에게 보여 주었다. 손가락은 아무 저항 없이 글자를 통과했다. 그런데 문턱을 넘으려고 다리를 움직이자 발목에서 통증이 일어났다. 피부에 상처가 없는데도 차가운 쇠가 조여 오는 느낌이었다. 민규는 무작정 그 통증을 환영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기계의 출입 인증이 신경과 마력 회선에 영향을 주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셀레나에게 현재 상태를 측정하게 하고 의료 담당자를 불렀다.
철우는 자신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 불편한 듯 고개를 돌렸다. “이런 걸 아프다고 해 봐야 기계는 듣지 않았소.”
“기계가 안 들었다고 우리가 안 들을 이유는 없죠.”
민규의 대답에 철우가 쓰게 웃었다. 무언가 큰 비밀을 털어놓은 사람 같지 않았다. 그저 오랫동안 무시당한 아픔을 처음 설명할 기회를 얻은 사람이었다.
루카는 안쪽 벽을 살피다가 희미한 날짜 표시를 발견했다. 사고 전후로 바뀌지 않은 날들이 여러 겹 찍혀 있었다. 철우는 처음에는 날짜를 세다가 열차 운행이 반복되기 시작한 뒤부터 기록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어제 들었던 안내 방송이 오늘도 나오고, 내일로 넘어가도 종이컵의 물기가 마르지 않는 날들이 많았다. 그렇다고 철우의 기억이 전부 같은 하루에 갇힌 것은 아니었다. 그는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스스로 만든 노래 몇 곡과 점검 순서를 기억하고 있었다.
“당신은 지금도 사람들의 출입을 기억합니까?” 민규가 물었다.
“다 기억한다고 말할 순 없소. 하지만 닫힌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기억해요. 첫 번째는 셋이었고 두 번째는 둘이었지. 마지막 소리가 나면 꼭 새 사람이 들어왔다고 기계가 말했소.”
민규는 그 진술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 당시에 실제 몇 명이 있었는지를 곧장 계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단순히 사람 수를 맞추려던 관제 장치가 서로 다른 시간의 구조 요청을 계속 새 탑승으로 기록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단서가 늘었지만 결론을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철우의 당시 업무를 묻고, 어떤 버튼이 사람의 이름을 호출했는지를 차분히 확인했다.
문 옆에는 오래된 조명 스위치가 세 개 있었다. 철우가 가운데 스위치를 누르자 벽의 숫자가 잠깐 넷으로 바뀌었다. 왼쪽 스위치는 대피등을 켰고 오른쪽 스위치는 비상 방송을 작동시켰다. 그런데 가운데 스위치만 끄면 숫자가 다시 다섯으로 돌아갔다. 바르트는 그것이 손상된 접점과 연결된 비상 계수판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해 당시 물이 닿은 뒤 완전히 수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었다.
“고장 난 숫자가 사람을 바꾸는 명령으로 이어졌군요.” 민규가 말했다.
철우가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 숫자를 믿지 말았어야 했소.”
“당시엔 다른 자료가 얼마나 있었습니까?”
“아무것도 없었지요. 비가 쏟아졌고 사람들은 소리쳤소.”
“그렇다면 지금 가능한 일을 해야죠. 그날 못한 일만 다시 판단해서는 앞으로 갈 수 없습니다.”
마철우는 수해 당일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큰비가 쏟아지던 날, 철도청은 통학차량과 피난민을 태운 임시열차를 이곳으로 돌렸다. 물이 제방을 넘었고 바깥 신호가 끊어졌다. 당시 철우는 세 사람의 이름을 확인하고 문을 닫아야 한다는 지시를 받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섯 명의 아이가 서로 다른 쪽에서 울고 있었다.
“다섯 명이었습니까?” 민규가 물었다.
“이름을 댈 수 있는 아이가 넷이었소. 다른 하나는 이름을 묻기도 전에 소리가 끊겼지. 나는 다섯이라고 적었는데 상부는 넷이라고 고치라고 했소.”
그는 아직도 후회하는 듯 종이 차표를 만지작거렸다. 수정된 기록에 항의했지만 사고가 끝난 뒤 서류를 다시 보자는 답만 돌아왔다. 그가 출입 확인 서류를 미완료 상태로 남겨 둔 이유였다. 그러나 미완료 표시는 철우의 퇴근까지 막았고, 장치는 교대 인원을 강제로 생성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날 문을 지켜서 누군가 살았는지는 모르오. 다만 문을 닫으면 마지막 아이를 잃을 것 같았지.”
“그 판단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민규가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더 있습니다. 당신 혼자 지킬 이유는 없어요.”
케스가 철우의 오래된 근무 서류를 찾아냈다. 그의 서명 옆에는 이상한 도장이 찍혀 있었다. [무기한 임시 배정.] 말 자체가 모순이었다. 임시는 끝이 있어야 하고, 무기한이라면 본인의 동의가 분명해야 했다. 케스는 총국의 강제 근무 규정에 따라 해당 도장을 즉시 무효화할 수 있다고 했지만 민규는 더 중요한 점을 물었다.
“무효화한 뒤에도 실종 신고 회선은 살아 있습니까?”
“확인해야 합니다. 근무자를 지우면 신고자까지 사라질 수 있어요.”
“그럼 신고 회선을 분리해 보존하고 인사 배정을 없앱시다.”
철우는 처음으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가 삼십 년 동안 듣지 못한 말이었다. 왜 못 나오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나오게 할지 묻는 사람이 있었다.
하린이를 옮기기 전 구조대는 좁은 문턱에서 들것을 돌릴 수 있는지 시험했다. 실제 부상이 심하지 않더라도 오래 같은 자세를 유지한 사람은 갑자기 일어날 때 어지러울 수 있었다. 의료 담당자는 학생의 손가락 움직임과 혈액순환을 먼저 확인했다. 하린이는 아프다고 말하면서도 손바닥에 남은 붉은 자국을 보려 하지 않았다. 민규는 아이에게 확인을 강요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다친 곳을 곧바로 보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오르반이 통신으로 하린이의 부모에게 소식을 알렸다. 처음 전화가 연결되자 어머니는 말을 잇지 못했다. 교장은 '아이와 직접 통화하시겠습니까'라고 먼저 물었고, 하린이가 원한다는 답을 확인한 뒤 통신기를 건넸다. 하린이는 몇 번 숨을 고르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 나왔어. 손이 조금 아파.” 어머니가 울면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날의 어떤 마법보다 분명한 목소리였다.
다솔은 대피실 문에서 그 소식을 듣고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이 지도를 보고도 장난이라고 말한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미라는 다솔에게 친구를 기다린 것이 잘못이 아니라고 설명하기보다, 이제 친구를 만나면 직접 하고 싶은 말을 해 보라고 했다. 다솔은 한동안 말없이 생각했다. 미안하다는 말과, 다시 그런 일이 생기면 혼자 보내지 않겠다는 말이 떠올랐다. 둘 다 중요한 말이었다. 다만 하린이에게는 지금 쉬는 시간이 먼저 필요했다.
루카는 구조대가 가져온 의료 물품 목록을 확인하며 한 가지를 더 적었다. 현장에 처음 도착했을 때 학생용 장갑이 부족했다. 어른용 장갑을 접어서 쓰려 했는데 손가락이 지나치게 길어 작업을 방해했다. 민규는 학생이 위험 장치를 만지게 하려는 계획이 아니라, 구조된 어린 사람에게 맞는 물품을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작은 사이즈의 담요와 신발, 보호용 물품이 준비돼 있으면 다음 사고의 불편을 줄일 수 있었다.
하린이는 따뜻한 담요를 두른 채 바깥 통로로 이동했다. 학생을 데리고 온 구조요원이 그녀의 부모에게 전화로 상태를 알렸다. 하린이는 조금 뒤 다시 민규에게 돌아왔다. “제가 도움이 되는 일이 있나요?”
“지금은 병원에서 손을 진료받는 게 제일 중요해.”
“지도를 그려서 알려 주면요?”
“나중에 네가 쉬고 싶지 않을 때 그려 줘. 지금은 당번 일을 잊어도 괜찮아.”
하린이는 처음에는 미안하다는 얼굴을 했다. 그러나 미라가 그녀의 가방을 받아 주자 마침내 웃었다. 가방 안에는 연필 두 자루와 지도책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하린이의 작은 일상이 돌아온 것이다.
철우의 발목에 붙은 문자는 여전히 빛났다. 셀레나가 분리한 신고 회선은 이제 독립 장비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민규는 바닥의 문자들을 읽고 책임자를 확인했다. 이름 대신 부서명이 있었다. [제11시설 무인 교대 수신부.] 이름을 지울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이름조차 없는 부서가 삼십 년째 한 사람을 붙잡고 있었다.
의료 담당자는 철우의 발목을 검사한 뒤 당장 걸어 나오지 말라고 권했다. 마법 문자가 통증을 일으키는 동안 잘못 움직이면 근육이 경직될 수 있었다. 민규는 철우에게 그 설명을 전달했다. 퇴근할 수 있다는 것은 지금 당장 아무 도움도 받지 않고 걸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철우는 오히려 누군가 자신의 몸 상태를 이렇게 세심하게 살핀다는 사실에 당황한 얼굴이었다.
케스는 철우의 옛 근무 기록을 별도 봉투에 보관했다. 그는 총국의 직원이었고, 총국이 만든 규칙이 사람을 가둔 사실을 조사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때로는 자신이 속한 조직의 실수를 기록해야 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 보호 대상의 이름을 지우고 사건을 종료 처리한 뒤로 수많은 잘못이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번에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원본 그대로 남겨야 했다.
대피실에 도착한 하린이는 친구들의 메시지를 읽었다. 다솔의 것은 짧았다. [네가 돌아와서 다행이야. 지도는 잘 보관했어.] 하린이는 답장을 쓰려다 잠들었다. 누군가에게 고맙다고 말할 시간은 내일도 있을 것이다. 미라는 아이의 휴대 통신기를 옆에 두고 조명을 낮췄다. 구조대가 며칠이나 자료를 찾아 다녀도 아이에게 필요한 첫 번째 회복은 조용한 잠일 수 있었다.
그날 밤, 북쪽 기록탑에서 다섯 번째 방울이 울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차표를 세는 숫자가 아니라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하린이는 나갔네. 그럼 이제 내 차례를 물어봐도 돼요?”
별이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대피실에 앉아 있는 별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제11시설 벽 너머, 과거의 열차 방송에서 같은 목소리가 한 번 더 울렸다. 민규는 두 회선의 시각을 나란히 기록했다. 지금 대피실의 별이와 저 안에서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정말 같은 존재인지,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제18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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