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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법학교 야간 경비원의 정체 · 156화
PAYLUA ORIGINAL · 제156화

156화. 남아 있어야 한다는 규칙

마법학교 야간 경비원의 정체 · 6,151자

오프라인 책장
민규가 실습실 바닥에 그린 첫 번째 그림은 문 두 개와 사람 한 명이었다. 두 번째 그림은 문 하나와 사람 둘이었다. 마지막은 문 세 개와 사람 셋이었다. 루카는 그 옆에 앉아 그림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아저씨, 이건 마법진이 아니라 대피 안내문 같아요.” “대피 안내문으로도 설명할 수 있어야 좋은 장치지.” “그럼 왜 저쪽 기계는 사람 수를 세지 않고 자꾸 근무자를 세요?” 민규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동안 그들은 이름을 지우는 출석부와 시간을 빌려 쓰는 기록관을 여러 번 고쳤다. 그러나 교환실의 장치는 가장 오래된 원리 하나를 붙잡고 있었다. 위험한 장소에 누군가 남으면, 밖에 나간 사람을 무사히 구조했다고 선언할 수 있다는 원리였다. 그 뒤에 숨어 있는 것은 마법보다 사람의 편의였다. 바르트가 보내온 설계도에는 입체적인 마법 회로가 그려져 있었다. 세 장의 유리판이 겹치면 회로는 안전 신호로 작동했다. 그런데 가운데 판을 거꾸로 끼우자 경비 인원을 새로 배정하는 신호로 변했다. 민규는 그 사실을 보고 오래전 교환실을 개조한 사람이 꼭 악의를 품고 있었던 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회로를 간단히 연결해 일을 줄이려다 사고가 났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오류를 알면서도 사람을 남겨 놓았다면 책임은 달라졌다. 오르반은 설비 개조 당시의 회의록을 찾아냈다. 회의에는 학교 운영진과 기록보존총국 감독관이 참석했다. 예산을 절약하기 위해 야간 관리자 수를 줄이자는 의견이 있었다. 반대하는 기술자는 통신실의 사고 시각이 다른 구역과 어긋날 가능성을 설명했지만, 회의록에는 [전문적인 우려로 향후 검토]라는 말만 남았다. 향후 검토는 삼십 년 동안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문장을 내가 승인했네.” 오르반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낮았다. “사람을 붙잡으라는 문구를 본 기억은 없지만 관리자 감축 의견에는 동의했지.” 민규는 회의록을 덮지 않았다. “당시 어떤 선택을 했는지 모두 남겨야 합니다. 지금부터 무엇을 할지도요.” 오르반은 학생들이 만든 공지문을 들고 창밖으로 갔다. 교장실에서 책임을 인정한다고 말하는 건 쉬웠다. 하지만 자기 서명이 만들어 낸 결과를 마주하는 일은 어려웠다. 그는 회의록 전체를 독립 조사팀에 제출하겠다고 했다. 민규는 그 결정이 구조를 대신하지는 못해도 다음 사고를 줄이는 데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날 오전 교환실 바깥의 시계가 십여 초 멈췄다. 복도를 걷던 학생들은 아무 일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셀레나의 감지기는 문 안쪽에서 시간이 한 시간 흐른 흔적을 잡아냈다. 밖의 십여 초가 안쪽의 한 시간과 이어지는 것이다. 안쪽 사람이 목이 마르거나 피로해지는 속도는 외부와 다를 수 있었다. 민규는 구조에 허용된 시간이 생각보다 짧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을 충분히 보내야겠어요.” 셀레나가 말했다. “보내는 과정에서 누군가 신청자가 되지 않는지 확인합시다.” 그들은 물통을 이용한 원격 공급 장치를 만들었다. 예전에는 문을 열고 사람이 직접 들어가야 물을 줄 수 있었다. 이제 작은 통로로 물과 간단한 음식을 전달하고, 안쪽의 공기를 외부와 순환시키는 장치를 따로 연결했다. 하준은 도구들을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삼십 년 전에는 마법사가 많았지만 이런 작은 관 하나를 만들 생각은 누구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땐 전부 문을 열 사람을 찾았죠.” 하준이 말했다. “문이 열려도 돌아올 길이 없는데.” 셀레나는 비상 공급 통로의 마력을 조사하다 낯선 반응을 발견했다. 누군가 안쪽에서 손을 뻗어 물통을 받았다. 아이 손보다 컸다. 두 번째 생존자가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었다. 민규는 얼굴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먼저 따뜻한 물이 필요한지 물었다. 잠시 뒤 종이 한 장이 통로를 통해 돌아왔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물은 충분합니다. 아이가 춥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누가 쓴 겁니까?” 셀레나가 물었다. “안쪽의 어른이겠죠. 이름은 아직 몰라도 됩니다.” 민규는 담요와 간단한 의료품을 보냈다. 답장은 이번에는 조금 길었다. [나오는 문은 매번 다른 곳으로 열립니다. 서쪽 문으로 부르지 마십시오. 아이는 그곳에 엄마가 있다고 믿고 계속 뛰어갑니다.] 그는 그 문장이 비난이 아니라 도움을 구하는 설명이라는 걸 이해했다. 아이를 안심시키려면 문 위치를 확인하기 전까지 섣불리 출구를 약속할 수 없었다. 그때 실제 교환실 안쪽 지도에 세 번째 방이 나타났다. 방 이름은 ‘교대실’. 거기에는 의자가 하나 있었고 책상에 옛 방식의 타자기가 놓여 있었다. 의자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장치의 기록에는 [마지막 근무자 착석 중]이라고 표시됐다. 사진으로 확인할 수 없는 사람을 기록이 붙잡아 둔 셈이었다. 하준은 화면 속 타자기를 보고 움직이지 않았다. “저기 앉았던 사람을 압니다.” “누굽니까?” “나는 그 사람이 얼굴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근무표가 비어 있으니까. 하지만 실제로는...” 하준은 말을 멈췄다. 오래된 기억이 한꺼번에 떠오르는 듯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의자 등받이를 잡고 숨을 고르며, 자신이 누구에게서 받은 열쇠를 기억할 수 없다고 했다. 민규는 기억을 억지로 꺼내게 하지 않았다. 멈춘 부분은 추측이라고 구분해 적고, 나중에 다시 확인할 시간을 주었다. 점심 무렵 민규는 오래된 설계자 문해린의 공사 기록을 다시 읽었다. 해린은 설계도 구석마다 빨간 연필로 작은 메모를 남긴 사람이었다. [누군가 다쳤으면 고장 원인보다 먼저 의료실에 연락할 것.] [구조자가 돌아오는 길을 확보하기 전에는 들어가지 말 것.] [피난문은 평소에도 열어 볼 것.] 모두 대단한 주문과 상관없는 문장이었다. 그러나 삼십 년 뒤에도 지켜야 할 규칙들이었다. 해린의 설계도 옆에는 낡은 점검 스탬프가 붙어 있었다. 첫해에는 모든 시설이 확인을 받았다. 다음 해부터는 보고서의 줄 수가 줄었다. 예산을 줄이겠다는 결정 이후에는 점검 항목 자체가 삭제됐다. 보고서에는 실패가 없었다. 실패를 적을 칸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민규는 그 사실을 오르반에게 알렸다. “사람이 게을러진 것만은 아니군요.” 민규가 말했다. “고장이라고 적을 수 있는 자리부터 없애 버렸습니다.” “당시에는 모든 서류를 간단히 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믿었네.” 오르반이 대답했다. “기숙사에 새 창문을 달 예산이 필요했고 경비 인원을 늘릴 여유도 없었지. 그 생각이 아이와 보호자를 가두는 곳까지 갈 줄은 몰랐네.” 오르반은 회의록의 원본을 밖에 공개하겠다고 했다. 민규는 단순한 사과문보다 현재 어떤 점검을 다시 도입할지 일정표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둘은 교환실뿐 아니라 학교 전체의 오래된 피난 시설을 대상으로 수동 개폐 시험을 정기적으로 시행하기로 했다. 학생 대표와 시설 노동자가 점검 결과를 함께 볼 수 있게 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그때 문밖에서 빨간 헝겊을 들고 온 학생 하나가 나타났다. 안전 표지판을 만드는 동아리 학생이었다. 그는 어제 부서진 계단 앞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걸 봤다고 했다. “위험하면 여기서 멈춰야 한다는 걸 다 알게 하고 싶었어요.” 민규는 학생이 만든 표지판을 받아 읽었다. 글씨는 삐뚤었지만 멀리서도 보였다. [앞은 막힌 길입니다. 돌아갈 길은 여기 있습니다.] 방향 화살표가 실제 비상구 쪽으로 그려져 있었다. 민규는 학생에게 고맙다고 말한 뒤 화살표가 현재 통로와 일치하는지 함께 확인했다. 안내판 하나도 정확하지 않으면 누군가 위험해질 수 있었다. 학생은 몇 번이나 벽을 오르내리며 위치를 바꿨다. 결국 화살표는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걸렸다. 세상을 바꾸는 마법은 아니었지만 다음에 길을 찾을 사람에게는 중요한 표시가 될 것이다. 바르트가 만든 모형은 오후가 되자 제대로 움직였다. 두 개의 귀환 회선을 안전 장치와 분리하면 문을 열지 않은 채 내부 압력을 조절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 시설의 중심 제어기에는 접근할 수 없었다. 교대실에 남은 사람만 내릴 수 있는 수동 스위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소형 기계팔을 넣으려 해도 ‘근무 자격 없음’이라는 경보가 울렸다. “기계팔에 정민규의 출입증을 달면 되는 것 아닌가요?” 루카가 물었다. “안 됩니다. 장치가 출입증을 사람으로 세는 순간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그럼 닿을 수가 없네요.” 민규는 그림을 다시 보았다. 수동 스위치를 누르는 행위 자체가 권한이 필요한 건지, 스위치에 접근하는 통로가 잠겨 있는 건지 따로 봐야 했다. 바르트는 스위치를 움직이는 힘은 아주 작고 평범한 기계 구조라고 했다. 마법 회로가 제한하는 것은 접근 권한뿐이었다. 민규는 스위치 뒤쪽으로 가는 수리용 환기구를 찾아냈다. 현장의 개폐 기능은 오래전부터 고장 났다고 적혔지만, 도면에는 분명 사람이 다니지 않는 작은 통로가 있었다. “수리용 통로라면 출입 허가와 관계없을 수도 있겠군요.” 셀레나가 난색을 표했다. “처음부터 거기 들어갈 사람을 정하면 또 같은 일이에요. 내부의 압력과 독성 가스부터 재야 합니다.” 민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로봇 같은 정밀한 마법 인형을 만들어 보낼 수는 있지만, 먼저 내부를 알아야 했다. 루카는 작은 구형 탐사 장치를 가져왔다. 방 안에 들어가지 않고 굴려서 문틈을 촬영하는 학생 실습용 기계였다. 민규는 동작 확인을 거친 뒤 수리용 환기구에 장치를 넣었다. 영상 속 첫 장면은 먼지뿐이었다. 다음에는 오래된 전선과 벌레의 허물이 보였다. 지나간 물길에는 녹슨 쇠판이 기울어 있었다. 영상 끝에서 탐사 장치가 멈췄다. 환기구 반대편에 작은 나무 상자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색 코트 주머니에서 발견한 장난감 상자와 똑같은 모양이었다. “왜 두 개가 있는 거죠?” 셀레나가 물었다. 하준이 천천히 말했다. “그날 나도 상자를 들고 있었어요. 아이는 코트를 벗어 놓고 나한테 하나를 줬죠. 안쪽에 남은 누군가에게 가져다 달라고.” “그럼 처음부터 두 개였다는 말입니까?” “아니요. 상자는 하나였어요. 적어도 내가 문을 열기 전까지는.” 민규는 영상을 멈추고 두 상자의 모양을 비교했다. 하나에는 숫자 17이 적혀 있었고 다른 하나에는 글자가 보이지 않았다. 이중으로 찍힌 사본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복제된 물건이라도 실제로 두 곳에 존재한다면 기능은 달라질 수 있었다. 그는 수리용 환기구의 상자를 회수하기 전에 방과 연결된 회로를 확인하자고 했다. 민규는 탐사 장치의 화면을 여러 사람이 볼 수 있게 세워 놓았다. 화면 위에 반사된 건 경비실의 낡은 천장과 서로 다른 표정을 한 얼굴 둘이었다. 한 사람은 익숙한 흉터를 만지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숫자 17을 가리고 있었다. 셀레나는 두 사람이 화면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설비가 어느 쪽을 선택하려 드는지 시험하지 않았다. 시험에도 사람이 다칠 수 있었다. 배수로의 물은 아직 완전히 빠지지 않았다. 화면에 비친 작은 물방울들이 빛을 받아 은색으로 반짝였다. 민규는 장치가 한 번이라도 미끄러지면 되돌아올 수 있는지 바르트에게 물었다. 바르트는 뒤쪽 회수선을 보여 주며 두 가지 경로를 확보했다고 답했다. 사람이 아니라 기계를 보낼 때도 복귀 방법을 확인해야 했다. 그때 탐사 장치의 카메라가 사람의 손을 포착했다. 손은 작은 나무 상자를 뒤집어 바닥에 놓았다. 뒤쪽에 적힌 문장이 드러났다. [비상 구조 상자. 내부에서 열면 외부의 사람이 관리자에서 해제됩니다.] 카메라가 조금 더 움직이자 손의 주인인 여자가 보였다. 지친 얼굴이었지만 눈빛은 또렷했다. 그녀는 카메라를 향해 수화기처럼 손을 모았다. “밖에 누구 계세요? 아이부터 보내 주세요.” 윤서하의 음성이었다. 삼십 년 전 명부에 이름만 남았던 여자가 실제로 살아 있었다. 민규는 통신 장치를 가까이 댔다. “여기 있습니다. 지금 계신 곳은 안전합니까?” “안전하지 않아요. 그래도 아이는 살아 있어요.” “들었습니다. 문을 여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윤서하는 눈가를 문질렀다. “삼십 년 전에 누군가 같은 말을 했어요. 그분을 탓하지 않아요. 다만 이번에는 밖에 있는 사람을 대신 남기지 말아 주세요.” 탐사 장치가 전송을 멈추기 직전, 윤서하는 마지막 한 마디를 남겼다. “교대실 의자는 비어 있습니다. 거기 앉아 있는 건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내리지 못했던 결정이에요.” 영상이 끊겼다. 민규는 빈 의자를 바라봤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기계가 한 사람의 형태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 장치를 멈출 수 있다면 누구도 남지 않고 돌아올 수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반대쪽 환기구에는 아직 한 번도 열어 보지 않은 나무 상자가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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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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