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제분소의 주인은 아침부터 자기 이름 때문에 세 번이나 싸웠다.
그의 이름은 바르트였다. 삼십오 년 동안 같은 마을에서 밀을 갈았고, 결혼식 때도 장례식 때도 언제나 그 이름으로 불렸다. 그런데 마을 회관의 마법 장부에는 그가 어젯밤부터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제가 여기 있는데 없는 사람이라니, 이게 무슨 말이오!”
회관 직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명부에서 확인이 안 됩니다. 세금 기록도, 식료품 배급 기록도 없고요.”
“그럼 내가 삼십오 년 동안 밀가루를 공짜로 나눠 줬다는 거요?”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내 돈부터 돌려주든가!”
학교 밖의 마을은 생각보다 작았다. 개울 하나를 중심으로 집들이 둥글게 모여 있었고, 돌다리 두 개가 양쪽 언덕을 이어 주었다. 아침이면 제분소의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소리가 골목 전체에 울렸다. 이곳 사람들은 학교를 멀리 있는 높은 탑처럼 보았지만 생활은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다. 마법학교에서 나오는 마나로 가로등이 켜졌고, 회관 장부와 식료품 배급표가 갱신됐다.
민규는 그 구조가 낯설지 않았다. 한국에서 아파트 단지의 중앙 설비를 점검하던 시절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큰 기계실 한 곳이 멈추면 수백 가구의 난방과 급수가 함께 멈췄다. 그래서 중요한 설비에는 우회 배관과 비상 전원이 있었다. 고장 나도 사람이 하루를 버틸 방법을 남겨 두는 것이다.
“여기도 마을 전체가 학교에 연결돼 있네요.”
“학교가 마을을 세웠으니까요.” 셀레나가 설명했다.
“그렇다고 마을이 학교의 일부는 아닙니다.”
민규는 주민들의 길을 지도로 표시했다. 대피소로 사용할 만한 회관, 넓은 마당이 있는 제분소, 급수에 쓸 수 있는 우물. 아직 문제를 해결하지도 않았는데 대피 장소부터 확인하는 일이 조금 과하게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밤에 사고가 나면 가로등이 꺼지고, 그때는 길을 찾는 일부터 어려워진다.
루카는 마을에 들어서자 익숙한 사람들에게 연신 손을 흔들었다. 그는 학교에서는 문제아였지만 마을에서는 심부름을 잘하는 아이로 알려져 있었다. 빵집에서 매일 남은 빵을 가져다 주던 일을 알고 있는 주민도 있었다. 민규는 루카가 왜 갑자기 누나 이야기를 자주 하지 않는지 알 것 같았다. 이곳에서는 누나와 함께한 추억이 골목마다 남아 있었다.
“아저씨, 여기는 누나가 저를 혼내던 곳이에요. 저 다리에서는 자꾸 난간에 올라간다고요.”
“그건 혼날 만했네.”
“알아요. 이젠 안 올라가요.”
“그럼 다행이고.”
민규는 루카가 웃는 동안 다리 아래의 물 흐름을 확인했다. 학교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배관 하나가 돌다리 아래를 지나가고 있었다. 이곳에 문제가 생기면 물길과 배관을 함께 관리해야 할 것 같았다. 그는 지도의 여백에 점검 표시를 했다.
바르트가 회관 앞에서 큰 소리로 떠들고 있을 때, 마을 사람들은 그가 분명 제분소 주인이라는 걸 알면서도 직원의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있었다. 중앙 장부의 글씨를 너무 오랫동안 믿어 온 탓이었다. 하지만 그날 처음으로 한 사람이 장부 대신 자신의 경험을 꺼내 들었다. 민규는 그것이 앞으로 일어날 일의 시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민규가 도착했을 때 회관 앞에는 주민 열댓 명이 모여 있었다. 바르트는 밀가루 자루를 어깨에 메고 있었다. 왜 자루를 가져왔느냐고 묻자, 자신이 제분소를 운영한다는 증거라고 했다.
민규는 그에게 바로 명부 등록을 시도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지금은 명부가 고장 난 상태입니다. 여기에 계속 정보를 넣으면 오히려 다른 기록까지 바뀔 수 있어요.”
“그럼 나는 어쩌라는 거요?”
“선생님이 실제로 이 마을에서 살았다는 증거부터 확인합시다. 상점에서 받은 영수증이나 손으로 쓴 장부가 있습니까?”
바르트는 허리춤에서 낡은 계산 수첩을 꺼냈다. 모서리가 닳은 수첩에는 날짜마다 밀가루의 양과 외상값이 적혀 있었다. 십 년 넘게 그가 직접 적은 글씨였다. 그는 처음으로 조금 안심한 얼굴을 했다.
“이건 없어지지 않겠지?”
“지금 확인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원본을 따로 보관하고, 사본을 만듭시다.”
셀레나는 회관 마나 장부를 조사했다. 학교 기록망과 연결된 선이 없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바닥 아래에서 약한 공명이 느껴졌다. 어젯밤 보관실에서 발견한 제2도면의 화살표와 맞는 위치였다.
“학교가 마을에 공급하는 마나가 이 장부까지 들어오고 있었어요.”
“그럼 회관에 있는 것도 학교 출석부랑 똑같이 위험하겠네요.” 루카가 말했다.
“잠재적으로 그렇지.”
민규는 회관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마법 장부가 틀렸다고 해서 주민을 쫓아내거나 음식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임시로 수기 장부를 써야 한다는 것, 개인의 이름을 복구하려고 무작정 새로운 서류를 제출하면 오류가 더 퍼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직원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규정상 확인되지 않은 주민에게 배급을 줄 수 없어요.”
“그 규정은 주민을 보호하려고 만든 겁니까, 장부를 보호하려고 만든 겁니까?”
직원은 대답하지 못했다. 민규는 부드럽게 덧붙였다.
“지금 바로 바꿀 수 없는 규정이면 담당자 이름을 적고 임시 승인 절차를 만드세요. 기록은 뒤늦게 정정할 수 있지만, 오늘 굶은 사람에게 어제 식사를 줄 수는 없습니다.”
바르트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오. 나도 직원한테 화를 내 봐야 소용없지. 장부부터 고치자고.”
루카는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웃었다. 학교에서는 야간 경비원이 교장에게 지시하는 것으로 충분히 놀랐는데, 마을에서도 회관 직원들을 움직이고 있었다.
“아저씨는 원래 이렇게 잔소리가 많아요?”
“문제가 커지기 전에 할 말 하는 게 내 일이야.”
“그럼 저한테도 매일 열 마디씩 하시는 이유가 있었군요.”
“너는 문제가 이미 커진 뒤에 나타나니까.”
두 사람은 잠깐 웃었다. 그러나 오래 웃을 수는 없었다. 회관 문밖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여섯 살쯤 된 여자아이가 빵집 주인의 앞치마를 붙잡고 있었다. 아이는 계속 자신의 아버지를 찾고 있었다. 빵집 주인은 난감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봤다.
“이 아이가 우리 집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는데,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겠어요. 친척이 아니라는 건 확실해요.”
“아이 이름은요?” 셀레나가 물었다.
“에다라고 했어요.”
민규는 아이 앞에 무릎을 굽혔다.
“에다, 마지막으로 아빠를 본 게 언제니?”
“오늘 아침이요. 아빠가 빵을 굽고 있었어요.”
“아빠가 어떤 빵을 만들었어?”
“밀가루 반죽으로요. 저한테 꼬인 빵 하나 줬어요. 위에는 설탕이 있고요.”
바르트가 놀란 듯 말했다.
“그 빵은 여기서 만들기 어려워요. 설탕이 귀하니까. 마을에서 그런 빵을 굽는 건 저쪽 다리 건너 집뿐인데.”
빵집 주인은 고개를 저었다.
“거긴 몇 달째 비어 있어요. 주인이 떠났거든요.”
민규는 아이의 손을 살폈다. 반죽을 만진 흔적이 손가락 끝에 남아 있었다. 앞치마 주머니에는 빵 부스러기가 있었고, 작게 접힌 종이에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첫 번째 반죽 05:40 / 두 번째 반죽 06:10.]
마을 장부에는 빈집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아이가 가져온 물건들은 다른 이야기를 했다. 민규는 혼자 확인하러 가지 않았다. 바르트와 마을 경비대장, 셀레나가 함께 다리 건너 집으로 향했다. 루카는 에다 곁에 남아 누가 아이를 데려가려 하면 즉시 알리기로 했다.
다리 끝의 빵집은 멀리서 보기에 폐가였다. 창문에는 먼지가 쌓였고 문은 잠겨 있었다. 그런데 굴뚝 끝에서는 아주 얇은 흰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빈집에서 연기가 나네요.” 셀레나가 말했다.
“안쪽에 화덕이 켜져 있습니다.” 민규가 답했다.
경비대장이 문을 두드렸다. 아무 응답도 없었다. 민규는 문 아래로 따뜻한 공기가 새어 나오는지 살폈다. 틈새에서 분명히 따뜻한 바람이 나왔다. 바깥의 낡은 자물쇠는 먼지로 덮여 있었지만 열쇠 구멍 안쪽은 새것처럼 깨끗했다.
“문이 실제로 닫힌 게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셀레나가 작은 빛을 비추자 문 표면에 희미한 마법 문양이 떠올랐다. 마을의 기록망과 같은 서명이었다. 그녀는 문양을 강제로 찢지 않고 주위의 마나만 차단했다. 곧 자물쇠가 평범한 쇳덩어리로 돌아갔고, 경비대장이 미리 준비해 온 열쇠로 문을 열었다.
안에서는 빵 냄새가 났다.
커다란 반죽 그릇이 놓여 있었고, 오븐에는 아직 불씨가 남아 있었다. 작업대에는 남자 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그는 살아 있었다. 손바닥에는 밀가루가 묻었고, 목에는 뜨거운 솥에 데인 작은 상처가 있었다.
“호흡 있습니다. 맥박도 있고요.” 민규가 말했다.
남자는 눈을 뜨자마자 에다를 찾았다.
“우리 딸은 어디 있습니까?”
경비대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회관에 안전하게 있습니다. 댁의 이름은 뭡니까?”
“하멜입니다. 제가 이 집에서 빵을 굽는데, 왜 모두 절 모르는 사람 취급하는 겁니까?”
민규는 서둘러 그를 일으켜 세우지 않았다. 먼저 화덕의 불을 끄고 환기를 시켰다. 마법이든 아니든 오븐에 문제가 생기면 제일 먼저 할 일은 같았다. 몸을 보호하고, 불을 관리하고, 새 사고가 나지 않게 만드는 것.
그들은 하멜을 회관으로 데려갔다. 에다는 아버지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며 달려갔다. 주위 주민들 가운데 몇 명은 그를 알아봤다. 그런데 또 다른 몇 명은 그가 낯선 이웃이라고 했다. 마을을 둘로 나눈 것은 의견이 아니라 기억이었다.
셀레나는 이 차이를 조사하다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하멜의 집에서 빵을 산 사람들은 그를 기억했지만, 회관의 마법 배급표만 보고 거래한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잊고 있었다.
“기록망을 통해 확인한 기억만 선택적으로 바뀐 것 같아요.”
“직접 만나고 이야기한 사람들의 기억은 비교적 남아 있는 거군요.” 민규가 말했다.
“네. 그렇지만 언제까지 안전할지는 모르겠어요.”
바르트가 앞으로 나섰다. “그럼 우리가 서로를 확인해 주면 되지 않겠소? 제분소에서도 내 장부를 보여 드릴 테니, 다들 자기가 산 밀가루 양을 적어 주시오.”
마을 주민들은 처음에는 어색해했지만 하나둘 종이를 꺼냈다. 누군가는 하멜이 구운 빵에 계피가 너무 많다고 투덜거렸고, 다른 누군가는 작년 겨울 그가 길 잃은 개를 돌봐 줬다고 말했다. 그 평범한 이야기가 하나의 사람을 다시 보이게 만들었다.
민규는 회관 벽에 종이를 붙였다.
[긴급 안내: 명부 오류가 발생해도 본인을 부정하지 마십시오. 직접 확인 가능한 사실을 수기로 남겨 주십시오.]
루카가 글씨를 보고 웃었다.
“글씨가 너무 딱딱해요. 학생들 같으면 안 읽어요.”
“그럼 네가 쉽게 고쳐 봐.”
루카는 그 아래에 한 줄을 덧붙였다.
[친구가 갑자기 모르는 사람처럼 보여도, 일단 밥부터 같이 먹으세요.]
마을 경비대장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민규도 잠깐 웃었다.
그러나 그때 회관 바깥에서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옷깃에는 은빛 배지가 있었다. 기록 서기관이었다. 그는 마치 처음부터 회관 직원이었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문을 열었다.
“임시 장부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회관 직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십니까?”
“중앙 기록 정비 담당자입니다. 주민 명부의 오류를 처리하러 왔지요.”
서기관은 벽에 붙은 종이를 바라봤다.
“당신들이 서로를 기억한다고 해서 행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민규는 서기관과 주민 사이에 섰다.
“그럼 절차를 알려 주십시오. 오류 신고서와 정정 신청서를 내겠습니다.”
서기관은 잠시 침묵했다. 서류를 요구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줄은 몰랐던 얼굴이었다.
“지금은 긴급 정비 기간입니다.”
“긴급할수록 책임자를 남겨야죠.”
“규정 위반입니다.”
민규는 벽에 붙은 안내문을 가리켰다.
“규정을 위반한 건 사람입니까, 사람을 없다고 적은 장부입니까?”
서기관의 얼굴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마을 시계탑에서 종이 한 번 울렸다. 모두가 고개를 돌린 틈에 그는 작은 봉투 한 장을 회관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학교 재정비 명령. 정민규 야간 경비원 즉시 직무 해제.]
루카가 소리쳤다.
“아저씨가 잘리면 누가 우리를 지켜요?”
민규는 문서의 날짜부터 확인했다. 서기관이 내민 종이는 이상할 만큼 차갑고 무거웠다.
명령서의 작성일은 오늘이 아니었다. 삼십 년 전 사고가 벌어진 바로 그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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