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방울 소리가 울린 다음 날, 제7시설의 모든 시계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오히려 그것이 불안했다.
민규는 멈춘 장치를 두드리는 대신 돌아간 장치부터 확인했다. 학교의 실제 시간은 정상이어도 비상 기록에는 아무도 확인하지 않은 완료 표시가 찍혀 있었다. 네 번째 대피자가 외부로 인계됐다는 문장 아래에는 서명도 목적지도 없었다. 소리를 한 번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누군가의 구조 완료를 선언한 것이다.
“그 사람이 실제로 안전한지 모르면 완료가 아니죠.” 민규가 말했다.
사고가 난 뒤 오래된 프린터에서는 완료 보고서가 계속 출력됐다. 총국 문서는 단 두 줄로 끝났지만 학교의 실제 기록은 훨씬 복잡했다. 학생들이 식당으로 이동한 시각, 당직 교사가 경비실을 방문한 시각, 셀레나가 제어 장치를 점검한 시각이 저마다 달랐다. 민규는 서로 다른 기록을 강제로 한 장에 합치지 않았다. 꼭 필요한 부분을 비교하고 맞지 않는 곳은 그대로 표시했다.
미라는 복도에서 들은 이야기를 가져왔다. 누군가 북쪽 탑에서 마지막 불이 꺼지면 학교 전체가 사라진다고 소문을 냈다는 것이다. 루카는 그런 말에 웃으려다가 미라의 표정을 보고 멈췄다. 미라가 실제로 무서워하고 있었다. 그녀는 오래전 실종자로 기록돼 사라진 적이 있었다. 사소한 오류도 다시 사람을 지울 수 있다는 생각이 몸에 남아 있었다.
민규는 두 사람을 경비실로 불렀다. “무서워해도 괜찮다. 대신 안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같이 정하자.” 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임시 통로의 위치를 확인하고 친구들에게 위험 구역을 안내하는 일을 맡기로 했다. 루카는 교내 출석 기록을 직접 세는 실습을 추가했다. 누구도 두 아이에게 용기 있다고 말하며 혼자 위험을 감수하라고 하지 않았다.
오르반은 기숙사 지도 위에 상담실을 새로 표시해 놓았다. 미라가 그것을 보자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이번에는 우리도 상담을 좀 받겠네요.” 루카가 대답했다. “그러게. 모험이 끝났는데도 일이 너무 많아.” 두 사람은 처음으로 다음 날의 시험과 점심 메뉴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 평범한 대화가 돌아왔다는 것이 오르반에게는 큰 위안이었다.
셀레나는 독립 회선의 동작을 보여 줬다. 아이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지만 서서히 어른의 문장과 섞였다. '마지막까지 기다려야 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아이의 목소리가 조금 더 작아졌다. 마력 문제라기보다 오래된 명령이 응답 우선순위를 빼앗고 있었다.
“그 부분만 분리하면 안 됩니까?” 하준이 물었다.
“시험은 해 볼 수 있어요. 다만 내부의 어떤 기억까지 지워지는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럼 지우지 말고 다른 선으로 내보내죠.”
바르트는 한동안 생각하다 고개를 들었다. 독립 전원에 붙어 있는 작은 단자 두 개가 아직 사용되지 않았다. 원래는 대피 인원 목록과 안내 음성을 분리하기 위해 만든 회선이었다. 사고 뒤 하나로 묶이면서 두 기능이 서로를 가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선을 끊기 전에 별도의 기록판으로 원본을 복제하고, 아이에게 시험 목적과 위험을 설명하기로 했다.
민규는 통신기에 대고 천천히 말했다. “네가 듣기 싫은 어른 목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신호를 분리해 볼 거야. 잠깐 내 목소리가 안 들릴 수도 있어. 싫다면 멈출게.”
아이는 한참 침묵했다. 그러더니 물었다. “제가 잠깐 없어지면, 아저씨는 다시 와요?”
“다시 이야기하러 올 거야. 시험을 멈출 방법도 정해 놨어.”
“그럼 먼저 내 이름부터 물어봐 주세요.”
민규의 목이 메었다. 아이는 지금까지 늘 자기 얼굴을 하고 ‘정민규’라고 말해 왔다. 그런데 이제 다른 이름을 원하고 있었다. 그는 이름을 지어 주지 않았다.
“넌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싶니?”
“아직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내가 누군지 먼저 맞히려고 하니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민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당분간 네가 원하는 대로 ‘아이’라고 부를게. 나중에 바꾸고 싶으면 언제든 말해.”
아이의 말을 들은 정은희는 한동안 창가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어릴 적 민규가 이름을 새겨 놓은 작은 책가방을 꺼냈다. 사고 뒤 한동안 가방을 열지 못했기 때문에 표면이 많이 해져 있었다. 가방 속에는 종이별과 반쯤 접힌 편지가 있었다. 어린 민규는 여러 번 자기 이름을 적다가 마지막 줄에서 지웠다. 왜 그랬는지 이제 와서 알 수는 없었다.
정은희는 통신을 통해 아이에게 편지를 읽어 주고 싶은지 물었다. 아이는 한참 고민하다가 첫 문장만 듣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엄마, 내가 문을 지키면 다들 나갈 수 있어?'라는 문장을 천천히 읽었다. 아이의 숨소리가 잠시 멎었다. 그러나 이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은희는 재촉하지 않고 책가방을 다시 덮었다. 자신의 아들이 쓴 문장이라는 확신과 지금 듣고 있는 아이가 그 아들이라는 확신은 같지 않았다.
그날 저녁 아이가 먼저 정은희를 불렀다. “아주머니, 내가 그 애랑 같은 사람이 아니어도 좋아요?” 그녀는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목이 메었다. “그래. 그 애랑 같지 않아도 괜찮아. 그래도 네 말을 듣고 싶어.” 아이는 작게 웃었다. “그럼 저는 다른 이야기를 해도 돼요? 오늘은 하늘이 무슨 색인지 궁금해요.”
정은희는 창밖을 봤다. 구름 사이로 늦은 햇빛이 붉은 줄을 만들고 있었다. 아이에게 노을의 색을 설명하다 보니 그녀는 자신이 아들을 처음 안아 든 날을 떠올렸다. 그날도 하늘을 보고 아이가 무슨 말을 하게 될지 기다렸었다. 오랫동안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대신 결정하던 습관을 버리고, 지금의 질문을 듣는 일이 낯설고도 따뜻했다.
기술적인 작업은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외부 기록망은 다른 회선으로 응답하던 아이의 말을 다시 수집하려 했다. 케스가 명령 송수신 시간을 비교하자, 여섯 시간 전에 누군가 제0복귀과의 장치로 시험 명령을 보냈다는 흔적이 드러났다. 서가원의 전망대에는 그런 명령을 보낼 수 있는 기계가 없었다. 발신지는 폐쇄됐다고 알려진 북쪽 기록탑이었다.
“서가원만 조사하면 끝날 일이 아니군요.” 케스가 말했다.
케스는 새 발신지의 주소를 보자 동생 니아의 구조 당시 조사했던 기록망을 떠올렸다. 그때도 이미 폐쇄됐다고 알려진 시설에서 새 신호가 계속 나타났었다. 가족을 찾는 동안 그는 모든 잘못을 한 사람에게 묻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그러나 한 사람의 사과로 현재 작동하는 시스템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는 종이 위에 '현장 운영자', '기록 수정자', '현재 명령 발신자'를 서로 다른 줄에 적었다. 이 셋이 동일인이라고 단정할 증거는 아직 없었다.
민규는 옆에서 그 글씨를 확인했다. 책임을 분리한다는 건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었다. 각자 어떤 결정을 했는지 찾아야만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케스는 북쪽 기록탑의 현장 조사 요청서를 새로 작성했다. 오래된 사건은 계속해서 오늘의 사람들에게 도착하고 있었다.
그사이 미라와 루카는 오래된 대피소 지원 명단을 대조했다. 서가원은 갓난아기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고 했지만, 당시 대피소에는 이유식과 아기용 담요가 지원된 기록이 있었다. 영아를 인계받은 사람의 이름은 지워졌으나 손으로 쓴 특별 요청이 남았다. [몸이 약해 푸른 담요를 계속 사용할 것. 호루라기 소리에 놀라지 않도록 할 것.] 서류 한쪽에는 행정 직원의 연락처 일부가 있었다.
케스는 사람을 찾아가기에 앞서 개인정보 보호 절차를 확인했다. 삼십 년 전 아기였던 사람이 지금 성인으로 살아 있다면 갑자기 언론이나 학교의 구출 대상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을 수 있었다. 그들이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신원과 안전 여부뿐이었다. 당사자가 원하지 않으면 사고 이야기를 공개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흔적은 지방의 작은 보육 시설로 이어졌다. 당시 시설에서 일했던 직원 한 명이 아직 생존해 있었고, 방문 목적을 설명하자 오래된 물품 대장을 보여 줬다. 물품 대장에는 '무명 영아'라고 적힌 칸이 있었다. 몇 개월 뒤 새 보호자를 만나 퇴소했고, 이후 이름과 주소는 별도 서류에 보관됐다고 했다.
“그 아이는 무사했습니까?” 민규가 물었다.
“아팠던 때도 있었지만 잘 자랐어요.” 늙은 직원이 대답했다. “최근에도 편지를 보냈습니다. 자기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고요.”
민규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바로 연락처를 달라고 하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사고 기록의 오류를 정정하고 싶다고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선택은 당사자가 하도록 남겨 뒀다.
보육 시설의 마당에는 작은 놀이터가 있었다. 오래된 미끄럼틀은 안전 규정에 맞게 교체돼 있었고, 나무 그늘 아래에서는 직원들이 간식 상자를 정리하고 있었다. 민규는 그 모습을 보며 삼십 년 전 누군가 여기서 지내던 아이를 돌봤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구조가 완료됐다는 문장 하나만으로는 아이가 어떻게 자라났는지 알 수 없었다. 매일 따뜻한 밥을 만들고, 열이 나면 이마를 짚어 주고, 밤중에 울면 달려온 사람들의 시간이 쌓여 지금의 삶이 되었을 것이다.
시설 직원은 오래된 사진을 보여 주되 이름이나 얼굴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달라고 했다. 민규와 케스는 조사에 필요한 부분만 확인하고 나머지는 닫았다. 직원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때 아이를 데려온 사람이 또 찾으러 오지 않을까요?” 케스는 그럴 가능성을 조사 중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누군가 과거를 찾는다고 해서 성인이 된 사람의 현재 생활을 방해할 권리가 생기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돌아오는 길에 하준은 작은 편의점에 들렀다. 그는 자신이 살 집에 둘 우산 하나를 골랐다. 이전에는 비가 와도 어느 장소로 가야 하는지 명령이 먼저였고, 자신의 생활에 맞는 물건을 고를 일이 없었다. 우산은 파란색이었다. 민규가 이유를 묻자 하준은 그냥 색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그 답은 멋진 운명의 증거가 아니었다. 그래서 민규는 좋았다.
하준이 편의점에서 나오자 비가 조금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막 산 우산을 펼쳐 민규와 함께 걸었다. 손잡이는 두 사람이 잡기에 좁았지만 이번에는 누가 우산을 들고 남아 있어야 한다는 명령이 없었다. 하준은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 우산을 접고 물기를 털었다. 앞으로의 시간은 자신이 만든 작은 선택들로 채워질 수 있었다.
학교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하준은 창밖의 들판을 바라봤다. 그는 종이비행기를 접어 줬던 다온이 이제 안전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 낯선 아이들 이야기에도 귀가 기울어졌다.
“한 사람의 시간과 이름을 기계가 맡아 두는 게 아니라 결국 사람들이 서로 확인해야 하는 거군요.”
“그렇죠. 기록은 필요하지만 사람보다 앞서서는 안 됩니다.” 민규가 대답했다.
그날 저녁 학교 식당에서는 학생회가 늦은 식사를 준비했다. 조사팀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던 미라와 루카도 그 자리에 있었다. 미라는 수업에서 배운 식물 성장 주문을 자랑하다가 화분에서 잎이 너무 많이 돋아 식탁을 가릴 뻔했다. 루카가 한마디 하자 그녀는 잎을 줄이려다 화분을 넘어뜨렸다. 모두가 웃었고, 오르반은 바닥의 흙부터 치우라며 빗자루를 가져왔다.
민규는 웃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오늘 조사에서 확인한 사실을 떠올렸다. 오랫동안 이름을 잃고 지낸 사람들도 언젠가 이런 소란스러운 저녁 식탁으로 돌아가길 원할 수 있다. 그들이 돌아갈 집은 삼십 년 전과 같지 않겠지만 식사를 하고 실수하고 웃을 수 있는 하루는 여전히 소중했다. 그는 학교가 그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지원이 무엇인지 목록을 만들었다. 단순히 일시적 보호실이 아니라 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연결망이 필요했다.
하준은 식탁 끝에 앉아 수저를 들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여기 있어도 되는지 물었지만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미라가 자기 도시락을 보여 주며 반찬이 싱겁다고 투덜거렸다. 하준은 한 숟가락 먹더니 괜찮다고 말했다. 루카가 웃으며 반박했다. “그건 아저씨가 아직 학교 식당을 잘 몰라서 그래요.” 하준은 웃었다. 오늘은 숫자나 근무 회차 대신 음식의 맛을 두고 의견을 말할 수 있었다.
식사가 끝나자 정은희는 아이에게 보낼 짧은 편지를 썼다. [오늘은 다 같이 밥을 먹었어. 밖에 나오면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물어보고 싶어.] 셀레나는 아이에게 편지를 읽어도 되는지 확인했다. 작은 목소리는 듣고 싶다고 답했다. 답장을 바로 쓰지는 못했지만, 편지 끝의 ‘좋아하는 음식’이라는 문장을 두 번 되뇌었다. 이제 그는 누군가에게 위험한 문을 지키는 것 말고도 물어볼 것이 생겼다.
그날 밤 독립 회선 시험을 마쳤을 때, 어른의 지시는 처음으로 아이의 목소리와 분리됐다. 복제판에는 단조로운 명령이 계속 남았지만 아이는 그것을 따라 말하지 않았다. 잠시 뒤 미세한 웃음이 들렸다.
“아저씨, 제 머릿속이 조용해졌어요.”
“괜찮니?”
“네. 그런데 조용하니까 누군가 뒤에서 울고 있는 것 같아요.”
“누가?”
“제가 아니에요. 아주 오래전부터 다른 방에 있는 아이요.”
민규는 자리에 앉았다. 잃어버린 네 번째 아기는 안전하게 자랐다는 증언이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방에서 우는 아이는 누구일까. 기록탑에 남은 자동 응답인지, 실제로 구조하지 못한 또 한 사람인지 구별해야 했다. 그는 메모지에 새 질문을 적었다.
[네 번째 사람이 안전하다고 해서 마지막 사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느 방에서 우는지 위치부터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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