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 십칠 분. 경비실에는 같은 얼굴을 한 남자가 둘 서 있었다. 두 사람의 명찰에는 정민규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지만, 한쪽의 목에는 오래된 흉터가 있고 다른 쪽에는 없었다. 그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출입 기록이었다. 분명 두 사람만 들어왔는데 장부는 실제 근무 인원을 세 명이라고 표시했다.
민규는 상대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공격하려는 뜻도 아니었다. 상대가 누구든 피난 출입문 앞에서 힘겨루기를 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그는 벽에 붙어 있던 대피도부터 확인했다. 최근 공사로 옮겨진 소화전, 밤에는 잠기는 북쪽 계단, 창문을 깨지 않아도 열 수 있는 환기문. 어느 쪽이 진짜 민규냐는 질문 때문에 경비실에 실제로 사람이 갇히게 할 수는 없었다.
“배정 통지서를 갖고 오셨습니까?”
흉터 없는 남자는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종이가 지나치게 새하얘 보였다. 오늘 인쇄한 종이가 아니라, 한 번도 시간이 지나지 않은 종이 같았다. 상단에는 제0기록관의 직인이 찍혀 있었다. 하단에는 임시 근무 변경 신청과 처리 시각이 적혀 있었다. 신청 시각은 내일 새벽 두 시 십칠 분이었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의 신청서군요.” 민규가 말했다.
“여기서는 늘 그런 식이었습니다. 출근을 먼저 하고 설명은 나중에 받죠.”
상대는 웃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민규는 그가 기억을 공유하는 마법 인형인지 사람인지 판단하지 않았다. 대신 안내 표지판 옆에 새로운 의자를 놓고 방문객 등록지를 펼쳤다. “그럼 배정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방문객으로 모시겠습니다. 앉으실지 말지는 선택하세요.”
남자는 부러진 다리를 수리한 의자를 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왼쪽 뒷다리 안에 철심을 넣었군요. 그거 마법으로 붙이면 삼 일도 못 갑니다.”
“제가 수리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민규는 오래전 의자를 고치던 밤을 떠올렸다. 녹슨 볼트가 풀리지 않아 두 번이나 공구를 바꾸었고, 셀레나가 접착 주문으로 마무리해 주겠다고 했지만 부러진 나무의 결부터 확인해야 한다며 말렸었다. 정확한 정보였다. 그러나 정확한 정보를 안다고 해서 같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었다. 학교에는 사람의 목소리와 얼굴을 복사해 거짓 허가서를 만드는 장치가 많았다.
“그 의자를 안다면 수리 순서를 말해 보시겠습니까?”
흉터 없는 남자가 말을 이었다. “망치를 찾다가 드라이버로 볼트를 먼저 풀었지. 다리 안에서 오래된 동전 두 개가 나왔고. 오른쪽은 세탁실에서 주운 쇠판으로 보강했어.”
민규는 한순간 눈썹을 찌푸렸다. 동전은 세 개였다. 철심은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에 넣었다. 사소한 차이였지만 도리어 상대가 무턱대고 완벽한 복사본은 아니라는 걸 보여 줬다. 누군가 만들어 낸 기억은 언제나 정답만 말하도록 설계되곤 했다. 이 남자는 자신이 직접 겪었다고 믿는 다른 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때 셀레나가 경비실에 도착했다. 그녀는 두 사람을 보자마자 지팡이를 들지 않았다. 먼저 문을 열어 두고 출입 통제 마법의 상태를 살폈다. “밖에서 감지된 마력은 둘입니다. 그런데 감시판에는 셋이네요.”
“셋째가 어디 있습니까?” 민규가 물었다.
“움직임이 없어요. 정확히는 움직였다는 기록만 남아 있어요.”
셀레나가 감시판을 확대했다. 두 명의 성인이 문을 통과한 흔적 옆에 아주 작은 발자국이 나타났다. 아이의 발자국처럼 보였다. 세 번째 줄에는 이름 대신 [비상 신고자. 정식 근무 배정 대기]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
흉터 없는 남자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저건 아직 남아 있었군.”
“무엇이 남아 있다는 겁니까?”
“첫날 밤에 오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가 다가가자 발자국이 두 개 더 나타났다. 그런데 발자국은 경비실 안쪽이 아니라 바깥으로 향했다. 동시에 문 위의 전등이 희미하게 깜박였다. 감시판은 [세 번째 인원이 근무구역을 이탈했습니다]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누군가 이동하는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민규는 경고를 즉시 해제하지 않았다. 감시판의 센서가 무엇을 인원으로 세는지부터 알아야 했다. 그는 셀레나에게 외부 현관 카메라의 원본 시간을 확보해 달라고 하고, 오르반에게는 학생 기숙사의 실인원을 확인해 달라고 연락했다. 여태 장부에 기록된 숫자를 실제 인원으로 착각해서 문제가 커진 사건이 한둘이 아니었다.
오르반의 대답은 잠기운에 젖어 있었다. “기숙사 복도에서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신고가 들어왔네. 그런데 순찰한 선생님은 아무도 못 봤다고 해.”
“누가 우는지 확인하십시오. 비어 있다고 단정하지 마시고요. 학생들을 깨워서 복도에 세우지도 마십시오. 각 방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담당 교사를 보내 주세요.”
상대는 그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민규가 전화를 끊자 물었다. “아직도 숫자부터 믿지 않는군요.”
“현장에서는 번호표가 사람을 지워 버릴 때가 있으니까요.”
“내가 배웠던 것도 그겁니다. 그런데 당신이 그걸 배웠다면 나는 왜 여기 있어야 하지?”
그 질문은 위협처럼 들리지 않았다. 길을 잃은 사람이 지도 두 장을 펼쳐 놓고 어느 쪽을 따라가야 할지 묻는 것 같았다. 민규는 단정하지 않았다. “그 답은 저도 모릅니다. 다만 두 사람 중 하나가 없어져야 하는 답이라면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흉터 없는 남자는 경비복 소매를 걷었다. 오른쪽 손목 안쪽에는 오래된 잉크 자국이 있었다. 숫자 17. 민규에게는 없는 표시였다. 그는 표시를 숨기지 않은 채 손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이게 나를 부르는 번호입니다. 당신 이름을 달고 들어오는 곳마다 열일곱 번째 사람이라는 뜻이죠.”
“열일곱 번째라니요?”
“누군가 자리를 비울 때 대신 서 있도록 만든 근무자들. 얼굴이 필요한 게 아니라 출입 기록을 가진 사람이 필요했으니까.”
셀레나의 손에 있던 감지기가 짧게 울렸다. 숫자 17이 한순간 발광했고 경비실의 전화가 동시에 울렸다. 발신 번호는 학교 내부의 오래된 교환실. 오르반은 그 방이 삼십 년 전에 폐쇄됐다고 했었다.
민규가 수화기를 들자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그 사람 보내지 마세요.”
“어디에 있니? 다친 곳은 없어?”
“나를 대신 출근시키려고 해요. 그러면 엄마가 못 나와요.”
목소리 뒤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민규는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어떤 문이 보이는지 물었다. 아이는 문이 없다고 했다. 벽에는 커다란 시계가 하나 있고, 그 아래에 가방 세 개가 매달려 있다고 했다. 가장 작은 가방의 이름표는 이미 뒤집혀 있었다.
“이름을 말해야만 찾을 수 있는 건 아니야. 지금 보이는 것부터 말해 줘.”
“시계가 두 시 십칠 분이에요. 늘요. 그리고 밖에 두 아저씨가 서 있어요.”
민규는 주변을 둘러봤다. 경비실에 있는 것은 두 남자와 셀레나였다. 전화기 속 아이는 그들을 볼 수 있었다. 감시 장치인지 실제 창문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수화기에 대고 손전등을 세 번 켜 보겠다고 말했다. 거짓 대답을 막기 위해 시점을 미리 정하고 불빛이 어느 방향으로 보이는지 물었다.
“첫 번째는 천장이에요. 두 번째는 의자. 세 번째는 바닥.”
민규는 일부러 마지막에 불빛을 천장으로 향했다. 아이는 그 차이를 놓치지 않았다. “세 번째는 천장이었어요. 아저씨가 틀리게 말했잖아요.”
거짓으로 모든 질문에 맞추는 자동 응답보다는 실제로 보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는 아이에게 조금만 더 대답할 힘이 있는지 물었지만 아이는 갑자기 숨을 삼켰다. 수화기 저편에서 어른 목소리가 울렸다. “신고자가 최종 확인자로 지정되었습니다. 근무 시작을 승인하십시오.”
흉터 없는 남자가 수화기 쪽으로 달려오려 했다. 민규는 그를 밀치지 않았다. 한 걸음 옆으로 비켜 서며 그의 손을 보았다. 남자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승인하지 마십시오.” 민규가 말했다. “누구를 어디에 세우려는 건지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안내 음성은 같은 문장을 반복했다. 셀레나가 교환기의 마력 공급을 따로 측정하자 감시판의 세 번째 발자국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더니 발자국 옆에 새로운 숫자가 적혔다. [현재 대기 기간: 30년 0개월 0일.] 삼십 년 동안 출근을 기다리는 아이가 있다면 그것은 근무 신청이 아니라 방치된 구조 요청이었다.
민규는 수첩을 펴고 신고 시각을 적었다. “여기에는 아직 근무자가 세 명이 아닙니다. 현재 확인된 사람은 둘이고, 보호가 필요한 미확인 신고자가 하나입니다.”
그가 문장을 읽어 주자 감시판의 글씨가 잠시 흔들렸다. 시스템은 셋이라고 쓰여 있던 숫자를 지우지 못했다. 대신 작은 주석을 달았다. [인원 정의에 이의 제기 접수.] 흉터 없는 남자는 처음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당신은 그런 문장을 쓸 수 있군요.”
“누구라도 쓸 수 있어야죠.”
남자는 손목의 숫자를 내려다보더니 방문객 등록지에 펜을 올렸다. 그런데 이름을 쓰려는 순간 펜 끝에서 검은 잉크가 마르기 시작했다. 본명을 기록하면 그 사람의 과거가 전부 청구된다는 경고가 나타났다.
민규는 펜을 빼앗지 않았다. “안 써도 됩니다. 일단 ‘신원 확인 중인 방문객’으로 기록하죠. 당신이 원할 때 적으세요.”
남자는 천천히 펜을 놓았다. 창밖에서는 기숙사 복도의 조명이 순서대로 켜졌다. 실제 학생들은 모두 방에서 확인됐다는 오르반의 보고가 뒤따랐다. 아이 울음소리는 여전히 들렸다. 소리의 출처가 복도가 아니라 닫힌 교환실이라는 사실이 그제야 드러났다.
오르반의 마지막 보고와 함께 서쪽 계단의 옛 순찰 사진도 도착했다. 사진은 비 오는 날 촬영된 것이었다. 한 경비원이 우산을 접어 든 채 학생을 안고 있었고, 그 뒤로 누군가 코트 자락을 잡고 있었다. 촬영 날짜는 삼십 년 전이었지만 경비원의 얼굴은 오래된 종이에서 지워져 있었다. 셀레나는 사진의 흐릿한 모서리에 마법 빛을 비췄다. 지워진 자리에 사람의 윤곽이 두 개 겹쳐졌다. 한 사람은 바깥으로 걸어 나오고, 다른 사람은 문 안쪽으로 돌아서 있었다.
“사진도 둘을 하나처럼 기록했네요.” 셀레나가 말했다.
흉터 없는 남자는 사진을 보고 고개를 젓기 시작했다. “저 우산은 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우산을 가진 적이 없어요. 젖으면 교환실 난로에 옷을 말렸죠.”
“그럼 사진에 찍힌 사람이 당신이라고 단정할 수 없군요.”
“하지만 저기 들린 아이는 기억합니다.”
그는 사진 속 작은 구두를 가리켰다. 한 짝만 끈이 묶여 있었다. 아이가 울면서 자꾸 신발을 벗으려 해 끈을 꽉 묶어 주었다고 했다. 그가 기억하는 손끝의 감촉은 명확했다. 하지만 그 뒤에 무엇을 했는지 묻자 그는 입을 닫았다. 기억의 중간이 도려낸 듯 비어 있었다.
민규는 사진의 뒤쪽을 확인했다. 촬영자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지만 종이 모서리에는 봉합용 실이 붙어 있었다. 정은희가 사용하던 것과 비슷한 붉은 실이었다. 그는 마음이 앞서는 걸 억눌렀다. 과거 사진 한 장으로 자기 어머니와 상대를 동시에 설명하려 든다면 새로 나타난 단서를 오히려 잃을 수 있었다. 대신 촬영 위치와 높이를 표시하고 출입 사진과 비교해 볼 목록에 넣었다.
복도 밖에서는 어린 학생 하나가 소화전 앞에 서 있었다. 학생은 민규가 두 명인 모습을 보고 겁먹기보다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아저씨, 마법 시험 때문에 분신술 하는 거예요?”
민규는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시험은 아니고요. 지금은 확인할 일이 좀 있습니다. 소화전 앞에서는 비켜 줄래요?”
학생은 옆으로 물러나며 흉터 없는 남자를 한 번 더 봤다. “그 아저씨는 더 피곤해 보이네요.”
남자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 말이 오히려 그를 현실로 끌어내렸다. 자신이 누군지 증명하지 못해도 피곤함을 느끼는 지금의 몸은 분명했다. 민규는 복도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소문을 만들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고, 교내 상담 담당자에게 아이들이 겁먹을 만한 상황이 생겼는지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두 사람은 교환실로 가기로 했다. 셀레나는 응급 의료함을 들었고, 민규는 오래된 열쇠 묶음 대신 문을 열 때 쓸 장비와 외부 구조대 연락 수단을 챙겼다. 흉터 없는 남자도 따라가겠다고 했다. 그는 혼자 남을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단지 삼십 년 전 그 문을 마지막으로 닫았던 사람이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럼 당신도 확인할 게 있겠군요.” 민규가 답했다.
그들이 문을 나서자 출입대장의 두 번째 줄에 처음으로 표시가 생겼다. [방문객 이동: 자발적.] 그러나 세 번째 줄은 달라지지 않았다. [근무 시작 대기. 승인자: 정민규.] 두 개의 이름 중 어느 쪽을 뜻하는지 밝히지 않은 채였다.
복도 끝에서 아이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아저씨, 꼭 셋이 와야 해요?”
민규는 발걸음을 멈췄다. 세 명을 맞춰야 문이 열리는 구조라면, 또 누군가를 위험한 자리로 밀어 넣는 장치일 수도 있었다. 그는 대답했다.
“아니. 몇 명이든 안전하게 갈 수 있는 길부터 찾을 거야.”
수화기에서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대신 오래전에 닫힌 교환실 문 아래로 작은 종이비행기가 밀려 나왔다. 그 위에는 어린아이의 서투른 글씨로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나는 근무하러 온 게 아니에요. 엄마를 찾으러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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