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무실의 시계가 여섯 시 오십육 분을 가리켰다. 문고리 아래 붙은 녹슨 표지판에 작은 물방울이 맺혔다. 바깥 계단에 선 민규는 먼저 손전등으로 문턱을 비추었다. 경첩은 움직일 수 있어 보였지만 문 아래 틈에는 철가루가 잔뜩 쌓여 있었다. 오랫동안 한 번도 열리지 않은 문은 의외로 작은 장애물 때문에 사람을 가둘 수 있다.
“수동 해제핀부터 확인합시다.” 민규가 말했다.
바르트가 도면에 표시된 위치를 찾아 핀을 뽑았다. 셀레나는 그 사이 문과 계단 사이의 마법 경계를 안정시켰다. 오르반은 원격 감시창에서 비상 신호가 없다고 보고했다. 하나의 장치가 성공이라고 표시해도 다른 확인을 마칠 때까지 구조 완료를 선언하지 않았다. 연진은 안에서 문 가까이 오지 않고 기다렸다.
“연진 씨, 지금 숨쉬기는 어떻습니까?”
“괜찮아요. 너무 무서워서 말이 자꾸 짧아져요.”
“그렇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문이 열릴 때 누가 어디에 있는지 차분히 알려 드릴게요.”
도연진은 종이 한 장을 양손에 쥐고 있었다. 삼십 년 전 보내지 못한 구조 요청서였다. 그녀는 그 종이를 밖으로 내보내면 자신의 첫날이 완전히 끝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밖에 나가면 아무도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예전에 쓰던 역무실 명찰, 낡은 신발, 빗물에 젖은 서류. 그 안에 있는 것들은 여전히 사고 당일에 머물러 있었다.
계단 쪽에서 사장이 말했다. “빵은 식기 전에 먹는 게 제일 맛있는데, 오늘은 조금 식어도 괜찮아요. 기다릴게요.”
연진은 그 말을 듣고 웃었다. 가족을 만나게 해 주겠다는 거창한 약속보다 빵 한 개를 기다린다는 말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그녀는 종이를 품에 넣고 문에서 두 걸음 물러섰다.
한쪽에서는 장백운이 지하 유지보수실의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쓰던 책상에는 컵 하나와 달력이 있었다. 달력은 사고가 난 해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밖에 나가면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몰랐다. 잘못된 규칙 때문에 연진이 갇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자기 자신도 삼십 년 동안 그 규칙을 따르다가 바깥 사람들의 도움을 외면했다.
“이제라도 그날 회신을 보낼 수 있습니까?” 케스가 물었다.
“보낼 수 있습니다. 내가 보류한 걸 인정해야 하지만요.”
“그 기록은 남길 겁니다. 피해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책임도 조사할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구조부터 하겠습니다.”
장백운은 떨리는 손으로 옛 접수인을 들었다. ‘회신 보류’가 찍힌 고무 면을 돌리자 그 아래에 사용되지 않은 ‘회신 접수’가 나타났다. 그는 실제로 서류를 읽고 접수한 뒤 정해진 칸에 시간과 이름을 적었다. 그동안 끝없이 반복되던 구조 요청은 처음으로 완료된 회신을 받았다. 회신의 문장은 짧았다. [대피자 세 명 외부 인계 확인. 구조 요청자 도연진 위치 확인. 추가 구출 진행.] 실제로 벌어진 일만 적혔다.
바르트가 회로를 확인했다. 연진의 심장 박동은 더 이상 송신 신호에 연결되지 않았다. 독립 회신은 마을 경보탑과 학교 경비실, 의료소를 통해 계속 살아 있었다. 검은 마법석은 그대로 보존함에 남겨져 조사 자료가 되었고, 누군가의 시간을 차감하라는 회로는 전원에서 완전히 분리됐다.
“걸쇠가 풀립니다.” 셀레나가 말했다.
여섯 시 오십팔 분. 문틈으로 작은 바람이 들어왔다. 연진의 역무실 시계와 바깥의 실제 시각이 같아지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안쪽의 한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르고, 외부 출구가 열린다는 사실을 서로 다른 기록으로 확인하면 됐다. 계단에는 미끄럼 방지판이 놓였고 임시 지지대는 안정되어 있었다. 바르트가 먼저 문을 조금 열었다.
그 틈으로 연진의 낡은 신발이 보였다. 그녀는 문턱 앞에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바깥 사람들은 일제히 손을 내밀지 않았다. 누군가가 과거에 갇혔다고 해서 지금도 자신의 몸을 어떻게 움직일지 결정할 권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민규가 낮게 말했다.
“나오셔도 됩니다. 필요한 만큼 천천히 오세요.”
연진은 한 발을 옮겼다. 문턱의 금속판이 발끝 아래서 삐걱거렸다. 두 번째 발을 옮기는 순간 손에 쥔 옛 명찰이 뜨거워졌다. 장치가 마지막으로 그녀의 근무 종료 시간을 계산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명찰은 불빛 하나를 내지 못하고 조용히 식었다. 원점에서 벗어난 사람에게 더는 아무 명령도 내리지 못했다.
연진은 실제 강변 바람을 마셨다. 안쪽에서 맡았던 빵 냄새가 바깥에서도 났다. 처음 보는 건물과 낯선 옷차림의 사람들, 오래된 역 대신 펼쳐진 산책로가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자신이 나온 문을 확인했다. 도망치듯 뛰어나오는 대신, 자신이 돌아갈지 말지를 이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나왔어요.” 그녀가 말했다.
민규가 수첩에 적었다. [도연진 외부 구조, 본인 의사 확인. 의료 지원 인계 예정.] 그는 한 줄을 더 덧붙였다. [대체 근무자 지정 없음.] 세 곳의 독립 기록이 그 사실을 함께 확인했다. 아무도 문 안에 대신 남아 있지 않았다.
장백운의 출구도 조금 뒤 열렸다. 그는 계단을 내려오다가 자꾸 뒤를 돌아봤다. 케스는 서두르지 말라고 했다. 바르트가 실제 계단 폭을 확인했고 의료진이 그의 상태를 살폈다. 장백운은 자신이 만든 장치의 일부 부품을 품에 안고 나오려 했지만 수사 자료로 보관해 달라는 요청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나는 벌을 받아야 하겠죠.” 그가 말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는 조사해야 합니다.” 케스가 대답했다. “그렇다고 지금 구조를 받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 연진은 가게 앞에 서 있었다. 사장이 작은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안에는 소금빵 두 개가 들어 있었다. 연진은 빵 하나를 꺼내 천천히 뜯었다. 삼십 년간 반복된 여섯 시의 공기에는 없던 따뜻한 김이 손바닥에 닿았다. 그녀는 한 입을 먹더니 눈을 감았다.
“정말 시간이 흐르네요.”
“빵은 금방 식어요.” 사장이 말했다. “그것도 괜찮죠.”
연진은 울다가 웃었다. 빵이 식는 일조차 기쁘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하준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녀를 바라봤다. 자신이 처음 나왔을 때는 누군가 자신의 숫자를 지우려고 애썼다. 지금은 연진이 손에 쥔 명찰을 스스로 내려놓고 있었다. 하준은 조용히 메모했다. ‘나오고 싶다는 말을 듣고 문을 열 것. 나왔다는 사실을 함께 확인할 것.’
장면이 조금 가라앉자 빵집 앞에 또 다른 손님이 찾아왔다. 문태식이었다. 그는 제7시설까지 오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연진이 실제로 구조됐다는 소식을 듣고 강변까지 온 것이었다. 그는 건물 앞에서 한동안 발을 떼지 못했다. 서른 해 전 자신을 밖으로 보내 준 사람은 여전히 젊었고, 자기는 머리가 희끗해진 노인이 되어 있었다. 어색한 시간을 무엇으로 메워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케스는 두 사람이 서로 만나고 싶은지 따로 확인했다. 연진은 아주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태식은 작은 천 가방을 꺼냈다. 안에는 접힌 초록색 우산이 들어 있었다. 오래된 원단은 여러 번 수선됐지만 손잡이에는 여전히 역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태식이 그것을 건네자 연진은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봤다.
“이걸 아직도 가지고 있어요?” 그녀가 물었다.
“비 오는 날마다 생각났어요. 그런데 찾아갈 곳이 없더라고요.”
그는 자신이 그 뒤로 어떻게 살았는지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우산을 수선해서 쓰다가 새것을 사면 오래된 것을 보관했다고만 말했다. 연진은 그 마음이 고마웠지만 떠나간 삼십 년의 모든 세월을 돌려받은 것은 아니었다. 둘은 잠시 웃다가 차를 마시기로 했다. 오늘 다 하지 못한 이야기는 다른 날 이어가도 됐다.
태식이 돌아가기 전 연진은 물었다. “그날 내가 널 먼저 내보낸 건 잘한 거지?”
태식은 망설이지 않았다. “살아 있는 제가 여기 있잖아요. 그런데 누나 혼자 남아야 했다는 뜻은 아니에요.”
연진은 고개를 숙였다. 오래전 아이였던 사람이 지금은 어른이 되어, 그녀가 삼십 년 동안 듣지 못한 말을 해 주고 있었다. 잘한 선택 하나가 잘못된 대가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그 사실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 숨이 트였다.
정은희도 강변에 잠시 들렀다. 그녀는 처음 연진의 얼굴을 본 순간 확신하지 못하고 멈췄다. 옛날의 손수건 속 푸른 기차 바퀴가 연진의 가방에 달린 작은 장식과 비슷해 보였다. 연진은 젖은 청년이 아니라 자신이 그날 밤 우비를 입고 다녔다고 설명했다. 은희는 젖은 비옷과 중절모 때문에 성별을 짐작했던 기억이 잘못됐을 수 있다며 사과했다. 둘은 오래된 손수건을 함께 살폈다.
“이걸 누구에게 줬는지 기억나요?” 은희가 물었다.
“작은 아이한테요. 저를 따라 들어오겠다고 해서 따뜻한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어요. 선생님이 그 아이를 데려갔죠.”
은희는 민규를 바라봤다. 그 아이가 어릴 적 민규였다는 사실이 세 사람 사이에 천천히 자리 잡았다. 민규는 여전히 기억이 선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그 밤에 무슨 일을 했는지 하나의 증언과 물건이 함께 확인해 주고 있었다. 그는 연진에게 영웅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
“그날 저도 밖으로 보내 주셨군요.”
“아이를 어른 옆으로 보낸 것뿐이에요.” 연진이 말했다. “아마 누구라도 그랬을 거예요.”
민규는 그 말이 더 좋았다. 거창한 운명 대신 누구든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그를 안심시켰다. 이 기억은 여전히 조사해야 할 내용이 많았다. 하지만 오늘 서로의 목소리를 듣는 데에는 충분했다.
의료진은 두 사람에게 시간 차이로 인한 몸 상태 변화가 없는지 검사했다. 일부 기억은 사고 당일에 머물러 있고, 바깥 세상은 삼십 년을 지나왔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단지 진찰뿐이 아니었다. 신원 등록, 생활 지원, 과거 기록의 정정, 새로운 관계를 맺을 시간. 민규는 지원 일정을 기록할 담당자를 지정하고 당사자들의 의사를 먼저 확인하도록 했다. 안전하게 나오는 것과 안전하게 살아가는 일은 이어져 있었다.
그날 저녁 학교 경비실에서는 조촐한 식사가 마련됐다. 셀레나는 엄청난 마법 주문을 쓰지 않았으면서도 사건을 해결했다고 민규를 놀렸다. 바르트는 자기가 푼 나사 숫자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루카는 종소리 하나에 사람의 삶이 달라졌다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미라는 접시를 정리하다가 민규에게 물었다.
“그런데 형은 왜 맨날 문부터 확인해요? 마법사들은 주문부터 확인하잖아요.”
“누군가 그 문으로 지나가야 하니까.” 민규가 답했다.
“그럼 이번에도 경비원 일이었네요.”
“아마도.”
오르반은 웃지 않았다. 그는 새로 제출된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최초 귀환자의 구조가 완료된 뒤 중앙의 열여섯 시설 가운데 여섯 곳에서 자동 차감 신호가 멈췄다. 그러나 나머지 네 곳은 여전히 이상한 신호를 내고 있었다. 하나는 운영 중인 의료소, 하나는 보육원, 하나는 폐쇄된 산골 분교, 마지막 하나는 주소 자체가 없는 시설이었다.
민규는 각 시설에 독립 점검 요청을 보냈다. 성급하게 다시 위험하다고 공지하지 않았다. 나머지 시설이 실제로 사람을 붙잡고 있는지도, 단순히 과거 신호만 남은 것인지 확인해야 했다. 그 일이 내일의 업무가 될 수 있었다. 오늘은 연진이 자기 첫날을 마쳤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모두 돌아간 뒤 경비실 전등을 끄려던 민규는 오래된 프린터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다. 연진의 귀환 완료 서식이 인쇄되더니 그 뒤에 짧은 편지가 한 장 더 나왔다. 이 편지는 기계가 자동으로 찍어 낸 경고문과 달랐다. 아주 오래전 어린아이가 쓴 글씨로 적혀 있었다.
[형. 이번에는 나도 출근하지 않아도 되나요?]
민규는 종이를 한참 바라봤다. 그 글씨는 삼십 년 전 자신의 노트와 닮아 있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편지의 서명란이었다. 자신도 하준도 아니었다.
[제0대 경비원. 정민규.]
민규는 벽의 출입 기록을 확인했다. 현재 근무자는 한 명뿐이었다. 기록의 가장 아래에는 새로운 방문 예정 시간이 표시돼 있었다. 내일 새벽 두 시 십칠 분. 이름은 정민규. 하지만 방문 목적은 출근이 아니라 ‘퇴근 허가 신청’이었다.
그는 프린터의 전원을 뽑지 않았다. 먼저 원본을 보존하고 방문 동선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한 사람의 첫날이 끝났다면, 다음에는 누군가의 긴 밤도 끝낼 수 있을지 모른다. 작은 전등이 두 박자 늦게 꺼졌다. 경비실의 문은 여전히 열 수 있었다.
제17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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