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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법학교 야간 경비원의 정체 · 18화
PAYLUA ORIGINAL · 제18화

18화. 내부 잔류자의 근무일지

마법학교 야간 경비원의 정체 · 6,217자

오프라인 책장
정민규는 어머니의 글씨를 알아봤지만 곧바로 사진을 품에 넣지는 않았다. 제분소의 터빈 축에서 나온 상자. 국화 문양. 한글로 남은 문장. 그것들은 그가 자라 온 세계와 마법학교 사이에 누군가 오래전부터 길을 놓았다는 증거처럼 보였다. 그러나 정확히 누가 언제 사진을 넣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이 글씨가 확실히 어머니 것입니까?” 셀레나가 물었다. “제가 어릴 때 받아 본 편지와 닮았습니다. 다만 삼십 년 전에도 똑같았는지는 확인해야죠.” “확실하다고 말씀하실 줄 알았는데요.” “가장 믿고 싶은 것일수록 더 확인해야 합니다.” 민규는 사진을 필름 봉투에 넣었다. 원본은 셀레나가 보관하고, 자신은 복사한 사진을 가져가기로 했다. 루카는 사진 속 소녀를 한참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아저씨, 이 아이 혹시 학교 학생이었어요?” “모른다. 삼십 년 전 명부에도 없었을 가능성이 높아.” “근데 왜 둘이 같이 있었죠?” “그래서 찾는 중이지.” 학교에 돌아오자마자 경비실의 검은 서랍이 열려 있었다. 8화에서 두 번째 경비원이 앉았던 의자도 책상 앞으로 당겨져 있었다. 민규는 창틀의 분필 표시를 확인했다. 아무도 창문을 열지 않았는데 표시가 희미하게 두 겹으로 갈라져 있었다. “오늘 밤에도 교대할 모양이군.” 그는 서랍 안을 살폈다. 예전에는 문틈으로 종이 한 장이 삐져나오는 것이 전부였지만 지금은 낡은 근무일지 여러 권이 들어 있었다. 종이마다 날짜가 있었다. 하나는 삼십 년 전 날짜였고 다른 하나는 어제였다. 그런데 페이지 번호는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 [제1차 순찰: 구조자 인원 확인 실패.] [제108차 순찰: 0층 서쪽 통로에 응답 있음.] [제9,112차 순찰: 침입자, 명부 흉내 내기 시작.] [제11,006차 순찰: 외부 경비원 정민규 도착.] 민규는 숫자를 천천히 셌다. 삼십 년 동안 매일 한 번씩 순찰했을 때의 횟수와 비슷했다. 사람이 하루를 하루로 살아간 시간이었다. 기록에 불과한 존재가 이런 일지를 남길 수 있느냐는 질문이 떠올랐지만, 그는 다시 책을 들여다봤다. 누가 기록했는지보다 기록 내용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확인하는 편이 먼저였다. “이 사람은 오랫동안 혼자 순찰했어요.” 셀레나가 말했다. “그랬나 봅니다.” “그런데 첫날엔 구조자 인원 확인 실패, 어느 날엔 응답이 있다고 하네요. 기록 속에서도 변화가 있었어요.” 루카는 종이 끝의 찢어진 자국을 가리켰다. “누가 여러 장을 가져갔어요.” 세 권의 가운데가 군데군데 비어 있었다. 날짜가 연속으로 넘어가는 구간마다 뜯긴 흔적이 있었다. 민규는 그 페이지의 수를 세어 따로 적었다. 숨기기 위한 것인지, 실제로 누군가에게 전달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서랍에 있던 첫 번째 근무일지는 종이의 색부터 달랐다. 누런 페이지에는 오랫동안 같은 사람이 쓴 글씨가 빼곡했다. 민규는 이 자료를 일방적인 고백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서로 맞지 않는 부분부터 찾았다. 사고 직후 기록에는 '대피 인원 미확인'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며칠 뒤부터는 사람의 목소리로 응답을 받았다고 되어 있었다. [내부 순찰 26일. 서쪽 벽 너머에서 두드림 네 번.] [내부 순찰 31일. 이름을 대답하지 않는 아이 한 명. 보온병을 놓아두었음.] [내부 순찰 44일. 문틈으로 종이를 받음. 돌아갈 집이 있다고 적혀 있었음.] 그의 눈길이 마지막 문장에서 멈췄다. 돌아갈 집이 있다고 한 아이는 누구였을까. 두 번째 경비원은 자신의 기억을 기반으로 생겨난 존재라고 했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오래 기록한 흔적이 있었다. 종이를 받았다는 것은 기록망 바깥에 실제 물리적 통로가 있었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루카는 옆에서 페이지 번호를 정리했다. “아저씨, 이 일지에는 화난 글이 하나도 없어요.” “왜 그렇게 생각해?” “삼십 년이면 엄청 긴데, 누군가 답을 안 해도 기다렸다고만 써 있어요.” 민규는 한 장을 넘겼다. 그곳에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오늘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혼자라는 생각이 너무 커지기 전에 다음 문을 확인했다.] “화가 없었다기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찾았나 봐.” 그는 다시 페이지를 넘겼다. 때로는 이틀 동안 아무 기록이 없었고, 어떤 날은 같은 문장을 다섯 번 적었다. '없음'이라는 글씨 옆에는 잉크가 오래 눌린 흔적도 있었다. 종이의 눌림은 사람이 펜을 더 힘주어 쓴 순간을 남긴다. 정민규는 그 낡은 종이에서 피곤과 두려움을 읽었다. “기록에 남은 존재라도 이 사람의 하루는 하루였겠네요.” 셀레나가 조용히 말했다. 민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장을 읽기 전까지 그는 두 번째 경비원을 본래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온 영상처럼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영상이라면 밤새 아무도 대답하지 않을 때 다음 날을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이 일지는 누군가 고립된 공간에서 자기 방식대로 근무를 계속한 흔적이었다. 일지 뒤쪽에는 작은 표가 있었다. '내부 잔류자 교대 요청'이라고 적혀 있었고, 응답란은 대부분 비어 있었다. 단 한 번, 짧은 답변이 남아 있었다. [교대 불가. 아직 안전한 출구 확인되지 않음.] 답변의 서명은 읽을 수 없었다. 민규는 무릎 위에 일지를 놓고 잠시 생각했다. 자신의 몸이 밖에서 삼십 년을 살았다는 이유로, 내부의 자신이 겪은 시간을 대신 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문을 여는 날이 오더라도 먼저 그 사람의 의사를 물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루카가 한쪽 페이지에 붙은 손그림을 발견했다. 경비모를 쓴 작은 아이였다. 그림 아래에는 '오늘도 순찰 도와줌'이라는 글씨가 있었다. 어린아이가 웃는 얼굴을 한 그림인데, 목에는 조금 낡은 스카프가 둘러져 있었다. 이 그림이 최근 편지의 '문을 지키러 나간 한 사람'과 연결되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경비모를 쓴 존재가 두 번째 경비원 하나만은 아니었다는 단서였다. “아저씨, 이거 꼭 저 같아요.” “너랑 같은 얼굴은 아닌데.” “아니요. 제가 제멋대로 다니던 때처럼요. 위험한 데 들어가서도 자기가 할 일 있다고 우기잖아요.” “그럼 저 아이를 만나면 다른 방법도 같이 찾자고 말해 줘.” 루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경비실에 모인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 남아 있는 누군가를 '기록'이라는 말 하나로 지우는 일은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민규는 일지의 마지막 페이지에 작은 빈칸을 발견했다. 날짜도 사건 내용도 없는 빈칸이었다. 그러나 손가락으로 만지면 종이가 살짝 움푹 들어가 있었다. 누군가 글씨를 쓰다가 지운 흔적이었다. 그는 종이 밑에 얇은 필름을 깔고 비스듬히 빛을 비췄다. 압력을 받아 눌린 자국만 희미하게 드러났다. [외부에 내 목소리를 보내도, 내가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루카는 문장을 읽고 고개를 들었다. “이 사람은 자기가 못 나온다는 걸 알고 있었네요.” “그렇게 믿었을 수 있어. 하지만 확인하지 못한 가능성도 남아 있지.” 민규는 그 아래의 문장을 이어서 읽었다. [나를 구한다고 문을 열지 말 것. 먼저 안에 있는 사람의 수를 확인할 것.] 그 문장은 오래전 자신이 썼던 안전 수칙과 닮아 있었다. 사람을 구하겠다는 생각만 앞세우다가 더 큰 사고를 낸 경험이, 두 번째 경비원에게도 있었던 모양이다. 민규는 빈칸의 내용을 별도 종이에 옮겼다. 원래 지워진 이유는 모르지만, 이 기록은 지금의 구조 계획에 꼭 필요했다. “이분을 만나면 왜 이 말을 지웠는지도 물어보죠.” 셀레나가 말했다. “그러겠습니다. 말하기 싫다면 억지로 묻지는 않고요.” 그날 밤 열한 시 사십 분. 경비실에 두 번째 정민규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한쪽 소매가 찢어져 있었다. 장갑에는 검은 잉크 같은 것이 묻어 있었고 눈가에는 피곤한 기색이 짙었다. 그는 책상 위에 쌓아 둔 일지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찾았네.” “서랍이 열려 있더군요.” “내가 열었어. 네가 와서 읽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거든.” 민규는 조금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사람을 대하는 일이 아직 쉽지 않았다. “여기 당신이 쓴 일지입니까?” “그렇지. 정확히 말하면 내가 남길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의 근무 기록이야.” “당신은 기록에 남은 존재라고 했죠.” “그게 내가 아는 내 몸의 상태야. 밖에 오래 있으면 흐려지고, 안에 들어가면 다시 또렷해져. 그렇다고 보고 듣고 생각하는 일이 거짓이 되는 건 아니지.” 민규는 일지의 마지막 장을 펼쳤다. “스물아홉 명 중 한 명이 경비모를 쓰고 문을 지키러 나갔다고 합니다. 그게 당신입니까?” 두 번째 경비원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아이는 따로 있어.” “그럼 누굽니까?” “이름을 말할 수 없어. 서기관이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위치를 찾아낼 거야. 다만 네가 착각하지 않도록 말해 주지. 그 아이는 삼십 년 전 그곳에 있었던 실제 학생이야.” 루카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살아 있는 학생이에요?” “그곳에 있는 동안에는 살아 있어. 안쪽 시간은 밖과 다르게 흘러. 하지만 밖에 나오는 순간 같은 상태로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럼 어떻게 구해요?” 두 번째 경비원은 잠시 침묵했다. “그래서 내가 문을 지키고 있어. 서둘러 열면 그 아이들이 위험해.” 민규는 책상 위에 제분소 사진을 펼쳤다. 두 번째 경비원의 얼굴이 달라졌다. 그는 국화 무늬를 보고 아주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걸 어디서 찾았어?” “마을 제분소의 비상 터빈 안입니다. 사진 속 글씨는 제 어머니 것 같고요.” “그래. 그분이 남겨 둔 거야.” 민규의 가슴이 세게 뛰었다. “어머니를 압니까?” “난 네 기억에서 시작된 존재야. 하지만 넌 잊었고 나는 일부를 기억해. 그 차이가 있지.” “그럼 왜 이제야 말합니까?” “지난번에는 네가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어. 그리고 내가 말할 수 있는 곳도 제한돼 있었지.” 민규는 고개를 저었다. “듣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사실을 숨기는 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알아.” 두 번째 경비원은 쉽게 반박하지 않았다. 그는 사진 속 소녀를 가리켰다. “저 아이가 너를 여기로 데려온 게 아니야. 네가 저 아이를 여기서 데리고 나가려고 했어.” “그럼 어디서 만났습니까?” “문이 열린 첫날. 우리는 아래쪽 통로에서 서로를 발견했지. 저 아이는 다른 세계에서 온 아이였고, 여기서 쫓기고 있었어. 넌 그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민규는 은시계의 경고를 떠올렸다. 다시 왔구나, 문을 연 아이. 돌아오라는 말과 회수하겠다는 말이 다르다는 것도. “어머니는 어떻게 아셨죠?” “문을 지나가서 돌아온 뒤, 네가 그 이야기를 집에서 했기 때문이야. 잊기 전에는.” “그럼 어머니가 이곳에 오셨다는 겁니까?” “그분은 문 앞까지 왔어. 그 이상은 내가 알 수 없어.” 민규는 차마 더 묻지 못했다. 어머니는 이미 자신의 삶에서 오래전 떠난 사람이었다. 살아 계실 때 왜 이 일을 말하지 않았는지, 왜 자신은 이 기억을 잃었는지 답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곳의 사건을 어머니의 뜻으로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았다. “지금은 안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는 게 우선입니다.” 두 번째 경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래서 내가 일지를 보여 준 거야.” 그는 뜯긴 페이지가 있던 자리를 펼쳤다. 빈틈에 손가락을 대자 희미한 글씨가 떠올랐다. 종이에 적힌 글씨가 아니라 그가 보관한 기억의 잔광이었다. [문을 지키는 아이에게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이름을 지켜 줄 사람과, 문이 열려도 바람을 견딜 수 있는 길.] “첫 번째는 여러분이 만들고 있어.” “종이 기록과 증인 말입니까?” “그래. 두 번째는?” 민규는 제분소의 터빈 도면을 펼쳤다. “만들고 있습니다. 다만 완성되기 전까지 문은 열지 않을 겁니다.” 두 번째 경비원은 처음으로 웃었다. “내가 삼십 년 동안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군.” 그가 일어나려는 순간, 경비실 창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났다. 두 번째 경비원의 몸이 잠깐 흔들렸다. “시간이 다 됐어.” “한 가지만 더.” 민규가 말했다. “당신은 저한테 경비 업무를 넘길 생각입니까?” “아니. 우리가 지키는 문이 달라.” 그는 오래된 경비모를 벗어 민규 앞에 놓았다. “하지만 언젠가는 같은 문 앞에 서야 할 거야. 그날엔 나를 대신할 사람이 아니라, 내 말을 믿어 줄 사람이 필요해.” 빛이 꺼졌다. 의자에는 아무도 없었다. 민규가 경비모를 집어 들자 모자 안쪽의 이름표가 달라져 있었다. [정민규. 내부 잔류.] 그 아래에 한 줄이 새로 생겼다. [다음 점검: 회수 승강로 바깥쪽 공기문,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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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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