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대 귀환 예정 시각까지 여섯 시간이 남았다. 중앙 보조 사무소에서 온 목소리는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고, 케스가 확인한 전화선은 이미 폐쇄된 건물로 이어졌다. 그곳에 실제 사람이 있는지, 녹음 장치가 살아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민규는 발신자를 찾는 일보다 교환실 안의 두 사람을 먼저 구하기로 했다. 시간의 틈은 다시 좁아지고 있었고 다온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환기창 바깥에서 바람이 들어오나요?” 민규가 물었다.
윤서하는 딸의 손을 잡고 대답했다. “아주 조금요. 구름이 움직일 때마다 차가운 바람이 나요.”
“좋습니다. 바람이 들어오는 방향을 바꾸지 마시고 계세요. 바깥에서 압력을 맞춘 다음 덮개를 열겠습니다.”
셀레나는 통로 곳곳에 바깥 시각을 표시하는 작은 수정 시계를 달았다. 민규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대신 어떤 장치가 어디에서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지 측정할 수는 있었다. 그들은 동작을 여러 번 연습했다. 바르트가 원격으로 배수로의 잠금쇠를 열고, 셀레나가 압력을 고정하고, 루카가 두 번째 시계의 오차를 확인하는 순서였다. 하준은 외부 계단에서 실제 피난 경로가 열려 있는지 점검하기로 했다.
하준이 점검표를 받아 들었을 때 민규는 한 가지를 더 확인했다. “오늘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생기면 즉시 말하십시오. 하준 씨의 역할은 언제든 바꿀 수 있습니다.”
“내가 도울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는 묵직한 점검표를 품에 넣었다. 두 사람이 같은 얼굴을 하고 나란히 계단을 내려가자 마주친 학생 몇 명이 수군거렸다. 루카가 뭐라고 설명하려 하자 하준이 먼저 웃었다. “당분간 야간 경비실에 사람이 둘이라고 생각하세요. 한쪽은 방문객이고요.” 학생들은 더 묻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 많은 학교였지만, 경비원이 일할 때 방해하지 않는 예절 정도는 알고 있었다.
비상구 앞에는 의료진뿐 아니라 두 명의 독립 감시자도 도착했다. 그들은 교환실에서 나온 사람이 몇 명인지 직접 확인하고, 센서의 기록이 서로 다른 시간에 작성됐을 경우 어떤 순서로 대조할지 설명했다. 의료진은 마법에 노출된 사람을 치료한 경험이 많지 않았지만 기초적인 생명 징후를 확인하고 체온을 유지하는 방법은 알고 있었다. 민규는 그들에게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척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현장 지휘가 엉키지 않도록 오르반은 작은 상황판을 만들었다. 왼쪽에는 외부 시설 상태가, 오른쪽에는 통신으로 확인된 내부 상태가 적혔다. 중간에는 [확인 불가]라는 칸을 따로 두었다. 예전에는 어떤 일이든 완료라고 표시해야 보고를 끝낼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모르는 것이 있으면 그대로 적었다. 그 빈칸이 누군가를 붙잡아 두는 자리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루카는 긴장을 풀기 위해 자꾸 연필을 굴렸다. 미라가 곁으로 와 연필이 바닥에 떨어지는 걸 막아 줬다. “꼭 네가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야.”
“알아요. 근데 또 누나처럼 누군가 남으면...”
“그래서 모두 여기 있잖아.”
미라는 루카에게 손전등을 건넸다. 점검하다가 배터리가 떨어질 때를 대비한 여분이었다. 루카는 손전등의 버튼을 눌렀다 껐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이 누나를 되찾는 데 쓰지 못했던 시간을 탓하기보다 지금 쓸 수 있는 작은 빛을 확인했다.
셀레나는 안쪽 카메라로 윤서하에게 절차를 다시 설명했다. 무엇부터 열고 어떤 소리가 날 것이며, 위험하면 언제든 중단할 수 있는지 짧은 문장으로 나눠 말했다. 윤서하는 그동안 여러 번 들었던 ‘금방 나갑니다’라는 말을 믿기 어려웠다. 대신 천천히 확인하는 절차가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다온에게 같은 내용을 자기 말로 풀어 주었다.
“저쪽에서 큰 소리가 나도 바로 뛰지 말자. 엄마가 손잡고 나오자고 하면 같이 움직여.”
다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종이비행기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바깥에 나간 뒤 처음으로 날릴 생각이었다. 파란 하늘이 아닌 진짜 하늘을 향해서.
첫 번째 시험은 성공했다. 수리용 배수로가 열렸고 바깥의 신선한 공기가 파란 방으로 들어갔다. 다온은 환기창에 손을 대더니 엄마를 올려다봤다. “진짜 바람이에요.” 윤서하는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삼십 년 동안 창문 없는 하늘 아래서 맡지 못했던 공기였다. 그러나 민규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공기 압력이 안정되고 사람이 통과할 공간이 확보돼야 했다.
두 번째 시험에서 문제가 생겼다. 자동 경비복이 배수로 입구로 내려왔다. 빈 소매가 금속판을 잡아당기자 마법진의 온도가 급격히 올라갔다. 바르트가 비상 차단을 시도했지만 경비복은 제어기에서 직접 힘을 받고 있었다. 루카가 주문으로 옷을 태우겠다고 했을 때 셀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천을 태운다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명령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공격하지 말고 명령 경로를 끊어야 해요.” 셀레나가 말했다.
민규는 교환실의 오래된 통신 배선을 살폈다. 빈 경비복을 움직이는 명령은 제어기에서 바로 나오는 게 아니라 기록보존총국의 폐쇄 사무소를 경유하고 있었다. 중앙의 누군가가 현장을 직접 보지 않고도 모든 문을 잠글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는 케스에게 명령의 발신 시각과 승인 절차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외부 권한으로 수동 수리 기능을 차단할 근거가 없습니다.” 케스가 말했다. “본부 기록에 따르면 이 회선은 이미 삼십 년 전에 폐기됐습니다.”
“그런데 지금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폐기됐다는 기록만 믿으면 안 되겠죠.”
케스는 독립 통신관의 입회 아래 해당 회선에 대한 긴급 차단 절차를 시작했다. 법적 승인을 받는 것과 사람을 구조하는 일의 속도가 다르다는 문제는 여전히 남았다. 민규는 그동안 교환실 내부의 수동 차단 회로를 유지할 방법을 찾았다. 원래 설계된 물리 차단 장치라면 외부 명령과 관계없이 작동할 수 있었다. 바르트는 절연 막대를 이용해 오래된 전환기를 누를 수 있다고 했다.
하준은 문가에서 윤서하의 목소리를 들었다. “밖에서 이야기하는 사람, 혹시 그때 그 경비원인가요?”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기억 속에서는 윤서하가 항상 멀리 서 있었고 자기는 작은 아이를 안고 계단을 올라왔다. 그런데 실제 윤서하는 교환실 안에 있었다. 자신이 누구를 데리고 나왔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제가 그때 문을 닫았던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하준이 말했다.
“문을 닫은 사람은 많았어요.” 윤서하의 대답은 조용했다. “열어 주겠다고 말한 사람도 많았고요. 나는 당신이 왜 거기 있는지 아직 몰라요. 하지만 지금 여기서 아이를 구하려 한다면 고맙습니다.”
하준은 손목에 새겨진 숫자를 가렸다가 다시 드러냈다. 그는 더는 자신을 설명할 말을 장치에서 찾지 않기로 했다. “저는 하준입니다. 이번에는 문이 열리는 것뿐 아니라 안에 있던 사람이 밖으로 나오는 것까지 보겠습니다.”
그들의 대화가 끝나자 빈 경비복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기계가 사람을 대신해 결정하는 목소리보다 실제 사람 사이의 확인이 더 오래 걸렸지만, 그 사이 스위치에는 접근할 작은 틈이 생겼다. 바르트가 탐사 장치를 움직였다. 절연 막대가 스위치 뒤쪽에 닿았다. 셀레나는 시간 회로의 온도를 확인하고 루카에게 비상 조명 상태를 살피게 했다.
“이제 눌러도 됩니까?” 바르트가 물었다.
“두 분의 내부 상태를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민규가 대답했다.
다온은 카메라 앞에서 숫자 세 개를 들었다. 엄마도 옆에서 손을 흔들었다. 민규는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곳에 있어도 각각 안전을 확인할 수 있는지 물었다. 윤서하는 딸을 떼어 놓는 시험을 원하지 않았다. 민규는 그 뜻을 존중했다. 두 사람을 일부러 분리하지 않아도 카메라 두 대와 압력 센서로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눌러 주세요.”
스위치가 내려가는 데에는 한 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교환실의 모든 시계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돌기 시작했고 바닥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민규는 즉시 전원을 완전히 내리지 않았다. 안전 회선이 유지되는지부터 확인했다. 바르트의 화면에서는 자동 인계 기능만 정지했다는 표시가 떴다. 다음으로 강제 관리자 배정이 중지됐다. 마지막으로 비상구의 수동 개폐 신호가 살아났다.
“됐습니다!” 루카가 외쳤다.
민규는 아직 웃지 않았다. 셀레나가 갑자기 손을 들어 경고했기 때문이다. 안쪽의 시계가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두 공간 사이의 시간 차이가 폭발적으로 줄어들고 있었다. 삼십 년의 차이를 한꺼번에 맞추면 안쪽에 있던 사람들이 급격히 늙거나 기억을 잃을 수도 있었다. 바르트는 원래 시간 회로가 그런 충격을 막도록 설계됐지만 현재는 대부분 망가졌다고 했다.
“시간 동기화를 늦춰야 해요.” 셀레나가 말했다. “문을 열어 놓고 회로를 천천히 안정시켜야 합니다.”
그들은 비상구를 조금만 열었다. 그림으로 가려진 환기창의 덮개가 바깥쪽에서 들리자 파란 방 안으로 진짜 햇빛이 들어왔다. 윤서하는 딸을 안고 창가로 다가갔다. 다온은 손가락 하나를 내밀어 빛을 만졌다. 빛이 손가락 위에서 흔들렸고,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곳에는 기계가 부르는 이름이 아니라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바람과 빛이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폐쇄된 보조 사무소에서 다시 신호가 들어왔다. [승인되지 않은 귀환 감지. 제18대 임시 귀환자 생성.] 감시판의 빈자리에 또 하나의 경비복이 나타났다. 빈 옷깃 위로 민규와 같은 얼굴이 서서히 떠올랐다. 이번에는 흉터도 있고 손목의 숫자도 있었다.
하준은 그 얼굴을 보고 한 걸음 물러났다. 민규는 카메라를 고정했다. 그 얼굴이 어떤 사람의 권리를 주장하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안쪽에 있는 모녀의 구조가 이 새로운 얼굴의 탄생을 허가하는 과정이 되어서는 안 됐다.
“동기화 속도는 유지하고, 외부 생성 명령만 차단하십시오.” 민규가 말했다.
케스는 보조 사무소의 신호가 아직 중지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케스는 외부 회선의 접속을 막기 위해 마법보존총국과 독립 통신관의 승인 번호를 다시 확인했다. 연결을 급히 끊으면 녹음이 사라질 가능성도 있었다. 그는 먼저 들어온 명령을 모두 복사하고 각 명령이 어느 장치에 전달됐는지 기록했다. 그렇게 해야 나중에 누가 교환실을 조작했는지 밝힐 수 있었다. 그러나 새 신호가 사람이 있는 출입구를 흔들기 시작하자 조사보다 차단이 먼저였다. 케스는 관련 당국에 긴급 위험을 통지하고 현장에 허용된 차단기를 내렸다.
오르반은 교환실 앞의 통행을 완전히 막으려 했지만, 의료진의 접근까지 막아선 안 됐다. 그는 구조팀 출입용 통로를 따로 표시했다. 재난 때는 소문보다 길이 더 빨리 막힌다는 걸 오르반도 알았다. 학생들은 교사 안내에 따라 다른 계단으로 이동했고, 시설 노동자들은 떨어진 유리 파편을 치웠다. 바닥에 난 균열은 길었지만 아직 주 구조기둥까지 닿지 않았다. 바르트는 절연 판을 덧대 잠시 버틸 수 있다고 했다. 민규는 통로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약속하지 않았다. 안전해질 때까지 돌아가지 말라고만 했다.
루카는 균열의 끝을 따라가다가 한쪽 벽에서 바람이 나오는 걸 느꼈다. 예전에 이곳에 지하 수로가 있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학교의 구 도면을 펼쳐 비상 경로가 남쪽 정원으로 연결되는 걸 찾아냈다. 민규에게 사실을 알리자 민규는 루카가 직접 들어가 확인하지 말라고 했다. 대신 외부에서 탐사 장치를 보내 통로가 막혔는지 점검했다. 학생이 찾아낸 단서는 중요했지만 단서를 찾은 학생이 위험한 현장에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니었다.
환기창의 테두리에서는 얇은 금속이 울렸다. 윤서하는 그 소리를 듣자 딸의 귀를 잠시 감싸 주었다. 다온은 엄마의 손을 밀어 내지 않았다. 둘은 삼십 년간 무너지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한 공간을 더 잃었고, 그때마다 서로가 있는 방향을 확인했다. 이번에는 그 소리가 출구가 열리는 소리이기를 바랐다. 민규는 바깥에 설치한 작은 표시등이 계속 녹색인지 확인했다. 표시등 자체가 정답은 아니지만, 실제 압력이 안정돼 있다는 측정값과 함께라면 중요한 단서였다.
그 순간 새로 나타난 얼굴이 입을 열었다.
“정민규 경비원. 당신들이 저 사람들을 내보내면 당신들 중 한 명은 사라집니다.”
민규는 그 얼굴을 바라봤다. 수없이 반복된 협박이었다. 그는 말하지 않고 구출을 이어 갔다. 윤서하가 작은 문턱에 첫발을 올려놓았다. 바로 뒤에서 다온이 엄마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그 순간 경비복이 아닌 학교의 실제 바닥이 흔들렸다. 교환실과 본관 사이의 긴 복도에서 균열이 퍼졌다. 기계가 마지막으로 물리적인 출구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었다. 민규는 손전등을 들고 하준을 돌아봤다.
“안쪽은 제가 맡겠습니다. 하준 씨는 밖에서 실제 통로가 무너지지 않게 확인해 주십시오.”
하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같은 얼굴로 서로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번에는 어느 한 사람도 다른 사람의 대체품이 아니었다.
제159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