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여덟 시, 교환실 앞에는 따뜻한 죽 냄새가 났다. 셀레나가 학교 식당에서 가져온 보온통이었다. 밤새 기계를 붙들고 있던 민규와 흉터 없는 남자는 손을 씻고 계단에 앉았다. 서로 같은 얼굴을 하고 밥을 먹는 광경이 묘했지만, 지나가던 청소 노동자는 두 사람을 한 번 쳐다본 뒤 아무 말 없이 미끄러운 바닥에 경고 표지를 세웠다. 밤중에는 드러나지 않던 먼지와 녹이 아침 빛 속에서 선명했다.
“둘이 형제입니까?” 청소 노동자가 조심스레 물었다.
“지금 확인 중입니다.” 민규가 말했다.
노동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형제든 아니든 계단에 앉을 거면 난간 쪽으로 붙으세요. 출근하는 사람 지나갑니다.”
흉터 없는 남자가 뜻밖에 웃었다. 몇 시간 전까지 누가 진짜인가를 가려야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는 그런 문제보다 지나갈 통로를 걱정했다. 그는 보온통 뚜껑에 담긴 죽을 다 먹고 그릇을 제 손으로 씻었다. 그 사소한 일은 민규에게 상대가 생활하는 사람이라는 감각을 줬다. 복제품이든 구출자든, 배고픔과 피로가 그의 몸에 남아 있었다.
교환실에서 들린 아이 목소리는 두 종류라는 게 확인됐다. 첫 번째는 민규가 어린 시절 사용했던 말투였다. 회중시계와 나사 셋에 관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두 번째는 발음이 조금 더 느렸고, 문이 열릴 때마다 목소리를 낮췄다. 두 목소리를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면 편했지만, 두 번째 아이는 첫 번째가 말하지 않은 장소를 설명했다. 문 안쪽의 작은 식수대, 천장에 붙은 흰 구름 그림, 벽에 놓인 파란 책상. 설계도에는 없던 방이었다.
“두 번째 목소리에게 직접 말을 걸어 보죠.” 셀레나가 제안했다.
민규는 통신기를 켜고 자신을 경비원이라고 소개했다. 아이는 한동안 답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낮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경비원이라면 출근해야 하는 거죠?”
“일하러 온 사람은 그렇지. 하지만 도움을 요청했다고 해서 경비원이 되는 건 아니야.”
“여기는 제가 문을 두드리면 출근이라고 해요. 안 두드리면 아무도 안 오고요.”
그 말에 흉터 없는 남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의 첫 출근일지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었다. 누군가 안쪽에서 문을 두드리면 밖에 있는 사람이 교대자로 등록되고, 밖에서 문을 열면 안의 사람은 근무를 시작하는 방식. 결국 어느 쪽이든 누군가는 빠져나오지 못했다.
“너는 여기 언제 들어왔니?”
“엄마랑요. 비가 아주 많이 왔어요.”
“밖에서 얼마나 지났는지는 알고 있니?”
아이는 대답 대신 물방울이 떨어지는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서른까지 세다가 다시 하나로 돌아갔다. 셀레나는 통신기의 파형을 화면에 띄웠다. 두 번째 목소리는 기록된 소리가 아니라 숨을 쉬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박동처럼 느껴지는 떨림이 일정하지 않았다.
오르반은 오래된 비상 대피 명부를 가져왔다. 삼십 년 전 폭우가 내리던 밤, 기숙사와 연결된 지하 계단으로 대피한 사람은 교사 아홉 명, 학생 열세 명, 임시 방문객 두 명으로 기록돼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실제로 돌아왔는지 확인한 서명은 스물세 개뿐이었다. 한 명이 비어 있었다. 교대 완료라는 도장은 멀쩡했지만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어린 민규가 실려 나왔다면 다른 한 명이 남았을 수 있어요.” 셀레나가 말했다.
“실려 나온 사람이 어린 민규였는지도 아직 확인해야 합니다.” 민규는 말을 고쳤다. “다만 누군가 빠진 건 분명하군요.”
명부 맨 아래에는 방문객 자격으로 들어온 여성의 이름이 희미하게 적혀 있었다. 윤서하. 당시 열한 살 딸과 함께 학교에 왔다는 기록이었다. 딸 이름의 잉크는 문질러 지운 듯 번져 있었다. 학교의 정식 학생도, 직원도 아닌 두 사람은 대피 통로 공사에 참여한 노동자의 가족이었다. 폭우를 피해 잠시 들어왔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그날 폭우에 다친 사람이 있었나요?” 민규가 물었다.
오르반은 고개를 숙였다. “기억하네. 부서진 난간 때문에 발을 다친 사람이 있었어. 구조 기록에는 정은희 씨가 간호했다는 문장이 남아 있지. 하지만 윤서하라는 분은 내 기억에 없네.”
정은희에게 확인한 결과는 더 불편했다. 그녀는 윤서하를 기억했다. 잠깐 아이를 맡겼고, 자신은 계단 아래쪽에서 어린 민규를 찾으러 내려갔다고 했다. 비상 경보가 끊기면서 모두가 흩어졌고, 이후 기록에는 윤서하와 딸이 따로 귀가했다고 쓰여 있었다. 그러나 정은희는 그들이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날 내가 두 아이에게 손을 잡으라고 했어.” 어머니가 말했다. “한쪽은 너고, 다른 쪽은 초록색 머리띠를 한 아이였지. 둘 다 겁에 질려 있었어. 서하 씨가 먼저 출구를 보러 간다고 했는데 그 뒤로...”
정은희는 말을 잇지 못했다. 민규는 서둘러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겪었던 삼십 년의 시간을 이해한다고 쉽게 말할 수 없었다. “기억나는 만큼만 이야기해 주세요. 지금은 어머니가 쉬는 게 더 중요합니다.”
오후가 되자 케스가 도착했다. 그는 중앙 기록보존총국의 신분으로 온 것이 아니라 조사 협력자로 서류를 제출했다. 이전에 본부가 사람의 이름을 지우는 기록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은폐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케스는 이번에는 공식 권한이 어디까지인지 먼저 설명했다. 서명할 수 있는 것은 자료의 인계 확인과 안전 조사 동의뿐, 누군가를 새로운 관리자나 보호자로 지정하는 권한은 없었다.
그가 가져온 목록에는 삼십 년 전 폭우 이후 신고된 실종자 세 명이 있었다. 윤서하, 그의 딸 윤다온, 그리고 이름을 적지 못한 임시 방문객 한 명. 마지막 사람의 신고서에는 손으로 그린 작은 시계가 붙어 있었다. 민규는 그 모양을 알았다. 어린 시절 자신의 장난감 상자에 넣었던, 바늘이 없는 회중시계였다.
“그림을 그린 사람이 누구입니까?”
“기록에는 경비원 정민규라고 돼 있습니다.” 케스가 말했다.
흉터 없는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자신의 수첩에서 똑같은 그림을 찾아냈다. 그 옆에는 ‘이 아이는 내 이름을 모른다’라는 문장이 있었다. 다른 날의 메모에는 ‘구조된 아이의 이름을 묻지 말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케스는 그 기록이 처음부터 비상 구조를 위한 수칙이었는지, 이름을 빼앗는 명령으로 바뀌었는지 구별해야 한다고 했다.
민규는 사진을 세 장 나란히 놓았다. 어린 자신, 흉터 없는 남자의 옛 근무증, 희미하게 남은 윤다온의 학생증. 학생증 속 아이는 초록색 머리띠를 하고 있었고, 나이는 열한 살이었다. 눈썹 위에 작은 점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교환실 안쪽에서 두 번째 목소리가 설명한 파란 책상에는 같은 머리띠가 걸려 있다고 했다.
“다온아.” 민규가 통신기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윤다온이라는 이름을 아는지 물어봐도 될까?”
그 이름을 말한 순간 교환실에서 경보가 울렸다. [실종 대상 확인. 대체 귀환자 선발.] 흉터 없는 남자의 숫자 17이 붉게 변했다. 그는 고통스럽게 손목을 움켜쥐었다. 셀레나가 즉시 감지기의 연결을 낮췄다. 민규는 이름을 부르는 행위 자체가 아이를 데려오기 위한 열쇠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통신을 멈췄다.
“미안해. 우리가 잘못된 절차를 건드렸어. 대답하지 않아도 돼.”
잠시 뒤 두 번째 아이가 속삭였다. “그 이름을 기억해요. 근데 그걸 말하면 아저씨 하나가 사라져요.”
민규는 두 사람을 돌아봤다. 흉터 없는 남자는 제자리에서 숨을 골랐다. 자신을 지키려면 아이에게 이름을 묻지 않아야 하고, 아이를 찾으려면 이름을 알 필요가 있는 상황. 설계자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지만 그 선택지가 옳다는 보장은 없었다.
“이름을 묻지 않아도 지금 네가 있다는 건 알았어.” 민규가 답했다. “우리는 문을 여는 다른 방법을 찾을 거야.”
아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엄마도 있나요?”
“아직 확인하지 못했어. 사실대로 말할게. 하지만 찾는 걸 멈추지는 않을 거야.”
케스는 본부의 보관 명부에서 윤서하의 귀가 확인서 원본을 찾아냈다. 그것은 기이한 문서였다. 외부 귀가 시각은 적혀 있었으나 귀가 장소는 교환실 내부와 같은 좌표였다. 결국 밖으로 내보낸 것이 아니라 장치 안에서만 귀가 처리한 것이다. 어떤 관리자는 도장을 찍는 순간 사람의 움직임도 끝난다고 믿었던 모양이었다.
옛 대피 명부는 물에 젖은 자국이 유독 많았다. 민규는 종이를 뒤집어 뒤쪽에 붙어 있던 공사 영수증을 발견했다. 영수증의 품목은 천장용 도료와 방수 판넬이었다. 윤서하의 남편이 맡았던 작업 물품이었다. 품목 옆에는 아이의 손으로 그린 구름 세 개가 있었다. 교환실 안쪽 방의 천장이 파란 이유를 어렴풋이 설명하는 그림이었다.
“윤서하 씨가 아이를 데리고 왔다는 건 확인됩니다.” 케스가 말했다. “그런데 귀가 확인란을 누가 채웠는지는 모르겠군요.”
그들은 서류를 시간순으로 다시 놓았다. 윤서하가 처음 학교에 들어온 시간, 폭우가 시작된 시간, 전기가 끊긴 시간, 구조 신고가 접수된 시간이 순서대로 나타났다. 마지막 칸의 귀가 확인 시각은 첫 신고보다 앞서 있었다. 실제로 누군가 나가기 전에 이미 귀가했다는 서류가 만들어진 것이다.
오르반은 그 기록을 한참 보다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때 우리가 안전하다고 선언한 이유가 이 도장 하나였군.”
“당시 모든 사람이 무엇을 봤는지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민규가 말했다. “도장을 믿고 귀가한 사람과 끝까지 수색한 사람을 구분해 두면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셀레나는 어린아이 손이 닿았던 듯 종이 끝에 남은 붉은 물감 자국을 발견했다. 파란 하늘과 흰 구름 그림은 아이를 달래기 위해 그린 것이었다. 그 공간이 누군가를 가두려고 처음부터 만든 감옥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가 감옥이었다는 사실까지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다온의 신호는 다시 한 번 들어왔다. “엄마가 저 문을 열어 줬어요. 근데 엄마는 들어가지 말라고 해서 밖에 있었어요.”
“어느 쪽이 밖이었니?”
“파란 책상 있는 곳이요. 거기엔 창문이 없지만 하늘이 보여요.”
민규는 그 말을 수첩에 적었다. 창문이 없는데 하늘이 보인다는 것은 기억의 착오일 수도 있지만, 마법 조명을 이용한 피난 공간을 가리킬 수도 있었다. 그는 도면의 통신실 뒤쪽에서 작은 중정을 발견했다. 중정은 설비 개조 때 막혀 있었다. 안에 사람이 있다면 통신실 정문보다 그쪽이 안전한 출구가 될 수 있었다.
흉터 없는 남자는 윤다온의 사진을 오래 바라봤다. 그러다가 갑자기 말했다. “나는 그 아이를 본 적 있어요. 근무일지에는 쓰지 못했지만. 그날 아이가 내 손을 잡고 부탁했죠. 엄마가 늦으면 혼자라도 열어 달라고.”
“왜 쓰지 못했습니까?”
“문을 열면 엄마는 남아야 한다고, 장치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나는 둘을 모두 데려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남자는 손등으로 얼굴을 가렸다. 민규는 그의 뒤에 서 있던 셀레나에게 의자를 가져오라고 했다. 지금 사라질지도 모르는 사람을 증언대에 세울 수는 없었다. 케스는 자신의 기록 장치를 껐다. 그의 증언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때에 다시 받기로 했다.
그때 중정의 바닥에 붉은 빛이 번졌다. 오래전에 해체된 교환실 지도 위에 파란 책상과 물통, 장난감 상자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그림 속에는 여자아이와 성인 여성이 서로 다른 공간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길이 아니라 거대한 시계의 바늘이 누워 있었다.
전광판의 문구가 바뀌었다.
[비상 신고 인원 두 명. 귀환 가능 인원 한 명. 세 번째 근무자 지정 시 전원 귀환 가능.]
민규는 그 문장을 천천히 읽었다. 오래전부터 기다리는 사람이 둘이었다. 장치는 그 두 사람을 구하기 위해 또 한 사람을 남겨 놓으려 했다. 그리고 이 위험한 계산에서 ‘세 번째 근무자’라는 자리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이제 숫자가 왜 셋이었는지 알겠네요.” 민규가 말했다. “저 숫자는 현재 인원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강요하려는 자리입니다.”
흉터 없는 남자가 그를 바라봤다. “그 자리에 나를 넣으면 둘을 다 꺼낼 수 있습니다.”
“아직 그렇게 결론 내리지 마십시오.”
“내가 그날 약속했어요. 둘 다 구하겠다고.”
“약속을 지키는 방법이 당신을 없애는 것뿐인지는 확인해야죠.”
경비실의 먼 곳에서 새 종이 한 장이 출력됐다. 제목은 [자발적 세 번째 근무 지원서]. 신청인 칸에는 아무 이름도 없었다. 하지만 동의란에는 작은 체크 표시가 벌써 떠올라 있었다. 민규는 그 종이를 뒤집어 증거 봉투에 넣었다. 누군가가 선택할 수 있으려면 먼저 선택하지 않을 수 있어야 했다.
제15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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