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지키러 나간 한 사람.
정민규는 그 문장을 읽고 곧바로 ‘실종’이라고 적지 않았다. 어디로 나갔는지, 언제 나갔는지, 아직 돌아올 수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숫자가 하나 줄었다는 사실만으로 누군가 죽었다고 판단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셀레나는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스물여덟 명이면 삼십 년 전에 실종된 스물아홉 명 중 한 명이 밖으로 나온 건가요?”
“그럴 가능성이 있죠. 반대로 모두 같은 사람을 세는 숫자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왜요?” 루카가 물었다.
“우리는 이름이 복구됐다는 것만 확인했지, 그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 실제로 서 있다는 사실은 못 봤으니까. 편지를 보낸 사람은 자기 눈앞에 있는 사람을 센 걸 수도 있어.”
루카는 편지의 끝을 만지작거렸다. 누나의 소식이 가까워질수록 ‘혹시 그 한 사람이 누나라면’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입술을 깨물고 물었다.
“직접 물어보면 되죠. 나간 사람이 누구냐고.”
“그렇게 하자. 대신 이름을 쓰는 게 위험할 수 있으니 특징부터 물어보자.”
그들은 질문을 적어 관 속으로 보냈다. 그리고 여러 시간이 흐르는 동안 0층에서 돌아올 신호를 기다렸다. 학교의 하루는 계속됐다. 식당은 점심을 내놓았고, 학생들은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경비실의 시계는 언제나 두 시 십칠 분을 가리키는 은시계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오후 늦게 대답이 왔다.
[밤마다 순찰해. 오래된 경비모를 쓰고 있어.]
민규는 종이를 내려놓았다.
“두 번째 경비원.”
셀레나가 작은 숨을 삼켰다.
“그 사람이 이 편지를 보낸 건 아닐까요?”
“다른 사람이 그를 본 걸 수도 있죠. 하지만 연결되는 점이 생겼습니다.”
루카가 말했다.
“그럼 그 아저씨가 안쪽에서 사람들을 지켜 주고 있는 거잖아요.”
민규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8화에서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남자를 만났을 때 느꼈던 기묘한 감각이 떠올랐다. 그 남자는 민규보다 훨씬 오래 학교에 있었고, 아무리 아파도 쉬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지키고 있을 수도 있어. 그렇다면 교대해 줄 방법도 찾아야겠지.”
그날 밤, 민규는 경비실의 잠겨 있던 서랍을 다시 확인했다. 두 번째 경비원이 나타난 이후 서랍 아래에 종이가 삐져나와 있었지만 서랍 자체는 열리지 않았다. 민규는 책상을 밀어내고 뒤판을 살폈다. 세 군데 나사 중 하나만 달랐다. 손으로 만져 보니 뒤쪽에 작은 막대가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나사를 조심스럽게 풀었다. 서랍이 열리는 대신 책상 옆면의 작은 판이 내려갔다. 안쪽에는 손바닥 크기의 녹음기가 있었다. 학교의 마법 장치가 아니라 금속 릴에 소리를 기록하는 오래된 기계였다.
“이걸 누가 숨겨 둔 거죠?” 루카가 물었다.
“아마도 나처럼 마법 기록을 믿지 못한 사람이겠지.”
녹음기에는 국화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시계 뒷면과 같았지만 이번에는 꽃잎이 온전했다. 민규는 손가락으로 홈을 더듬었다. 한국에서 살던 어린 시절, 어머니가 집 서랍에 비슷한 꽃무늬가 있는 물건을 넣어 두던 기억이 떠올랐다.
“왜 제 기억에 있는 걸 여기서 계속 보는 걸까요.”
“선생님이 이곳에 왔던 적이 있으니까요.” 셀레나가 말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그보다 오래된 집의 물건과 닮았어요.”
그는 장치를 뜯기 전에 릴의 상태를 확인했다. 녹음 테이프는 약해졌지만 손으로 천천히 움직이면 재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셀레나는 마나 대신 배터리를 구할 수 있는지 물었고, 민규는 경비실 손전등에서 예비 전지를 꺼냈다.
“전압만 맞으면 돼요. 하지만 억지로 돌리면 테이프가 끊어질 수 있으니 속도를 낮춥시다.”
작은 모터가 낮게 돌아갔다. 잡음이 한동안 흘렀다. 그러다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 앞에 서 있으면 소리가 나. 누가 자꾸 내 이름을 불러.’
또 다른 아이가 말했다.
‘민규야, 그 소리 따라가면 안 돼.’
민규는 숨을 멈췄다. 첫 번째 목소리는 어린 자신의 목소리였다. 두 번째는 시계 속 소녀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아니야. 아래에 진짜 사람이 있어. 구해 달라고 하잖아.’
‘저 목소리는 처음에 내 이름을 불렀어. 네 이름도 부르고 있어. 누구 목소리인지 알기 전엔 문 열면 안 돼.’
짧은 잡음이 났다. 이어서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와 많은 사람의 비명이 섞였다.
루카가 무의식적으로 귀를 막았다. 민규는 테이프를 끄지 않고 끝까지 들었다. 과거의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알아야 했다.
‘문을 닫아!’
어린 민규의 목소리가 절박하게 울렸다.
‘지금 닫으면 안에 있는 애들까지 갇혀!’ 다른 어른의 목소리였다.
‘닫고… 옆에 있는 공기문을 열어! 바람이 빠져야 해!’
그 다음 소리는 알아듣기 어려웠다. 누군가 크게 소리쳤고, 녹음기는 바닥에 떨어진 듯 딸깍거리다 멈췄다.
민규는 녹음기를 내려놓았다. 그가 그동안 들은 이야기는 문을 열려고 한 아이와, 문을 잠근 교장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녹음 속 어린 자신은 문을 닫으라고 외치고 있었다.
“교장 선생님이 말씀한 것과 다르네요.” 셀레나가 낮게 말했다.
“한순간 전에는 문을 열려고 했고, 그다음에는 닫으라고 외쳤을 수도 있죠.”
“왜 생각을 바꿨을까요?”
“들어오는 게 사람 목소리를 흉내 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 겁니다.”
민규는 어린 자신이 ‘공기문’이라고 부른 장치가 제2도면의 통풍 밸브인지 확인했다. 도면에는 두 개의 손잡이가 있었다. 큰 손잡이는 승강로 문, 작은 손잡이는 압력 배출구. 사고 이후 두 손잡이를 같은 것으로 취급하도록 표지판이 덧붙여져 있었다.
“그래서 베르안 교수의 편지에 통풍을 열라고 했군.”
그는 도면에 서로 다른 색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셀레나는 작은 손잡이 쪽의 마나 회로를 더 자세히 조사했다. 그 회로는 예상외로 마을의 옛 제분소와 연결돼 있었다. 아래쪽에서 넘치는 힘을 밖으로 분산시키는 안전 장치였다.
“통풍을 열면 마을이 위험해질 수도 있겠네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마을로 가는 길을 하나 더 확보해야겠죠.”
그날 밤 민규는 녹음 테이프를 한 번 더 들었다. 원본은 손대지 않고 복사본만 재생했다. 셀레나는 파형을 따라 목소리를 분리했다. 어린 민규와 소녀, 오르반으로 추정되는 어른, 그리고 출처를 알 수 없는 네 번째 목소리가 있었다. 네 번째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는데 다른 사람의 말이 끝난 뒤에만 들렸다.
‘문을 열어. 안쪽에 있는 사람들은 널 기다리고 있어.’
그 목소리에는 호흡이 없었다. 사람이 짧게 말을 이어 갈 때 들리는 숨소리가 전혀 없었고, 같은 어조의 문장이 두 번 이어졌다. 민규는 테이프를 멈추고 원래의 소리를 비교했다.
“이 부분은 누가 녹음해 둔 말을 그대로 재생한 것처럼 들리네요.”
“마법으로도 음성을 만들 수 있어요. 사소한 억양까지 똑같이요.” 셀레나가 말했다.
“그렇겠죠. 그럼 문제는 누가 왜 녹음을 한 겁니다.”
그는 종이에 네 개의 목소리를 적고 화살표를 그렸다. 네 번째 목소리가 등장할 때마다 어린 민규는 한 걸음 더 문 쪽으로 다가갔다. 소녀는 늘 그 소리를 말렸다. 그러다 한순간 어린 민규가 자세를 바꿔 문을 닫으라고 외쳤다.
“바뀌는 순간이 있어요.”
민규는 테이프의 길이를 다시 재며 말했다. “여기죠.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바로 전에.”
그 사이에 작은 소리가 섞여 있었다. 셀레나가 재생 속도를 낮추자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손은 여기 있어. 지금 잡아.’
민규는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과거의 자신은 그 손을 잡았던 걸까. 열 살 아이에게 낯선 목소리와 익숙한 손이 동시에 다가왔을 때, 어느 쪽을 믿을 수 있었을까. 그는 오래전 어머니가 길을 건널 때 자신의 손목 대신 손바닥을 잡아 주던 일을 떠올렸다. 놓칠까 봐 더 세게 쥐고 싶으면 손가락 사이를 꼭 끼라고 하던 말이었다.
“그때 아이의 손을 잡았던 모양입니다.”
셀레나가 대답했다. “그걸 계기로 거짓 목소리를 알아챘을 수도 있겠네요.”
“확인할 방법이 생겼습니다. 소녀가 다시 나타나면 그 순간 무엇을 했는지 물어보죠. 먼저 정답을 알려 주지는 말고.”
루카는 오랫동안 생각하다 자기 손을 내밀었다.
“아저씨, 사람이 누군지 모를 때 손을 잡으면 알 수 있어요?”
“그것만으로는 안 돼. 하지만 적어도 목소리만 듣고 따라가는 것보다는 확인할 게 하나 늘지.”
“누나도 제가 어릴 때 자꾸 손을 잡으라고 했어요.”
“이유가 있었겠지.”
“제가 길을 잃어버릴까 봐요. 근데 항상 제가 먼저 손을 놓았어요.”
민규는 그를 바라봤다. 루카는 웃으려다 실패했다. 누나의 실종을 말할 때면 늘 그랬다.
“이번에는 누나가 돌아오면 먼저 손을 놓지 마.”
“네. 그런데 너무 세게 잡으면 누나가 화낼 거예요.”
“그건 네가 알아서 조절해야지.”
둘은 가볍게 웃었다. 그 웃음이 사라진 뒤에도 민규는 녹음기에 손을 얹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열 살 때 무슨 실수를 했는지보다,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셀레나는 도면 위에 네 번째 목소리가 들린 시점과 압력 변화를 대조했다. 오래된 기록이라 정확한 숫자는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문이 열리기 직전 공기 흐름이 역전됐다는 짧은 메모가 있었다. 소녀가 손을 내밀었다는 장면과 거의 같은 시각이었다.
“그때 공기문을 열었다면 압력을 안전하게 낮출 수 있었을까요?”
“그럴지도 모르죠. 다만 사람을 뒤로 물리지 않은 상태에서 열면 위험했을 겁니다. 우리는 이번에는 다르게 해야 합니다.”
민규는 제분소 터빈이 그 과정을 감당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물건을 적었다. 압력계 두 개, 수동 밸브, 멀리서 작동시킬 레버, 안전하게 묶을 밧줄. 필요한 목록은 길었지만 대부분 학교와 마을에서 구할 수 있었다. 그가 마법을 배우지 않았어도 점검을 진행할 수 있는 이유였다.
제분소 터빈을 확인하러 가기 전, 민규는 경비실 바닥에 분필로 두 개의 원을 그렸다. 하나는 학교, 하나는 마을이었다. 두 원 사이에는 좁은 선이 이어져 있었다. 그는 종이 조각 하나를 선 위에 올리고 루카에게 물었다.
“여기가 막히면 어떤 일이 생길까?”
“마나가 못 내려가요.”
“그럼 아래에 쌓인 압력은?”
“학교 쪽으로 돌아오겠죠.”
“반대로 저 선을 갑자기 다 열면?”
“마을로 한꺼번에 쏟아져요.”
민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열 살 때 한 행동을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같은 장치가 눈앞에 다시 나타났을 때는 위험을 나눠 볼 수 있었다. 어디로 바람이 가는지, 누가 그곳에 서 있는지, 닫힌 문 뒤에 누군가 갇혀 있는지. 그는 분필로 대피 지점을 표시했다.
“이번에는 문을 열 사람보다, 그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할 사람이 먼저 필요해.”
루카는 잠시 생각했다. 그러더니 자신이 맡을 일은 압력계 기록이라고 했다. 민규가 안도하자 루카가 투덜거렸다.
“저도 들어가고 싶은데, 누나가 아저씨한테 저를 맡겼으면 아저씨 말도 좀 들어야겠죠.”
“누나가 그런 부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판단이야.”
다음 날 아침 그들은 제분소에서 바르트를 만났다. 바르트는 낡은 물레방아 축을 돌려 보여 주었다. 평소에는 하천의 물로 움직이는 기계지만, 비상시에는 제분소 아래의 오래된 공기 터빈도 함께 사용할 수 있었다. 지금은 한 번도 쓰지 않은 고철 취급을 받고 있었다.
“삼십 년 전에 만들었다던데, 언제 써야 하는지도 몰랐소.” 바르트가 말했다.
민규는 터빈을 살폈다. 오랜 세월 잠들어 있었지만 구조는 단순했다. 축이 돌면 날개가 바람을 받아 힘을 분산시키고, 압력계가 일정 수치를 넘으면 별도의 밸브가 열리도록 설계돼 있었다.
“누군가 비상 배출 장치로 만들어 둔 겁니다.”
“그럼 다시 사용할 수 있겠소?”
“점검부터 해야죠. 고장이 난 상태에서 돌리면 더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루카가 두 팔을 걷어붙였다.
“제가 닦을게요. 마법은 약해도 손은 빠르거든요.”
“너는 안전거리부터 지켜.”
“아니, 아저씨. 저도 이 정도는 알아요.”
민규가 고개를 돌리자 루카는 구석에 놓인 작은 공구 상자를 보여 주었다. 5화에서 함께 정리한 도면과 점검표가 그 안에 있었다. 그는 마법학교의 문제아였지만 이제는 낡은 기계를 함부로 만지는 아이가 아니었다.
“알았어. 장치 멈춘 상태에서 먼지를 닦아. 움직이는 곳에는 손 대지 말고.”
루카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점검을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지났을 때, 터빈 축 안쪽에서 작은 금속 상자가 발견됐다. 상자에는 국화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안에는 오래된 사진 한 장이 있었다.
사진 속에는 열 살짜리 민규와 소녀가 함께 서 있었다. 둘은 학교 교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민규는 한국에서 입던 것과 비슷한 운동복 차림이었다.
사진 뒤쪽에는 한글로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민규야, 네가 문을 열기 전에 이 아이의 손부터 잡아 줘.]
그 아래에는 민규가 알아볼 수 있는 필체가 있었다.
어머니의 글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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