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 기록탑의 지도에는 출입문이 세 개로 표시돼 있었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하나는 벽으로 막혀 있었고, 다른 하나는 무너진 계단 아래에 있었다.
민규는 남은 문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았다. 바르트와 함께 건물 외벽의 균열을 확인하고, 천장이 무너졌을 때 빠져나올 수 있는 경로를 먼저 확보했다. 기록탑 근처에는 오래된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주민들이 보행로를 이용하므로 위험 구역의 울타리를 넓히는 문제도 중요했다. 오르반은 학교에서 연락을 맡았고 케스는 정식 수사 협조 요청을 받은 뒤 기록탑 열쇠를 확보했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외부에 있군요.” 하준이 말했다.
“항상 있었죠. 우리가 기록 속 사람들만 보느라 못 봤던 겁니다.”
기록탑 관리자가 보내온 점검표에는 건물 전체가 '사용하지 않음'으로 표시돼 있었다. 그런데 최근 보수 공사의 자재 목록에는 스위치와 긴 케이블, 방수판이 들어 있었다. 민규는 그 모순이 오히려 단서라고 생각했다. 버려진 건물에 누군가 자재를 가져왔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시설이 위험해서 손을 봤을 수도 있고, 기록망을 유지하려고 새로운 연결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바르트는 안전 조끼를 꺼내 입었다. 오래된 벽이 흔들리면 마법으로 붙잡을 수 있겠지만, 무너지는 물체에 사람이 부딪히는 건 다른 문제였다. 그는 건물 외벽에 임시 균열 표시를 그렸다. 표시가 움직이면 즉시 철수하자는 뜻이었다. 민규는 건물 앞에 선 주민에게 돌아갈 안전 동선을 설명했다. 탑의 출입구를 조사하는 동안 누구도 모르는 사이 작업 현장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했다.
한 노부인이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들에게 물었다. “거기 아직도 애들 소리가 나요?” 민규는 흠칫했지만 질문을 되받지 않았다. 노부인은 어릴 적 그 건물 지하에서 아이들이 노래를 불렀다고 기억했다. 건물이 폐쇄된 뒤에도 가끔 불빛이 켜졌고, 밤중에는 누군가 울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들린 소리가 실제 목소리인지 오래된 기계인지는 알 수 없었다.
“소리가 들린 날이 언제였는지 기억하십니까?” 케스가 물었다.
노부인은 자기 수첩을 가져왔다. 며칠 전 손주가 찾아온 날에도 지하에서 소리가 들렸고, 몇 달 전 폭우가 왔을 때도 같은 소리가 났다고 했다. 그녀는 날짜를 정확히 적지 않았지만 손주가 다녀간 주말과 폭우 예보 기록을 대조하면 범위를 좁힐 수 있었다. 케스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연락처를 남겼다. 주변의 평범한 일지가 때로는 거대한 기록망보다 사람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입구 근처에는 노란 전구가 하나 달려 있었다. 전구는 실제 전선에 연결돼 있지 않았는데 사람이 가까이 오자 불빛이 켜졌다. 셀레나는 그것이 거리 감응 마법임을 확인했다. 전구 밑 명패에는 낯선 문장이 적혀 있었다. [모든 대피가 완료된 뒤 마지막 등불을 끌 것.] 민규는 그 문장을 읽으며 자신의 경비실에서 두 박자 늦게 꺼지던 전등을 떠올렸다.
계단을 내려가자 콘크리트 벽에 작은 낙서들이 보였다. 누군가 동그란 해를 그렸고, 그 옆에는 거꾸로 서 있는 우산이 있었다. 글씨는 오래돼 잘 읽히지 않았으나 어느 순간 바뀐 흔적이 있었다. 셀레나는 벽 표면을 손전등으로 비추며 마력 흔적을 확인했다. 낙서 자체는 단순한 분필이었다. 하지만 그 위를 덮고 있던 투명한 보호막은 아직 작동 중이었다.
바르트는 손으로 벽을 짚고 온도를 쟀다. 다른 쪽 벽보다 약간 따뜻했다. 누군가 최근까지 여기에 전원을 공급했다는 흔적이었다. 그는 벽을 부수기보다 점검구를 찾아 열었다. 그 안에는 작은 선풍기 같은 환기 장치가 있었다. 오래된 모터는 작동하지 않았지만 옆의 새 모터는 느린 속도로 회전하고 있었다. 민규는 작업자 출입 기록에 최근 설치 날짜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지하에는 사람이 오래 앉아 있었던 듯한 흔적이 있었다. 벽 한쪽에 놓인 작은 컵에는 먼지가 두껍게 앉았고, 바닥의 의자 자국은 겹쳐 있었다. 민규는 그 공간을 보며 누가 아이들을 지켰는지, 혹은 아이들이 누군가를 기다리게 만든 장소인지 생각했다.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직접 본 물건의 위치를 하나씩 기록하는 데 집중했다.
통신이 약해지자 루카는 자신이 실습한 신호 확인 절차를 떠올렸다. 그는 단순히 '들립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위치와 현재 상태를 나눠 보고했다. 민규는 그 말을 듣고 가볍게 웃었다. “이젠 학생이 아니라 진짜 통신 담당 같구나.” 루카는 잠시 우쭐해하다가 곧 다시 질문했다. “그런데 선생님, 진짜 통신 담당도 무서워요?” 민규가 대답했다. “무서워도 맡은 일을 제대로 하려고 노력하는 거지.”
기록탑 지하에는 통신실과 아동 보호실이 있었다. 보호실 문 옆에는 오래된 의자가 여섯 개 놓여 있었고, 각 의자에는 손잡이가 없었다. 의자들이 비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곳에 아무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바르트가 열 감지기를 대어 보자 방 전체 온도는 일정했다. 한쪽 벽에서만 사람의 호흡처럼 규칙적인 냉기가 나왔다.
“저기 누가 있는 건가요?” 루카의 원격 목소리가 들렸다.
“열은 없지만 신호가 있어. 아직 확정하지 말자.” 민규가 답했다.
셀레나가 기록판을 복제하자 벽에 또 다른 교실이 나타났다. 의자는 셋, 학생용 칠판은 하나. 학교 창고의 모형과 똑같았으나 이번에는 마지막 의자가 뒤집혀 있었다. 칠판에는 해마다 같은 날 작성된 보고가 차례로 떠올랐다. [대피자 확인 완료. 미확인 인원 1명. 제0대 확인자 대기.] 한 번도 미확인 인원이 줄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진짜 실종자를 찾지 못해서 그런 걸까요?” 하준이 물었다.
“아니면 확인 과정을 끝내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조건일 수도 있습니다.” 케스가 말했다.
연결 기록을 따라간 민규는 낡은 제어반 앞에서 서가원의 원본 음성 문서를 발견했다. 당시 설계자는 사고 뒤 어른들이 현장 확인을 거부하자 음성 안내를 유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총국의 다른 책임자는 무조건적인 종료가 가능하다고 보고했다. 종료 버튼을 누르면 실종자 수가 0으로 표시되는 대신, 아직 확인하지 않은 한 사람의 기록이 모두 사라지도록 설계해 놓은 것이다.
“그래서 종료하면 사람 한 명을 지우게 만들었군요.” 민규가 말했다.
제어반 옆에는 그 기능에 서명한 관리자의 흔적이 있었다. 개인 이름 대신 부서 직인이 찍혀 있었다. [기록보존총국 제0복귀과 총괄 책임.] 이름을 숨긴 조직이 책임을 대신하는 구조였다. 케스는 증거를 보존하고 발신 명령을 즉시 중단하도록 요청했다. 그러나 외부 지시가 끊겼는데도 제어반은 자동으로 같은 문장을 재생했다.
보호실의 문에는 오래된 안내문이 남아 있었다. [아이가 울면 대기할 것.] 그 문구는 단정적이었지만 대기한 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쓰여 있지 않았다. 민규는 문장 밑에 누군가 작은 글씨로 적어 둔 말을 발견했다. [기다리면 누가 와요?] 한 사람이 반복해서 질문하다 지친 듯 글씨 끝에는 힘이 없었다.
하준이 안내문을 읽고 얼굴을 찡그렸다. “저도 이런 말을 들었어요. 대기하다 보면 교대자가 온다고 했죠. 아무도 오지 않았는데.”
민규는 문에 손을 대지 않은 채 안쪽에서 소리가 들리는지 귀를 기울였다. 바깥의 전등이 켜진 채로 미세한 바람 소리만 들렸다. 누군가 실제로 울고 있을 수도 있었고 오래된 기록이 반복 재생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려야 했다.
케스는 문 앞에 무전기를 하나 놓고 저쪽 회선에서 응답이 있는지 확인했다. 한동안 잡음만 들렸다. 바르트가 안테나 방향을 바꾸자 아주 작은 심장 박동 같은 소리가 들렸다. 민규는 그것이 사람의 심장이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회로의 규칙적인 진동일 수도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이라고 불린 장치가 실제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보호실 밖으로 돌아온 셀레나는 한 가지를 발견했다. 원래 문은 안쪽 사람이 밀어도 열리는 구조였는데, 후대의 개조로 외부 신호를 받지 못하면 잠기도록 바뀌어 있었다. 만약 안쪽에 실제 사람이 있다면 위험한 설계였다. 바르트는 독립 해제 장치가 남아 있는지 살폈다. 다행히 벽 뒤에 수동 걸쇠가 있었다. 그러나 걸쇠를 건드리면 다른 문과 연결될 가능성이 있어 위치를 기록하고 보류했다.
그때 보호실 쪽에서 아이가 울었다. 울음소리는 녹음처럼 반복되지 않았다. 숨이 가빠졌다가 한참 멎었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민규는 통신기로 말을 걸었다.
“여기 사람 있어요. 소리가 들립니다. 괜찮으면 어디 있는지 알려 줄래요?”
“불을 끄면 안 돼요.” 목소리가 대답했다.
학교 경비실에서 듣던 목소리와 달랐다. 더 어렸고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셀레나는 두 회선이 얽혀 있지만 출처는 다르다고 확인했다. 민규는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묻기보다 먼저 불을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왜 불이 꺼지면 안 되는지 물었다.
“불 꺼지면 선생님이 나를 못 찾아요.”
제어반의 화면이 갑자기 바뀌었다. [마지막 등불 담당 지정.] 그 아래에 민규의 출입증 번호와 하준의 새 방문증 번호가 나타났다. 시스템은 두 사람 가운데 하나를 방에 남겨 놓으려 했다. 민규는 등록 절차를 차단한 다음 외부 독립 전원으로 전등을 살렸다. 두 사람이 남지 않아도 불을 켤 수 있었다. 바르트는 임시 배터리를 연결했고 셀레나는 마력 변동을 감시했다.
“지금 불은 꺼지지 않을 거야. 사람 하나가 방 안에 남을 필요도 없어.” 민규가 말했다.
잠시 뒤 울음이 멎었다. 아이는 아주 조그맣게 물었다. “그럼 내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알아요?”
“네가 알려 주는 소리와 우리가 보는 위치가 맞는지 확인할 거야. 한 가지만으로는 결정하지 않을게.”
민규는 보호실 벽에서 반사된 신호의 경로를 추적했다. 전선이 아니라 건물 밖 북쪽을 향한 좁은 마법 통로였다. 길은 도시 외곽의 오래된 배수로를 지나 더 먼 곳으로 향했다. 누군가 기록탑을 하나의 중계소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북쪽 회선의 경로를 추적하는 동안 기록탑 밖에서는 굵은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낡은 배수관에서 물이 넘쳤고 바르트는 출입구 쪽의 전선을 높이 올려 두었다. 전원 장치를 바닥에 그대로 두면 침수될 위험이 있었다. 셀레나는 비를 막는 간단한 마법막을 세웠지만 그 아래의 배수로가 막힌 사실까지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민규는 먼저 물이 빠질 길을 확보하도록 지시했다. 한 번의 실패로 안쪽의 아이 목소리를 잃을 수 있었다.
그 사이 하준은 오래된 의자에 앉아 아이에게 자기소개를 했다. 그가 누군가의 목소리에게 이렇게 길게 말을 건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하준이에요. 전에 내 얼굴을 가진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불렸어요. 지금은 내가 고른 이름을 씁니다.” 목소리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하준은 조용히 기다렸다가 계속했다. “당신 이름이 생각나지 않으면 나중에 말해도 됩니다. 나는 어디에도 가라고 명령하지 않을 거예요.”
그 말 뒤에 손가락으로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 둘, 셋. 똑같이 반복되던 종소리와 달리 간격이 일정하지 않았다. 하준은 두드리는 간격을 녹음했지만 아이에게 같은 소리를 다시 내 보라고 요구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안쪽에서 상대를 알아보고 신호를 보내는 방법일지도 몰랐다. 이 작은 교환 덕분에 하준은 자신이 또 다른 사람의 숫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러 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비가 잦아들자 케스는 현장 기록을 확인했다. 임시 전원의 사용 시간과 배수 작업이 끝난 시각, 아이의 신호가 이어진 시간을 각각 남겼다. 바르트는 앞으로 얼마나 더 안전하게 장치를 유지할 수 있는지 계산해 대체 배터리를 요청했다. 누군가를 구조하러 왔다가 임시 수단에 영원히 의존하게 되는 일은 피해야 했다. 민규는 그날의 보수 내역을 보며 시설이 정말 폐쇄된 것인지 다시 의심했다. 최근 자재가 들어온 만큼 관리 책임자가 현재도 존재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때 케스의 통신기에 자료가 도착했다. 수해 당시 네 번째 영아의 성인이 된 당사자가 기록 정정에 동의했다는 연락이었다. 그 사람은 현재 다른 도시에서 생활하며 안전하게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질문을 남겼다.
[저를 구조할 때 같이 울던 아이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아이가 누구인지 아직도 모릅니까?]
민규는 질문을 읽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기록상 네 아이만 있었다는 서가원의 말조차 확정된 전부가 아닐 수 있었다. 마지막 등불을 끄지 못하는 이유가 숫자의 오류인지, 정말로 놓친 아이가 있었기 때문인지 아직 모른다.
보호실 바닥에서 작은 금속방울 소리가 한 번 더 났다. 이번에는 다섯 번째였다.
제17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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