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시설 경비실에 놓인 젖은 양말은 오전 아홉 시에도 마르지 않았다.
민규는 그것이 귀신의 물건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습도계는 정상이고 창문 틈으로는 바람이 새지 않았다. 양말이 놓인 의자 아래에는 물이 고이지도 않았다. 그는 천을 직접 만지는 대신 사진을 찍고, 바르트에게 재료와 온도부터 조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셀레나는 양말 주위에 아주 얇은 마력 흔적이 있지만 누군가를 구속하거나 해치는 종류는 아니라고 했다.
“이 물건은 마력을 뿜어내지 않아요. 마력이 붙어 있는 장소를 가리키는 표지에 가까워요.”
“고장 난 지도 핀 같군요.”
“그렇게 말하면 제가 평생 배운 마법이 별것 아닌 것처럼 들려요.”
“아주 훌륭한 지도 핀이죠.”
셀레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러나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의 양말 안쪽에 작은 숫자가 보였기 때문이다. 0. 숫자는 자수로 놓인 것이 아니었다. 바느질 자국 사이로 들어온 차가운 빛이었다.
바르트는 양말을 보관할 얇은 받침대를 만들었다. 일부러 방수 천을 깔지 않았다. 재료가 어떤 물건과 접촉할 때 반응하는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받침대 밑에는 미세한 흰 가루가 놓여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가루 위에 반원 모양이 생겼다. 마치 작은 발뒤꿈치가 닿았다 떨어진 것 같았다. 그 모양을 따라 열이 변하는지 측정했지만 일정했다. 민규는 시험 과정도 기록했다. 나중에 비슷한 현상이 생기면 사람마다 감각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비교할 자료가 필요했다.
셀레나는 양말에서 시작하는 작은 신호를 학교 지하의 옛 마력선에 연결해 보지 말라고 했다. 이미 누군가의 강제 근무 기록과 연결돼 있을지 몰랐다. 대신 신호를 벽에 비춰 그림자만 확인하는 장치를 만들었다. 바르트는 마법에 조예가 없는 사람도 볼 수 있도록 영상 카메라를 설치했다. 민규는 그림자와 실제 물건이 움직일 때 시간 차이가 있는지를 검토했다.
실험실 방문 일지를 작성하던 미라는 자신이 자주 쓰는 청소 장갑으로 양말을 집으면 안 되냐고 물었다. 민규는 가능한 한 직접 만지지 않는 편이 좋다고 했다. 그러나 미라가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현장 일은 의식과 감동만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증거물은 누군가 올바른 상자에 넣고, 상자에는 날짜를 적고, 누군가는 그것을 운반해야 했다. 그런 일들을 제대로 수행할 사람이 많을수록 구조는 더 안전해졌다.
이들이 어느 정도 순서를 정하자 셀레나가 신호판 위에 손을 얹었다. 양말의 숫자 0은 잠시 흐려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원본을 무리하게 건드리지 않아도 그림자를 볼 수 있다는 뜻이었다. 민규는 시험이 성공한 이유를 묻자 셀레나가 어깨를 으쓱했다. “대부분의 마법은 안 되는 방식을 하나씩 제외하다가 겨우 되는 걸 찾는 거예요. 경비원하고 다를 게 없네요.”
오르반이 보낸 병원 출입 기록은 열두 장뿐이었다. 삼십 년 전 수해가 난 날 응급 병동에는 사람들의 이름과 입실 시각이 남아 있었는데, 어린 정민규의 정보는 두 개로 나뉘었다. 첫 번째 기록에는 오후 일곱 시 십이 분, 정은희와 함께 도착한 아이가 적혀 있었다. 두 번째에는 같은 이름의 아동이 같은 날 ‘인계되지 않은 대피 책임자’로 분류돼 있었다. 나이는 여덟 살. 이동 경로는 역무실에서 제7시설 지하, 다시 주소가 없는 비상 출입구로 이어졌다.
“한 사람에게 두 개의 기록이 붙었다고 생각할 수 있죠.” 케스가 말했다. “하지만 두 번째 기록은 삼십 년 내내 출근 처리됐습니다. 시스템이 동일인을 두 곳에 있다고 믿는 동안 다른 사고도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어요.”
“그럼 아이는 분신입니까?” 루카가 물었다.
“기록만으로 분신이라고 할 수 없어.” 민규가 답했다. “저건 사라지지 않는 출근 도장이 찍힌 종이야. 그 뒤에 누가 있었는지 봐야 해.”
정은희는 병원의 낡은 복도 사진을 펼쳤다. 사진 가장자리에는 큰 물통과 수해 대피용 담요가 있었다. 그리고 벤치 아래, 어린아이의 운동화가 하나 뒤집혀 있었다. 그녀는 사진을 오래 바라봤다.
“이날 너는 계속 문 쪽을 봤어. 사람들이 들어오기만 하고 아무도 그 문을 닫지 않으니까.”
“저는 왜 그랬을까요?”
“모르지. 그때 내가 물었으면 좋았을 텐데.”
민규는 어머니의 후회를 조용히 들었다. 그는 당시의 어린 자신을 이해하는 데 한 번의 정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목소리를 가진 아이를 찾는 데 도움이 되는 사실이면 충분했다.
민규는 진료 기록 중 자신에 관한 부분을 따로 표시했다. 두 기록에는 혈액형도 키도 적혀 있지 않았다. 첫 번째 기록의 보호자는 정은희였고, 두 번째 기록에는 보호자 대신 '자동 인계 대기'라는 문장이 있었다. 그 차이가 눈에 들어왔다. 병원에 있던 실제 아이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었고, 비상 기록 안의 아이는 누군가 인계해 주기를 기다렸다는 뜻일 수 있었다.
정은희는 그 시절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자세히 말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왔을 때 창구 직원이 같은 이름이 두 개라고 하자 접수증 한 장을 찢어 버렸다는 것이다. 급한 환자가 많고 건물 밖에서는 사람들이 도움을 청했다. 직원의 실수를 탓하기에는 상황이 처참했다. 그러나 찢어 버린 접수증에도 누군가의 이름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그 조각을 버린 것이 잘못이었을까 자책했지만 민규는 그 자리에서 어떤 판정도 내리지 않았다.
“그럼 그 종이의 조각을 찾아보자고 하시면 되잖아요.” 미라가 말했다.
“삼십 년이 지났는데요?” 루카가 반문했다.
“우리 학교 창고에는 삼십 년 넘은 양말도 있잖아.”
미라의 말에 모두 작게 웃었다. 셀레나는 오래된 증거를 찾을 때 의외의 보관 장소를 우선 확인하는 것이 좋다며 병원 폐기물 기록을 요청했다. 종이가 남았을 가능성은 낮았지만, 그날 누구의 이름을 중복 처리했는지는 별도 정산서에 기록됐을 수도 있었다. 민규는 조사 범위를 넓히는 대신 현재 양말과 관련된 자료만 확인하자고 했다.
같은 날 오후 오르반은 직원들을 모아 정확히 무엇이 알려졌는지 설명했다. '경비실에 아이 귀신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학생들에게 퍼지고 있었다. 오르반은 학생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신원 미상의 목소리와 마법 흔적을 조사 중'이라고 공지했다. 민규는 누군가 실제 위험에 처한 것으로 확인되면 추가 대피 안내를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야기의 빈 부분을 과장된 공포로 채우기보다 모르는 부분을 인정하는 편이 더 안전했다.
그날 오후 하준이 방문했다. 그는 의자 위의 양말을 보자 가방에서 오래된 양말 한 짝을 꺼냈다. 색은 같았지만 젖지 않았고 발목의 재봉선이 조금 달랐다. 하준은 과거 열일곱 번의 교대 중 한 번, 폐쇄된 사물함에서 그 양말을 받았다고 했다. 대피하지 못한 사람의 신원을 확인할 물건인 줄 알았는데 누구에게도 맞지 않아 보관해 왔다.
“왜 그걸 이제 보여 줍니까?” 민규가 물었다.
“번호를 따라다니다 보니 물건도 번호의 일부라고 여겼어요. 제가 가져도 되는 건지 몰랐습니다. 이제는 누군가가 원하면 돌려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양말을 맞춰 보자 오른쪽의 물방울이 왼쪽 천으로 옮겨 갔다. 서로가 맞닿은 곳에서 작은 종소리가 울렸다. 마법진이 열린 것은 아니었다. 대신 바닥에 종이처럼 얇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비상 계단, 손잡이가 없는 문, 아이가 연필로 그린 동그란 창문. 그리고 문 옆에 서 있는 어른의 다리.
“누구예요?” 미라가 물었다. 비상물품 점검을 돕다 들어온 참이었다.
“모르겠어.” 민규가 말했다. “그런데 손이 보여. 장갑을 끼었네.”
그림자의 어른은 아이에게 종이를 내밀고 있었다. 자그마한 손이 그 종이를 받았다. 종이에는 글씨가 없고 동그라미 하나가 있었다. 아이는 그 빈칸에 자기 이름을 쓰려다가 연필을 떨어뜨렸다. 바로 그 순간 그림자가 끊어졌다.
바르트는 장갑의 모양을 알아보았다. 제0복귀과 초창기 유지보수원들이 쓰던 절연장갑이었다. 작업자가 비상 통로의 센서를 만질 때 기록 회로에 신원이 남지 않도록 만들어진 특수 제품이었다. 그는 옛 장비 보관실 도면을 가져왔다.
“여기 계단이 있어요. 제7시설에 연결돼 있지만 학생들은 몰라요. 오래전에는 훈련 대피로였죠. 도면상 이름은 ‘모의 사고 연습실’입니다.”
“모의 사고?” 케스의 표정이 굳었다. “실제로 사람이 갇히는 장소를 모의라고 불렀다는 겁니까?”
바르트는 고개를 젓지 않았다. “설계 당시에는 안전했을 수도 있어요. 문제가 생긴 시점은 조사해야 합니다.”
민규는 출입 권한부터 확인했다. 연습실로 이어지는 문은 현재 폐쇄돼 있었지만, 시설 관리자 열쇠라면 겉문을 열 수 있었다. 내부 전력은 끊어져 있었고 배수 장치의 작동 여부는 알 수 없었다. 당장 밤에 밀고 들어가기에는 위험했다. 그는 임시 점검팀을 꾸렸다. 바르트는 통로 구조와 안전, 셀레나는 마력 누수, 케스는 원본 기록을 맡았다. 하준은 자신이 다녔던 과거 통로를 기억하는 한도에서 설명하기로 했다.
그날 저녁, 어린 민규의 기록을 따라 출발하려던 정은희가 민규를 불렀다.
“네가 어렸을 때 비가 오면 우산을 접지 못했어. 누군가가 뒤에 남아 있을까 봐 계속 돌아봤지. 나는 그걸 겁이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했어.”
“다 그랬을 수도 있죠.”
“그래도 그 아이가 아직 기다린다면, 오늘은 누가 돌아오는지 알려 주고 싶어.”
민규는 어머니와 함께 야간 교대표를 작성했다. 정은희가 위험한 계단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회수된 사진과 당시 기억을 대조하도록 했다. 그 역시 혼자 출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준은 두 양말을 나란히 놓고 한참 동안 자신이 거쳐 온 장소들을 떠올렸다. 그는 숫자 17이 희미해질 때마다 다음 회차의 문턱에서 같은 질문을 받았다. '당신은 마지막 확인자가 맞습니까?' 한 번은 아니라고 답했지만 출입문이 열리지 않았다. 다른 한 번은 맞다고 답했더니 학교 운동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오래전에는 그 두 답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고 믿었다.
“혹시 그 질문을 한 사람이 어땠는지 기억해요?” 미라가 물었다.
“사람 목소리였습니다. 하지만 늘 같은 높낮이였어요. 누가 뒤에서 읽어 주는 것 같기도 했죠.”
“그럼 진짜 사람이 있었는지부터 확인해야겠네.” 민규가 말했다.
하준은 그림자 속 작은 계단을 바라봤다. 그는 어릴 때 종이비행기를 접어 주던 다온의 얼굴을 기억했다. 그림자 속 계단에서도 어린아이의 발소리가 들린다면 이번에는 그쪽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단독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 모습이 민규에게는 더 의미 있었다. 하준은 처음으로 다른 사람이 정한 '마지막 근무자'가 되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날 저녁 하준은 새 이름으로 받은 편지를 가져왔다. 동네 가게에서 발급한 배송 안내였다. 우편함에 '하준'이라고 붙이고 주문한 물건이 도착한 것이다. 물건은 별것 아닌 작은 책장이었다. 혼자 살 방에 놓으려고 산 물건이라고 했다. 민규는 그 이야기를 듣고 그 방의 문턱이 높은지 물었다. 하준은 책장을 들고 가려면 두 사람이 필요하다고 웃었다. 구조 뒤의 삶은 이렇게 자잘한 난관을 스스로 겪는 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가 새로 고른 생활을 얘기하는 동안 양말은 조금씩 젖어 갔다. 하준은 이야기를 멈췄다가 계속했다. 그 신호가 자신의 선택을 다시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민규는 양말을 별도 상자에 넣어 누군가의 방문증과 직접 닿지 않게 했다. 그제야 물기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이 실험으로 정확한 인과관계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조사팀의 안전을 위해 우선 분리 보관하는 편이 나았다.
밤 열한 시, 양말의 물기가 처음으로 줄었다. 두 짝을 따로 놓아두면 바닥의 그림자가 사라졌고, 가까이 놓으면 계단이 다시 나타났다. 그림자의 끝에서 마른 분필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바닥에 작은 글씨를 쓰고 있었다.
[내 출석표는 왜 아직 0일까요?]
그 옆에 자국이 하나 더 생겼다.
[선생님은 출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요.]
그날 근무를 마치고 돌아가려던 직원 하나가 경비실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출입문의 작은 그림자를 보고 자기도 밤중에 종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날짜와 위치는 확실하지 않았다. 민규는 그 이야기를 무시하지 않고 메모하되 확정된 기록과 분리했다. 직원은 누군가 자신의 말을 비웃지 않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놓인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다음부터 야간 점검 중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 정확한 시각과 장소를 적겠다고 했다.
루카는 준비해 둔 연락망에서 한 칸을 더 늘렸다. [소리를 들은 사람의 위치]라는 항목이었다. 미라는 그 아래에 [소리가 멈춘 시각]을 적었다. 작은 양말에서 시작된 조사는 사람의 기억에만 매달려서는 안 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자료들이 하나씩 쌓이는 동안 민규는 아이의 말에 답할 때만큼은 장부를 덮고 상대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에게 조사표만 들이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규는 글씨를 보고 비상 연습실 문을 떠올렸다. 아이가 삼십 년 동안 견딘 것은 어두운 공간만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자기에게 시킨 일을 아무도 확인하지 않는 시간이었다. 그는 사진 한 장을 더 찍어 놓고 손전등을 충전했다. 이번에는 기억보다 실제 문부터 확인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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