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진이라는 이름은 총국의 공식 사고 기록에 없었다. 케스는 처음에 동명이인일 가능성을 확인했다. 학교, 철도, 수문 관리소, 구급대에 모두 문의했지만 같은 이름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삼십 년 전 화물역 노동자들의 단체 사진 뒷면에서 작은 필체가 발견됐다. ‘야간 전달원 연진, 우산 찾아갈 것.’ 사진을 찍은 날은 제7시설 최초 사고 닷새 전이었다.
“전달원이라면 구조팀 사람이 아니군요.” 하준이 말했다.
“지금 자료로는 그렇게 단정할 수 없습니다.” 케스가 대답했다. “명단에 없다는 것만으로 현장에 없었다고 할 수는 없어요.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민규는 역무실 벽에 남은 종소리가 멈추는 것을 기다렸다. 안쪽에서는 연진이 정해진 질문에 대답하고 있었다. 이름, 현재 위치, 호흡 상태, 가장 가까운 출구. 민규는 당장 문을 열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다. 물이 흐르는 터널에서 문을 여는 순간 압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문 가까이에 붙지 마세요. 유리창이 있다면 떨어져 있어 주십시오.”
“여긴 역무실이에요. 창밖으로 플랫폼이 보여요. 그런데 열차는 한 대도 오지 않아요.”
“시계가 있습니까?”
“오후 여섯 시 칠 분입니다.”
그들이 도착한 새벽과 열두 시간 넘게 어긋난 시간이었다. 셀레나는 두 공간이 같은 장소에 겹쳐 있으면서 서로 다른 하루를 반복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연진의 한 시간은 사라진 게 아니라 사고 당일의 여섯 시 오 분과 일곱 시 사이에 감겨 있었다. 외부에서는 삼십 년이 지났지만 안에서는 그 시간표가 계속 시작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럼 한 시간이란 말이 문자 그대로군요.” 루카가 통신으로 물었다.
“그래. 하지만 한 시간을 돌린다고 해서 삼십 년이 사라진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야.” 민규가 대답했다.
총국 보관실에서 다른 문서가 도착했다. [최초 귀환 시범 운영.] 문서의 첫 줄은 구조 요청에 응답하지 못할 때 현장 사람을 외부로 내보내 도움을 청하는 설계였다. 마지막 줄에는 괄호 안에 조그맣게 ‘회신 실패 시 송신자의 시간으로 상태 유지’라고 적혀 있었다. 연진이 떠안은 일이 바로 그것일 수 있었다. 외부 연락망이 무너지면 내부 송신자는 계속 구조 호출을 반복한다.
민규는 서류를 바닥에 펼쳐 놓고 질문했다. “누가 통신 설계를 고쳤습니까?”
바르트는 바랜 부분을 확대했다. 초기 설계에는 회신 실패 시 수동 개방이 가능하다고 쓰여 있었다. 이후 수정된 버전에는 귀환자의 재배정과 근무 책임 이전 조항이 추가됐다. 도면의 잉크는 달랐고 용지도 새 것이었다. 안전을 위한 구조 장치가 누군가의 동의를 징수하는 장치로 바뀌는 과정이 작은 수정 세 줄에 남아 있었다.
“장치가 만든 문장만 믿고 다른 사람을 안쪽에 넣으면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겁니다.” 셀레나가 말했다.
민규는 하준을 돌아봤다. “그런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도 한때는 한 사람을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남아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손목의 숫자 17이 가끔 아리는 것 같았지만 그는 그 느낌을 교대 명령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연진이 보내온 말들을 한 글자씩 받아 적었다.
케스가 찾아낸 초기 통신 설계도에는 직업과 신분을 묻지 않는 단순한 접수란이 있었다. ‘신호를 보내는 사람’과 ‘도움을 받을 사람’이 각각 별도로 표시돼 있었다. 세월이 흐른 뒤 개정된 문서에는 그 두 칸이 하나로 합쳐져 ‘구조 책임자’가 되었다. 새 서식을 처음 보는 루카는 왜 그런 변경이 이루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서류를 줄인 걸까요?” 그가 물었다.
“어쩌면 처리 속도를 높이려고 그랬을 거야. 그런데 서로 다른 역할을 하나로 묶으면 누가 실제 책임을 지는지 사라질 수 있어.” 민규는 두 칸을 빨간 펜으로 구분했다. “여기서 연락한 사람이 왜 구조가 끝날 때까지 남아야 하겠니?”
루카는 답하지 못했다. 그 대신 별도 줄을 그었다. 한쪽에는 ‘신고자’, 다른 한쪽에는 ‘현장 안전 담당’. 셀레나는 그 옆에 ‘구조 요청을 들은 사람’이라는 세 번째 칸을 추가했다. 상황이 나빠질 때는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할 사람이 필요하고, 같은 사람이 여러 역할을 맡게 되더라도 언제 인계해야 하는지 명확해야 했다.
보관실의 손상된 설계 일지를 복원하자 개정 사유도 드러났다. [실무 편의상 임시 통합. 정식 검증 후 분리 예정.] 분리 예정이라는 말에는 완료 날짜도 담당자도 없었다. 누구도 최종적으로 책임지고 분리하지 않은 채 삼십 년이 지나버린 것이다. 케스는 일지를 읽고 잠시 안경을 벗었다. 거대한 음모의 흔적을 찾고 싶던 마음 한편에서, 아무도 끝내지 않은 임시 조치가 사람을 가두었다는 사실이 더 두려웠다.
“그럼 처음부터 사람을 가두려던 건 아닌 걸까요?” 하준이 물었다.
“기술적 실패와 의도적 악용은 구분해서 조사해야죠.” 케스가 대답했다. “하지만 결과가 위험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임시 조치라고 했던 사람이 책임을 다했는지도 확인해야 하고요.”
민규는 수문 직원에게 설계도에서 가장 낡은 부분을 가리켜 달라고 했다. 직원은 서류를 읽는 대신 현장의 손잡이를 보여 줬다. 한쪽 레버는 물이 불었을 때 방류를 열고, 다른 한쪽 레버는 사람이 있으면 경보를 울렸다. 두 레버는 모양이 비슷하지만 안쪽 연결봉은 전혀 달랐다. 누군가 편의상 레버 하나로 합쳤다면 조작 한 번으로 물을 방류하고 경보를 멈추는 위험한 장치가 될 수 있었다.
“서류도 그와 똑같습니다.” 민규가 말했다. “정리한 문장이 현장을 바꿔 버릴 때가 있어요.”
하준은 일지의 빈 첫 장을 조심스럽게 덮었다. 이제는 그 장에 어떤 이름을 채울지보다, 왜 이름이 비어 있어야 했는지부터 알고 싶었다. 기록을 되돌리는 일과 사람이 살아 있는 사실을 되돌리는 일은 다르다는 것도 조금씩 이해했다.
도연진은 화물역의 야간 전달원이었다. 그녀는 막차가 지나고 사무실에 남은 서류를 인근 학교와 의료소로 옮기는 일을 맡았다. 사고 당일 역무실에는 학생 두 명과 철도 직원 한 명이 대피해 있었고, 바깥 수문은 폭우 때문에 닫히고 있었다. 연진은 긴급 연락망을 사용해 구조 요청을 보냈다. 처음 세 번은 회신이 없었다. 네 번째에는 ‘귀환 시범 운영’이라는 안내가 뜨면서 현장에 살아 있는 누군가 한 명을 송신자로 정하라고 했다.
“제가 그냥 연락했다고요.” 연진이 말했다. “누구를 대신 남겨 두겠다고 서명한 적은 없어요. 그런데 전송 버튼을 누른 뒤부터 창고 문이 잠기기 시작했어요. 학생들을 먼저 내보내려고 열쇠를 찾았고, 그때 종이 울렸죠.”
“학생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모르겠어요. 밖으로 빠져나가는 걸 봤는데, 다시 여섯 시 오 분이 되면 그 아이들의 신발이 문 앞에 놓여 있어요. 살아서 나간 게 기억일 뿐인지, 이 시간이 또 다른 아이들을 만들어 내는 건지…”
목소리가 떨렸다. 민규는 바로 ‘모두 무사합니다’라고 말하지 못했다. 삼십 년 동안 학생들이 어떻게 됐는지 실제 기록을 확인하지 않았다. 케스가 지역 의료 기록과 주민 증언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때 벽 안에서 누군가 크게 의자를 끄는 소리가 났다. 연진이 짧게 말했다. “지금은 말하면 안 될 것 같아요. 밖에서 사람들이 들어와요.”
“누가 들어옵니까?”
“검은 우산을 든 기록관 사람들이요. 여섯 시 십이 분이 되면 매번 옵니다. 내가 보내지 않은 서류를 회수해 가요.”
민규는 현재 시간을 봤다. 벽의 기록에는 여섯 시 십일 분이 떠 있었다. 그는 위험한 추측을 사실처럼 전하지 않으려고 외부 현장에 사람이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케스의 출입 감시 장치에는 아무 움직임도 잡히지 않았다. 과거의 잔상인지, 자동으로 수행되는 기록 회수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연진 씨, 문을 잠글 수 있습니까?”
“안쪽 잠금쇠가 부러졌어요. 하지만 문 앞에 철제 서류함이 있어요.”
“부상 위험이 없다면 움직일 수 있는 만큼만 막아 주세요. 우리는 여기서 상황을 듣고 있습니다.”
금속이 마찰하는 소리가 났다. 이어서 여러 장의 서류가 바닥에 떨어졌다. 연진은 호흡을 가다듬고 말했다. “사람들이 들어왔어요. 얼굴을 볼 수 없어요. 얼굴 대신 시계가 걸려 있어요.”
셀레나는 놀란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현장 기억을 지키는 장치 중에는 감시자를 사람 형태로 보여 주는 마법이 있었다. 그런데 연진의 묘사는 당시 기록보존총국에서 사용하던 무인 점검 인형과 일치했다. 평범한 점검 인형에 부여된 회수 명령이 삼십 년간 끊기지 않은 것인지도 몰랐다.
바르트가 오래된 케이블 경로를 조사했다. 점검 인형을 움직이던 동력선은 철길 아래 통로를 타고 수문 조정실까지 이어졌다. 최근에도 전력이 공급된 흔적이 있었다. 누군가 한 달에 한 번 수문 설비를 점검하면서 모르는 사이 그 회선까지 살려 놓았을 수 있었다. 자동 기능이 끊임없이 작동하는 데에는 초월적인 힘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 매달 교체한 작은 퓨즈 하나면 충분했다.
민규는 수문 관리소 직원에게 질문했다. “최근 점검 목록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보조 회로가 있습니까?”
직원은 머뭇거리다가 상부에서 내려온 필수 점검표를 보여 줬다. ‘구 역사 보존기능’이라고 적힌 항목 옆에는 담당자 서명이 아니라 인장이 찍혀 있었다. 점검 방식은 전원 꺼짐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정상 작동으로 표시하는 것이었다. 이상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정상으로 유지하라는 뜻이었다.
“이 항목을 당장 끄지는 않겠습니다.” 민규가 말했다. “연진 씨가 있는 통로의 환기나 조명까지 연결돼 있을 수 있으니까요. 회로를 분리하기 전에 전원을 확보해야 합니다.”
수문 직원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무작정 오래된 마법을 끊으러 온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 이해한 모양이었다. 직원은 자신이 어릴 때 역이 철거됐다고 배웠으며 왜 이런 장치를 점검하는지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잘못된 규칙은 그것을 따르는 사람에게도 설명되지 않았다.
연진은 다시 말을 걸어왔다. 점검 인형이 서류함을 뒤지다가 멈췄다는 것이다. 민규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그 사람들이 찾는 문서 제목이 보입니까?”
“회신 확인서라고 적혀 있어요. 날짜는 사고 난 날이 아니에요. 내일 날짜예요. 그리고 맨 밑에 누군가의 서명란이 있는데…”
“누구 이름입니까?”
연진은 잠깐 망설였다. “정민규라고 적혀 있어요. 어른 글씨가 아니라 아이가 처음 이름을 연습하던 때의 글씨예요.”
하준이 숨을 들이켰다. 정은희에게 들은 이야기와 어긋났다. 민규가 어릴 적에 누군가에게 구조 요청을 했다는 기록은 있었지만, 그가 성인이 되어 오늘의 귀환까지 승인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잘못 쓰인 오래된 서명이 수십 년 뒤의 안전 규칙을 결정할 수는 없었다.
“사진을 보내실 수 있습니까?” 민규가 물었다.
“여기 통신기는 안 돼요. 하지만 서류 배출구가 있어요. 편지를 넣으면 어디로 가는지 몰라서 한 번도 써 보지 않았어요.”
민규는 벽 아래 배수로를 살폈다. 오래된 서류 배출구가 수문 쪽 배관과 연결됐다는 표시가 있었다. 바르트는 외부에서 임의로 물건을 넣지 않고 먼저 막힘 여부를 점검했다. 작은 검사구를 열자 젖은 종이 한 장이 떨어졌다. 삼십 년 전에 쓰인 듯한 종이였다. 잉크가 번졌지만 마지막 줄은 읽을 수 있었다.
[이 아이에게 내 시간을 청구하지 마시오.]
서명은 도연진이었다. 구조를 요청한 사람은 이미 자신이 어떤 위험에 빠질지 알아차렸고,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그 위험을 옮기지 못하게 막으려 했던 것이다. 민규는 종이를 방수 봉투에 넣었다. 아직 남아 있는 한 사람의 목소리만큼, 그 사람이 남긴 이의 신청도 중요했다.
역무실 시계가 여섯 시 십삼 분으로 넘어갔다. 바깥에서 들리던 금속 발소리가 멎었다. 대신 점검 인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래전에 녹음된 정중한 여성의 안내음이었다.
“현재 귀환 요청은 유효하지 않습니다. 반납할 시간이 없으면, 첫 번째 시간을 다시 시작하십시오.”
연진이 서류함을 붙잡았다. “그러면 또 처음으로 돌아가요.”
민규는 벽 너머를 향해 분명히 말했다. “안 됩니다. 이번에는 우리가 그 명령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확인하겠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벽의 퇴근 안내판에 처음 보는 문구가 나타났다. [회신 대기 중. 외부 증인: 1명.] 민규는 비로소 장치가 숨긴 절차의 빈자리를 보았다. 누군가를 남겨 두는 방법 외에, 실제 구조가 이루어졌음을 증언하는 방법이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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